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섭 기자의 물바람숲] 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⑫ 울릉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나리분지의 전경. 울릉도 중턱에 펼쳐진 이 분지는 대규모 화산이 폭발한 뒤 화구가 무너져 내려 형성됐다. 수천년 전까지 이곳엔 푸른 물이 고인 칼데라 호수가 있었다. 오른쪽 구름이 드리운 봉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분화한 이중화산인 알봉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전망대에서 바라본 나리분지의 전경. 울릉도 중턱에 펼쳐진 이 분지는 대규모 화산이 폭발한 뒤 화구가 무너져 내려 형성됐다. 수천년 전까지 이곳엔 푸른 물이 고인 칼데라 호수가 있었다. 오른쪽 구름이 드리운 봉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분화한 이중화산인 알봉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의 갈라파고스 섬’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멀고 외딴 섬이어서만이 아니다. 서해와 남해의 많은 섬이 해수면이 낮았던 빙하기 동안 육지와 연결돼 있었지만 울릉도와 독도는 한 번도 대륙과 닿은 적이 없다. 대양에서 화산이 분출해 형성된 섬이기 때문이다.

19일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을 때 첫눈에 뜨인 것은 자생 향나무가 자라는 깎아지른 절벽과 뾰족한 봉우리들이었다. 깊은 산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울릉도는 해저에서 3000m 높이로 솟아오른 둘레가 30㎞에 이르는 큰 화산체이다. 울릉도 해수면은 그 2000m 높이에 걸쳐 있다. 도동항은 울릉도 화산의 허리께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울릉도 화산의 분화구는 정상인 성인봉(해발 987m)이 아니라 섬 중턱인 나리분지(해발 500m)에 놓여 있다. 성인봉을 비롯해 말잔등, 천두봉, 미륵봉, 형제봉, 송곳산 등 섬의 높은 봉우리들은 커다란 화구의 테두리였다. 백두산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천지처럼 칼데라 호수가 울릉도에도 있었던 걸까.

분화구는 정상인 성인봉이 아니라
섬 중턱 원형극장 같은 나리분지
야트막한 알봉은 이중화산의 증거

백두산 천지 같은 칼데라호는?
땅속 깊숙이 숨어
하루 2만톤씩 용출하는 식수원으로

신령수 남동쪽 계곡엔
희고 검은 부석 응회암 등과 함께
150~200m 두께로 차곡차곡

수면 아래 백두산 맞먹는 규모
수천만년 전 탄화목 다시 불붙듯
부글부글 살아있는 화산

명이 등 산채와 함께 옥수수밭

궁금증을 풀기 위해 20일 북면에서 나리분지로 향했다. 화구의 북쪽 테두리는 분화 과정에서 무너지는 바람에 나리분지는 북쪽으로 열린 원형극장 모양이다. 섬바디의 흰 꽃과 참나리의 붉은 꽃이 흐드러진 비탈을 올라 나리분지 전망대에 올랐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들판이 아늑해 보였다. 부지깽이(섬쑥부쟁이), 고비, 삼나물(눈개승마), 명이(산마늘) 등 산채와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이 일본까지 화산재를 날려보낸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불구덩이였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분지 북서쪽에는 야트막한 언덕인 알봉(538m)이 솟아 있다. 화구 안에서 마지막 분화를 한 이중화산이다. 알봉 위로 구름이 밀려들어 분지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이곳이 칼데라 호수였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행한 추창오 경북대 지질학과 연구교수(지질학)는 “울릉도 칼데라 호는 지름 2㎞의 호수 가운데 알봉이 수면 위로 삐죽 튀어나온 형태였을 것”이라며 “호도가 있는 미국 오리건주 크레이터 레이크 국립공원의 칼데라 호와 비슷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지 남서쪽 알봉 둘레길 옆에는 당시 호수 바닥에 쌓인 퇴적층이 드러난 작은 협곡이 있다. 진흙과 모래가 수평으로 가지런하게 쌓여 있고 얇은 부석층도 보였다. 화산암체를 이루는 조면암 암석 조각도 박혀 있었다. 추 교수는 “잔잔한 호수에 화산활동 산물이 조용하게 쌓인 흔적”이라며 “퇴적층에 큰 교란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알봉 분출 이후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적어도 수천년 전에는 울릉도에도 칼데라 호가 있었다는 얘기다.

