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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신문화의 산실

오완선 2018. 9. 21. 11:52


입력 : 2018.09.20 10:22 [587호] 20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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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등재된 산기슭 둘레길·산허리 오쥬도·정상 순례길 등 3구역 나눠 걸어

후지산富士山(3,776m)은 두 말 할 필요 없는 일본 최고의 영산靈山이다. 일본인들이 후지산을 숭배하는 근거는 동아시아의 산악숭배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산악숭배는 한·중·일 전통사상 중의 하나다. 모든 산에는 신神이 있다는 사상이다. 일본의 신화神話에서는 후지산의 여신과 하늘의 신의 자손이 일본의 천황가라고 되어 있다. 후지산은 부처님과 신이 사는 산으로 옛부터 숭배되어 왔다. 후지산 신앙이 가장 절정에 달한것은 에도시대(1603~1868)이다. 일본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산신이라기보다는 신도神道라고 한다.

후지산 산악숭배사상은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지만 대략 8세기부터 어렴풋이 전하다 12세기부터는 명확해진다.

옛날 후지산에서 동물들을 몰아 폭포에서 진지를 치고 잡았던 진마노다츠 폭포. 후지산 정상에서 내린 비가 20년 뒤에 이 폭포로 쏟아진다고 한다.
옛날 후지산에서 동물들을 몰아 폭포에서 진지를 치고 잡았던 진마노다츠 폭포. 후지산 정상에서 내린 비가 20년 뒤에 이 폭포로 쏟아진다고 한다. / 사진 주민욱 객원기자

산악숭배신앙으로 정상까지 금욕적 수행

후지산 아래 일주문 같은 신도문을 세워, 그곳에서 후지산 정상으로 향하는 금욕적 불교 수행 행렬을 매년 정기적으로 열었다는 기록이 12세기부터 등장한다. 산기슭 주위에 지금도 남아 있는 센겐진쟈浅間神社는 후지산 숭배신앙의 대표적 유적이다.

센겐진쟈는 865년에 처음 생겼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는 야마나시山梨현에만 35군데의 센겐진쟈가 있는 것으로 전한다. 센겐진쟈가 받들고 있는 신은 고노하나 사큐야히메木花開耶姬라고 불리는 여신女神이다. 꽃이 핀 것처럼 아름다운 신이란 뜻이다. 약 300년 전 에도시대에 현재 여신의 이름으로 정착됐다고 한다. 

1,000여 년 전 헤이안平安(794~1185년)시대 <후지산기富士山記>라는 책에는 후지산 정상에서 두 명의 선녀가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봤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신의 이름은 아사마노 오오카미浅間大神라고 불렸다.

또 가마쿠라鎌倉(1185~1333년)시대에 출판된 <후지연기富士緣起>에는 후지산 여신이 푸른 기모노를 입고 보물 구슬을 들고 흰구름을 타고 구름 위에 나타났다는 기록도 있다. 이 시기에는 센겐 다이보사츠라는 여신으로 불렸다. 700~800년 전에는 다케토리 모노가타리竹取物語의 카구야 히메かぐや姫가 후지산의 여신이라고 한 시기도 있었다.

이와 같이 후지산 여신은 시대마다 이름과 모습이 조금씩 변화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중일 산악숭배사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신도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현재 후지산 여신 고노하나 사큐야히메의 시종은 원숭이다. 원숭이는 일본의 대표적 동물 중의 하나이며, 일본원숭이라는 단일 종이 있을 정도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전설도 많이 전한다. B.C 360년경 원숭이해에 후지산이 생겨났다는 전설도 있다. 그래서 원숭이는 후지산과 밀접한 동물로, 원숭이해에 후지산을 등산하면 많은 복을 받는다고 전해진다.

후지산의 장엄한 산세와 간헐적인 화산활동은 주민들로 하여금 경외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섬으로서 자연재해가 많았던 일본에서는 특히 심했다. 이같은 경외감은 신도와 불교의 연관된 종교의식으로 정착해 갔다. 자연스레 산 아래에서 산 정상까지 경배를 위한 등산로, 산기슭에 머물기 위해 조성한 신사 및 오두막 등의 자취가 남아 있다.

순례자들은 산 정상에 있는 여신 아사마노 오오카미를 숭배하기 위해서 등산을 시작했다. 산 정상에서 순례자들은 화구벽을 따라 도는 오하치메구리御鉢巡り라는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후지산 순례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이들의 편의를 지원하는 기관들도 덩달아 생겨났다. 등산로가 정비되고, 산장이 들어서고, 산사나 절이 건립됐다.

