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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남부 7산...삼성산·관악산·우면산·청계산·바라산·백운산·광교산 50km 종주산행

오완선 2017. 10. 2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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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산·관악산·우면산·청계산·바라산·백운산·광교산 50km 종주산행

최대 10일간의 추석 황금연휴다. 등산인들에게는 바빠서 못 했던 산행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허나 시간은 많은데 여의치 않다. 해외 비행기편은 매진되었고, 국립공원 대피소 예약은 하늘에 별 따기이며, 먼 산으로 가자면 교통 체증으로 고생할 것이 뻔하다.

이럴 때 근교산 종주를 권한다. 집 가까이 있으면서도 산세가 수려한 명산들을 연결해서 종주하는 것이다. 30km 이상의 장거리 종주산행에 도전해 스스로 체력과 정신력을 시험하고, 확인할 기회이다. 묵힌 땀과 스트레스를 쫙 뺄 수 있는 황금찬스인 것이다. 더불어 보름달을 보며 걷는 낭만과, 10월 초 덥지도 춥지도 않고 선선한 밤 날씨는 장거리산행에 최적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월간 <山>은 대도시 장거리 종주 특집을 마련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저 그리운 능선에 제대로 몸을 실어보겠는가. <편집자 주>

욕 나왔다. 나를 향한 분노였다. 밤 깊은데, 산은 두 개나 남아 있었다. 오르고 올라도 계단은 끝이 없었다. 깊은 어둠 탓에 길을 잘못 들까 긴장감이 흘렀다. 물이 부족할 수 있어, 시원하게 물을 들이킬 수도 없었다. ‘내 걸음이 빨랐다면 이렇게 늦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솟구쳤다.

지구력은 자신 있지만, 스피드는 젬병이었다. 남부 7산은 나의 약점만 골라 집요하게 쿡쿡 찔렀다. 오래도록 걸으며 걷고 있다는 것마저 잊어버리자, 산을 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추함과 약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어두운 숲 속에서 일행의 희미한 헤드랜턴 불빛이 보였다. 나약해지는 스스로를 멱살 잡아서라도 가야 한다. 가야 한다. 가야 한다. 속으로 반복하는 동안 고통이 사라졌다. 능선만 남아, 내게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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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구상에서 호암산으로 이어진 능선의 훤칠한 바윗길. 금천구 시흥동의 무뚝뚝한 아파트 숲이 대열을 맞추고 있다.

사당능선에 뜬 휘영청 보름달

수도권 한강 이북에 ‘불수사도북’이 있다면 한강 이남에 ‘남부7산’이 있다. 수도권 장거리 종주 코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을 잇는 산행이다. 수도권 한강 이남에도 이에 대적할 장거리 코스가 있으니 삼성산~관악산~우면산~청계산~바라산~백운산~광교산을 잇는 ‘남부7산’이다.

바위산과 육산이 뒤섞인 50km 산행은 근교산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도전이다. 그래서 스피드 산행을 즐기는 골수산꾼들은 잠을 자지 않고 13시간 이상 걸어 완주에 도전한다. 자신의 힘과 지구력·인내력을 시험하고, 자신과의 싸움을 통한 깊이 있는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안양 석수역에서 훤칠한 키와 외모의 김민영씨를 만났다. 여성들로 이뤄진 민낯산악회의 운영자인 그녀는 삼성산·관악산 구간을 함께하기로 했다. 취재의 편의를 위해 이틀에 나눠 남부7산 종주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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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 국기봉 부근 암릉을 오른다. 삼성산은 바위가 많아 경치가 시원하게 터진다.

서울둘레길 안내판을 뒤로하고 곧장 지능선을 타고 오른다. 호암산 정상으로 간다. 삼성산 위성봉으로 과소평가 받지만, 조선 태종은 호랑이 모습의 이 산 때문에 한양에 호환이 잦다고 믿었다. 그래서 호랑이 기운을 누른다는 이름의 호압사를 세우고, 개를 조각한 석구상을 세워 산의 기운을 누르고자 했다.

