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4캔 5천원' 수입맥주 비판하는 국내 맥주업계

오완선 2018. 5. 18. 13:32

수입맥주 4캔에 5000원. 웬만한 탄산음료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최근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스페인 필스너 ‘버지미스터(Burge Meester)’를 수입 판매하자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등 국내 맥주업체들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4캔 1만원을 넘어 절반 가격의 수입맥주 공세에 국내 주류업계가 고사한다는 주장이다.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이 있다. 버지미스터는 주세법상 ‘맥주’가 아니다. 버지미스터의 맥아 함량은 70%로 대부분 국가에서 맥주로 통용되지만, 알긴산(해초산)을 첨가해 국내에선 ‘기타주류’로 분류한다. 맥주의 주세는 72%지만 기타주류의 주세는 30%다. 버지미스터를 타 수입맥주 절반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이유다.

국내 주류업계에도 기타주류로 분류돼 성공을 거둔 제품이 있다. 하이트진로가 지난해 4월 출시한 ‘필라이트’다. 필라이트는 발포주로 알려져 있으나 현 주세법에 발포주라는 분류는 없다. 기타주류여서 주세가 싸다. 필라이트의 맥아 함량은 10% 미만에 불과하지만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출시 이후 현재까지 13개월간 총 2억병 이상을 팔아치웠다.

국내 소비자가 마시는 해외 맥주의 대다수를 생산하는 회사도 있다. 글로벌 주류기업 AB인베브의 자회사인 오비맥주다. AB인베브는 세계 맥주시장의 3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거대 기업으로 버드와이저, 코로나, 스텔라 아르투와, 호가든, 벡스, 레페, 밀러 등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모두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4캔 1만원 행사로 흔히 접할 수 있는 맥주다.

최근 오비맥주는 자사의 대표 브랜드 카스의 러시아 월드컵 특별판 740mL 제품을 미국에서 만들어 역수입하고 있다. 오비맥주는 “740mL 생산시설이 국내에 없어 부득이하게 해외 생산하게 됐다”고 설명하지만, 굳이 월드컵용 특별판이 740mL여야 할 이유는 없다. 수입맥주에 붙는 주세가 국내 맥주보다 저렴하다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이 맥주 가격은 기존 국내 생산 카스보다 12% 저렴하다.

하이트, 오비 등 국산 맥주업체가 수입 맥주 업계의 ‘4캔 5000원’ 전략을 비난하는 것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셈이다. 주세법이 국산 맥주에 불리하다는 주류업계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현행 주세법상 국산맥주는 출고가(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 등)의 72%가 세금으로 부과된다. 수입맥주는 수입가(수입신고가+관세)가 과세표준이다. 국내 주류업체들은 수입업체가 맥주의 수입가를 맘대로 조정해 세금을 회피한다고 반발한다.

그러나 수입맥주의 ‘수입신고가’에는 제조원가와 판관비가 포함돼 있다. 국산맥주는 이윤도 세금 부과 대상이지만, 수입맥주도 30%의 관세를 내야 한다. 국내 주류업체들의 불만은 국내 생산 경쟁력이 해외보다 뒤처진다는 고백에 불과하다.

국내 주류업체는 수입맥주의 세금 인상을 바라고 있다. 이는 소비자 후생을 희생해 국내 주류업체의 수익성을 보전해달라는 요구나 다름없다. 2015년 일어난 ‘맥통법’ 논란을 돌아보자. 당시 기획재정부가 수입맥주 수입가에 적정 수준의 유통마진을 붙인 ‘기준가격’을 만들어 할인판매를 규제하려 한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소비자의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며 백지화됐다.

입맛은 주관적이지만, 주관이 모이면 여론이 된다. 국내 주류업체들은 “한국 맥주가 맛없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강조하지만, 레이트비어(Ratebeer), 비어에드버킷(Beeradvocate) 등 세계 ‘맥주 덕후’들이 모이는 온라인 공간에선 한국 맥주에 차가운 평가를 내린다. 레이트비어의 카스 후레쉬 평점은 5점 만점에 1.75, 하이트는 1.86에 불과하다.

한 번 높아진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미 대형마트, 편의점 등의 수입맥주 판매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이제 와 수입맥주와 국산맥주 가격이 같아진다 해도 소비자가 국산맥주를 찾을지 의문이다. 고든 램지 같은 해외 유명 쉐프를 앞세워 광고를 한다고 소비자 선택이 쉽게 달라지진 않는다. 국산 맥주는 과점과 내수 보호라는 요람 속에서 편안히 성장해왔지만 모두 과거지사다. 법제를 탓하기 전에 제품·생산 경쟁력 강화를 고민할 때다.

                                                                                                    2018.05.18 조선.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17/2018051702045.html#csidx219fcf2a93c514b831f0cc7d56e1c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