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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시를 좋아하는 여행자에겐 숭배의 대상 알람브라

오완선 2019. 2. 1. 12:38


입력 : 2016.05.01 06:14 | 수정 : 2016.05.01 08:03

  "그라나다를 잃는 것보다 알람브라 궁전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
그라나다를 지배했던 마지막 아랍 왕조인 나사리 왕국(1231~1492)의 마지막 왕 보압딜은
1492년 1월 2일 스페인을 공동 통치하던 부부(夫婦) 군주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에게 그라나다를 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붉은 성(城)'이란 뜻의 알람브라 궁전은 아프리카로 물러난 아랍인들이 스페인에 남기고 간 문화유산이다

보통 알람브라 궁전(Alhambra Palace)이라 하면 요새 알카사바, 나사리 왕조의 나사리 궁, 정원 헤네랄리페, 카를로스 5세 궁전, 산타 마리아 성당,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을 통칭한다. 핵심은 아라베스크 양식의 꽃이라 불리는 나사리 궁. 정복 군주 입장에서는 이교도의 건축물이었지만 파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그라나다에 있던 모스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그라나다 대성당을 지은 이사벨라 여왕도 알람브라 궁전에는 크게 손을 대지 않았다. 이사벨라와 페르난도의 후계자 카를로스 5세는 아예 그라나다에 눌러 살고 싶다며 카를로스 5세 궁전을 나사리 궁에 붙여 지었다.

스페인 그라나다, 비밀의 골목과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올리브유의 고장, 안달루시아 이야기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을 정원 헤네랄리페에서 바라봤다. 십자가가 서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왼편) 옆으로 15세기까지 그라나다를 지배했던 아랍 왕조의 나사리 궁과 요새 알카사바가 보인다. 나사리 궁 뒤로는 르네상스 양식의 카를로스 5세 궁전이 있다. /양지호 기자

알람브라 궁전은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섞여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도리아·이오니아·코린트식 양식이 뒤섞인 르네상스식 건물(카를로스 5세 궁)이 아라베스크 양식과 모카라베(종유석을 닮은 아랍식 건물 천장 장식법)로 뒤덮은 나사리 궁이 '알람브라 궁전'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공존한다.

나사리 궁에는 아랍어 캘리그래피로 알라를 찬양하는 글귀가 곳곳에 쓰여 있는데, 100m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다. 우상 숭배를 철저히 금지하는 터라 성자는커녕 동물 그림조차 없는 나사리 궁 안 '사자의 중정(中庭)'에는 12마리의 사자 형상이 입에서 분수를 뿜어낸다. 일부 학자는 "12마리의 사자는 유대인의 12지파를 의미한다"며 유대인으로부터 나사리 왕조가 받은 선물이라고 주장한다.

나사리 궁은 알수록 더 보이는 양파 같은 공간이다. 아라베스크 문양과 아줄레호(푸른색 타일) 같은 외면을 바라보기 시작해서 더 들어가면 사자의 샘에 새겨진 아랍어 문양과 젤루지(미늘살 창문)라고 하는 통풍과 블라인드를 겸하는 아랍식 창문 양식이 들어온다. 알람브라 궁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나사리 궁은 인파에 떠밀리다시피 해 한 시간 내외로 돌아보게 된다. 찬찬히 살펴볼수록 많이 보이는 곳이라 아쉽다.

이슬람 왕이 국가보다 더 사랑했던 알함브라 궁전

헤네랄리페에 있는 아세키아 중정 분수 앞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수로 양쪽에서 24개의 분수가 물줄기를 뽑아내고 있다. /양지호 기자

나사리 궁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헤네랄리페 정원은 낙원을 지상에 구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5월이면 꽃으로 만발하는 이 정원은 아랍 왕들이 여름이면 쉬러 왔던 여름 별장이라는 설도 있다. 세로형 정원의 중앙에 수로를 설치했고 좌우로 분수를 뒀다. 12세기 당시에 벌써 그라나다 인근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발원한 물을 수로를 통해 끌어와 정원을 가꿨다.