호랑이 등은 편안하다. 산길은 완만하고 리기다소나무가 솔향기를 내어주고, 졸참과 떡갈, 때죽나무는 풍성한 그늘을 내어준다. 귀여운 모양의 석구상을 지나 안부로 떨어졌다가 올려치자 호암산 정상이다. 관악구, 영등포구, 동작구 일대가 한방에 드러나는 시원한 전망대다. 미세먼지가 심해 맛이 반감되었지만 바위산 특유의 압도적인 경치다.

라디오를 들으며 느리게 걷는 어르신들을 추월해 삼성산 정상으로 향한다. 고정로프가 있는 직벽을 오르자 삼막사계곡이 드러나는 바위 전망대다.

임도에서 정상이 아닌 삼막사로 향한다. 삼성산을 대표하는 명소를 모른 척 지나치고 싶지 않아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원효석굴에 똑같이 앉아서 호흡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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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암산 정상부의 걸출한 암봉 위에 섰다. 도시의 신선이 된 듯 시선이 자유롭다. / 3 관악산 사당능선의 스릴 넘치는 바윗길. 악산답게 바위가 많아 거리에 비해 시간 소모가 큰 구간이다.

삼성산의 진짜 정상은 철조망 시설물 안에 있다. 등산인의 정상이라 할 수 있는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관악산을 바라본다. 근육질의 바위산은 첨탑을 몇 개씩 꽂은 채 포효하는 괴수처럼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능선을 따라 곧장 관악산으로 향한다. 평일에도 사람 많은 삼성산이지만 관악산으로 이어진 산길엔 마주치는 이가 드물다. 간혹 경치 좋은 마당바위에 홀로 터를 잡고 시간을 보내는 중년 남성들이 있다. 낮잠도 자고 신문을 보고 또 보는 그들의 모습이 왠지 슬프다.

삼성산과 관악산의 경계인 무너미고개에서 간식을 먹으려는데, 모기떼가 작정하고 달려든다. 연신 팔다리를 긁으며 학바위능선을 오른다. 학바위능선은 관악산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 풍경이 마치 강원도 첩첩산중 같다. 그중 백미는 국기대가 있는 학바위다. 훤칠한 바위 꼭대기에 서자 안양 쪽 풍경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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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능선 마당바위에 뜬 보름달. 숨 돌리기 좋은 장소, 좋은 분위기다.

 흐린 날씨와 부드러운 능선의 겹침이 서정적인 수묵화를 그려놓았다. 문득 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산의 민낯이 드러난다. 흡입력 있게 펼쳐지는 관악·삼성의 드라마틱한 시간에 반해 학바위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

관악산(632m)이 이름값을 한다. 수도권 남부7산의 최고봉다운 텃세를 부린다. 거친 숨결로 깔딱고개를 올라선다. 연주암으로 내려가 보살님께 청해 수통에 물을 채우고 정상에 오른다. 각종 시설물과 철탑으로 둘러싸였으나 걸출한 산세를 완전히 가리진 못했다. 연주대 꼭대기인 통바위 슬랩을 올라서자 화려한 관악의 산세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갈 길이 먼데, 해가 지고 있다. 서둘러 사당능선에 뛰어든다.

짜릿한 고도감의 쇠사슬 절벽을 지나 관악문에 닿자, 헤드랜턴을 켜야 할 정도로 어둠이 다가왔다. 관악산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어둠이 내린 바위능선은 위험하면서 고혹적이다. 시내의 불빛이 사파이어처럼 찬란하게 반짝인다. 후각과 청각도 예민해져 도시 소음과 귀뚜라미 소리, 풀냄새가 처음인 것 마냥 낯설다.

마당바위에 닿으니 보름달이 맞아 준다. 달의 응원을 받으며 사당능선의 끝 사당역으로 내려선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김민영씨를 떠나보내고 도시의 술 취한 인파 사이에서 몸을 뉘일 숙소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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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물든 하늘을 감상하느라 학바위에서 쉽게 발을 떼지 못한다. 학바위능선에선 두메 첩첩산중에 온 듯,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웰컴 투 계단 지옥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면산으로 향한다. 능선에 올라 임도를 지나 빠르게 걷는다. 관악산에 비해 등산로 정비가 잘되어 있다. 우면산 산사태의 아픔을 겪었기에 철저히 관리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스트로브잣나무와 소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가 기분 좋은 피톤치드를 뿜으며 응원한다. 지긋지긋한 모기떼도 함께 간다.

