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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학자 3人, 문재인 시대의 대한민국을 이렇게 본다“외교 무능 아냐… 국민이 모르는 사이 적극적 反美 외교 했다”

오완선 2021. 10. 5. 10:03

[편집자 주]
대한민국은 혼돈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글로벌 팬데믹 코로나19는 사회 곳곳을 마비시켰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앙 속에 국민은 지쳐가고 있다. 임기 말로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에 따른 부작용은 벌써 나타나고 있고, 내년 대선(大選)을 향한 레이스도 시작됐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하며 선진국의 초입에서 정체된 대한민국은 어떤 운명을 맞게 될 것인가. 평생 후학을 양성한 학자이자,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지성인 3인(人)에게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물었다.
경제학 박사인 조동근(趙東根)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반하는 활동 감시’를 표방하는 바른사회시민회의 발기인이자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 변호사이자 미국 뉴욕주 변호사인 이미현(李美賢)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세법 등 금융전문가로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외무고시,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외무부에서 10년여간 근무한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통상법 전문가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인 그는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에서 근무한 외교통이다. 조국 전(前)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주도한 ‘사회 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모임(이하 정교모)’ 공동대표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지난 4년 반에 대해 “자유는 질식됐고, 법치는 붕괴했고, 미래는 저당 잡힌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이미현 연세대 교수는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라고 총평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조작과 보복 정치의 시간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진실의 가치를 파괴하고, 정부는 국가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기본 가치를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조동근 교수의 얘기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한민국은 정상 국가로서의 기품을 잃었습니다. 제자리를 이탈하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어지럽습니다. 국가를 질서 정연하게 만드는 법치의 법은 사라지고, 국회에서 양산된 입법이 대신합니다. 180석의 여당은 21대 국회가 개원한 지 5개월 만에 6014건의 입법 발의를 할 정도로 국회가 ‘입법 공장’으로 전락했습니다. 우리가 목숨 걸고 애써 쌓아 올린 가치 있는 것을 지키려는 노력 없이 현재를 탕진하고 있습니다. 후속 세대의 부담을 전제로 미래 착취를 했습니다. 역사 속 유물로 사라진 사회주의에 미련을 두고 철 지난 평등주의에 함몰돼 자학적 경제관에 빠졌습니다.”
 
  이미현 연세대 교수의 얘기다.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거의 모든 국정 분야에 걸쳐 총체적 난국입니다. 어느 정부든 실책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판단 착오가 발생할 수 있고, 상황이 급변해 결과적으로 잘못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이유로 그런 잘못된 정책을 채택하였는지’ 자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 가령 예를 들자면요.
 
  “탈원전 정책이 대표적이죠. 위험을 이유로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합니다. 원전을 통해 우리가 싼값으로 전기를 쓸 수 있고, 해외 원전 건설 수주로 외화 수입이 기대되는 등 이득이 큰데 왜 그렇게까지 급속히 탈원전을 밀어붙여야 할까요?
 
  잘 알려진 체르노빌, 후쿠시마 외에 미국에서 발생한 스리마일섬(Three Miles Island·TMI) 원전사고는 사람들이 그런 사고가 있었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사고 피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원전은 가압수형과 비등수형으로 두 종료가 있는데, 가압수형의 경우에는 원전 내부에서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사고가 혹시 벌어지더라도 폭발성 산소가 나오는 방사성 분해와 동시에 수소분자와 산소분자가 결합하여 다시 물이 되는 재결합 반응이 일어나도록 설계되어 있어 수소폭발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최악의 사태에서도 수소폭발로 격납용기가 터져 방사선이 외부로 유출될 일은 없다는 것이고요. 이것은 가압수형 원전인 스리마일섬 원전사고에서 실제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원전 타입은 가압수형입니다. 그런데 우리와 원전 설계가 전혀 다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재앙을 들먹이며 위험하니까 탈원전하자는 것은 정말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사법부의 정치적 행위를 합리화해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여러 문제 중에서도 ‘사법부의 정치적 행위’와 ‘공직 사회의 전문성 훼손’을 지적했다.
 
  “법관과 검사가 정치적 행위를 하는 행태를 일반화시키고 조장했습니다. 이념적 동지애로 뭉쳐서 심지어 사법부 공무원들까지 이념투쟁을 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로 인식시켰으며, 집권세력에 속한 자기들이 비리를 벌이는 것은 개혁과 투쟁 과정에서의 기존 보수세력의 탄압이라고 합리화했습니다.
 
