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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오른 통도사 등 7곳
고즈넉한 천년의 안식처로 떠나자
'종이 봉황'이 내려앉았다는 봉정사, 대웅전에 佛像 없는 통도사…
아는 만큼 보이는 한국美의 정수
지난 6월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가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절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조계종 관계자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아 찾는 이 적었던 봉정사가 특히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했다.
지난 3일 찾은 부석사 무량수전 앞은 금요일 저녁임에도 관광객으로 붐볐다. 친구와 함께 불타는 금요일 '불금' 대신 '불금(佛金)'을 보내러 왔다는 대학원생 권지아(28)씨는 "역사학을 전공한 친구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대해 알려준다고 해 따라왔다"며 "그냥 나무 기둥인 것 같은데 친구에게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아름다워 보인다"고 했다.종교에 상관없이 절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마음의 안식처였다. 100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산사는 한국의 역사와 아름다움이 함축된 곳. 그 배경을 알고 나면 사찰이 주는 고즈넉함이 더 깊어진다. 이미 가 본 절도 달라 보이는, 처음 간다면 놓치지 말고 관찰해야 할 산사의 포인트를 소개한다.
유네스코는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일곱 절을 ‘산사(山寺)’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산사는 말 그대로 산에 있는 절. 전 세계에 많은 절이 있지만, 한국처럼 산에 사찰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다른 나라는 스님이 탁발하거나 집과 절을 오가는 경우가 많아 도심 주변에 절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한국 산사의 가치를 유네스코가 높게 평가한 이유다.
한국에 전통 사찰로 등록된 절은 약 1000개다. 널리 알려진 다른 사찰도 많은데 일곱 곳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름을 올린 이유도 궁금하다. 산사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는 ‘법에 규정된 전통 사찰’ ‘산지에 위치’ ‘국가 지정문화재 보유’ ‘7~9세기 창건’ ‘사찰 관련 역사적 자료의 신빙성’ ‘원 지형 보존’ ‘승려 교육기관 운영’이라는 기준에 모두 들어맞는 곳이 선정된 일곱 사찰이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전남 순천의 송광사 역시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깊은 절이지만 7~9세기에는 사찰 규모가 100여 칸에 지나지 않았고 승려도 30~40명 수준이었기 때문에 한국 불교 초기의 역사성을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불자가 아닌, 절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일곱 사찰로 여행을 떠나기 전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산사의 공통적인 구조다. 모두 조선 시대 때 중건돼 사찰의 구조가 정형화된 모습을 하고 있다.
절 입구에 도착하면 절의 출입문 격인 일주문이 나온다. 그 문을 지나면 사천왕이 지키는 천왕문이 등장한다. 마지막이 사찰의 중심으로 가는 불이문이다. 이어 탑과 몇 곳의 전각이 더 배치돼 있고 너른 마당 계단 위에 절의 핵심인 대웅전이 있다. 이 구조가 조계종이 정한 ‘산지 가람’의 주요 요건이다.
구조는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찰마다 색깔이 각양각색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산사에 들렀을 때 꼭 빼먹지 않고 봐야 할 곳을 알아봤다.
봉황은 왜 이곳을 골랐을까. 경북 안동 서후면에 있는 봉정사(鳳停寺)는 말 그대로 ‘봉황이 머무른 곳’이란 뜻이다. 672년 능인대사가 천등산에 절을 짓기로 결심했다. 절터를 찾기 위해 종이 봉황을 접어 하늘로 날렸는데, 내려앉은 곳이 지금 봉정사 자리다. 대웅전 앞에서 산세를 둘러보면 봉황이 쉬고 갈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절 중 가장 덜 알려졌던 곳이다. 절 규모가 작아 전각의 수도 다른 곳에 비해 적다. 유네스코는 봉정사의 규모가 너무 작다며 세계문화유산 등재 보류 권고를 내린 적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작은 규모가 봉정사의 고즈넉한 맛을 더한다.
