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약속의 땅? 2000년만에 정착한 땅엔 물도 기름도 없었다

오완선 2021. 7. 6. 11:31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14]
척박한 환경 이겨낸 유대인들의 지혜와 끈기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30년 전부터 유대인들은 슬금슬금 가나안(팔레스타인)으로 모여들었다. 영국이 1차 대전이 끝나면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인 나라를 가나안에 세우도록 지원하겠다는 ‘밸푸어선언'을 1917년에 했기 때문이다. 이때 유대인들은 가장 먼저 그 땅에 대학부터 세웠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러시아 태생 생화학자이자 훗날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이 되는 하임 바이츠만은 세계를 돌며 자금을 모아 테크니온 공대와 히브리 대학을 설립, 각각 1924년과 1925년에 문을 열었다. 교육이 앞으로 탄생할 이스라엘의 장래를 책임질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1946년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 홍해와 통하는 아카바만 인근 키부츠에서 감자를 심고 있는 초기 유대인 정착민들〈위 사진〉. 네게브 사막은 이스라엘 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여름이면 기온이 섭씨 40도 이상으로 오른다. 이스라엘은 1960년대 초 이 사막에서 대규모 관개 사업을 시작했고, 국토 최남단 도시 에일라트에 첫 해수 담수화 플랜트를 건설했다. 현재 네게브 사막은 많은 지역이 포도, 석류, 무화과, 오렌지 등 유실수를 심고 가꾸고 수출도 하는 농토로 개발됐다〈아래 사진〉. /위키피디아·게티이미지뱅크

그 무렵 주로 러시아와 동구에서 박해를 피해 가나안으로 모여든 유대인들은 살길이 막연했다. 이때 이들을 보살핀 사람이 프랑스의 에드몽 로스차일드였다. 그는 유대 이주민들에게 농사지을 땅을 사주고 정착 비용을 지원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척박한 사막성 광야라 물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스라엘 연평균 강수량은 한국의 3분의 1에 불과해 농사는커녕 생활용수도 모자랐다. 초기 정착민들은 물을 구하려 겨울 우기에 내린 빗물이 고여 있는 저지대에 모여 살았다. 하지만 습지 모기들이 말라리아를 옮겨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러자 1920년대에 유대인들은 모기를 피해 구릉 지대 꼭대기로 촌락을 옮겼다.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면 사람들이 높은 곳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산꼭대기에 물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하수조차 얻기 어려운 사막 국가인 이스라엘의 유일한 수자원은 갈릴리 호수인데 이마저 해수면보다도 220m 낮은 땅에 위치해 있어 농업용수나 식수로 쓰기 어려웠다. 유대인들은 갈릴리 호수 물을 멀리 산꼭대기까지 파이프로 연결해 모터로 끌어올려 식수로 썼다. 하지만 이 귀한 물을 사람만 먹고 살 수도 없었다. 물을 최대한 아껴 농사도 지어야 했다.

유대인의 새로운 시도, 점적 관개(Drip Irrigation)

유대인들은 효율적으로 농작물에 물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결과 스프링클러로 작물 위에서 물을 뿌리는 대신 파이프와 고무 호스를 이용해 뿌리 근처에 정확하게 필요한 만큼만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컴퓨터 제어 기술을 개발했다. 이 점적 관개(Drip Irrigation) 기술은 물을 일반 관개 농법의 40%만 쓰고 생산량은 50% 증가시켰다.

1964년 이스라엘 에일라트의 홍해 아카바만 해안에 건설 중인 해수 담수화 플랜트 모습. /위키피디아

그럼에도 갈릴리 호수의 물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유대인들은 이미 사용한 물을 다시 쓰는 재처리 기술을 개발했다. 지금은 오·폐수의 92%를 재처리하여 농업용수로 쓴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물을 가장 알뜰하게 쓰는 나라로, 물 재이용률이 세계 1위다. 이스라엘은 동북부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해 남부 네게브 사막까지 전국의 물 저장 시설을 1964년에 완공된 국가 수로와 연계해 나라에서 통합 관리하고 있다. 그래도 물이 모자라자, 이스라엘 정부는 바닷물을 민물로 만드는 해수 담수화 기술 개발을 국가 정책 목표로 삼아 연구에 총력을 기울였다. 1965년 국토 최남단 에일라트(Eilat)에 첫 해수 담수화 플랜트를 건설했다.

