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경남 통영시 정량동 멸치권현망수협 인근에 해상풍력발전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김동환 기자
지난 10일 오후 경남 통영시 동호항. 멸치 금어기(禁漁期·4~6월)를 맞아 조업을 나가지 않은 멸치잡이 어선 10여 척에 ‘어업인 다 죽이는 통영해상풍력 결사반대’ 등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이날 바다에 나선 꽃게잡이 통발 어선들도 ‘어업인의 논밭이다 풍력말뚝 웬말이냐’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조업을 했다.
통영 욕지도 인근에는 현재 3건의 풍력발전소 사업이 추진 중이다. 욕지도를 둘러싼 동·서·남쪽 해상에 1.1GW 규모 발전단지가 들어설 것으로 보이자 어민들이 “어장(漁場)을 고스란히 뺏기게 생겼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통영 앞바다는 동해의 한류와 서해의 난류가 만나는 수심 20~40m의 어장으로 멸치, 갈치, 참돔, 고등어 등 어종이 다양하고 풍부한 곳이다. 40년 넘게 이곳에서 멸치잡이를 했다는 최모(71)씨는 “한순간에 일터를 빼앗길 판”이라고 했다.
◇바다로 내려간 풍력… “연안 어장 다 덮는다”
정부는 태양광과 함께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대대적인 해상풍력 건설을 구상하고 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산림 훼손 비판에 부닥친 육상풍력 대신 해상에 발전단지를 짓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바닷바람은 21세기 석유”라며 2030년까지 해상풍력발전 설비 용량을 12GW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상업 가동 중인 용량(0.12GW)의 100배를 10년 안에 짓겠다는 것이다.
풍력발전 허가용 풍황계측기 설치 현황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실이 에너지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발전 사업 허가를 받은 해상풍력 예정지는 전국 38곳 7.5GW 규모다. 이 밖에 공공·민간 사업자가 각 지역에 풍황 계측기를 설치해 놓고 입지 타당성 여부를 조사 중인 단지가 추가로 85곳 25GW에 달한다.
문제는 해상풍력 단지가 들어설 입지가 연안 어장과 겹친다는 점이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수심이 20~50m로 낮고, 평균 풍속이 최소 초속 6m를 넘어야 해상풍력 사업성이 확보된다. 통영 앞바다를 비롯해 국내 어획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전남 신안과 영광, 여수, 완도 등 서남해에 건설 계획이 집중된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 목표량을 채우려면 바다를 얼마나 써야 할까. 현행 해상풍력 단지 중 가장 큰 전북 서남해실증단지(60MW)는 14㎢ 규모다. 실제 발전기와 변전소를 설치한 면적은 3㎢ 내외지만, 발전기 사이 이격 거리와 통항·조업 금지 구간을 모두 합하면 이보다 4배 넘는 해역이 필요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의 2030년 목표치(12GW)를 건설하려면 2400㎢ 해역이 필요하다. 정부가 2050년까지 구상 중인 풍력 잠재량(44GW)을 해상풍력으로만 채울 경우 8800㎢까지 커진다. 한국 면적의 9%에 해당하는 바다가 발전소로 덮인다는 것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우리는 국토가 작고 육상 풍질(風質)이 나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해상풍력을 확대하는 것이 맞는다”면서도 “해상풍력은 설치비·운영비·송전 비용이 재생에너지 중에서도 가장 비싸고 운영도 까다롭다. 지금 정부의 목표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했다.
◇해상풍력 급발진…환경평가 면제하겠다는 與
정부·여당은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18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47명은 풍력발전사업의 인·허가 절차와 환경영향평가를 간소화한다는 골자의 ‘해상풍력촉진법’을 발의했다. 해상풍력발전소를 지을 때 환경영향평가를 면제한다는 특례 규정도 마련했다. 해상풍력발전 예정지 주민들과 수산업계에서는 “사실상 경관과 해양 생태계, 어업 영향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라고 우려한다.
환경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어민들과 주민들을 설득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이 같은 특례 조항이 풍력발전 사업을 촉진하겠다는 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학과 교수는 “유럽은 해상풍력발전의 환경평가를 매우 엄격하게 한 뒤, 지나치게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환경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업 추진 과정에서 오히려 주민들의 반대와 갈등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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