  직업공무원 제도의 건전성과 전문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했습니다. 역대 정부에서 공공 기능을 정치적 오염의 대상으로 삼은 적이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차관급이 아니라 각 부처의 사무관급까지 오염시켰습니다. 공무원들이 맡은 업무가 정치적 사안이면, 사무관도 청와대 눈치를 보고 자기가 믿는 공공선(公共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을 먼저 해야 하는 상황을 일반화시켰습니다. 직업공무원들까지 청와대를 통해 내려오는 지시에 복종할 것을 요구받는 소모품으로 전락한 겁니다.
 
  또 하나 큰 문제는 포퓰리즘이죠. 복지와 평등 정책에서 현금성 자금을 살포하면서 대중을 선동했고, 그 부담은 미래 세대에 전가한 점입니다.”
 
  ― 다른 정권보다 심했나요.
 
  “미래 세대에 책임까지 전가한 정부는 역대에 없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비교되는 노무현 정부조차 경제 성장을 하면서 그 돈을 썼습니다.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쓴 것이죠.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선대들이 땀 흘려 벌어놓은, 곳간에 쌓여 있던 재원을 쓴 것은 물론이요, 수중에 없는 돈조차 끌어 쓰며 남미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확실한 대책 없이 오늘 우리가 쓴 돈을 미래 세대에 전가하면 무책임한 포퓰리즘 국정 운영이 됩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재정 악순환에 빠지게 한 최초의 정권입니다.”
 
 
  ‘촛불혁명’ 통해 민주주의 왜곡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꾸려진 정부다. 보궐선거로 치러진 대선이었기에,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일이 곧 취임일이 됐다. 그들은 스스로를 ‘촛불혁명’ 위에 세워진 정부라고 칭했다. 조동근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집권을 건국으로 인식한 듯하다”고 말했다.
 
  “정권은 선거를 통해 국가 경영을 일정 기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리인에 불과합니다. 자기들이 잠시 집권한 것이 아니라 건국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선 그들은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왜곡했습니다. 헌법 제1조 2항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인용하고 교묘하게 ‘모든 권력은 촛불을 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비틀었습니다. 이 조항의 ‘국민’은 군주제 폐지로 빈자리가 된 국왕을 대신하는 ‘상징적 존재로서의 국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치적 대중 집회에 모여 촛불을 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에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은 최고의 헌법적 상징으로, 민주주의는 주권의 인정과 그 실질적 행사가 구분돼 제도화됐습니다.
 
  따라서 촛불혁명의 ‘주권자 민주주의’는 오류입니다. ‘주권자 민주주의’ 주창자들은 민주주의는 선거나 대표자 위임에 국한하지 않고 ‘나로부터 행사되고 어디에나 행사되고 늘 행사된다’고 믿습니다. 그들의 궁극적 지향점은 ‘광장민주주의’입니다. 국민을 선동하는 수단입니다. 프랑스 헌법은 ‘국가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국민은 대표자나 국민투표를 통해 국가 주권을 행사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주권의 행사 방식을 ‘대표자와 국민투표’로 한정한 겁니다. 광장에서의 주권 행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 정권 출발 초기부터 국민을 선동했다는 거군요.
 
  “문재인 정부는 헌법 1조 2항은 교묘하게 비틀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바 권력의 원천인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졌습니다. 그랬기에 개헌에서 ‘자유’를 빼고, 정리해고 반대 파업권을 헌법에 보장하고, 동일가치 동일임금 원칙을 헌법에 담으려 한 겁니다. 민주당 고위 인사의 ‘20년 집권, 30년 집권’ 언급은 집권을 건국으로 여겼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죠. 취임사에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취임사의 어떤 대목에서 드러날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고 했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즉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는 이성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내는 좌파 설계주의의 발로입니다. 질서는 오랜 역사를 두고 진화한 자생적 산물입니다. 현재는 ‘과거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에 불과한데, 문재인 정부는 정반대로 ‘과거라는 난쟁이에 올라탄 거인’으로 착각했습니다.
 
  ‘경제적 기회는 사전적으로 평등해야 하며, 과정은 공정해야 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은 미사여구입니다.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면 결과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결과가 정의롭다는 것은 소득이 사후적으로 같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더구나 자신의 지능, 외모를 선택하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공정인데, 문재인 정부의 공정은 논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하 정치인 직함 생략)에게 그 이유는 물어보면 됩니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은 ‘약삭빠름’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입니다.”
 
