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펜싱,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오는 까닭

오완선 2016. 8. 4. 16:31


펜싱복은 방탄복의 소재인 케블라 섬유
마스크는 검이 뚫을 수 없는 스테인리스 스틸
검은 가볍고도 강도가 센 마레이징 강철
신아람 1초 사건으로 초시계 변경

     
‘오늘은 칼 대신 물총 싸움!’ 2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수촌 미디어투어가 열린 가운데 한국 여자 펜싱 선수들이 숙소 수영장에서 물놀이로 긴장을 풀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강철검으로 공격하고 방어하는 펜싱은 안전해야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실제로 펜싱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계기도 18세기 말 프랑스인 라 보에시에르가 검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할 수 있는 마스크를 고안하면서다. 그 결과 펜싱은 육상, 수영, 레슬링 등과 함께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의 최초 9개 정식종목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래도 펜싱은 여전히 위험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블라디미르 스미르노프(옛소련)는 1982년 경기 도중 사망했다. 상대 선수의 칼이 부러져 마스크를 뚫고 들어와 생긴 사고였다. 펜싱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국제펜싱연맹(FIE)은 펜싱의 복장과 장비에 대해 엄격하게 규제한다. 펜싱복의 소재를 방탄복의 소재인 케블라 섬유를 사용하거나, 그것과 비슷한 대체물로 만들라고 정해 놓았다. 어떤 소재로 만들어도 펜싱복은 어느 지점에서든 1600뉴턴의 힘(무게로 환산하면 163.3㎏)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아직까진 가벼우면서 강한 최첨단 소재가 케블라지만, 향후 더 뛰어난 첨단소재가 적용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이다.

특히 국제펜싱연맹이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장비는 마스크다. 머리와 얼굴을 보호하는 마스크는 강도와 탄성뿐 아니라 부식도 되지 않아야 하므로 강철의 화학 구성부터 강도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기준이 있다. 마스크에 사용되는 소재는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강이다. 특히 마스크에서 얼굴을 가리는 그물코는 구멍 크기 최대 2.1㎜, 철선 굵기 최소 지름 1㎜로 정해 놓았다.

펜싱검은 가벼우면서도 쉽게 부러지지 않아야 하지만, 펜싱복과 마스크를 뚫을 정도로 강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택한 소재가 마레이징강(maraging steel)이다. 사실 이 소재는 미국이 우주개발을 위해 개발했다. 마레이징강의 또 다른 특징이 섭씨 500도가 넘는 고온에서도 강도가 유지된다는 점이다. 로켓의 외장재와 제트엔진 부품으로 사용되는 고급 소재다.

검이 워낙 순간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다 보니, 정확하게 판정하기 위해서도 최첨단 기술이 도입됐다. 바로 검과 펜싱복 표면에 붙어 있는 압력센서다. 과거엔 공격의 성공 여부를 심판이 판정했지만, 이제는 이 압력센서가 자동으로 작동해 알려준다. 칼에 맞고도 안 맞았다고 우겨도 소용없고, 안 맞았는데도 점수를 뺏기는 일을 당할 염려도 없다. 이를 위해 펜싱 선수들은 고압선에 매달린 전철처럼 옷에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으나, 2012 런던올림픽부턴 무선센서로 대체됐다. 선수들의 몸에서 전선을 떼내자 움직임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새로 적용된 장비는 0.01초까지 계측이 가능한 초시계다. 이전까지는 1초 단위만 계측할 수 있는 초시계를 사용했다. 초시계를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최대 오심 논란을 낳았던 한국의 신아람 선수의 ‘1초 사건’이다. 여자 에페에 출전한 신아람은 준결승전에서 독일의 하이데만에게 마지막 1초를 남기고서 패했다. 신기한 일은 1초 안에 공격이 시작하고 멈추기를 네 번이나 반복했다는 점이다. 흔히 복싱, 레슬링, 태권도 등의 대결경기 종목에서는 심판이 공격을 시작하고 멈추기를 명령할 수 있는데, 경기시간은 시작과 멈춤 사이에만 흐른다. 펜싱에서는 ‘알레’(시작 구호)와 ‘알트’(멈춤 구호) 사이인데, 경기진행요원이 심판의 구호를 듣고서 손으로 초시계 단추를 눌렀기 때문에 시간을 잘못 계측하기가 쉬웠다. 여전히 초시계는 사람이 누르지만, 1초가 이상하리만치 흐르지 않는 일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