나리분지에 쌓인 두터운 부석 층. 화산이 폭발적으로 분출할 때 형성된 공기구멍이 많은 가벼운 돌로 150~200m 두께로 쌓여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나리분지에 쌓인 두터운 부석 층. 화산이 폭발적으로 분출할 때 형성된 공기구멍이 많은 가벼운 돌로 150~200m 두께로 쌓여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규모 작고 물 잘 빠져 고이지 못해

그렇다면 백두산 천지와 달리 왜 나리분지에는 호수가 남아 있지 않을까. 울릉도의 화산활동을 연구해온 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나리분지의 규모가 크지 않아 모이는 강수량 자체가 작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단층이나 투수성 암석이 지하에 있어 물이 고이지 못하고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나리분지에는 물이 잘 빠지는 부석 등이 두껍게 쌓여 있다. 빗물은 치밀한 조면암을 만날 때까지 땅속 깊이 스며든다. 그렇다면 칼데라 호수는 사라진 게 아니라 땅속에 숨어 있는 셈이다. 마침내 그 물은 추산 용출소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칼데라 호숫물의 색깔은 용출소에서처럼 투명한 푸른빛이었을 것이다. 연중 수온과 수위 변화가 없이 하루 2만t씩 나오는 이 용출수는 울릉도의 주요한 식수원이다.

칼데라 호수는 화산이 대규모 폭발적 분화를 할 때 생긴다. 백두산을 비롯해 서기 79년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 1991년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이 그랬다. 큰 폭음과 함께 가스와 화산재 등이 기둥을 이뤄 성층권에 이른다. 다량의 마그마를 뿜어낸 뒤 화도가 무너져내려 화구 안에 함몰지가 생긴다. 여기에 물이 고이면 칼데라 호수가 된다.

폭발의 흔적을 찾아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향하는 등산로를 따라가다 신령수에서 남동쪽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희고 검은 부석이 조면암, 응회암 조각과 함께 드러난 절벽에 쌓여 있었다. 그 두께는 150~200m에 이른다. 마그마가 꾹 참았던 압력이 풀리면서 격렬한 폭발을 일으킬 때 급팽창한 마그마가 부석이 되어 날아간다. 옥수수를 튀길 때 ‘뻥~’ 소리가 나는 것처럼 걸쭉한 마그마 속에 든 수많은 공기방울이 일제히 터지면서 폭발하는 것이다. 탄산음료 병을 흔든 뒤 병을 땄을 때처럼, 부석에는 빠져나간 공기구멍이 많아 물에 뜰 정도로 가볍다. 나리 칼데라에도 호수 표면을 부석이 하얗게 덮고 물결 따라 넘실거렸을 것이다.

화산이 폭발할 때 불에 탄 나무가 숱이 된 탄화목.(위) 불을 붙이면 당시와 마찬가지로 타오른다. 가문비나무와 너도밤나무의 탄화목이 발견됐다. 곽윤섭 선임기자
화산이 폭발할 때 불에 탄 나무가 숱이 된 탄화목.(위) 불을 붙이면 당시와 마찬가지로 타오른다. 가문비나무와 너도밤나무의 탄화목이 발견됐다. 곽윤섭 선임기자

나리분지 알봉 근처 골짜기에 있는 옛 칼데라 호 퇴적층. 진흙과 모래 부석 조각 등이 얇고 가지런한 층을 이뤄 호수 바닥에 쌓인 증거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나리분지 알봉 근처 골짜기에 있는 옛 칼데라 호 퇴적층. 진흙과 모래 부석 조각 등이 얇고 가지런한 층을 이뤄 호수 바닥에 쌓인 증거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1만9000~5600년 전 사이 5차례 분화

부석과 화산재가 굳은 암석으로 들어찬 계곡은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연기만 없을 뿐 거대한 화산의 분화구에 가까이 접근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추 교수가 검은 물체를 집어 들었다. “탄화목입니다. 울릉도가 화산폭발을 일으켰을 때 불에 탄 나무의 숯이죠.” 탄화목에는 나이테도 선명했다. 불을 붙이니 수천년 만에 다시 타오른 나무의 숯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추 교수팀이 탄화목으로 확인한 나리분지의 분출 시기는 1만8800년 전과 그로부터 1만년쯤 뒤인 8400년 전, 그리고 5600년 전이다. 탄화목의 주인은 가문비나무와 너도밤나무로 나타났다. 가문비나무는 현재 울릉도에서 멸종했는데, 나이테로 보아 분화 때 263살 이상이었다.

울릉도는 1만9000~5600년 전 사이 적어도 5차례 분화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약 1만년 전 폭발적 분화는 규모가 커 칼데라 호를 형성했고 화산재가 동해를 건너 일본 오사카 남항, 비와 호 바닥 등에서 검출됐다.

손 교수는 “일반인은 물론 지질학계에서도 울릉도를 죽은 화산으로 취급했지만 사실은 최근 1만~2만년 사이 큰 규모의 분출 기록이 있는 살아 있는 화산인데다 수면 아래 숨어 있는 화산 규모가 백두산에 맞먹어 분출 가능성을 배제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