갈릴리 호수에서 퍼 올린 물과 담수화 과정에서 끌어올린 바닷물은 사막 어느 암반층에 함께 저장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상이 걸렸다. 식수로 쓸 물에 녹조가 낀 것이다. 그들은 궁리 끝에 녹조를 먹고 자랄 수 있는 먹성 좋은 물고기를 투입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나 세상에 섭씨 38도의 사막 온수, 민물과 바닷물의 중간 염도에서 살 수 있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없어서 만들어버린 새로운 ‘잉어’

놀랍게도 유대인들은 없으면 만들기로 했다. 그들은 독일인들이 오랫동안 개량한 ‘독일 가죽잉어'에 주목했다. 비교적 높은 수온에서 견디며, 얕은 바닷물에서도 살 수 있고,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면서도 녹조 등 식물성 퇴적물을 좋아하는 물고기였다. 유대인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독일 가죽잉어와 먹성 좋고 덩치 큰 이스라엘 토착 잉어를 교배해 생명력 강한 새로운 품종을 개량해냈다. 녹조 문제를 해결한 이 잉어는 이스라엘에서 개량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잉어’라 불렸다.

 

원래 중세 유럽 수도원에서는 단백질 공급용으로 잉어를 양식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독일 수도사들이 비늘을 쉽게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비늘 없는 잉어만을 골라 오랜 세월에 걸쳐 품종 개량한 것이 독일 가죽잉어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식용으로 가죽잉어를 다시 비늘이 있는 품종으로 개량했다. 유대인 율법의 정결법인 ‘코셔’에 따라 비늘 없는 생선은 먹어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독일 가죽잉어와 달리 이스라엘 잉어는 비늘이 있다. 이렇게 품종 개량된 이스라엘 잉어는 살이 많은 데다, 배설물로 비료도 만들었다. 이스라엘 잉어의 개발 과정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언제나 새로운 생각과 방법으로 해결해가는 유대인 특유의 문제 해결법을 보여준다.

마침내 1948년, 유대인들은 2000여년에 걸친 방랑과 차별, 추방, 박해, 학살을 이겨내고 지금의 이스라엘을 건국해 정착했다. 그러나 하느님이 그들에게 약속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실제로는 너무나 척박했다. 게다가 주변 중동 국가와 달리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대인들을 끈기와 열정으로 척박한 현실을 약속의 땅으로 만들어나갔다. 어쩌면 신이 유대인에게 준 진정한 선물은 ‘약속의 땅’이 아니라 약속의 땅을 일굴 수 있는 ‘끈기와 열정’일지 모른다.

한국에 들어온 이스라엘 잉어, ‘향어’라는 이름을 받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인 1973년 우리나라는 성장 속도가 잉어보다 2배 이상 빠른 이스라엘 잉어 치어 1000마리를 들여왔다. 그 뒤 양식에 성공해 1978년부터 전국 호수에서 대대적인 가두리 양식이 시작됐다. 우리 양식업자들은 독특한 향이 나는 물고기 맛을 선전하고자 이를 ‘향어’라 불렀다. 향어는 1990년대 후반까지 공급이 많아 유료 낚시터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997년부터 수질 보호를 위해 호수의 가두리 양식장이 사라지면서 향어 양식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 청주댐 양식장의 향어 모습. 우리나라는 1973년 이스라엘잉어 치어 1000마리를 들여와 1990년대까지 전국 호수에서 양식했다. /연합뉴스

향어는 이후 초기 투자비가 적게 드는 논에서 키우는 양식 방법이 개발되며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2018년 우리 국립수산과학원은 유대인들보다 한술 더 떠 일반 향어보다 성장 속도가 40%나 빠른 ‘육종향어’를 개발했다. 18개월 만에 평균 3.4㎏까지 성장하는 이 자이언트 향어는 비린내가 없으며 육질이 쫄깃하고 식감이 좋아 횟감으로 인기가 높다. 게다가 값도 착해 1㎏에 8000원 정도다. 매운탕도 잔가시가 없고 살이 많아 국물 맛이 달콤하고 진하다. 유대인이 식용으로 개량한 ‘가죽잉어’가 머나먼 우리나라로 넘어와 ‘향어’란 이름으로 우리를 살찌우니, 참으로 독특한 인연이다.

 

[세계 최첨단 해수 담수화 기술을 보유한 이스라엘]

이스라엘 국토의 대부분은 사막으로 항상 물 부족에 허덕였다. 주변 나라와도 늘 물로 인한 분쟁이 생겼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는 일찍이 1960년대 수자원 개발을 국가적 목표로 정하고 GDP의 5%를 물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그렇게 개발한 것이 특수한 막으로 염분을 걸러내는 역삼투압 방식 해수 담수화 기술이다. 이 기술은 비용이 많이 드는 게 약점이었는데, 이스라엘은 태양열 발전과 접목하여 세계 최저 수준인 t당 52센트 정도의 전기료만 투자하면 바닷물을 담수로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첨단 기술을 선보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세계 최대 규모의 담수화 플랜트로 물을 자급자족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최첨단 해수 담수화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고 응용해 폐수 처리,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유엔은 2025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20%인 27억명가량이 심각한 물 부족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1세기 물 산업은 20세기 석유 산업 규모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전 세종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