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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밴쿠버에서 잡혔을까

오완선 2019. 1. 29. 17:27



  • 입력 : 2018.12.11 15:01

  • ▲ 멍완저우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진 출처=연합뉴스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169] 글로벌 통신기업 화웨이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이자 부사장인 멍완저우의 체포를 두고 주요 외신들은 연이어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다시 격화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세계 각국에 통신장비와 휴대폰을 공급하는 중국 기업의 차기 후계자가 체포되는 것이 중국의 지식재산권 위반과 '기술 스파이' 혐의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미국의 선제공격이라는 것이다.

    세계 무대를 두고 경쟁하는 G2의 격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묘하다. 중간에 캐나다라는 제3국이 존재한다. 격돌의 시작인 멍 부회장의 체포가 지난 1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서 캐나다 당국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왜 캐나다에서 체포됐을까?

    원론적인 설명은 멍 부회장 자택이 캐나다 밴쿠버에 있기 때문이다. 밴쿠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멍 부회장의 자택은 밴쿠버시 크라운거리 28번가에 자리하고 있다. 구금 중인 그 역시 캐나다 법원에 낸 보석신청서에서 "15년 전부터 밴쿠버에 있었고, 딸을 밴쿠버에서 진학시키려고 한다"며 캐나다와의 연을 강조했다. 글로벌 통신업계를 쥐락펴락하는 기업의 경영자의 거처가 캐나다라는 것은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계 경제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 중국 자본의 힘을 보여주는 상하이가 아닌 캐나다가 그의 집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푸얼다이(富二代)'라는 용어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푸얼다이는 중국의 개혁개방 이래 부를 쌓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자란 중국판 재벌 2세들을 일컫는 말이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부족한 것 없이 자랐지만 안하무인격 행동을 멈추지 않는 이들이 오늘날 찾는 곳이 바로 캐나다 밴쿠버다. 이민에 우호적인 캐나다가 중국의 부정부패 숙청을 피해 건너온 푸얼다이의 안식처로 떠오른 것이다. 밴쿠버 중심가의 프라다, 롤렉스 등 고급 상점들은 중국어가 가능한 직원을 채용하지 않으면 안 될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시선은 곱지만은 많다. 뉴욕타임스(NYT)는 "캐나다 밴쿠버가 푸얼다이의 유흥장이 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몇 년 전 밴쿠버 고속도로에서는 이들이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등 고급 승용차로 초고속 레이싱을 벌이다가 총합 200만달러가 넘는 차량 13대가 경찰에 압수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은 해외 대학가에서도 학업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명품과 스포츠카로 치장해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현지 학생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푸얼다이를 향한 현지인들의 반감은 단순히 그들이 비도덕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의 이민과 함께 시작된 중국 상류층들의 밴쿠버행이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통계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밴쿠버를 포함한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로 이주한 중국인은 최소 3만7000명이다. 230만명이 사는 밴쿠버에서는 18%가 중국계 이주민이다. 캐나다 이민부는 2031년이면 밴쿠버에 중국인이 가장 많아지고 백인은 소수민족이 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올해 중국 신재부잡지는 "캐나다 밴쿠버가 중국의 1개 성(省)이 됐다"며 밴쿠버의 상황을 설명했다.

    중국의 큰손들이 진출하는 세계 여느 도시와 같이 밴쿠버 역시 이들로 인한 부동산값 상승을 겪었다. 2016년 컨설팅업체 데모그라피아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밴쿠버의 주택 평균가격은 2005년에 비해 두 배로 뛴 160만 캐나다달러(약 14억원)이다. 학군이 좋은 지역은 오름폭이 더 심해 2006년 60만캐나다달러이던 것이 올해에는 5배나 오른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현지 주민들의 반발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2016년에는 밴쿠버 주민들이 집값에 항의해 '난 100만달러가 없다'는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정부도 지역 정치인들의 요구를 수용해 외국인이 소유하는 부동산을 추적하기도 했다.

    체포된 멍 부회장을 이 '푸얼다이'들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에는 고민이 필요하다. 멍 부회장은 1993년 대학 졸업 후 화웨이에 입사해 18년 동안 후계자 수업을 거쳐 2011년에 CFO에 오르는 등 과소비만을 일삼는 푸얼다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밴쿠버 시민들에게는 멍 부회장 역시 자신들 삶의 터전을 빼앗는 다른 중국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멍 부회장의 체포에 대해 보도되고 이틀 후인 지난 9일 멍 부회장의 밴쿠버 자택에는 확인되지 않은 용의자들로부터 공격 시도가 있었다.

    멍 부회장의 체포에 대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자국을 침식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경고를 날리고 싶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