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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약' 오명 ‘K 제네릭' 매출 효자품목으로

오완선 2020. 4. 29. 10:26
입력 2020.04.29 06:10

오리지널 약 처럼 보건당국의 안전성⋅효과성 시험 거쳐
중국·인도 보다 ‘K 제네릭’ 품질 좋아 글로벌 경쟁력 평가


그래픽=송윤혜

#삼천당제약은 지난 3월 미국 글렌마크에 서스펜션 점안제 4개 품목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2018년과 2019년에 이어 추가 계약을 한 것이다. 삼천당제약이 미국에 공급하는 점안제 제품은 총 18개로 늘어나게 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허가 승인을 받은 이들 점안제는 복제약으로 알려진 이른바 ‘제네릭 의약품(제네릭)’이다. 제네릭 의약품은 신약 특허 만료 후 신약과 같은 성분으로 만든 후발 의약품을 말한다. 유효 성분과 함량, 제형, 효능·효과, 용법·용량 등이 신약과 동일하다.

업계에서는 원개발사가 개발한 약을 ‘오리지널의약품’(이하 오리지널)으로, 특허 만료 후 유효성·안전성 등을 검증받아 허가받은 약을 ‘제네릭의약품’(이하 제네릭)으로 부른다.

일부에서는 ‘제네릭 의약품은 복제가 된 약’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짝퉁약'이나 카피약' 등으로 생각한다. 복제약은 합법적으로 제조 판매된다는 점에서 짝퉁과는 성격이 다르다. 종근당 대웅제약 중외제약 보령제약 유나이티드제약 삼진제약 등 제네릭을 수출 효자 품목으로 키우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경쟁력을 갖춘 토종 제네릭이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매출 ‘효자 품목’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카피약’ ‘미투약’ 오명 쓴 ‘제네릭’을 아십니까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은 동등한 안전성·효과성을 입증받기 위한 실험 절차를 거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제네릭으로 허가받기 위해서는 약물이 몸속에서 흡수되는 속도와 흡수량이 동등한지 살펴보는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성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신약을 개발하는 것보다 기존과 같은 물질의 동등성을 입증하는 것이 보다 수월하기 때문에, 보통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끝나면 그 시점에 맞춰 제네릭들이 시장에 출시된다.

제네릭들이 오리지널 의약품과 같은 수준의 약이라는 실험 결과도 있다. 국내 생동성시험 과정은 선진국과 비교해도 대등한 수준으로 꼽힌다. 최근 식약처가 국내 제네릭과 미국 제네릭의 생동성시험 과정을 분석한 결과 혈중최고약물농도(Cmax)와 혈중농도-시간곡선 하면적(AUCt) 등 관련 지표에서 미국과 동등하다는 결론을 냈다.

최근 식약처는 제네릭 품질관리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에서 생동성시험에 대한 기준을 엄격히 하고, 해외에서 원료의약품을 수입해오는 경우 현지실사를 확대하는 등 품질관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또 제네릭 가격을 낮춰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더 줄일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7월부터 같은 제품이 19개 이하로 등록된 경우에만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의 약가를 책정키로 했다. 이마저도 자체 생동성시험자료 또는 임상시험 입증자료 제출, 등록된 원료의약품(DMF) 사용 등 기존 대비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요건을 하나만 충족하면 오리지널 약가의 45.52%, 모두 충족하지 못하면 38.69%에 그치는 가격을 책정한다. 품질은 높이면서 가격은 낮춰 사용량을 늘리고,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을 모색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지난 2017년 기준 전체 의약품 사용량 49.7%(OECD 평균 52%)에 그치고 있는 제네릭 사용량은 점차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형보다 나은 아우…블록버스터 품목 ‘오리지널’ 넘어선 제네릭

블록버스터급 오리지널 의약품 매출을 넘어선 제네릭도 있다. 28일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일부 제네릭은 오리지널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이 대표적이다. 특허 만료 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해왔던 화이자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제네릭의 압도적 공세에 국내 시장에서 왕좌를 내줬다. 한국릴리의 오리지널 의약품인 시알리스도 마찬가지다.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만료 직후부터 국내 제약사들이 다수 제네릭을 출시하면서 경쟁적으로 저가 공세와 적극적 마케팅을 전개했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비아그라는 처방액이 약 96억원에 그쳤으나, 한미약품의 팔팔정은 224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오리지널 의약품인 시알리스도 처방액은 64억원에 머물렀고, 종근당의 센돔은 104억원을 기록하며 통상 블록버스터 제품의 기준인 100억원을 뛰어넘었다. 다국적 제약사 제품이 점유하고 있던 시장을 국내 제약사 제품들이 뛰어넘은 대표적 사례다.

