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혼자만 잘 먹고 잘 쌀 수 있나요

오완선 2016. 8. 4. 16:24



이번주 공지영 작가의 ‘시인의 밥상’(▶단식, 지극한 혼자의 시간)을 읽다가, 매직아이 보이듯 눈에 쏙 들어온 문장이 있었습니다. “우리 텃밭에 오이 농사는 올해 조금 되었는데 호박은 또 실패야. (중략) 하기는 호박을 잘 따먹었던 해는 겨우내 강아지 똥을 모아 삭혔다가 그 구덩이에 호박을 심은 때이기는 했다.”

푸성귀를 직접 길러 먹어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습니다. 몇년 전, 상자텃밭이나마 가꿀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하면서 꿈을 이루나 했습니다. 꽃집에서 사온 흙을 스티로폼 상자에 붓고, 상추 모종과 열무 씨앗을 뿌린 뒤 물을 줄 때의 설렘을, 며칠 뒤 이파리가 커지고 싹이 틀 때의 희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부푼 가슴에 구멍을 낸 건 ‘똥’이었습니다. 어느 저녁, 퇴근해 집에 갔는데 상자텃밭 근처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더군요. 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일까, 매의 눈으로 주변을 뒤졌습니다. 악, 이럴 수가. 여린 상추와 열무 싹이 파헤쳐진 자리에 누군가 싼 똥이 있는 겁니다. 처음엔 동네 꼬마들이 그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진범은 길고양이였습니다.

폭풍검색을 해보니, 고양이는 깔끔한 동물이라 흙이 있는 곳에 똥을 싸고 묻어두는 걸 좋아한다더군요. 또, 일단 한번 똥을 싼 곳은 자기 영역으로 여기고 계속 드나든다지 뭡니까. 말도 안 통하는 녀석을 붙잡아 따질 수도 없는데, 한번 제 상자텃밭과 똥을 튼 녀석은 계속해서 흔적을 남겨놓고 사라지곤 했습니다. 치워도 소용이 없으니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텃밭은 똥밭이 됐습니다. 채소들은 아예 자라지를 못하더군요. 똥도 썩어야 거름이 되는데 그러질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죠.

상자를 다 치워버리면서 ‘고양이 똥과의 전쟁’도 마침내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생명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요. 식물이 자라는 것도, 동물이 배설하는 것도, 인간이(특히 저 같은 ‘자연 무지렁이’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을요. 그저, 내 몸 하나 잘 먹고 잘 싸보겠다고 함부로 덤빌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말입니다.

조혜정 팀장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