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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7> 강원 홍천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
[강원도 홍천의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 47평 규모의 이 집은 건축비가 평당 400만원 가량 들었다. 겨울철 한달 유지비가 5~6만원선에 불과하다. 현재 이 양식을 참고해 전국에 10여채가 지어졌다.] 지난 6월 20일부터 3일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리우+20 제3차 유엔 지속가능발전회의가 열렸는데, 글로벌 경제위기와 미국·중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권력 교체기와 맞물려 성과 없는 회의가 됐다. 20년 전인 1992년 1차 회의에서는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하는 등 지구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리우 선언이 있었고, 이에 따른 97년 교토의정서에 의해 선진 38개국은 1990년을 기점으로 2008~2012년까지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했다.
리우 선언과 교토의정서에 의한 기후변화협약이 무기력하게 된 지금, 하나뿐인 지구가 위험하다. 급증한 기후 관련 재해·재난 속에서 세계적인 리더십에 기대를 걸었던 많은 이의 걱정도 늘고 있다. 게다가 2012년은 석유 정점(peak oil)의 해이기도 하다. 투자전문가 제프시겔은 최근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 투자하라』는 책에서 기존 연구의 모든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투자적 측면에서의 피크 오일은 2012년이라고 단정했다. 피크 오일의 문제는 높아지는 원유가와 공급량 감축 등으로 우리나라처럼 수입에만 의존하는 에너지 소비 국가에는 치명적이다.
이대철 선생 10여 년 연구의 결실
피크 오일에 관한 국가적 차원의 걱정에 대비하고자 지어진 집이 있다. 강원도 홍천 산골에 있는 '살둔 제로에너지 하우스'다. '살둔'이란 지명은 생둔(生屯)이라고도 하며 '살 만한 언덕'이고 '여기에 머물면 산다'라는 뜻이다. 워낙 오지여서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 때에도 안전했고, 세조에 반대해 단종 복위를 꾀했던 사람들이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오는 곳이다. 정감록에는 '삼둔사가리'라 하여 방태산 주변 일곱 곳을 일러 피난처로 기록했다. 삼둔은 홍천군 내면 지역 방태산 남쪽 내린천변에 있는 살둔·월둔·달둔이고 사가리는 방태산 북쪽 인제군 기린면 지역에 있는 적가리·아침가리·연가리·명지가리를 말한다.
이런 세상 끝 같은 곳에서 '21세기 노아의 방주'를 만들겠다는 이가 있다. 30여 년 전 일찍이 전원주택을 지어 자연친화형 삶을 살았고, 이를 통해 97년 『애들아, 우리 시골 가서 살자』라는 책으로 일반인에게도 알려진 이대철 선생이다.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주택 개발을 위한 십여 년간의 연구와 돈키호테 같은 의지가 결실을 본 이 살둔 집은 지식과 지혜로 가득하다. 외부 에너지, 특히 화석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온전한 제로 에너지하우스는 국가나 기업도 성취하지 못한 큰 사건이다.
너무 넓지 않게, 단순하게 지어라
일단 이 집엔 난방용 보일러가 없다. 혹독한 추위로 유명한 강원도 산골 집에 난방 보일러 없이 살 수 있을까? 보조 열원인 벽난로만으로 한겨울에 20~22도를 유지한다는 이 집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절약이다. "1㎾h를 아끼는 것은 1㎾h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철학이다. 패시브 하우스라고도 불리는 절약형 주택의 출발은 적정한 면적과 단순한 형태에 있다. 선생이 경험한 바에 따르면 "건축가가 설계한 집은 복잡하다. 따라서 건축비도 비싸고 열 손실이 많아진다. 복잡한 형태는 유지관리도 어렵다." 결론적으로 동서로 긴 남향집에 30평 규모(7×14m) 이하를 권장한다.
둘째는 가장 중요한 단열이다. 불리한 외부 환경을 최대한 차단하고 집안의 온·습도 조건을 균질하게 유지하는 고유의 셸터(shelter) 기능을 말한다. 선생의 결론은 미국의 자재 전시회에서 발견했다는 SIPs(Structural Insulated Panels)이다. 불에 안 타고 안전한 두께 200㎜ 스티로폼 양면에 합판 대용의 친환경 소재 OSB(Oriented Strand Board)를 붙인 구조용 외벽재다.
셋째는 창호의 문제다. 창호 자재의 선택이나 시공상 주의하는 것 이상으로 위치와 크기 문제가 중요하다. 유리창은 집 디자인에서 결정적 요소다. 집에서 보는 전망이나 보이는 외관보다 겨울철 햇빛에 의한 열 에너지원과 자연환기의 기능적 조건이 중요하다. 따라서 지역의 위도와 최저 기온, 창의 방향과 창호의 종류, 실내 열저장체와의 관계까지 분석 대상이 된다. 비싸지 않은 시스템 창호, 햇빛이 중요한 남쪽은 로이코팅 된 2중창과 나머지는 3중창, 바닥면적 대비 남향창의 면적은 최대 15% 이내, 단열 덧문은 관리가 가능한 내부에, 창틀은 PVC, 모기망은 롤업 제품으로 하는 등 각종 경험이 함축돼 있다.
넷째는 실내 축열 기능이다. 밀도가 높은 물체는 온도 변화가 느리다는 특성을 활용한다. 특히 겨울철 실내 깊숙이 들어오는 햇볕을 축열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실내에 효율적인 열저장체(thermal mass)를 되도록 많이 갖는 것이 중요하다. 타일로 마감한 바닥, 내화벽돌로 된 벽난로, 점토벽돌로 된 내벽 등이 사용된다.
다섯째는 숨 쉬는 집이다. 단열이 잘된 패시브 하우스는 겨울철 환기가 문제다. 따라서 실내온도를 유지하면서 환기를 적절히 하는 방법으로 전열교환기(HRV·Heat Recoverable Ventilation)를 사용한다. 친환경 자재를 사용해 유해가스 발생을 최소화하는 것은 필수다.
마지막으로 보조 열원이다. 잘 구성된 패시브 하우스는 일반 주택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10%미만으로 난방이 가능하다. 하지만 겨울철에는 맑은 날이 50% 정도이기 때문에 보조 난방이 필요하다. 까다롭긴 하나 잘 선택한 벽난로는 축열 기능과 더불어 중요한 보조 난방 수단이다. 또 주택에서 필요로 하는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도 필수다.
이 집은 이런 모든 지적 연구의 성과물이다. 뒤편에 있는 목공장에서는 선생의 땀과 열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망치박물관을 차릴 정도의 장비에 대한 집념도 기인 수준이다. 현대판 '합리적 기인'인 이대철 선생만이 이룰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2011년 대한민국 녹색기후상 대상 등 국내에서 상도 여럿 받았지만 국가나 기업에 손 내밀지 않고 꾸준히 제로에너지 하우스의 보급을 위해 지금도 실천 가능한 사업만 하나씩 쌓아가는 선생의 업적을 보면서 건축가로서 부끄럽다. 그래서 이 글은 집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 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 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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