원시 숲이 바다같이 펼쳐져 아오키가하라 쥬카이라 불린다. 에도에서 오사카로 가는 옛길과 중복되는 후지산둘레길이다.
원시 숲이 바다같이 펼쳐져 아오키가하라 쥬카이라 불린다. 에도에서 오사카로 가는 옛길과 중복되는 후지산둘레길이다.
후지산 오합목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과 오쥬도로 나뉘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후지산 오합목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과 오쥬도로 나뉘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후지산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누워 있는 나무들이 많다. 자작나무의 일종으로 2,000m 이상에 서식하는 고산 자작나무에 속하는 다케감바가 등산로 주변에 누워서 자라고 있다.
후지산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누워 있는 나무들이 많다. 자작나무의 일종으로 2,000m 이상에 서식하는 고산 자작나무에 속하는 다케감바가 등산로 주변에 누워서 자라고 있다.

호수 한 바퀴 도는 핫카이메구리도 자리 잡아

후지산 주변의 8개의 호수를 도는 ‘핫카이메구리’는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 잡아갔다. 순례자들은 초원으로 덮인 산기슭, 숲이 있는 산허리 지역, 그리고 불에 타거나 민둥한 산 정상 지역의 3개 구역을 거쳐 등산했다. 3개 구역의 순례는 지금도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인들은 후지산에 대해 영적일 정도로 깊은 산악신앙을 갖고 있다. 동물과 연결된 전설들도 숱하게 전한다. 이러한 지속가능한 일본의 정신문화유산은 2013년 후지산을 포함한 순례자를 위한 등산로, 분화구 신사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등재됐다.  

후지산 지명의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한다. 먼저, 한자로 풀면 ‘풍성한 선비의 산’이란 뜻이다. 영적인 산으로서의 의미와 뭔가 연결이 제대로 안 되는 느낌이다. 홋카이도와 쿠릴열도에 사는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의 언어로 ‘분화하다’라는 뜻의 후치ふち가 후지로 음이 변했다는 설도 있다. 가장 유력해 보인다. 한국어의 ‘불’에서 전래했다는 설도 있다. 아직 정확한 유래에 대한 정설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후지산을 열심히 오르내린다. 후지산 연간 방문객은 300만 명설, 500만 명설 등 다양하지만 300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우리의 지리산 정도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지리산에 산악신앙을 조금 엿볼 수 있지만 일본 후지산의 산악신앙과는 견줄 수준은 못 된다.

몇 년 전 중국에서 좋아하는 산 톱10을 조사한 적이 있다. 당연히 중국의 오악과 황산이 상위 랭크됐고, 알프스와 히말라야 등에 이어 후지산이 10위에 오를 정도로 중국인도 많이 찾는다. 실제로 차를 타고 올라가다 하차 지점인 오합목에는 일본말보다 중국말이 더 많이 들릴 정도였다.

후지산 방문객은 300만 명 남짓 되지만 매년 7월 1일부터 9월 10일까지만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정상 등산객은 지난해(2017년) 28만2,000여 명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후지산 관광객이라는 얘기다.

일본인들이 3개 구역을 나눠 등산하는 전통은 많이 퇴색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남아 있다. 후지산둘레길(후지산드림워킹) 순례가 시작된 후 10년간 약 8만명 된다. 둘레길 순례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N TRAVEL TOKYO’ 조수희 대표의 초청으로 후지산둘레길과 숲이 있는 산허리 구역인 오합목에서부터 한 바퀴 도는 오쥬도 트레일을 답사했다. 특히 오쥬도 트레일은 일본 쇼와昭和 천왕이 걸은 뒤 후지산 경관과 길에 너무 감동해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전한다. 옛날엔 한 바퀴 순례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화산바위가 가끔 떨어져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오쥬도에 들어선 지 얼마 안 가 일본 천왕이 걸었다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오쥬도에 들어선 지 얼마 안 가 일본 천왕이 걸었다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후지산둘레길]

후지산 정상(3,776m)은 만년설로 뒤덮여 있는데 동서로 39km, 남북으로 37km, 기저의 둘레가 125km, 기저의 면적이 900~1,200km2, 추정체적 1,400km3 정도 된다. 정상 분화구 둘레는 약 3km, 산허리 오쥬도 둘레는 25km, 산기슭으로 난 후지산둘레길은 153km다.

후지산둘레길로만 본다면 우리의 지리산둘레길보다 짧다. 실제로 후지산은 홀로 우뚝 솟아 있고, 주변에 기생화산이 있을 뿐 그리 넓은 면적은 아니다. 후지산둘레길 153km를 12개 코스, 또는 16개 코스로 나눴다. 일부는 이를 18개 코스 217km라고도 한다. 한 구간 평균 10km 남짓 되는 거리라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다.