오늘은 34km를 가야 한다. 313m의 낮은 산에서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눈치 챘는지 누워 있는 소의 모습이라는 우면산이 발목을 잡는다. 군부대 우회로에서 끝없이 뻗은 계단이 아침부터 진을 빼놓는다. 우면산의 정상격인 소망탑에 닿자 땀범벅이다.

전망데크는 시원하지만 가스가 드리워 볼거리는 없다. 파라솔 같은 팥배나무 그늘 아래에서 열을 식힌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빠르게 진행해 찻길을 만나는 태봉주유로로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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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 매봉에 닿자 서울 강남 일대가 아스라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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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디딤 편한 우면산 능선길.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고, 시가지를 빠르게 관통해 서울추모공원 입구의 청계산 들머리에 닿았다. 오늘 산행 파트너인 슬로우 아웃도어 팩토리 이재승 대표가 기다리고 있다.

6년 전 남부 7산을 종주했는데, 역방향이라 그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덥고 습도 높은 지금이 더 어렵다는 것만 몸이 기억한다. 옛날 풍수가들은 관악산을 우백호, 청계산을 좌청룡으로 보았다. 푸른 용이 산허리를 뚫고 나와 승천했다는 산으로 접어든다. 

사람이 붐비는 인기산이지만 양재IC 방면에서 오르는 능선길은 고즈넉하다. 뛰다시피 빠르게 걷는 산행을 즐기는 이재승씨가 우리 속도에 맞춰 준다. 빠르게 걷기보다는 힘을 아껴 완주하는 데 중점을 둔다. 오르막을 삼키고 삼켜 닿은 옥녀봉, 시원한 경치와 너른 터, 막걸리 장수가 있다. 관악산이 늠름한 검은색 실루엣으로 멀어져 있다. 남은 거리에 대한 초조함과 무더운 날씨 때문에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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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에 깔린 양탄자는 코코넛에서 추출한 섬유로 만든 것이다. 덕분에 발디딤이 편해 산행이 수월하다. 매바위에 올라서자 청계산 최고의 경치가 기다린다. 능선 너머로 강남의 빌딩숲이 뻗었다.

청계산 역시 시설물이 있어 망경대가 정상을 대신한다. 망경대 방향, 등산로가 폐쇄되었다는 안내판이 있어 반대 방향으로 우회해 능선을 잇는다. 큼지막한 정상 표지석이 있는 이수봉에 닿자 모처럼 사람들로 붐빈다. 능선을 따라 남진하자 사람이 뚝 끊어진다.

찰피나무, 때죽나무, 물푸레나무, 신갈나무가 내어주는 그늘은 고맙지만 가파른 오르막은 끝없이 체력을 시험한다. 542m의 국사봉이 이렇게 힘겹다니, 놀라며 정상에 이른다. 잠깐 경치를 둘러보고 하강하듯 성남과 의왕 경계인 하오고개로 내려선다. 서울외곽순환도로 위의 다리를 건넌다. 오후 5시를 지나는데, 아직 3개 산이 남았다. 야간산행은 상관없지만 날머리인 수원에 너무 늦게 도착하면 서울로 돌아갈 교통편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남은 산을 빨리 해치우자는 마음이었지만, 진짜 산행은 지금부터였다. 끝없는 오르막 계단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기껏 고도를 높이면 능선은 고도를 뚝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바라 365 희망계단’ 안내판 앞에선, 절망하고 말았다. 순도 높은 어둠이 찾아왔고 계단에는 우리의 숨소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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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계산 옥녀봉으로 이어진 길의 휴식 같은 스트로브 잣나무숲. / 2 연륜 있는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오후의 뙤약볕을 막아준다. 옥녀봉에서 매봉으로 이어진 능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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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계산과 바라산을 잇는 기점인 하오고개. 육교 아래로 서울외곽순환도로가 지난다. / 4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급경사 꼭대기에서 환상적인 야경을 만났다. 백운산 정상에서 본 의왕시가지.

땀에 절어 쉰내를 풍기며 닿은 바라산 정상, 의왕 시내의 화려한 야경이 피로를 줄여 주었다. 의왕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달을 바라보던 산에서 이름이 유래한 것처럼 달이 높게 떠올랐다. 백운산과 광교산은 정상에 시설물 불빛이 있어 거리를 가늠하기 좋다. 피 같은 고도를 버리고 고도는 다시 뚝 떨어진다.

