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여행

마추픽추 4.

오완선 2012. 5. 4. 10:16

다음 행선지는 잉카시대 계단식 농경지이던 피삭(Pisaq)이다. 가는 길에 가이드가 마추픽추 근교에 있는 것으로 상상되는 엘도라도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신부 한 명이 엘도라도를 찾아 나섰다고 한다. 밀림 속을 헤매다 마침내 잉카의 옛길 한 자락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 길은 너무나 가팔랐다. 신부는 페루 정부의 협조를 얻어 헬리콥터를 타고 상공을 비행해보았으나 잉카의 길은 오간 데 없이 밀림만 우거져 있었다고 한다. 인디언 사회에서 구전되는 전설에 따르면 마음이 깨끗한 한 사람만 엘도라도로 가는 길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피삭은 계곡을 계단식 농경지로 만든 곳이다. 모라이에서 개량한 감자씨앗을 이곳에서 재배했다고 한다.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려면 우선 산비탈에 돌로 축대를 쌓아야 했다. 그러곤 물이 잘 빠지도록 자갈을 깔고 그 위에 흙을 덮는다. 잉카는 토양을 비옥하게 하려고 멀리 떨어진 해안에서 구아노(guano·새의 배설물로 퇴비로 사용했다)를 가져다 흙과 혼합했다. 청정지역으로 유지하고자 가축이 들어오는 것을 막은 채 가파른 농경지를 모두 사람의 힘으로 경작했다고 하니 당시 인디오의 고생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농기구도 철이 아닌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인디오들의 작업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작은 그룹끼리 조를 짜서 함께 일하는 것으로서 ‘아이미(aymi)’라고 일컫는 방식이다. 가족 단위 또는 이웃과 함께하는 작업 형태로 소규모 농지에 적합하다. 부족 단위 협동작업은 ‘밍카(minca)’라고 칭했다. 밍카는 우리의 새마을운동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끝으로 국가에 노동을 제공하는 ‘미타(mita)’가 있다. 잉카의 장정은 세금을 낼 수 없을 때 노동력을 대신 제공했다. 해마다 두세 달가량 길을 닦거나, 신전을 짓거나, 계단식 농지를 건설하는 데 동원됐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미타를 탄광 노동에 적용해 인디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미타는 오늘날에도 광산 등지에서 과거와는 성격이 다소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거대한 계단식 농경지를 경작하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노동자를 수용하고자 산 정상에 마을이 건설됐다. 지금은 폐허로 바뀐 그 마을로 올라가고 있는데, 맞은편 산의 절벽에 인공 동굴들이 보였다. 잉카시대의 묘혈이라고 한다. 이쪽은 산 사람의 집, 저쪽은 죽은 이의 집인 것이다. 잉카의 장례 방법은 독특하다.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묘혈에 안치하는데, 미라는 태아가 자궁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잉카인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하늘나라로 간 뒤 나중에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제2의 탄생을 기다리는 태아의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보낸 것이다. 영혼이 사용하라고 도자기, 금, 은, 주석 등 금속과 옥수수, 콩 등 곡물, 그리고 베를 함께 묻었다고 한다. 또한 잉카인은 죽은 사람이 굴이나 샘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샘, 굴을 파카리나(paqarina)라고 부르며 신성시했다. 잉카의 창건자 망코 카팍(Manco Kapac)의 미라는 그의 여동생이자 아내인 마마 오크요(Mama Ocllo)와 함께 티티카카 호수에서 발견됐다. 이 호수가 그들의 파카리나였던 것이다.

정교한 다각형의 벽돌을 사용해 틈이 없는 신전의 건축 양식과 달리 일반 살림집은 투박한 벽돌로 지어져 있다. 침상으로 보이는 곳 밑에 구멍 3개가 나 있다. 이 반(半)지하 공간에서 잉카인이 즐겨 먹던 쿠이(cuy)를 길렀다고 한다. 쿠이는 대형 쥐의 일종으로 크기가 토끼만 하다. 과거 에콰도르 근무 당시 한 번 시식한 적이 있는데 바싹 구운 고기는 졸깃졸깃하며 기름기가 적어 단백하다. 지금도 라파스 시내 고급식당에서는 쿠이 고기가 별미로 나온다.

잉카의 주거지를 돌아보고 나오니 평화로워 보이는 피삭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피삭은 잉카의 경작지를 관리하고자 스페인 사람들이 세운 식민지풍 마을이다. 1572년 5대 부왕이었던 프란시스코 데 톨레도(Francisco de Toledo)는 잉카의 신전을 파괴하고, 산속에 모여 사는 인디오들을 도시로 강제 이주시켜 이들을 개종시킴과 동시에 그들의 노동력을 징발했다. 인디오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터전은 폐허로 변했다. 이주한 인디오들은 도시의 날품팔이 빈민으로 전락했다.

탐보마차이(Tambomachay)는 물을 이용해 신성한 의식을 거행하던 곳이다. 잉카인은 물을 생명이라고 여겼다. 돌로 제단을 만든 곳에서 한 줄기 물이 쉬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죽은 사람의 재생을 기원하며 시체 위에 향초를 섞은 물을 뿌리는 행사도 이곳에서 행했다고 한다. 이곳의 물은 ‘젊음의 물’로 알려져 있다. 몸에 바르거나 마시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시원한 물줄기가 돌로 만든 홈을 타고 흘러나오는데 마르는 날이 없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머리칼이 빠져 고민인 일행 한 명이 머리칼에 이 물을 한번 발라봐야겠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모두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산 아래쪽의 옛 잉카 전망대 푸카푸카라(Pukapukara)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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