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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숙성의 맛

오완선 2017. 3. 14. 14:16



입력 : 2017.03.13 08:00

숙성된 식재료는 깊은 풍미가 느껴질뿐더러 식감도 부드러워지고 소화도 잘된다. 이런 숙성의 미학은 고기나 생선에도 숨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맛있어지는 고기와 생선의 숙성 비밀노트.

생선의 숙성

생선회는 크게 두 가지로 즐긴다. 활어회와 숙성회다. 활어회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바로 손질해 먹는 반면, 숙성회는 피와 내장을 제거한 뒤 일정 온도에서 저장한 후 먹는다. 한국에서는 손질과 유통 등의 문제로 활어회를 즐겨 먹었지만, 일본에서는 선어를 숙성시켜 회로 즐겨 먹었다. 생선은 신선도가 생명이라고 하지만 숙성회에는 활어회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특별한 ‘감칠맛’이 있다. 저온에서 서서히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이노신산(Inosinic acid)의 함유량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숙성회의 나라 일본에서는 이 이노신산의 맛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생선 고유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예전에는 2~3일 정도 생선을 숙성시켰다. 하지만 한국 활어의 탱탱한 식감에 반한 이들이 많아 숙성시간을 줄여 식감을 살린 회가 유행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다양한 일본요리 전문점들이 생겨나며 숙성회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생선을 숙성시키면 생선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맛이 잘 우러 나와요. 그리고 바로 회로 잡았을 때보다 적당히 숙성시킨 생선이 씹는 맛도 훨씬 좋고요. 대부분의 생선은 3~4시간 정도 숙성시키면 그 맛이 깊어집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광어의 경우 밀폐해 김치냉장고에서 4시간 정도 숙성시키면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일본요리 전문점 갓포레이의 박준형 셰프의 설명이다. 생선을 맛있게 숙성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손질이 중요하다. 살아있는 생선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피를 닦아낸다. 이때 물로 씻지 않고 키친타월로 내장 막 안을 깨끗이 닦아내야 부패되지 않는다. 생선의 지느러미와 꼬리, 머리 부분을 제거하고 뼈와 살을 분리하여 살코기만을 추린다.

“생선마다 숙성 시간과 방법은 조금씩 달라요. 흰 살 생선의 경우 4시간에서 하루 정도 지날 때가 가장 맛있습니다. 등 푸른 생선의 경우 처리 방법에 따라 달라지는데, 아침에 선어(鮮魚)로 들어오기 때문에 그날 저녁에 다 소진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선‘ 어’란 피와 내장이 제거된 채 유통된 생선으로, 신선한 물고기를 뜻한다. 보통 선어로 유통되는 생선에는 살아 있는 상태로 운반이 어려운 삼치, 참치, 민어, 방어와 같은 어종이 있다. 이 같은 어종들은 크기가 크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금방 죽기 때문에 산지에서 소비되거나 냉동으로 운반되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선어 상태로 운반하여 생선회로 먹으면 살코기가 얼어 있는 냉동어보다 생선회로 활용하기 좋을 뿐만 아니라 활어회보다 깊은 감칠맛도 느낄 수 있다. 이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상태의 활어를 재빨리 손질하여 내장과 피를 빼낸 뒤 얼음과 함께 저온 유통시켜 신선한 상태의 횟감으로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이며, 저온 유통 과정을 통해 감칠맛을 내는 성분인 이노신산(Inosinic acid)의 함유량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선어회는 활어회를 선호하는 우리나라보다 숙성회를 즐겨 먹는 일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지만 전라남도 여수와 같은 몇몇 지역에서는 선어회의 맛 때문에 활어를 손질한 뒤 얼음과 함께 저온 숙성시켜 선어회로 먹기도 한다.

집에서 숙성회 만들기에 도전

그렇다면 집에서도 숙성회를 만들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생선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 회’ 광어의 경우 생선회를 뜰 수 있는 이라면 집에서도 가능하다는 것. 박준형 셰프는 집에서 숙성회를 만드는 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소비자가 각각의 생선이 가진 특징을 알기란 쉽지 않아요. 게다가 신선한 생선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요. 하지만 바다낚시 등을 통해 신선한 생선을 구했다면 도전해볼 만합니다. 머리와 꼬리, 내장과 비늘을 깔끔하게 제거해 포를 뜬 생선을 해동지로 말아주세요.

이때 껍질은 생선의 종류에 따라 벗기기도 하고 그대로 두기도 합니다. 도미의 경우 기름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벗겨서 숙성시키면 기름이 다 빠져 특유의 맛을 즐길 수 없습니다. 광어는 기름이 별로 없기 때문에 벗겨서 최대한 식감을 살리는 것이 좋고요. 또한 마트에서 해동지를 구하기가 참 어려운데요, 해동지 대신 빨아 쓰는 키친타월을 이용해도 좋습니다. 일반종이 키친타월은 생선 살에 들러 붙을 수 있어 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동지로 감싸면 생선에 숨어 있는 필요 없는 수분이 흡수되어 식감이 훨씬 쫄깃해집니다. 해동지로 감싼 생선은 다시 랩으로 여러 번 감아 공기를 차단해주세요. 그리고 1~2℃로 온도가 유지되는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되, 자주 문을 여닫지 않는 칸에 넣어야 합니다.”

손질한 상태의 생선은 광어의 경우 4시간에서 하루, 도미는 3시간, 방어는 3일, 복어는 하루 정도 숙성시킨다. 단, 사후경직이 빠르게 진행되는 도미는 찬바람을 바로 쐬면 굳어버리기 때문에 상온에 약 3시간 정도 두어 조직은 이완시킨 후 밀폐시켜 냉장고에 넣고 3일 정도 숙성시킨다. 복어는 바로 먹으면 풍미도 없고 썰기도 어렵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흡착지를 갈아주며 2~3일 정도 숙성시켜 회로 먹는다. 방어와 같이 크기가 큰 생선은 3일 정도 오랜 시간 숙성시켜야 맛있다.

생선의 숙성은 마법과 같다. 감칠맛과 씹히는 식감까지 바꿔주기 때문이다. 단, 육류의 숙성과 마찬가지로 썩힘과 삭힘의 사이에 있기에 전문가의 조언 아래 많은 경험과 공부를 통해 노하우를 얻는 것이 좋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