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의사의 죽음

오완선 2019. 1. 7. 11:22



입력 2019.01.07 03:16

장기 기증 뇌사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흉부외과 의사 2명이 550㎞를 날아갔다. 뇌사자에게서 폐를 떼고 아이스박스에 담아 비행기에 올랐다. 말기 폐질환 환자는 수술대에 누워 기다리던 중이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비행기 추락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7년 미국 미시간 대학병원서 일어난 일이다. 폐 환자도 이내 죽음을 맞았다. 이식 장기는 분초를 다투며 가져와야 하기에 의료진은 늘 사고 위험에 놓여 있다.

▶일본의 '100세 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 박사는 활기찬 노년 건강의 상징이었다. "끊임없이 움직여라" "사람들이 찾아오는 집이 되라" "복식호흡을 하라", 많은 이가 히노하라 건강법을 따라 했다. 그는 낙상 골절이 노년에 가장 위험하다며 '잘 넘어지는 캠페인'도 벌였다. 탈모는 유전이지만 혈압은 자기 책임이라고 했다. 신(新)노인 모델을 보여준 그는 2017년 연명 의료를 거부한 채 105세에 생을 마감했다.

              

▶의사 중에는 애꿎게 전공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두경부암을 앓고 간암 치료하던 교수가 간암으로 투병한다. 한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대장암으로, 호흡기내과 교수는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의사가 병난 게 잘못이 아닌데도 쉬쉬한다. 의료계에서는 의사가 자기 분야 병에 안 걸리려면 남자 의사가 산부인과를 해야 한다는 우스개도 있다.

▶하버드의대 재활의학과·신경과 리사 크리비카스 교수는 공대를 나왔지만 어머니가 희귀 퇴행성 위축성 신경질환(ALS)을 앓는 걸 보고 의사가 됐다. 그녀는 ALS에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며 환자들을 돌봤다. 그러다 자신도 ALS에 걸려 마흔다섯에 세상을 떠났다. 의학계는 그녀의 연구가 난치병 치료에 희망을 줬다며 업적을 기렸다. 리사 교수의 몸은 ALS 유전자 연구에도 기여했다. 훗날 그녀 이름을 딴 ALS 연구기금이 조성됐다.

▶조현병 환자의 느닷없는 칼부림에 죽음을 맞은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신이 우울증을 앓았다고 고백한 적 있다. 허리 디스크로 인한 극심한 만성통증이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우울증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병은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을 앗아가 버렸다"고 했다. 어렵게 우울증을 극복한 그는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책을 냈다.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환자와 함께한 그의 마지막 순간이 안타깝다.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가 또 하나 늘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06/20190106017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