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여행

1억5500만원씩 내고 온 VVIP… '한국인도 볼 수 없는' 멋과 맛 즐겼다

오완선 2017. 6. 4. 12:40



입력 : 2017.06.03 03:02

32명 3주간 전세계 돌며 美食여행… 2박3일간 한국 찾아

여객기 내부 모두 1등석
156석짜리 항공기 개조해 52명만 탈 수 있게 만들어
누구나 180도 누워잘 수 있어 스태프만 17명 탑승

'돈으로 못 사는 경험' 찾다
텃밭서 가꾼 재료로 요리하는 한끼코스 50만원짜리로 식사
식사 전엔 창덕궁 후원 들러 뒷마당 거닐며 다과 즐겨

사찰음식 만드는 법 배우고… 이천 양조장에서 점심도

서울 여행 마친 '큰손'들
"비원서 다과·산책 정말 근사…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이미지 크게보기
1인당 1억5500만원짜리 패키지 여행에 마련된 서울 창덕궁의 다과회 모습(왼쪽). 사진은 실제 관광객 대신 외국인 모델들이 따로 연출한 장면이다. VVIP 관광객들이 2박3일간 서울에 머무르기 위해 타고 온 포시즌스호텔 전용기는 52개 좌석이 모두 1등석이고 스태프 17명이 동승했다. / 송혜진 기자

"정말 근사하네요!" 토요일인 지난 27일 오후 6시, 초록빛 잔디가 양탄자처럼 펼쳐진 서울 창덕궁 비원(秘苑)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탄성을 내뱉었다. 널따란 뜰 한가운데에는 하얀 식탁보가 덮인 큼직한 탁자가 놓였다. 탁자 위엔 하늘하늘 노오란 꽃잎이 점점이 깔렸고, 잎사귀와 꽃잎 모양으로 찍어낸 녹차 양갱과 딸기 양갱, 앙증맞은 크기의 한과와 빈사과(갖가지 색을 물들인 강정), 손가락만 한 크기로 곱게 부쳐낸 김치전, 찻물에 탐스러운 연꽃잎을 통째 넣고 우려낸 연꽃차와 수삼과 우유를 섞은 수삼라테, 떡과 오미자 화채 등이 놓였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주인공이 입었던 짙은 초록빛의 궁녀 옷을 걸친 도우미 세 명이 "드셔 보시라"고 권하자 손님들 얼굴에 웃음이 번져나갔다. 손님 중 누군가가 이렇게 속삭였다. "이런 건 어디서도 못 봤네요(This is really new to me)!"

이날 창덕궁을 찾아온 이들은 1인당 1억5500만원씩 내고 포시즌스호텔의 전세기로 3주 동안 전 세계 곳곳을 돌며 미식을 맛보는 '컬리너리 디스커버리 투어(Culinary discovery tour)'에 참석하는 VVIP 관광객 32명이었다. 미국·캐나다와 유럽, 중동 등지에서 날아온 손님들이다. 이들은 지난 25일 호텔 측이 제공한 전용기를 타고 영국에서 출발, 26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했고, 27~29일 2박3일 동안 서울에서 한국의 멋과 맛을 즐겼다. 한국 일정을 마친 이들은 이달 14일까지 도쿄·홍콩·치앙마이·뭄바이·피렌체·리스본·코펜하겐·파리를 돌게 된다. 2014년부터 매년 이 VVIP 전세기 여행을 기획·총괄해온 포시즌스호텔 디렉터 하비에르 로레이로씨는 "그동안 이 여행의 첫 도시는 언제나 북미 지역이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아시아, 그것도 서울에서 일정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이 고객들에게 서울이라는 도시가 그야말로 숨겨진 보석(hidden gem) 같은 곳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고 했다.

서울 온 1억5500만원짜리 패키지 여행객들

지난 27일 오전 5시 인천공항에서 포시즌스호텔 서울 측은 이 '큰손'들이 타고 온 전용기를 공개했다. 156석짜리 항공기를 52명만 탈 수 있도록 개조한 것으로, 여객기 내부 모든 좌석이 1등석이었다. 최고급 크림색 가죽 시트로 의자를 감쌌고, 누구나 180도로 누워 잠들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들이 덮는 담요는 몽골에서 공수해온 최고급 캐시미어로 만들었고 베개 역시 최고급 거위 깃털을 채워 넣었다. 호텔 측은 고객 한 명 한 명을 위해 최고급 이탈리아 가죽으로 만든 손가방을 따로 제작했고, 앉는 자리마다 이탈리아 불가리 화장품을 채워 넣었다. 비행기에는 스태프가 총 17명 탑승한다. 승무원 8명, 조리장을 비롯한 조리담당 직원 4명, 엔지니어 1명과 담당 의사 1명, 부기장 2명과 기장 1명이 포함됐다. 기장과 부기장은 전투기를 몰아본 경력이 있거나 영국 여왕이 참석한 행사에서 공중 곡예를 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 중에서 뽑았다고 했다. 하비에르는 "고객의 안전과 편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이번 여행의 주제가 미식(gourmet)인 만큼, 이들이 비행기에서 먹는 기내식도 남다르다. 착륙지에 맞춰 그에 어울리는 음식을 내놓는다. 서울로 날아오는 동안에는 비빔밥과 한과를, 태국 치앙마이에 도착할 때는 태국식 볶음국수인 팟타이나 볶음밥인 나시고랭을 내놓는 식이다. 메뉴에 없는 음식이나 술, 다과도 당연히 주문할 수 있다. 전용기 음식을 총괄하는 셰프 캐리 씨어씨는 "이 손님들은 미쉐린 가이드에 실린 최고급 레스토랑을 일상처럼 드나드는 사람들이라 오히려 고급 코스 요리보다 땅콩버터 샌드위치나 감자튀김, 미트 소스 스파게티처럼 간단한 음식을 찾을 때가 많다. 고객이 언제 무엇을 주문할지 모르니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고객들은 또한 매일 먹은 음식의 조리법이 꼼꼼히 적힌 카드가 채워진 나무 상자를 선물로 받게 된다.

