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日 노인 위한 '의료 사랑방' 5400곳… 살던 동네서 치매·요양 서비스

오완선 2019. 2. 1. 08:28



입력 2019.02.01 03:13           조선일보
  • 일본 도쿄·가와사키=김철중 의학전문기자

  • 이웃집 놀러가듯 방문, 물리치료 받고 입원까지… '포괄 케어' 현장 가보니

    도쿄 시내에서 남쪽으로 지하철 30분 거리에 있는 인구 150만명의 가와사키시(市). 대형 쇼핑센터와 가와사키역을 뒤로하고 10분 걸으면 전형적인 일본 동네 마을이 계속 이어진다. 이발소와 야채가게, 편의점이 늘어선 골목 사이에 매일 노인 환자들이 들락거리는 집이 있다. 이른바 '소규모 다기능 주택(小規模多機能住宅)'이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형태의 고령자 돌봄 기관이다. 간호사·물리치료사 최소한의 의료진만 갖추고, 동네 노인들을 케어 하는 곳이다. 일본은 2018년부터 거동의 문제가 생기는 75세 이상 인구(전체의 14.2%)가 65~74세 계층(13.9%)보다 많아지면서 노인들이 살던 동네에서 의료와 복지 서비스를 받는 체제가 확연히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의료 사랑방' 소규모 다기능 주택

    주택 안으로 들어서자 큰 거실이 있고, 그 옆에는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일반 가정집이다. 거실에는 치매를 앓는 노인 8~9명이 숫자와 그림이 그려진 장난감 판을 갖고 게임을 하고 있다.

    할머니 한 명은 당분간 여기서 머문다. 같이 살던 자식들이 여행을 가서 잠시 맡겨진 것이다. 이곳은 마치 '의료 사랑방'처럼 낮에 와서 케어를 받거나, 필요한 경우 며칠씩 숙박하며 지내는 곳이다. 환자들은 가족처럼 서로를 잘 아는 듯, 누가 들락거릴 때마다 인사를 나눈다. 모두 동네 사람들로 주변 1㎞ 이내에 산다.

    일본 도쿄 남단 가와사키시 동네에 있는 ‘의료 사랑방’ 소규모 다기능 주택의 내부 모습. 고령 환자들이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머물며 인지 기능 개선 훈련을 하고 물리치료를 받는다. 점심 식사는 부엌에서 만들어 제공한다. 고령자들이 사는 골목 어귀에 자리 잡고 있다(아래 사진).
    일본 도쿄 남단 가와사키시 동네에 있는 ‘의료 사랑방’ 소규모 다기능 주택의 내부 모습. 고령 환자들이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머물며 인지 기능 개선 훈련을 하고 물리치료를 받는다. 점심 식사는 부엌에서 만들어 제공한다. 고령자들이 사는 골목 어귀에 자리 잡고 있다(아래 사진). /김철중 기자

    일본서 이 같은 소규모 다기능 주택이 들어선 것은 2005년쯤이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설 때다. 예전에는 치매나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이 지역 외곽의 요양병원에 입원하거나 요양원에 입소했다. 그러자 노인 환자들이 갑자기 가족이나 익숙한 동네와 단절되면서 우울증이 오고 치매가 악화 됐다.

    가와사키시에서 소규모 다기능 주택 '양떼구름의 집'을 운영하는 시바타 노리코 이사장은 "한 치매 환자가 생판 처음 접하는 노인병원에 입원한 후 자살한 것에 충격을 받고 소규모 다기능 주택을 하게 됐다"며 "매일 보던 골목을 왔다 갔다 하며 케어 받아야 치매가 악화되지 않고, 고령자의 신체 활력도 유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소규모 다기능 주택은 가와사키시에 60여 곳이 있다. 전국적으로는 5424개(2017년)가 있고, 매년 늘고 있다. 다기능 주택은 29명 이내의 고령 환자로만 운영되어야 한다. 목욕과 점심 식사가 제공되고, 필요한 경우 환자 집을 방문하여 재활치료나 가정 간호도 시행한다. 비용은 개호도(신체 장애, 치매, 노쇠 정도)가 중간 정도일 경우 한 달에 약 300만원 든다. 환자는 개호도에 따라 이 중 10~30%를 부담한다. 나머지는 개호보험(장기요양보험)에서 댄다.

    ◇집과 병원의 중간다리, 노인보건시설

    도쿄 북쪽 외곽의 가쓰시카구(區)에 있는 150병상 규모의 로열케어센터. 81세 여성이 대퇴골 골절로 인근 종합병원서 수술을 받고 이곳에 들어왔다. 골절 치료는 끝났지만, 아직 집에서 생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기에 재활치료 목적으로 입원했다. 환자의 집은 케어센터 옆 골목에 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자식들은 수시로 케어센터를 방문하여 엄마를 돌봤다.

