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60] 천재적 문인이자, 커피 애호가였습니다. 더불어 괴짜적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지요. 커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본인이 직접 다방을 차리기도 했습니다. 시인 이상의 이야기입니다.
다방을 차릴 때도 남들과는 달랐습니다. 명칭에서부터 그의 정체성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커피숍의 이름은 ‘식스나인’. 우리말로 69였습니다. 성교 체위 중 하나를 뜻하는 은어였지요.
그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도 성행위를 의미하는 숫자를 종종 활용하는 문인으로 이름났습니다. 1930년대 일제 당국에 의해 허가가 났다가 그 뜻을 알아차린 후에 취소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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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은 진실로 커피를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식스나인’을 짓기 전에도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제비다방이라는 이름의 커피숍을 차렸을 정도였지요. 경영난으로 2개의 커피숍이 문을 닫은 뒤에도 또 다른 커피 공간을 구현하려 했던 것입니다.
제비다방은 통유리형 건물에 프랑스 문인의 짧은 경구가 걸린 공간으로 전해집니다. ‘식스나인’은 물론 빛을 보지 못했지만, 만약 허가가 났더라면 1930년대 경성에서 이색적인 커피 공간으로 이름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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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사에 오롯이 새겨진 커피는 세계사에서도 진한 향기를 남깁니다. 오늘은 커피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따스해지는 햇살에 졸음이 밀려오는 요즘, 어느 때보다 커피가 필요한 시기기 때문입니다.
커피나무는 동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됩니다. 목동 칼디가 목초지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염소가 이상한 열매를 먹은 뒤 유독 잠을 안 자고 날뛰는 것이었지요. 열매의 신묘함을 깨달은 칼디는 커피나무 재배를 시작했다는 전설입니다. 지금도 에티오피아 대표 카페 체인인 칼디스가 칼디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전설이 그렇듯, 이 역시 근거가 박약합니다. 칼디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건 1900년대나 되어서였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커피나무가 에티오피아에서 자생한 식물이라는 것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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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한 열매’는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 반도로 건너갑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예멘 지역 ‘모카’라는 항구에 처음 상륙합니다. 커피의 일종인 모카라는 이름도 여기서 따왔습니다.
신비주의적 이슬람 분파인 수피교도들이 이를 적극 받아들입니다. 수피교도들이 커피가 주는 ‘각성’을 자신들의 종교적 핵심가치인 ‘정신의 극적 변화’와 연결하면서였습니다.
수피교도들에 의해 커피 열매는 이슬람의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지요. 오스만 제국은 이 신비한 열매를 ‘카흐베’라고 불렀고, 아랍인들은 ‘카흐와’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커피’라는 이름이 여기서부터 비롯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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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기후의 아라비아 반도 유목민들도 커피를 사랑했습니다. 사막의 무더위를 피해 밤에 이동하는 일이 잦은 유목민들에게 커피만한 음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각성 효과로 밤새도록 이동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오늘날 야간 근무자들에게 커피가 필수적인 것처럼요. 지금도 사우디 아라비아를 가면 어디에서도 무료로 아라비아 커피를 나눠주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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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금하는 이슬람 문화에서 커피는 대용 음료로 빠르게 자리 잡습니다. 16세기 무렵에는 이슬람 사원 주변에 카흐베하네(Kahvehane), 커피하우스가 생겼을 정도였지요.
커피숍은 대화의 공간입니다. 갖은 아이디어가 교환되는 장소라는 의미이지요. 권력에 대항하는 이들의 의견이 모이는 불온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커피숍을 가득 메운 커피향 속에서 민주주의라는 싹이 자랍니다. 1511년에는 반란을 우려한 메카의 시장 감찰관 감찰관 카이르 베이가 이를 폐쇄하고 커피금지령을 내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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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향은 종교와 국경을 넘어섭니다. 유럽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이슬람의 음료”라면서 처음엔 혐오감을 드러냈지만, 이내 이 마성에 빠져듭니다. 1592년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이 음료를 ‘공인’하기에 이르렀지요. 이제 유럽 전역에 커피가 퍼지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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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역시 커피의 확산을 더욱 촉진시키는 촉매였습니다. 1683년 오스만 튀르크가 오스트리아를 공격하기 위해 빈을 침략했을 때였습니다. 역사가 기록하다시피 오스만 튀르크는 패배하게 됐지요. 이때 보급품을 대다수 두고 가는데, 그중 하나가 커피 포대였습니다.