봉정사는 ‘한국의 건축 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고려 시대 때 지어진 극락전(국보 제15호)이 있다. 한국에 남은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인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통일신라의 주심포 양식을 따른다.
대웅전(국보 제311호)은 기둥 위는 물론 기둥 사이에도 공포가 있는 다포 양식이다.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된다. 대웅전에는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툇마루도 있다. 입구인 만세루에 있는 태극 문양과 함께 절에 스민 조선 시대 유교의 흔적이다. 1999년 방한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보고 싶다며 들른 곳으로, 작지만 한국의 역사가 함축된 절이다.
부석사(浮石寺)에 가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한국 절은 대개 아늑한 산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경북 영주 부석면의 부석사는 가파른 산등성이에 기다랗게 놓였다. 덕분에 무량수전까지 올라가는 내내 뒤를 돌아보게 된다. 부석사 입구인 천왕문에서 무량수전까지 이어진 가파른 108계단을 오르면서도 숨이 차지 않는 이유다.
압도적인 경관에 빠져 산을 오르다 보면 그 끝에 ‘無量壽殿(무량수전)’ 네 글자가 세로 두 줄로 적힌 현판이 나타난다. 고려 공민왕의 친필로 알려졌다. 무량수전 기둥은 아래와 위는 좁지만 중간이 볼록해 항아리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 이를 배흘림기둥이라고 하는데 구조적으로 편안해 보인다.
무량수전 안에는 진흙으로 빚은 특별한 불상이 있다. 소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45호)이다. 대개 전각 문을 열고 들어서면 불상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무량수전의 이 불상은 측면을 바라본다. 통일신라 시대 문무왕의 명을 받은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며 동해를 수호하기 위해 동쪽을 바라보게 한 것 아니냐는 설이 유력하다.
부석사에서 차로 달리면 1시간 거리에 봉정사가 있다. 압도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부석사와 고즈넉한 봉정사를 모두 찾아 비교해보는 것도 방법.
경남 양산 하북면 통도사(通度寺) 입구에는 수백 년 된 금강송 수천 그루가 있다. 그 아래를 거닐면 바람이 춤을 추고 서늘한 소나무가 반긴다. 그래서 이 길의 이름은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
통도사는 일주문부터 대웅전에 이르는 길이 평탄하다. 마치 평지에 있는 사찰이라는 착각이 들지만, 고개를 들어보면 높게 솟은 영취산이 굽어보고 있어 기분이 오묘하다. 영취산은 고대 인도 부처가 설법한 산이다. 통도사 뒤편 산이 마치 인도 영취산과 닮아 영취산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통도사라는 이름은 ‘산의 모양이 석가모니가 직접 불법을 설한 인도 영취산과 통한다’는 뜻이라는 설이 있다.
통도사의 가장 큰 특징은 대웅전에 불상이 없다는 것이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불상을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건물 뒤쪽에 있는 금강계단(국보 제290호)에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덕분에 이곳은 모든 불교 신도의 성지. 그래서 통도사라는 이름이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전남 순천 승주읍 선암사(仙巖寺)는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다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선암사 향하는 길 계곡 위에 놓인 승선교(보물 제400호)가 그 주인공. 잘 다듬은 자연 암반을 쌓아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한국의 대표적인 아치형 다리다. 승선교가 계곡물에 비치면 마치 둥그런 원처럼 보이는데,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이가 많다.
선암사는 조계산 자락에 자리한다. 창건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529년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기록과 875년 도선국사가 지었다는 기록이다. 선암사의 깊은 연륜은 입구에서부터 느껴진다. 고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고승의 승탑(사리를 담은 탑)이 가장 먼저 눈에 띄기 때문이다.