    로열케어센터는 일본 지역 곳곳에 자리 잡은 이른바 노인보건시설이다. 언뜻 보면 입원실과 치료실, 의료진이 있는 병원 같지만, 실은 노인 공용주택과 같은 형태다. 의사 한 명이 낮 시간에만 자리를 지키고, 간호사도 최소 인원만 있다. 주로 재활을 돕는 물리치료사와 요양보호사가 근무한다. 병실에는 환자가 평소에 쓰던 이불이나 책상을 가져와 쓸 수 있다.

    사는 동네서 환자 돌보는 일본의 지역 포괄 케어

    병원에 입원해 있기에는 건강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고, 그렇다고 집으로 가기에는 생활이 힘든 상태의 환자들이 며칠에서 수개월 머무는 곳이다. 병원과 집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며, 질병 치료보다 재택 복귀가 목표인 기관이다. 일본에는 이 같은 노인 보건 또는 복지시설이 1만3429개가 있다. 도쿄 도심 주택가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 전국적으로 노인 환자 36만명이 이런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소규모 다기능 주택과 합쳐 동네 간이 의료시설이 2만개 있는 셈이다.

    로열케어센터의 경우 150병상 중 50병상은 동네 치매 환자 입원에 할애하고 있다. 이곳에 머물다 집으로 간 노인 환자들이 낮 시간에 방문하여 재활치료를 받는 데이케어센터도 같이 운영한다. 매일 60여 명이 방문한다. 지역포괄지원센터를 두고, 집에서 생활이 힘든 노인 환자의 방문 간병 원조도 시행한다. 지역 환자가 임종기에 이르렀을 때도 병원에 가지 않고 이곳에 입소하여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한다.

    가쓰시카 로열케어센터 아마노 쇼오코 사회복지사는 "이 지역의 특성을 잘 아는 의료진과 여기를 매일 들락거리는 노인 환자들이 같이 치료받고 같이 늙어간다"며 "고령자들이 익숙하게 살던 곳에서 일상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고령사회 의료복지 서비스의 최대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도 2025년엔 어르신 인구 20%… 방문 진료 등 '커뮤니티 케어' 서둘러야의료·복지제도 자리잡는데 5~10년, 한국 올해부터 일부 시험사업 추진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역 포괄 케어를 벤치마킹 한 '커뮤니티(community·지역사회) 케어'를 준비 중이다. 지역 포괄 케어란 고령자가 살던 동네에서 그대로 지내면서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받는 동네 밀착형 체제를 말한다. 일본이 '지역 포괄 케어'를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설 즈음이다. 우리나라는 6년 후인 2025년에 20%에 이를 전망이다. 의료·복지제도가 자리를 잡는 데 5~10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부터 커뮤니티 케어를 도입해야 한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올해 고령자 주택 개조, 방문 의료 서비스 확충 방안 등을 시작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지 환자가 병·의원이나 복지기관을 찾아가는 방식이었다면, 지역 포괄 케어는 방향이 반대다. 의료·복지 서비스가 환자 집으로 가는 체제로 대전환해야 한다. 이에 일본은 의사가 거동이 힘든 환자 집을 방문해 진료하는 이른바 왕진이 활발하다. 일년에 1100만여건 이뤄진다. 의사는 한 달에 두 번 방문 진료하고, 응급 호출에 응한다. 간호사가 환자 집을 찾아가 가정 간호를 하는 방문 간호센터도 전국에 1만305곳을 운영한다. 치과의사와 치위생사가 고령자를 찾아가 구강 관리하는 방문 치과는 한 달에 80만건이 이뤄지고 있다. 방문 재활·약제 서비스가 있고, 영양식을 택배로 보내주거나 정기적으로 찾아가 목욕을 시켜주는 서비스도 활발하다. 우리나라는 이런 제도가 아직 없다. 갑자기 기력이 없고 노쇠해진 노인이 며칠 머무는 단기 입소 생활 개호 기관도 1만1000여개가 있다.

    일본 환자 들은 뇌졸중·골절·퇴행성 신경질환 발생시 종합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받고 그다음 회복기 재활 전문 병원으로 옮겨간다. 그래야 의료비도 줄이고, 치료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효율적으로 신체 기능을 되살릴 수 있다. 이런 재활 병원 병상이 8만개다. 우리나라는 올해 회복기 재활 전문 병원 시범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일본은 고령자 주택 개·보수 사업도 활발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31/20190131032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