스페인 왕실이 힘을 잃으면서 한때 폐허가 됐던 알람브라는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이 알람브라 궁에 머무르면서 궁에 얽힌 이야기를 엮어낸 소설집 '알람브라의 이야기(1832)' 덕분에 다시 빛을 봤다. 폐허는 문화유산이자 관광 명소가 됐다. 스페인 정부는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예술가들도 알람브라 궁전에서 영감을 얻었다. 클로드 드뷔시는 알람브라 초입에 있는 '포도주의 문'을 그린 엽서에 영감을 받아 라 푸에르타 델 비노(La Puerta del Vino)를 작곡했다. 스페인의 음악가 프란시스코 타레가는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클래식 기타 연주곡을 작곡했다.

알람브라 궁전의 전경은 맞은편 언덕에 있는 알바이신지구에서 잘 보인다. 이곳 산니콜라스 전망대와 산크리스토발 전망대가 명소로 꼽힌다. 해질녘에 붉은 성이라는 이름처럼 붉게 물든 알람브라를 보면 어빙의 말에 찬성하게 된다. "알람브라는 역사와 시를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숭배의 대상이다."

'돈키호테'의 감동에서 '걸작' 알람브라 궁전까지

스페인의 精髓, 이곳은 OO의 도시


안달루시아

스페인에 간다면 안달루시아로 가라.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투우, 플라멩코, 시에스타(낮잠) 모두 안달루시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뒤섞인 안달루시아의 독특한 모습은 수많은 문호와 예술가를 자극했다. 스페인의 정수(精髓)가 이 남부 지방에 녹아 있다. 안달루시아는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스페인의 거의 전역을 지배했던 이슬람 왕조의 영토였다. 안달루시아는 당시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이슬람 왕조의 별칭인 알안달루스(Al-Andalus)에서 유래했다. 1492년 그라나다가 함락되며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됐지만 그들의 유산은 세계의 여행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연인의 도시 론다

협곡 위에 세워진 98m 높이의 누에보 다리는 론다의 상징이다.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이 다리는 42년간의 공사 끝에 1793년 완공됐는데 보는 이를 압도하게 한다. 소설가 헤밍웨이는 "허니문으로, 또는 연인과 스페인으로 떠난다면 론다에 꼭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표작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이곳에서 썼다.

높이 98m의 ‘누에보 다리’는 절벽 위의 도시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다. 헤밍웨이는 “연인과 스페인으로 떠난다면 꼭 론다에 가라”고 했다. /양지호 기자

론다는 스페인 근대 투우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18세기 투우사 프란치스코 로메로는 소를 모는 망토와 물레타(붉은 천)를 고안하고 근대 투우를 확립했다. 그의 손자 페드로 로메로는 5000마리 넘는 소와 대결해 승리하면서 전설적인 투우사가 됐다. 인구 3만명의 소도시지만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투우장에서 경기가 열리면 6000석이 가득 찬다.

론다의 진면목은 동트기 직전 이슬이 내려앉은 거리를 거닐며 느낄 수 있다. 여행객의 떠들썩함이 가신 고요한 론다를 새의 지저귐이 채운다. 헤밍웨이가 왜 연인과 오라고 했는지 알겠다.

여행 작가들도 가고 싶어 하는 숨은 여행지들

◇코르도바, 이슬람과 가톨릭의 대비

코르도바의 상징은 한때 이슬람 왕국의 모스크였던 '코르도바 산타마리아 성당'이다. 이 성당은 메스키타(Mezquita·스페인어로 모스크)라는 일반명사로 더 유명하다. 10세기 이슬람 토후국의 수도였던 시절 이슬람 사원으로 지어졌다가 13세기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을 통해 가톨릭이 코르도바를 차지하면서 성당으로 개축됐다. 건축양식은 여지없는 모스크인데 건물 벽면과 천장은 카톨릭 성화(聖畵)와 성상(聖像)이 가득하다. 교회에 탱화와 불상이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가톨릭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기묘한 동거다.

유럽의 끝자락 코르도바에서 관용과 공존을 보다
야경이 아름다운 신혼 여행지

코르도바는 오페라 카르멘을 낳았다. 오페라의 원작이 된 소설 '카르멘'을 쓴 프랑스 작가 메리메는 코르도바를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 강 위에 놓인 로마교 위를 걷는 집시 여인을 보고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코르도바에서는 파티오 거리를 꼭 찾아야 한다. 파티오는 'ㅁ'자 형태로 집을 만들고 가운데 정원을 꾸미는 안달루시아식 주택의 안뜰을 말한다. 메스키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이곳에서는 매년 5월부터 12일가량 '파티오 축제'가 열린다. 어느 집 안뜰의 화초가 더 아름답게 가꿔졌는지를 겨룬다. 스페인의 햇살을 받은 꽃들은 코르도바 건물의 흰색 벽에 대비돼 더 화사하게 빛난다.

