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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살, 천편일률 돼지고기 세상에서 맛의 독립을 선언하다

오완선 2013. 8. 17. 01:56

[맛난 집 맛난 얘기] 구이랑

매일 쌀밥만 먹는 사람에게는 가끔 잡곡밥이 간절할 때가 있다. 달고 잘 익은 과일만 먹다가도 가끔은 풋과일이 입맛을 당긴다. 고기도 마찬가지. 늘 습관처럼 먹는 등심이나 갈비, 삼겹살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좀 색다른 부위, 이른바 특수 부위에 대한 호기심이나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혹 든다. 모험이나 도전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고깃집을 보면 간혹 자석처럼 끌린다. 경기 김포의 <구이랑>은 돼지고기 특수 부위인 가브리살(등심덧살)을 최상의 찬류와 함께 차려내는 가브리살 전문점이다.
등심도 목심도 아니다. 나는 가브리살일 뿐...

돼지고기 세계에서 비교적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등심과 목심. 모두 북반구에 해당하는 돼지의 등쪽 부위다. 이 광대한 국가들 사이에 작은 나라가 끼어있다. 등심덧살, 일명 가브리살이다. 등겹살이라고도 한다. 돼지 한 마리에 200~450g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 특수 부위다. 가브리살은 일본어 ‘가부루(かぶる, 뒤집어쓰다)’에서 나왔다고 한다. 아마도 강대국인 등심과 목심 살을 뒤집어쓴 형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싶다.

	가브리살
가브리살

그게 아니면, 전체적으로 지방층을 둘러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브리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탄력 있는 백색 지방이 붙어 있다. 마치 뒤집어쓴 것처럼… 이 지방은 그냥 퍽퍽한 비계와는 다르다. 연하고 부드러우면서 구울 때 지방의 풍미도 내준다. 고기의 육색이 짙은 선홍색이어서 다른 부위보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도 가브리살의 특징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강대국 사이에 낀 이 작은 나라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손바닥만한 작은 부위여서 별도로 정형하지 않았던 것. 다른 잡고기 부위와 함께 갈아 만두 속이나 햄버거 패티로 썼다. 그런데 따로 이 부위를 떼어내 누군가 먼저 구워먹어 보았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그 기막힌 맛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 브리살(등심덧살)은 독립국으로 당당히 섰다. 잡고기가 아닌, 물론 등심이나 목심에도 속하지 않는 별도의 구이 부위, 가브리살(등심덧살)로 탄생한 것이다.

‘고기 써는 남자’  ‘고기 굽는 여자’와 담백 쫄깃한 가브리살

<구이랑> 박성균 사장은 16년 동안 고깃집 육부장(고기 작업자) 생활을 했다. 아주 능숙한 칼잡이다. 고객 서비스와 홀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박서연 점장은 10년 넘게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웠다. 그래서 손님들이 두 사람을 ‘고기 자르는 남자’ ‘고기 굽는 여자’로 부른다. 무슨 음식이든 전문가 손길이 가면 아무래도 다르다.

	가브리살 굽는 모습
가브리살 굽는 모습

돼지고기 특수부위를 취급하는 점포들도 여럿이다. 그런데 이 집은 양 박씨 덕분에 통가브리살(180g 1만1000원)의 본래 맛을 충실하게 음미할 수 있다. 고기구이는 썰기(커팅)와 굽기(그릴링)가 생명이다. 썰 때, 적당한 두께와 지방 안배를 잘하고 고기 결을 거스르느냐 아니냐에 따라 풍미와 씹는 식감이 달라진다. 구울 때, 불 조절과 굽는 시간 조절에 따라 고기 맛과 질감이 차이가 난다. 같은 고기라도 누가 어떻게 자르고 굽느냐에 따라 그 맛이 갈리는 것이다. 그래서 솜씨 좋은 전문가가 고기 구이집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고깃집 주인장들은 담당 직원 교육을 철저히 시킨다. 당연히 손님이 많고 대박집이 된다. 그러나 이걸 모르거나 무시하는 고깃집이 성공한 예는 본 적이 없다.

