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여행

마추픽추 6.

오완선 2012. 5. 4. 10:18

이곳의 박물관에는 다양한 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예수를 가운데 두고 성모 마리아와 산티아고가 양쪽에 자리한 작품이었다. 그림의 제목을 보니 ‘전율의 신(Senor del Temblor)’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은 이러했다. 1650년 쿠스코에 큰 지진이 발생해 진동이 계속됐다. 성모 마리아와 산티아고에게 기도해도 지진은 멈추지 않았다. 이때 인디언들이 검은 얼굴의 예수상(Cristo moreno)을 만들어 기도하니 지진이 멈췄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검은 예수상을 숭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검은 예수 숭배는 잉카의 토착 신앙과 기독교가 결합한 대표적인 신크레티즘이다. 검은 예수는 다리가 안으로 휘어진 안짱다리를 하고 있으며 인디언 고유 의상인 치마를 입고 있다. 또 우측에 있는 마리아의 머리 위에 태양이 그려져 있고 좌측의 산티아고는 머리에 달을 쓰고 있다.

정복자 피사로와 잉카 왕 아타우알파가 카하마르카(Cajamarca)에서 최초로 회동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도 인상 깊었다. 카하마르카는 현재 페루의 북부 지방에 있는 곳인데도 그림의 배경은 스페인의 전원 풍경이다. 아타우알파는 피사로를 환대했으나 결국 피사로에 의해 사로잡힌 포로 신세가 된다. 황금에 눈이 먼 피사로는 아타우알파를 석방하는 조건으로 2개의 큰 방을 금과 은으로 가득 채우라고 요구했다. 왕을 구출하고자 인디언들이 엄청난 양의 헌물을 바쳤으나 스페인군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기독교의 토착화는 마마차(Mamacha) 숭배 사상에서도 엿볼 수 있다. 마마차는 성모 마리아와 대지의 신 파차마마와의 혼합을 의미한다. 박물관에서 본 그림 속 마마차는 브로카테아도(brocateado)라고 하는 금색 옷을 입고 있으며 왕관 위에는 잉카왕의 깃털 장식이 붙어 있었다. 지금도 포마타(Pomata)에서는 이 마마차를 숭배하는 비르헨 데 로사리오 포마타(Virgen de Rosario Pomata) 축제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도시가 ‘시작되는’ 광장

코리칸차를 나오니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쿠스코 성당은 문을 닫았다. 스트로브를 터뜨려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플라사 데 아르마(Plaza de Arma)라고 부르는 중앙 광장은 고급 호텔과 식당으로 둘러싸여 마치 유럽의 조그마한 마을을 연상케 했다. 플라사 데 아르마는 ‘무기의 광장’이라는 뜻으로 중세 유럽에서 전쟁하러 나갈 때 병사를 집합시키는 곳을 가리켰다. 스페인의 도시 건설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제일 먼저 마을 한가운데 플라사 마요르(Plaza mayor)라고 일컫는 중앙 광장을 건설한다. 그리고 한쪽에 카테드랄(Catedral·대성당)을 짓고, 그 맞은편에 정부 청사를 건설한다. 스페인이 건설한 중남미 도시들은 이러한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따라서 중남미를 여행할 때는 제일 먼저 플라사 마요르를 찾아가는 게 좋다. 이곳에서 도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행은 극장식 식당에서 석식을 먹는 것으로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쿠스코 중앙광장 가까이에 있는 식당은 외국인 관광객으로 만원이었다. 식당 측은 우리 일행을 위해 태극기를 급하게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식사가 준비되자 무대에서는 잉카의 전통춤 공연이 시작됐다. 식당의 벽은 쿠스케냐 화풍의 천사장(Arcangel) 그림으로 장식돼 있었다. 밥을 먹다 말고 그림을 사기 위해 산 블라스(San Blas) 시장으로 달려갔다. 오후 9시가 가까워지고 있었기에 가게가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산 블라스는 쿠스코 대성당 뒤쪽에 있는데 토산품 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니 앞서 그림 값을 흥정해놓았던 가게가 아직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천사장 그림을 여러 점 구입하는 것으로 쿠스코 여행의 대미가 장식됐다.

16세기 쿠스코를 중심으로 성행한 쿠스케냐 화풍은 가톨릭 성화에 잉카의 지방색을 가미한 특이한 종교화다. 유럽인에게 그림을 배운 인디언 화가들에 의해 이 화풍이 이어졌다. 대표적 화가로는 디에고 키스페 티토(Diego Quispe Tito), 바실리오 산타 크루스(Bacilio Santa Cruz), 신치 로카(Sinchi Roca) 등이 있다. 18세기 말 쿠스케냐 화풍이 대대적으로 상업화됐다고 한다. 천사장 그림을 조심스럽게 말아서 품에 안고 밤 11시 20분 출발하는 라파스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내일 정오가 지나야 라파스에 도착할 것이다. 아르캉헬 대천사장에게 안전한 여행이 되게 해달라고 빈다.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며 몸을 뒤척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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