큰 수훈을 거둔 한 병사가 이를 하사받게 되는데, 그가 ‘블루보틀’이라는 이름의 커피사업을 시작했다는 전설이 전해지지요. 우리나라에 있는 오스트리아 커피 체인 이름에 1683이 들어가는 이유도, 당시 전쟁에서 커피가 시작됐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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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개신교과 분열하는 종교개혁의 시기, 커피는 또 다른 분수령을 맞이합니다. 개신교는 가톨릭의 부패와 생활양식을 비판하면서 태동했습니다. 포도주와 맥주를 절제 없이 들이키는 모습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요. 정신을 맑게 해주는 ‘커피’는 신의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포도주가 구체제의 상징이었다면, 커피는 개신교의 음료였지요.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같은 개신교 국가에서 커피하우스가 더욱 빠르게 퍼진 배경이었습니다.
예외도 있었습니다. 같은 개신교 국가인 독일에서는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독일은 ‘맥주’의 본고장이었기 때문에 이를 버리고 커피로 갈아탈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많은 나라들이 ‘커피’를 선택할수록, 자신들의 수출길은 더욱 막히는 셈이었습니다.
애국자들은 앞장서 ‘커피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지요. 이렇게 말하면서요. “그대들의 조상인 프리드리히 대제는 커피 대신 맥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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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지은 노래 칸타타는 커피광인 딸에게 아버지가 ‘커피 좀 작작 마시지 않으면 시집을 안 보내겠다’라고 위협하는 내용입니다. 독일인이었던 바흐의 작품에서 ‘반(反) 커피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지요.
현대 자본주의 핵심 중 하나는 금융입니다. 여기도 커피향이 짙게 배 있습니다. 17세기 세계 무역의 중심인 런던으로 가봅니다. 런던의 첫 커피하우스가 1687년 자리를 잡았습니다. 에드워드 로이드가 차린 공간이었지요. 해상무역 도시인 런던에서 ‘뱃사람’들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커피하우스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로이드는 뱃사람들이 털어놓는 정보를 종이에 적어 팔기 시작하지요. ‘로이즈 리스트’라는 이름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 중 하나입니다. 경제신문의 시초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매일경제신문도 커피와는 빼 놓을 수 없는 관계인 셈입니다. 런던 증권거래소의 전신 역시 커피 하우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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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하우스는 저널리즘만큼이나 철학과 문학의 산실이기도 했습니다. 1686년에는 이탈리아 출신 프란시스코에 의해 프랑스 파리에 커피하우스 ‘르 프로코프’가 생겨납니다. 계몽시대를 이끌었던 루소, 몽테스키외, 볼테르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그곳의 단골이었습니다. 커피하우스는 위대한 생각의 산실이었던 것이지요.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곧 우리 곁을 찾아옵니다. 향긋한 커피 내음을 맡으며, 당신의 새로운 생각도 싹이 트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철학자와 문인들이 그랬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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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줄요약>
ㅇ우리가 즐기는 커피는 15세기 이슬람 문명에서 시작됐다.
ㅇ이후 유럽은 커피에 빠져 ‘커피하우스’가 우후죽순 생기기도 했다.
ㅇ커피하우스에서는 여러 철학과 사상이 탄생했다.
ㅇ시인 이상도 커피를 사랑해 ‘69’라는 이름의 커피숍을 만들려 하기도 했다. 역사에 커피 향이 짙게 배있는 셈이다.
<참고문헌>
ㅇ볼프강 쉬벨부시, 기호품의 역사, 한마당, 2000
ㅇ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 커피의 역사, 자연과생태, 2013
ㅇ이길상,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 푸른역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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