코가 닿을 듯한 비탈길 1.6km가 인내력을 시험한다. 이젠 자신과의 싸움이다.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자신을 넘고 또 넘는다. 백운산 정상이 수고했다며 시내 야경을 선물처럼 보여 준다. 군 철조망을 우회해 마지막 산으로 향한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번뇌가 사라진 것 같은 무심한 상태로 광교산에 올라 아련한 불빛을 마지막으로 하산한다.

갈증이 끓어올라 세상의 모든 시원한 것은 모두 다 삼키고 싶다. 경기대 서문 반딧불이 화장실 앞에 닿자 ‘너는 약하지 않다’고 말하는 나 자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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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잡이

남부7산은 ‘ㄱ’ 자 모양의 종주 코스다. 완벽하게 능선이 이어지는 건 아니다. 관악산에서 우면산을 이을 때와 우면산에서 청계산을 이을 때 도심을 지난다. 장거리산행에 익숙한 산꾼들은 무박으로 12시간 만에 완주하기도 한다. 일반 등산인은 16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들머리는 삼성산 석수역이나 광교산 반딧불이화장실, 어딜 잡아도 상관없다. 석수역에서 진행하면 바라산과 백운산의 계단이 고비다. 광교산에서 진행하면 관악산 사당능선이 고비다. 보통 저녁에 출발해 다음날 해가 떠 있을 때 산행을 마친다. 

여유 있게 갈 경우 삼성산~관악산 구간 우면산~청계산 구간, 바라산~백운산~광교산 구간으로 3일에 나눠 걸을 수 있다. 대도시 산답게 이정표가 있어 길찾기는 쉬운 편이나 곳곳에 암초처럼 놓치기 쉬운 곳들이 있다. 관악산·삼성산은 이정표가 적고 산길이 복잡해 방심하면 엉뚱한 곳으로 빠지게 된다.

삼성산 정상에서 시설물을 좌측으로 우회해 임도에 닿으면 100m 못 간 지점에서 우측 능선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이정표가 없으므로 입구를 잘 찾아야 곧장 무너미고개로 내려갈 수 있다. 관악산 주능선을 만나는 곳에선 계단을 따라 내려가 연주암을 거쳐 연주대로 가거나, 능선을 따라 곧장 갈수도 있다.

사당역에서 우면산에 진입할 때 서울둘레길을 따라 오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면산 날머리인 태봉주유소에서는 문화예술공원과 서울오토갤러리를 지나 KCTC양재물류센터를 지나면 청계산 입구다. 이후로는 이정표를 참고하고 산줄기의 진행 방향을 기억하면 길찾기는 쉽다. 군데군데 군 시설물이나 송신탑이 있어 우회해야 한다.

교통

1호선 석수역 1번 출구에서 육교를 건너 파리바게트가 있는 길을 따라 직진하면 삼성산 입구다. 날머리인 수원 반딧불이 화장실 앞 버스정류소에는 수원역행 13번 버스가 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13번 버스는 밤 10시 10분쯤이면 막차가 끊어진다. 400m 걸으면 광교공원 버스정류장에서 수원역으로 가는 7-1번 버스가 운행하는데 밤 11시 25분 막차가 있다. 중간 기점인 청계산 입구로 접근할 경우 양재역 10번 출구 부근 정류소에서 서초08번 마을버스를 타고 서울추모공원 입구에 하차하면 된다.

숙식

석수역 1번 출구에서 산입구로 이어진 길에 김밥천국(02-803-7178), 비와별닭갈비(070-8775-9555), 중식당 대웅각(803-4565) 등이 있다. 사당역 일원은 식당과 술집이 밀집해 있다. 우면산으로 이어진 경로상의 식당으로 백반전문 오뚜기식당(521-7404)과 로데오김밥(522-2225)이 있다.

경기대 서문 인근에 착한낙지(031-245-3400), 중식당 만다린(241-6312) 등이 있다.

숙소는 중간기점인 사당역에 모텔이 여럿 있고, 경기대 서문에서 500m 내려가면 수원천 인근에 모텔이 여럿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