후지산둘레길은 흔히 후지산 분화구로 형성된 가와구치호河口湖에서 시작해서 후지산을 중심에 놓고 시계 방향으로 일주한다. 둘레길이란 게 그렇듯이 편한 코스를 정해 이동하면 된다. 흔히 다이아몬드 후지산(후지산 일몰이 산정에 앉아 있을 때 호수에 그대로 비친 모습이 마치 다이아몬드 같다고 해서 붙인 명칭), 즉 거꾸로 비친 후지산과 다이아몬드 후지로 유명한 다누키호 코스와 1,000엔 지폐에 인쇄된 모토스코호수 구간 등을 대표적으로 추천한다. 일본 NORTH FOOT TREK GUIDES 대표 이케가와 토시오池川利雄가 안내했다.

이케가와씨는 “후지산둘레길은 후지산 산기슭 멀리서 정상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기 때문에 후지산 경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후지산둘레길 동쪽은 화산지대로 자위대가 있으며, 서쪽은 평원지대로 유일한 인공호수 다누키호가 있다. 남쪽은 화산이 분출해서 바다로 흘러갔으며 마을 따라 걷는 길이며, 북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존돼 있으며 산악신앙이 살아 있는 곳”이라고 총괄적으로 설명했다.

출발 지점은 진마노다츠陣馬の龍. 옛날 군사들이 후지산에서 동물들을 몰아서 잡은 진지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폭포 옆에 아늑한 공간이 있어 집단이 머물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후지산 오쥬도는 원색의 대비가 확연히 드러난다.
후지산 오쥬도는 원색의 대비가 확연히 드러난다. / 사진 N트레블도쿄 제공
후지산 육합목에서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위에 얼핏 보이는 칠합목 산장에서 하루 쉬고 다음 날 후지산 정상에 오른다.
후지산 육합목에서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위에 얼핏 보이는 칠합목 산장에서 하루 쉬고 다음 날 후지산 정상에 오른다. / 사진 N트레블도쿄 제공
다누키호수에서 촬영한 환상적인 후지산 트리플다이아몬드의 모습. 후지산이 정말 다이아몬드같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다누키호수에서 촬영한 환상적인 후지산 트리플다이아몬드의 모습. 후지산이 정말 다이아몬드같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 / 사진 N트레블도쿄 제공

멀리서 후지산 경관 보며 걷고 유적도 즐겨

이케가와씨는 폭포를 가리키며 “후지산은 현무암 지대라 산에서 비가 내리면 현무암의 여러 층을 거쳐 20년 뒤에 이곳 폭포로 물이 흘러내린다”고 말한다. 흐르는 물을 바가지에 받아 그대로 마신다. 따라 마셔보니 물맛이 상큼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누키호수田貫湖가 나온다. 후지산 둘레엔 총 6개의 호수가 있다. 남쪽엔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어 호수가 없고 동서북쪽에 전부 분포해 있다. 그중 5개는 자연호수이고, 1개는 인공호수이다. 그 인공호수가 바로 다누키호수이면서 유일하게 정방향 서쪽에 있다. 이는 태평양에서 후지산 정상으로 떠오르는 일출을 찍을 수 있다는 말이다.

매년 4월 20일과 8월 20일 일출이 후지산 산정에 가장 가까이 다가온다고 한다. 그 모습이 호수에 거꾸로 비쳐 다이아몬드같이 빛을 발한다고 해서 ‘다이아몬드 후지산’으로 유명하다. 이를 렌즈에 담기 위해 수많은 출사가들이 호수 주변에 자리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호수 둘레는 4km 정도 되며, 주변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다이아몬드 일출을 담기 위한 경쟁을 해소하기 위해 호수 바로 옆에 아담한 호텔을 건립했다. 6개월 전에 예약을 개시하는데 시작과 동시에 매진된다고 한다.

일본인들에게 일출은 특히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들의 국기도 그렇지만 욱일승천旭日昇天이라는 말도 일출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생명의 근원’인 일출 숭배도 동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전통 중의 하나다.

바로 옆 코다누키습원小田貫湖濕原은 해발 700m 고지대로, 후지산 산록에 있는 유일한 습원이다. 습원에는 특유의 식생과 20종류 이상의 잠자리, 70종 이상의 나비가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습원 중앙까지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나무데크 보도가 설치되어 습원 생태계를 걸으며 감상할 수 있다.