◇축제의 도시 세비야

안달루시아 자치주의 주도(州都) 세비야는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정열의 도시다. 매년 펼쳐지는 '4월 축제'와 부활절 즈음 펼쳐지는 '세마나 산타'가 양대 산맥이다. 봄의 축제로도 불리는 4월 축제는 일주일 동안 축제 부지에 천여 개 넘는 축제용 천막 '카세타'를 세우고 춤을 즐긴다. 머리에 꽃모양 장식을 달고 안달루시아식 주름치마를 입은 여성과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들이 천막을 돌아다니며 춤을 춘다. 축제가 벌어지는 거리는 말을 탄 연인과 마차를 탄 가족들로 가득하다. 연주와 춤은 매일 새벽 2시까지 이어진다. 올해 축제는 지난 11일에 시작해 17일 밤에 불꽃놀이와 함께 끝났다. 세마나산타와 4월 축제가 이미 끝났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세비야관광청은 "5월 이후 예정된 축제만 21개"라고 밝혔다.

세비야‘4월 축제’를 즐기는 스페인 시민. /양지호 기자

플라멩코가 발원한 안달루시아의 최대 도시인 세비야에는 플라멩코 공연장도 여럿이다. 스페인어 불꽃(flama)에서 유래한 이름인 만큼 화려하고 뜨겁다. 플라멩코 하면 춤만 떠오르지만 사실 무용수, 가수, 기타 연주자의 호흡이 중요하다. 노래는 판소리처럼 구성지고 춤은 탭댄스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화려하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관광객들도 무대에 빠져들면서 함께 손뼉을 치고 '올레'를 외쳤다.

◇피카소가 나고 자란 도시 말라가

말라가는 스페인의 유명 휴양지 ‘태양의 해변(Costa del sol)’으로 가는 관문이다. 지중해의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는 말라가부터 지브롤터 해협까지의 해변을 그렇게 부른다. 우중충한 날씨의 서유럽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휴양지다. 이 땅에서 파블로 피카소가 나고 자랐다. 말라가 대성당 인근에 있는 피카소미술관에서는 피카소의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작품 8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일정이 바쁘다면 말라가 대성당을 둘러본 뒤 피카소 미술관으로 가면 된다.

스페인 말라가에서 소년 피카소를 만나다




■ 인천공항에서 스페인 말라가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스탄불을 경유해 말라가 공항으로 가는 편이 거리가 짧다. 터키 항공(turkishairlines.com·1800-8400)은 6월부터 이스탄불-말라가편을 1일 2회 운항한다. 인천-이스탄불 주 11회 운항. 말라가에서 그라나다, 세비야, 론다, 코르도바까지는 차편이나 기차로 이동. 말라가에서 론다까지는 1시간,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는 2시간 안팎 걸린다. 말라가에 도착해 론다,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 순으로 방문한 뒤 말라가로 돌아와 출국하면 동선 낭비가 적다.

■ 알람브라 궁전의 야경을 보며 식사하고 싶다면 궁 맞은편 알바이신 지구의 카르멘 아벤 후메야를 추천한다. 레스토랑 정보지 자가트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레스토랑 톱10’에 이름을 올린 곳이다. 야외 테이블과 실내에서 모두 알람브라 전경이 보인다. 프랑스 출신 셰프가 안달루시아 전통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메인요리 20유로 안팎. 5 코스 이상의 정찬(正餐)도 50유로부터 시작한다. 1유로는 약 1300원. +34 633 04 28 81

코르도바 상점에 걸린 하몽. /양지호 기자

론다에서는 18세기 전설적인 투우사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페드로 로메로가 유명하다. 벽에 늘어선 소 머리 박제가 인상적이다. 안달루시아식 소꼬리찜(Rabo de toro·20유로)이 많이 팔린다. +34 952 87 11 10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하몽(말린 돼지다리)은 잘못 고르면 돼지 냄새 때문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몽 전문 매장이나 시장에서 조금씩 맛을 본 뒤 사는 편이 안전하다. 현지인들은 말라가 대성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아타라사나스 시장(Mercado Central Ata razanas)에서 출국 전 하몽과 말린 무화과, 견과류를 싸게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운영시간 오전 8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