눈여겨볼 만한 탱화가 곳곳에 많다. 각 전각과 암자에 보관된 불화만 100여 점이라고 한다. 대웅전 석가모니불 뒤에 걸린 탱화는 그 크기로 방문객을 압도한다. 1765년 그려진 초대형 영산회상도로, 가로 3.65m, 세로 6.5m에 달한다.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과 8대 보살, 10대 제자, 그리고 12명의 신장상이 그려져 있다.
선암사에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뒷간이 있다. 맞배지붕에 마룻바닥을 댄 목조건물로 T자형 모습을 하고 있다. 전남 지방에서 평면 구성을 한 측간 건물 중 가장 오래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4호로 지정됐다.
왠지 법주사(法住寺) 천왕문은 다른 절보다 더 섬뜩하다. 사천왕의 표정이 더 험악하고 눈도 더 깊어 보인다. 그럴 것이 법주사 천왕문은 조선 인조 때 벽암대사가 절을 중건하며 세운 것이 지금까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 사천문 중 가장 잘 만들어진 것으로 꼽힌다.
눈을 사로잡는 것은 높이 33m의 거대한 금동미륵대불이다. 신라 제36대 혜공왕 때 승려 진표가 청동으로 주조한 후 1000여년간 유지됐다가 조선 시대 흥선대원군이 당백전(當百錢)의 재료로 쓰기 위해 훼손했다. 이후 시멘트로 지어졌다가 다시 청동으로 지었는데 부식이 진행돼 다시 그 위에 금박을 입혔다. 속리(俗理)에 따라 부처의 모습도 바뀐 셈이다.
법주사는 533년에 의신 스님이 세웠다. ‘호서 지방 제일 가람’이란 별칭답게 법주사 경내와 암자에는 국보 3점, 보물 12점, 시도유형문화재 22점 등 문화재로 가득하다. 특히 국내 유일하게 남은 목탑인 5층 건물 팔상전(국보 제55호)이 가장 유명하다.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인 ‘팔상도’가 있는 건물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충남 공주 사곡면 마곡사(麻谷寺)는 사찰 중심에 계곡이 흐른다. 주변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택리지’와 ‘정감록’에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땅으로 기록됐다. 조선 시대 세조는 마곡사를 ‘만세에 망하지 않을 땅’이라고 평가했다. 7세기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온 뒤 세웠다고도 하고, 9세기 보조선사 체칭이 지었다는 설도 있다.
대광보전 앞에 놓인 오층석탑(보물 제799호)의 모양이 특이하다. 다른 사찰 탑과 달리 상부가 금속으로 돼 있어 마치 탑이 모자를 쓴 모습이다. 라마교의 탑과 비슷하다. 고려 말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을 때 라마교 양식을 본뜬 탑이 만들어졌는데,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백범 김구의 자취가 곳곳에 남은 절이기도 하다. 1896년 백범은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을 처단했다. 이에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탈옥했고, 마곡사로 숨어들었다. 이후 머리를 깎고 한동안 승려로 살았다. 백범은 광복 후 이곳을 다시 찾아 대광보전 옆에 향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지금 향나무 왼쪽 기와집에 백범의 사진과 휘호 등이 전시돼 있다.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大興寺)는 한국 국토 최남단 대륜산에 있는 절이다. 대둔사(大芚寺)라고 불리기도 한다. 독특한 공간 구성이 대흥사의 가장 큰 특징. 금당천이 절을 가로질러 흐르고, 이를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으로 마치 흩뿌려놓듯 당우를 자유롭게 배치했다.
544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 여러 고승에 의해 중건을 거듭하며 교종과 선종을 모두 아우르는 대도량이 됐다. 특히 임진왜란의 승병장이었던 서산대사 이후로 사찰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이 서산대사를 기리기 위해 1789년 정조 때 지은 사당, 표충사가 있다.
대흥사에서 1시간가량 두륜산을 오르면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을 만날 수 있다. 암반은 가로 8m, 세로 6m나 된다. 정면 중앙에는 4.2m 크기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10세기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100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그 모양이 선명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09/20180809019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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