가브리살을 구웠다. 적당히 익은 고기는 채반처럼 생긴 스테인리스 받침에 올려놓아 더 타지 않는다. 보온도 되고 육질이 딱딱해지지 않아 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잘 익은 고기를 울금 소금에 찍었다. 소금에 누런 가루가 보이는데 바로 울금이다. 울금은 카레라이스에 들어가는 커리의 원료다. 그래서 돼지고기와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오히려 느끼함을 잡아준다. 더해 담백함을 좀 도드라지게 돕는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가브리살이다. 우선 쫄깃한 질감이 압도했다. 닭 모래집이나 갈매기살을 씹을 때 느끼는 씹는 느낌과 조금 유사하다. 치아와 고기 사이에 긴장감이 생긴다. 탄력이 느껴진다. 어떤 손님은 삼겹살의 고소함과 목살의 담백함을 겸비했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다른 부위에 비해 육즙이 풍부하고 근육 씹는 생생한 느낌이 좋다. 유백색의 지방도 고기를 부드럽게 해주면서 고소한 풍미와 감칠맛을 더해준다.

명이나물 등 푸짐한 반찬과 고슬한 냄비밥

	냄비밥, 찌개 등 반찬
냄비밥, 찌개 등 반찬

고깃집에서 반찬은 자칫 소홀히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고기와 궁합이 맞고 잘 어울리는 반찬, 입에 맞는 반찬을 내면 그만큼 손님도 만족스럽고 고기도 더 많이 먹게 돼 주인도 좋다. 이 집의 반찬을 보고 처음에 무척 놀랐다. 양과 질에서 어느 고깃집보다 압도적이다.

여수에서 직송한 갓김치는 돼지고기와 천생연분이다. 울릉도산 명이나물과 제 맛이 든 묵은지는 고기를 한없이 싸먹게 한다. 콩나물 무침, 물김치도 고기의 느끼함을 초기에 잡아준다. 여기에는 함께 내온 마늘과 막장, 갈치속젓의 구실도 크다. 곤드레, 알타리, 고추로 만든 장아찌 세트도 기름진 입 안을 개운하게 해준다. 푸짐한 쌈채들이 제 구실을 다 못해 머쓱할 지경이다. 이쯤 되면 굳이 쌈채가 필요 없는데 다른 고깃집처럼 상추와 깻잎 같은 쌈채도 푸짐하게 내왔다. 여기에 술안주로도 손색없는 우거지 해장국까지 나온다. 이 가격에 이 정도라면 아주 실하다.

고기를 즐기고 나서 식사를 하고 싶은 고객을 위해 냄비밥(2인용 3000원, 4인용 5000원)을 준비했다. 주문하면 양은냄비에 강화 쌀을 앉혀 밥을 짓는다. 15분 정도만 기다리면 아주 맛난 쌀밥을 마주할 수 있다. 구수한 밥 냄새 물씬 나는 양은 냄비와 함께 두부와 바지락 푸짐하게 넣은 된장찌개, 완도산 김과 간장을 내온다.

밥은 반찬 없이 그냥 먹어도 좋은 만큼 미질이 좋다. 살짝 구운 완도산 김에 쌀밥을 얹고 간장에 찍어먹는 맛은 추억과 함께 입맛을 돌게 한다. 물론, 다 먹고 난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인 숭늉 맛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가브리살, 맛있는 고기임엔 틀림없다. 그런데 근본도 알 수 없는 이름인 ‘가부리살’보다 기왕이면 ‘등겹살’이나 ‘등심덧살’이 한결 더 입에 착착 감긴다. 고기 맛에 말맛까지 좋다. 먹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앞으론 등겹살이나 등심덧살로 부르는 건 어떨지?
<구이랑>경기도 김포시 돌문로 62번길 13-11  전화: 031-997-9294

기고= 글, 사진 이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