다누키호수 북쪽으로 모토스코本栖湖가 있다. 후지산 분화로 형성된 5개 자연호수 중 하나로 해발 900m에 위치해 수심이 무려 120m가 넘는다고 한다. 후지 호수 중에 가장 깊다.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아오키가하라 쥬카이青木ヶ原樹海로 이동한다.

후지산 주변에 화산 분화구가 90여 개 된다. 그중에 풍혈이 가장 많은 곳이 아오키가하라 쥬카이. 숲에는 도카이 자연보도가 정비되어 있고, 후가쿠 바람동굴, 나루사와 얼음동굴 등을 산책하면서 볼 수 있다. 도카이 자연보도는 에도에서 오사카까지 연결된 1,700km의 옛길로 후지산둘레길 3분의 1가량이 도카이 자연보도와 중복된다. 아오키가하라 쥬카이는 1150년 전 후지산 북서쪽에서 발생한 대분화로 흘러내린 용암대지 위에 이끼, 풀, 키작은 나무가 서식하고 10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

풍혈로 인해 항상 습하다. 따라서 많은 이끼들이 서식한다. 전 세계에 이끼류가 2만여 종 있다고 한다. 일본에는 2,000여 종이 서식하는데, 그중 1,000여 종이 이곳에 서식한다. 3대 수종은 소나무, 히노키, 전나무이며, 전부 침엽수다. 대표 동물은 박쥐가 가장 많고, 두 번째로는 쥐가 많다고 한다. 다람쥐도 조금 있다고 한다. 독성이 강한 식물도 많아 이곳에서는 절대 식물을 만지지 말라고 이케가와가 지적한다. 한마디로 음침한 곳이다. 반면 연중 아름다운 숲이 바다처럼 보인다고 해서 수해로 불린다. 특히 이케가와씨는 “겨울 눈이 내렸을 때 설백의 세계에 침엽수의 상록수와 어우러진 모습은 환상적”이라고 말했다.

둘레길 마지막 코스로 고요다이紅葉臺에서 산코다이三湖臺까지 약 3km를 걷기로 한다. 고요다이는 이름 그대로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10월에서 11월 중순까지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고 안내판에 소개하고 있다. 실제 들어서는 순간 당단풍과 참나무 등 전부 활엽수 일색이다. 다른 곳과는 또 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고요다이가 해발 1,160m. 이미 상당한 고도에 올라온 셈이다. 산코다이는 해발 1,202m. 50m도 채 안 되는 높이지만 짧은 거리를 단 시간에 올라가려니 힘이 든다.

흙은 화산토로 미끄러울 정도로 매우 푹신하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서양인들을 만났다. 남녀도 있고, 가족도 있다.

이윽고 산코다이 정상에 도착했다. 산코다이는 후지산 주변 3개의 호수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명명됐다. 실제로는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바로 앞 사이코西湖만 제대로 보인다. 사이코도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희미하게 보인다.

어쨌든 후지산둘레길은 한적한 숲길을 걷기도 하고, 호수 주변 마을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후지산 역사가 서린 곳을 걷기도 하고, 우뚝 솟은 후지산 정상을 보면서 걷기도 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후지산의 장엄한 모습을 보며 걷기도 하는 매력적인 길이다. 우리 지리산둘레길과는 또 다른 이색적인 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꼭 한 번 가볼 만한 길이다. 강추!

후지산 정상에 걸린 일출이 붉은 빛을 발하고 있다.
후지산 정상에 걸린 일출이 붉은 빛을 발하고 있다. / 사진 N트레블도쿄 제공
후지산둘레길 고요다이길로 올라서고 있다.
후지산둘레길 고요다이길로 올라서고 있다.
고요다이에서 산코다이로 가는 길은 전형적인 흙길로 푹신하다. 외국인이 산악자전거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
고요다이에서 산코다이로 가는 길은 전형적인 흙길로 푹신하다. 외국인이 산악자전거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

[오쥬도]

후지산 정상으로 가든지, 관광을 하든지 간에 모든 버스는 오합목에 주차한다. 오합목은 7, 8월 두 달 간은 인파로 붐빈다. ‘정말 이곳이 일본 맞나’ 할 정도로 중국인들이 많다. 오합목이 해발 2,300m가량 된다. 고도에 특히 민감한 사람은 살짝 고소증을 느낄 수 있는 위치다.

이 오합목에는 정상으로 가는 순례길과 등산로, 오쥬도御中道 등 다양한 트레일이 있다. 오쥬도는 입구에 오니와御庭·오쿠니와奧庭라는 안내판이 크게 세워져 있다. 오니와정원은 표고 2,400m 부근의 삼림한계지점에 후지산 화구열 및 키가 작은 적송, 측백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서식한다. 오쿠니와정원도 그 속에 있는 정원으로, 산책길이 잘 정비되어 침엽수와 어우러진 활엽수로 가을 단풍이 절경이다. 일본인들도 잘 모른다고 한다.

