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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토론토의 어떤 사랑

오완선 2018. 3. 13. 14:53



캐나다 여행기⑤

토론토로 떠났습니다. 다시 못 볼 나이아가라 폭포나 프티 샹플랭에는 미련은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미련을 두지 않아야 더 아름답게 남겨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리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추억은 아름다운 것, 아마도 나이아가라 폭포나 프티 샹플랭에 펼쳐졌던 모든 풍경이 마음속에 깊게 각인되겠지요. 삶을 마칠 때까지 때때로 떠 올리겠지요. 그것으로 되었지요. 마음속으로 잘 있으라는 인사를 보내고 토론토를 향하여 달렸습니다.

토론토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로 다문화 도시입니다. 세계 여러 인종이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도시지요. 토론토에 들어서자 어리둥절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캐나다는 넓은 땅을 가진 나라답게 집들이 숲속에 아기자기하게 들어 서 있는 그런 이미지였습니다. 마치 동화 속 나라라고나 할까? 여행하는 내내 그런 이미지가 깨지지 않았는데 토론토에 들어서는 순간, 그 이미지는 거대한 빌딩에 눌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높게 솟은 빌딩과 여기저기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는 활기찬 대도시였습니다. 가히 북미에서 제일 큰 도시라는 게 실감 났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서울 강남의 판박이인지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고층 건물의 외벽을 유리로 감싸 안은 것 하며, 높다랗게 솟은 여러 타워는 여의도의 IFC 타워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여기저기 세워지고 있는 오피스텔은 영락없는 요즘 우리나라 대도시 풍경이지요. 그러다 보니 여기도 토론토에 오피스텔 하나 사놓는 것이 유행이랍니다.

토론토 시내가 다 내려다보인다는 CN 타워를 오르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빌딩 사이로 세찬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소위 빌딩풍이라 불리는 바람이 얼마나 센지 모자가 날아갈 지경이었습니다. 남산 타워를 닮은 CN 타워에 오르려 하자, 경비가 삼엄합니다. 가지고 있는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검사까지 받으며 구름 낀 날씨에 바람은 불고 그래서 더 우중충한 도시를 왜 보러 올라갔는지. 이때는 약간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타워에 오른다는 게 가성비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나이아가라 폭포 쪽에서 경험하고도 잊고 또 올랐습니다. 그냥 웃었습니다. 내려오면서 다시는 높은 데는 오르지 않으리라 또다시 다짐했습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토론토의 구 시청 건물을 보러 갔습니다. 한때는 북미에서 가장 큰 시청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앞에 현대식 신 시청 건물을 건설한 뒤로 법원 청사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벽면 앞에는 찡그린 얼굴들이 새겨져 있는데, 건물을 짓는 동안 건축가를 괴롭힌 인물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떤 일에 재 뿌리는 사람들은 꼭 있는 모양입니다.

내가 갔을 때 하늘도 개어 햇살도 더없이 좋았습니다. 시청 광장엔 많은 사람이 책을 보거나 신문을 읽거나 단지 그 햇살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바라보이는 풍경은 노란 단풍과 더불어 더없이 아름다웠습니다. 그 풍경에 취해 있는데 일행이 와르르 웃습니다.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실화 한 토막 때문이었습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이 시청 앞 광장엔 많은 사람이 따뜻한 햇볕 속에 여유를 즐깁니다. 그 풍경 속엔 젊은 시절부터 딸 하나 키우며 혼자 살아온 우리나라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답니다. 외동딸을 키워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 유학을 보냈는데 연애도 하여 현지 청년과 결혼도 했습니다.

그 후 아무리 행복하게 살아도 혼자 사는 엄마가 생각났겠지요. 해서 딸은 같이 살자고 하고, 엄마는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여기가 좋으니 그냥 한국에서 살겠다고 하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답니다. 그러던 엄마가 캐나다로 건너왔습니다. 딸의 해산바라지를 하러 왔지요. 아무리 살긴 싫어도 해산한 딸은 돌보아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엄마지요. 이 엄마, 손녀를 두 살까지만 길러 주기로 합의를 보았답니다.

딸 사위가 출근하고 나면 집안을 치우고 손녀를 데리고 시청 앞 광장으로 마실 나갔다고 합니다. 낯선 땅에서 친구도 없고, 딱히 갈 곳도 없고 말할 상대도 없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요. 할머니는 점심때쯤이면, 유모차에 손녀를 태우고 집 앞 광장으로 나들이 나와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이 낙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 나들이가 매일매일로 이어졌고 익숙한 얼굴도 생기게 되었겠지요.

이 할머니가 하루는 김밥을 싸 들고 공원에 나갔답니다. 출출해서 김밥을 펼쳐놓고 먹는 데 후줄근한 할아버지 한 분이 마냥 쳐다보더랍니다. 그 할아버지도 그 시간이면 이면 매일 광장에 나오니 낯익은 얼굴이었답니다. 할머니 생각에 옷차림도 후줄근하니 당연히 배도 고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할머니는 그 할아버지를 손짓 발짓으로 불러 맛있게 김밥을 나누어 먹었답니다.

이게 인연이 되어 광장에 나오면 손짓 발짓 등, 인류의 공통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데, 하루는 이 남자분이 정장에 꽃다발까지 들고 나타났답니다. 그리고는 무릎 꿇고 앉아 ‘Please, marry me’ 했답니다. 이 소리를 들은 할머니 얼굴이 새하얘지는가 싶더니, 붉으락푸르락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손녀를 데리고 돌아갔답니다.

집으로 돌아가시면서 하시는 말, ‘아니, 나를 개한테나 붙이는 메리라고 불러. 밥 먹여주고 놀아 줬더니 메리라고 불러.’라고 화를 내셨답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엔 집에서 기르는 개한테 해피나 메리라고 보통 붙여서 불렀지요. 심하면 도그라 부르기도 했고요. 영어로 이름 붙이면 좀 있어 보였던 그런 때였으니까요. 그러니 영어를 모르는 할머니한텐 충격이었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해피엔딩(happy ending)으로 끝이 납니다. 그 허름했던 캐나다 할아버지는 캐나다에서 이름 있는 로펌의 회장님이셨고, 점심 산책으로 이 광장에 나오셨답니다. 그렇게 할머니와 인연이 되었고, 할머니 오해는 웃음으로 끝을 맺었지요. 그 후, 그 두 분은 결혼해서 잘 살고 계신답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지요. 믿기지 않는 실화(實話)랍니다.

서로 먼 나라에 사는 두 분이 평생의 인연이 될 거라 상상이나 해 봤겠습니까! 인연이란 참으로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부터 오는 모양입니다. 나도 좋은 인연 하나 생길까 하여 혼자 시청 앞 광장을 천천히 거닐어 봅니다. 단풍은 더없이 곱고 햇살 또한 더없이 따뜻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