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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전기차 공습 시작…'준비부족' 현대·기아차 비상

오완선 2019. 5. 7. 21:36



입력 2019.05.07 11:49

지난 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친환경자동차 전시회 ‘EV 트렌드 코리아’에서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낯선 자동차 업체가 제법 큰 규모의 전시관을 열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중국의 1위 종합 자동차 제조사로 지난해 세계 전기차 판매순위에서도 4위를 차지한 베이징자동차(BAIC)였다.

이날 행사에서 베이징차는 중형 세단인 EU5를 비롯해 소형 SUV인 EX3, 중형 SUV인 EX5 등 중국 현지에서 판매하는 주력 전기차 모델들을 선보였다. 모두 베이징차의 독자 전기차 기술로 개발돼 내년 국내 출시를 목표로 현재 환경부 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

베이징자동차가 2일 EV 트렌드 코리아에서 전시한 전기차 중형세단 EU5/베이징차 제공

베이징차의 국내 수입·판매를 위해 설립된 북경모터스의 제임스 고 대표이사는 "내년 전기 승용차를 시작으로 버스, 트럭 등 상용차까지 단계적으로 한국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최근 전기차를 앞세워 국내 자동차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중국은 내연기관차 시장에서는 한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미국 등에 뒤처졌지만,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로 일찍 친환경차 개발에 뛰어든 덕에 전기차 분야에서는 높은 품질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전기차는 저렴한 가격에 긴 주행가능거리와 앞선 IT 기술에 기반한 여러 첨단사양을 갖췄다"며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국내 자동차 업체들에게는 거센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中, 글로벌 전기차 시장 주도…긴 주행거리·첨단사양·가성비 ‘3박자’ 갖춰

중국은 내연기관차 시장에서 철저한 변방에 머물렀지만, 전기차 시장에서만큼은 확실한 주류로 인정받고 있다. 전기차 시장조사업체인 EV 세일즈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전기차 판매 상위업체 10곳 중 절반이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제조사 비야디(BYD)는 지난해 22만9338대를 판매해 미국 테슬라(24만5240대)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베이징차는 16만5369대로 4위에 올랐고 상하이자동차는 12만3451대로 6위에 랭크됐다. 이 밖에 지리자동차(11만3516대)와 체리자동차(6만5798대)로 각각 7위와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중국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은 중국 전기차 시장이 매년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125만대 이상의 전기차가 팔렸다. 올해 중국 전기차 판매량은 160만대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중국의 전기차 제조사 비야디(BYD)는 미국 테슬라와 함께 세계 전기차 판매순위 선두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관람객들이 중국 광저우모터쇼에서 비야디 전기차 e6를 살펴보고 있다./블룸버그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현지에서 경쟁하는 중국 토종업체들의 전기차 기술 수준도 빠르게 향상됐다. 여기에 중국이 강점을 가진 IT 기술과의 연계를 통해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여러 첨단기술까지 적용하고 있다.

베이징차가 EV 트렌드에서 선보인 EU5의 경우 한 번 충전으로 460km를 달릴 수 있으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7.8초만에 도달할 정도로 만만찮은 주행성능까지 갖췄다. 또 바이두와 보쉬, 하만 등과 협업해 개발한 인공지능 기술인 ‘다윈 시스템’이 적용됐다.

EX5는 1회 충전시 415km를 달릴 수 있고 차선 이탈 경고, 보행자 및 차선 충돌 경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 등 10가지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이 적용된다. 소형 SUV인 EX3는 한 번 충전으로 무려 501km를 주행할 수 있다.

베이징자동차의 전기차 중형 SUV인 EX5/베이징차 제공

◇ 군산공장 앞세워 韓 안방 공략 본격화

최근 중국 업체들은 한국GM 공장이 자리잡았던 군산에 위탁생산 기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국내 전기차 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제조사 퓨처모빌리티는 지난 3월 국내 자동차 부품사인 엠에스오토텍 (4,310원▼ 135 -3.04%)이 주도하는 한국GM 군산공장 인수 컨소시엄에 상당한 자금을 투자했다. 엠에스오토텍 컨소시엄은 2000억원을 투자해 오는 2021년부터 군산공장에서 연간 5만대 이상의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퓨처모빌리티는 군산공장에서 자사 브랜드의 전기차를 위탁생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쑹궈모터스도 3월 열린 서울모터쇼에서 한국의 SNK모터스와 손잡고 군산 새만금에 연간 생산량 10만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기지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중국 체리자동차가 국내 광학부품제조사 나노스 (7,610원▼ 40 -0.52%)와 합작해 새만금에 5만대 생산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 한발 늦은 현대·기아차…라인업 확대, 고급화 필요성 커져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가 눈 앞으로 다가온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공세를 제대로 막아내기가 버거운 상황이라는 평가가 많다. 최근 몇 년간 전기차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가격과 주행거리 등에서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이 앞서 ‘안방’을 사수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기아자동차 (44,200원▲ 900 2.08%)준중형 SUV인 니로EV의 1회 충전시 주행가능거리는 385km로 내년부터 국내에서 경쟁할 베이징차 EX5보다 짧다. 베이징차 관계자는 관세 등을 감안해 내년 EX5의 국내 가격을 4500만원에서 4800만원대로 맞추겠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4780만원에서 4980만원에 판매되는 니로EV보다 저렴하다.

기아차 니로EV/기아차 제공

소형 SUV 시장에서도 어려운 경쟁이 예상된다. 현대자동차 (136,500원▼ 1,000 -0.73%)의 코나 일렉트릭은 1회 충전시 주행가능거리가 406km로 국내 전기차 가운데 가장 길지만, 베이징차 EX3에 비하면 약 100km 짧다. 가격은 4650만원~4850만원으로 중형 모델인 EX5보다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현대·기아차가 가성비로 무장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공세를 이겨내려면 시급히 전기차 모델의 라인업을 확대하고 제품 고급화를 통해 브랜드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가져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대·기아차가 현재 판매 중인 전기차는 해치백 모델인 아이오닉과 니로EV, 코나EV, 소형 SUV인 쏘울 부스터EV 등으로 한정돼 있다. 게다가 쏘울 부스터는 박스카 형태로 설계돼 정통 SUV 모델과는 거리가 있다. 베이징차가 내년 국내 출시 후 가장 기대하는 모델로 EU5를 꼽은 점도 중형 SUV 차종에서 전기차 모델이 없는 현대·기아차의 약점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가장 수요층이 넓은 세단과 중형 SUV 차종에서 전기차 라인업을 보강하고 제네시스에서도 전기차 모델을 추가해 그룹 전체적으로 전기차 브랜드의 고급화 전략을 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EQ 브랜드를 출범한 메르세데스-벤츠와 같이 전기차 전용 브랜드를 만들어 투자를 집중하는 것도 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