지난 26일 서울에 도착한 이들은 포시즌스호텔 서울에서 하루를 쉰 뒤 다음 날부터 서울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 경기도 파주 제3땅굴과 DMZ, 경기도 이천 광주요 도자기 스튜디오 등을 돌며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색 풍경을 즐겼다.

"돈으로는 못 사는 경험을 찾아라"

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창덕궁에서 VVIP들이 마신 연꽃차. 큼직한 꽃송이가 찻물 안에서 만개했다. / 송혜진 기자

이 손님들은 여행할 때 돈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대신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을 따진다고 한다. 혼자 다닐 때는 쉽게 할 수 없는 체험이 가능한 여행이라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는 뜻이다. 포시즌스호텔이 준비한 프로그램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에 방점을 찍고 있다. 가령 이들은 손님들을 위해 홍콩에서 미쉐린 스타 셰프와 함께 딤섬을 만들고, 태국 치앙마이에서는 정글 한가운데 식탁을 차려놓고 야생동물들을 바라보며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선 다 같이 송로 버섯 채집을 떠나고, 일본 도쿄에서는 자리가 9석밖에 없는 스시 식당 '제로(Zero)'에서 점심을 먹도록 했다. 이곳은 스시 25점에 500달러나 받는 곳으로, 한번 들어오면 20분간만 식사할 수 있다. 마지막 도착지인 파리에서는 호텔 '조지 V' 지하실에 숨겨진 와인 창고를 열기로 했다. 캐리 씨어씨는 "몇 년 동안 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녀보니, 좌석이 별로 없어 조를 짜서 돌아가면서 먹어야 하는 식당, 평소 몇 달씩 기다려도 예약이 안 되는 곳일수록 고객들이 열광하더라"고 했다. 올해 미식 여행의 모든 일정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일컬어지는 덴마크 '노마'의 수석 요리사 르네 레드제피와 그의 팀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도 이들 팀이 '아무나 가볼 수 없는 곳'을 찾는 데 특히 공을 들인 것은 물론이다. 가령 지난 27일 이 32명의 부자 손님이 저녁을 먹은 곳은 한 끼 코스에 50만원씩 받는 것으로 알려진 요리사 이종국씨의 성북동 자택이다. 그의 집에서 직접 그가 텃밭에서 가꾼 재료로 갓 요리한 음식을 맛본 것이다. 이들이 식사 직전 들른 곳은 또한 창덕궁 후원이었다. 오후 5시 30분이면 문을 닫는 창덕궁을 이들을 위해 오후 7시까지 열었다. 손님들은 우리나라의 고즈넉한 궁궐 뒷마당을 천천히 거닐며 새소리를 듣고 흙을 밟았고, 연회 장소로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이곳에서 다과를 즐겼다. 다과를 준비한 주니스푸드앤데코 강홍준 대표는 "본격적인 만찬을 즐기기 직전 손님들이 잠깐 궁에 들러 산책하는 만큼, 입맛을 돋울 수 있는 오미자 화채나 연꽃차, 빈사과 같은 가벼운 다과로 상차림을 완성했다"고 했다.

지난 28일에는 북한산 자락에 있는 진관사에서 다 같이 불교 사찰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고, 경기 이천에 있는 한 양조장에서 점심을 먹기도 했다. 포시즌스호텔 서울 윤소윤 팀장은 "비원 같은 장소에서 조용히 산책을 즐기는 일정을 손님들이 특히 좋아했다"고 했다.

관광공사부터 문화재청까지 협업

이 손님들이 무사히 서울에서 2박3일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기까지는 수많은 이의 협업이 필요했다. 이들을 위해선 공항 입출국 수속, 짐 부치기 등을 모두 전용기에 타기 전 끝마쳐줘야 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와 인천국제공항공사 직원들이 긴밀하게 협조해 이들의 입출국 수속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었다. 이들이 창덕궁에서 다과를 즐길 수 있었던 건 1200만원 예산을 급히 책정해 환영 행사를 준비한 한국관광공사 덕이다. 한국관광공사 설경희 음식크루즈 팀장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이런 고급 투어를 유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발 빠르게 행사를 준비했다"고 했다. 한국관광공사 정창수 사장은 직접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 창덕궁 입구에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궁궐 뒤뜰의 문을 열어준 건 문화재청이다. 손님들이 우리 궁궐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출입을 허용해줬고, 만찬이 끝난 뒤 문화재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정리정돈을 하는 모든 허드렛일까지 맡아줬다. 하비에르 로레이로씨는 "손님들이 서울 여행을 마치고 나서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It worths every penny)'고 말할 정도로 만족해 했다"면서 "이들은 머지않아 또다시 서울을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2/20170602018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