오리지널 의약품을 판매하던 노하우를 활용해 제네릭을 개발, 시장을 뒤집은 사례도 있다. JW중외제약은 지난 1998년부터 소화불량치료제 가나톤을 판매하다 2015년 오리지널 업체 애보트가 판권을 회수하자 제네릭 가나칸을 출시했다. 오리지널 판권 회수에 따른 손실을 자체 제네릭으로 만회에 나선 것이다.

오리지널을 판매하던 노하우를 제네릭에 접목한 덕분에 가나칸은 지난해 50억원 수준의 처방액을 기록했다. 가나톤은 7억원 수준에 그쳤다. 제네릭이 오리지널 시장을 대체한 것이다. JW중외제약으로선 오리지널 제약사에 지급하던 수수료도 없어 수익구조도 개선됐다.

심혈관계 질환 등에 많이 사용하는 바이엘코리아 아스피린도 제네릭의 추격을 받고 있다. 지난해 바이엘코리아의 아스피린프로텍트가 전년보다 13.8% 감소한 약 192억원의 처방액에 그친 반면 같은 기간 보령바이오파마의 아스트릭스가 146억원으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성분이 같지만 다른 방식으로 약을 만들어 오리지널과 차별화를 꾀한 것이 경쟁력 비결인 것으로 풀이된다.

보령바이오파마 아스트릭스는 알약 형태인 오리지널을 캡슐로 변경해서 성과를 냈다. 캡슐 안에 130여 개 소과립을 하나씩 코팅 처리해, 위장관내에 고르게 분포하면서 흡수율을 높인 것이다. 오리지널 대비 위출혈, 구역 등 위장관계 부작용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해외서도 인정…글로벌 제약강국 기틀 마련하는 제네릭

토종 제네릭은 내수시장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다. 중국·인도산 제네릭보다 가격을 낮추기는 어렵지만 품질면에서 인정을 받아 해외 각국에 수출되고 있는 것이다.

삼천당제약은 2016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미국, 독일 등지의 제약사들과 점안제 제네릭 수출 계약을 4건 체결했다. 삼천당제약은 향후 약 10년에 걸쳐 수출 성과가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도 지난해 4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안도파마와 페미렉스 등 항암제 제네릭 수출 계약을 맺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항암제 제네릭 외에도 주력 제품인 개량신약의 신규 진출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종근당 타크로벨, 삼진제약 플래리스, 보령제약 맥시크란, 대웅제약 루피어데포 등도 중국, 필리핀, 케냐, 나이지리아, 브라질 등으로 제네릭 수출이 이뤄지는 상황이다. 지난 2월에는 한미약품이 발기부전 치료제 구구를 일본에서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로 허가받으며 현지 시장 공략에 돌입했다.

식약처도 국내 생산 제네릭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2015년부터 해외 규제당국 관계자를 초청해 컨퍼런스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열린 ‘제네릭 의약품 규제당국자 초청 컨퍼런스’에는 일본, 말레이시아 등에서 규제당국자 등이 참여해 규제 정보와 성공사례 등을 논의했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 한국 토종 제네릭의 허가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향후 전망을 밝게 한다. 대웅제약은 지난 2016년 미국에서 국내 최초로 제네릭 항생제 메로페넴의 허가를 획득했다. 휴온스는 2017년, 2018년 연이어 생리식염주사제와 리도카인주사제 허가를 받았다. 2019년엔 셀트리온 리네졸리드, SK케미칼의 리바스티그민 등이 미국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제네릭이 신약 개발과 함께 쌍두마차 체제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 성장에 기여할 것이란 전망도 이어진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
제네릭은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연구개발(R&D)을 지속할 수 있는 캐시카우가 되는 것은 물론 그 자체의 경쟁력으로 해외에 진출해 성과를 내고 있다"며 "세계 각국에서 의료비 절감 등을 위해 정책적으로 제네릭 사용을 활성화하고, 개발도상국 등지로부터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제네릭은 국내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