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젠 반려동물 '49재'까지… 전용 법당도

오완선 2024. 1. 23. 17:31

강아지·고양이 제사 지내는 세상

지난 17일 경북 영천시의 천룡정사. 법당 내부에 누군가의 명복을 비는 촛불과 향불, 영가등(燈)이 밝혀져 있었다. '나무 극락도사 아미타불'이란 글귀도 보였다. 그런데 영정 사진을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라 개와 고양이 얼굴이었다. 위패를 두는 영단에는 동물 사료가 올려져 있었다. 주인 곁을 떠난 반려동물의 명복을 전문으로 비는 '축생법당'이다. 2019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졌다.

주지 지덕 스님은 "죽은 반려동물을 위해 (불교식 장례 의식인) 49재와 천도재를 지내준다"고 했다. 벽에는 지난 4년간 49재를 지낸 개와 고양이 75마리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작년에만 25마리의 49재를 지냈다. 초록색 영가등에는 '망 복실 영가 극락왕생'처럼 떠난 반려동물(복실)이 극락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길 비는 문구도 적혀 있다. 개·고양이뿐 아니라 너구리와 노루도 보였다. 스님은 "사람 가족을 보내고도 여러 번 장례 의식을 하는 경우는 드문데 반려동물을 위해 10번 넘게 방문하는 분들도 있다"며 "애도하는 가족 모습을 보면 염불하다가 울컥하기도 한다"고 했다.

반려동물 49재도 사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우선 반려동물의 영혼을 불러내 씻기고 공양을 올린다. 영혼이 음식을 먹으면 명복을 빌어주고 반려동물 관련 물품을 불태운다. 2시간쯤 소요된다. 정식으로 49재를 지내면 100만원 이상 든다고 한다.

사연도 다양하다. 경찰관 아빠를 둔 경찰견 무진이, 반려견 자두를 위해 인천에서 7번 왕복한 가족, 수십 년 전 잡아먹은 노루에게 미안하다며 뒤늦게 법당을 찾은 70대 노인, 전염병으로 소를 살처분하고 다녀간 축사 주인, 고국에서 반려견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고 온 재일 교포, 강아지를 잃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학생 등이 기억난다고 스님은 말했다.

주인들은 "펫 로스 증후군(반려동물 상실로 인한 우울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서울 송파구의 이모(59)씨는 지난해 10살짜리 반려견을 떠나보냈다. 그는 "49재 전에는 유골함을 집에 보관할 정도로 이별이 어려웠는데 이제는 가족 모두가 편해졌다"며 "불교 신자가 아닌데도 스님 말씀을 들으니 집착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재작년 인천 불정사에서 반려견 49재를 지냈다는 이모(62)씨도 "반려동물을 잘 보내주는 의식이자, 남은 가족의 마음 치유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조경 한국반려동물진흥원 교육센터장은 "반려동물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장례 문화가 생겼고 더 나간 것이 49재"라고 했다.

최근 반려동물은 자녀 같은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서울 광진구에는 반려견 코스 요리 식당이 문을 열었다. 100% 예약제로 운영되고 가격은 반려견 크기에 따라 11만3000원~15만3000원 선이다. 반려동물의 눈동자·털 색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진단해주는 업체도 성업 중이다. 반려견 유치원은 '개 반장'까지 뽑는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반려동물용 유모차인 '개모차'가 유아용 유모차보다 더 많이 팔리기도 했다. 과거 선거에선 후보가 유권자 자녀 이름 외우는 것이 중요했지만 요즘은 반려동물 이름을 알아야 유권자 마음을 얻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KB 경영연구소의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국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552만 가구로 전체의 25.7%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반려동물에 대해선 49재까지 지내지만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사람은 갈수록 줄고 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작년 10월 발표한 '제례 문화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9%가 "앞으로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젊은 세대가 과도하게 반려동물에 몰입하면 저출생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