오쥬도 25km 개념도.

후지산에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었다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감탄부터 나온다. “후지산에 이렇게 아름다운 트레일이 있었다니!” 비밀의 정원에 들어선 느낌이다. 푸르른 일본잎갈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그늘을 드리운다. 몇 발자국 뒤에 나오는 안내판에서 오쥬도의 역사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후지산 산허리를 도는 오쥬도는 오합목에서 출발해 2,300~2,600m까지 오르내리며 원래 25km에 달했다. 현재는 오니와 입구까지 약 3km만 운영되고 있다. 후지산 수목한계선에 위치한 오쥬도 트레일은 후지산의 장대한 파노라마와 특징적인 자연경관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관목에서 수목까지 다양한 식생을 즐길 수 있다. 나아가 일몰까지 감상할 수 있는 위치다. 후지코라 불리는 후지산 산악숭배자들이 산허리를 한 바퀴 도는 전통은 17세기부터 대중적으로 확산됐으며, 오쥬도는 그 순례길의 전통으로 현재까지 일부가 남아 있다.’

산허리를 한 바퀴 도는 순례의식이 중단된 건 수목한계선 위에서 흙과 돌이 쓸어내려오는 위험 때문이다. 특히 눈이 녹는 4월에는 산사태가 많이 발생한다. 수목한계선 위로는 나무가 없으니 눈이 녹을 때 즈음이면 정상 부근 돌과 흙이 쉽게 쓸어내린다고 한다.

곧이어 일본 쇼와 천왕이 1957년 다녀갔다는 큰 기념비가 보인다. 그를 기리기 위해 길이 매우 잘 조성돼 있다. 화산토 위에서 자라는 나무들과 고도로 인한 수목한계선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기도 해 신기하다. 무성한 나무 위로 높낮이에 별로 차이 나지도 않은데 나무들이 전혀 자라지 않은 해발이 바로 위에 있다. 자연 경관과 후지산의 변화의 역사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가이드 와다나베씨는 “후지산을 제대로 알려면 오쥬도 길을 걸어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 느낌이 든다.

오쥬도 길은 원래 많은 순례자들이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후지산 정상까지 스바루 등산로 등 4개의 등산로가 조성되면서 전통적인 순례길인 오쥬도는 점차 잊혀져 갔다고 한다.

다양한 식생 중에 빨간꽃을 피운 관목이 눈에 특히 띈다. 이타도리란 식물이다. 진통완화제로 사용된다고 한다. 비밀의 정원 같은 숲 속을 걷다 가끔 나무가 전혀 없는 수목한계선으로 올라가 화산지대를 걷기도 한다. 이때 후지산 정상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산 정상 설산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오쥬도 트레일은 원색의 대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화산지대가 갖는 검은색과 하늘이 보여 주는 푸른색, 숲이 나타내는 녹색의 조화가 한순간에 나타난다. 걷기에 더없이 좋을 뿐 아니라 후지산 화산과 식생의 역사도 얼핏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다양한 모습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예술가들은 후지산을 보며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이러한 작품들이 서양으로 건너가 후지산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재 후지산 여신으로 통하는 고노하나 사큐야히메. 일본 우키오에의 대가 카츠시카 호쿠사이가 그렸다.
현재 후지산 여신으로 통하는 고노하나 사큐야히메. 일본 우키오에의 대가 카츠시카 호쿠사이가 그렸다.

후지산 가이드

후지산 정상 기온은 1월 평균 영하 18.5℃, 8월 평균 6℃다. 후지산 역대 최저 기온은 1981년 2월에 관측된 영하 38℃. 등산이 허용되는 7, 8월에 해발 2,500m 남짓 되는 칠합목이나 팔합목에서 숙박하는 등산객들이 많다. 7, 8월 여름의 칠합목의 밤 기운은 평균 12~14℃ 이며 일출을 보는 새벽에는 10℃ 이하로 내려가며 후지산 정상은 풍속 7m로 바람이 세어서 체감온도는 마이너스로 느껴지므로 정상에 오르고자 하면 플리스 소재와 가벼운 다운의 옷, 니트 모자, 따뜻한 장갑등을 준비해야 한다.

후지산 분화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81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마지막 1707년까지 총 11번의 분화가 있었다. 따라서 후지산은 휴화산이 아닌 잠시 멈춘 화산이다. 

후지산둘레길·오쥬도·정상 순례길 여행 문의 월간<산>여행팀 02-724-6701 또는 010-4252-5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