 
  ‘조국 사태’ 통해 ‘정부는 선하다’는 가정 깨졌다

 

 
2019년 10월 3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에서 한 시민이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자는 구호가 담긴 종이를 들고 있다. 사진=조선DB

  얘기는 자연스럽게 ‘조국 사태’로 흘러갔다.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적 잣대)의 전형이었고, 정치에 관심 없던 일반 국민조차 매일 뉴스를 보게 했던 ‘핵심 사건’이다. 조국 임명 철회를 주장하며, 교수 1만명 서명 운동을 주도한 최원목 교수는 할 얘기가 많아 보였다.
 
  “교수들이 조국을 끌어내리고자 모인 것이 아니라, 조국이라는 사람이 우리를 모이도록 한 겁니다. 세상에는 상식이 있고 진실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조국 사태는 진실을 밝히는 일을 무한 투쟁해야 하는 시대로 만들었습니다. 설령 표적수사의 결과라 할지라도, 어떤 진실이 드러나면 그것은 왜곡됐다고 하고, 또 다른 진실이 드러나면 그것을 상대 진영 공격의 결과라는 핑계로 덮어버리는 걸 당연시해, 진실을 확정하는 일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386’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됐고,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불신, 사회 지도층이 집권 유지를 목적으로 공공연히 편법을 취하는 행위까지 진보이념 실현의 과정으로 둔갑하는 것을 국민이 봤습니다. 인간성에 대한 신뢰까지 무너졌다고 봅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가치와 신뢰관계의 아노미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 어떤 식으로요.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경제 분야와 정치권력 순기능의 합작품으로 봐야 합니다. 하지만 아노미 현상이 벌어지면서 ‘정부는 선하다’는 가정이 깨지면서 정부는 국민을 속이고 적폐청산을 빌미로 자기의 정치권력을 달성하려는 존재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우리의 독특한 발전 모델인 정치와 경제 간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하는 순환고리 자체가 끊어졌습니다. 정치권력이 다시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조국 사태가 이런 시대를 개막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 했던 이유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지 1년 만인 2018년 3월 대한민국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골격에 손을 대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뺀 ‘민주주의’로 바꾸려 했고, ‘정리해고 반대’ 파업권을 헌법에 보장해 ‘동일가치・동일임금’ 원칙을 헌법에 담으려 했다.
 
  사회: 문재인 정부는 왜 이런 내용의 개헌을 시도했을까요.
 
  이미현 교수: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곧 자유민주주의라면 굳이 두 글자를 빼고자 헌법 개정이라는 번거롭고 복잡한 절차를 밟자고 할 리 없겠지요. 그러니까 굳이 ‘자유’라는 단어를 빼자는 주장을 반복해온 진짜 이유는 결국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사회주의, 더 나아가서 공산주의까지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독재 내지 전체주의입니다. 민주주의가 곧바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질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의 공식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겁니다.
 
  조동근 교수: 자유를 질식시키는 유사전체주의 사고입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국민 개개인이 주권자입니다. 전체주의는 ‘원자화된 개인 위에 선하고 전지(全知)한 국가가 들어서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국가 전체주의 사고는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로 해석됩니다. 이것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책임진다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국가에의 의존이 타성화되는 것만큼 인간의 존엄을 허무는 것은 없습니다. 유사 전체주의는 국가 주도의 ‘사회적 합의’를 강조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사회 통합은, 말은 쉬워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결국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손해를 수반하는 자유를 질식시키는 시도였습니다.
 
  최원목 교수: 적절한 논의와 절차를 거쳐, 국민이 대한민국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정말로 빼겠다고 합의하면 빼도 됩니다. 극단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자유’를 빼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이를 정말로 승인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개헌 합의는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고 다수결 원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고 그 함의를 정직하게 국민에게 알려, 헌법 제정에 버금가는 절차를 밟아 진행해야 할 일을, 국민을 선동하거나, 충분한 논의 없이 시도한 것이 문제입니다.
 
 
  경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시켜

 

 인터뷰에 응한 학자 3인은 경제・법조・외교 분야 전문가이다. 이들의 눈에 비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은 낙제점이었다. 조동근 교수는 경제성장률, 소득 5분위 배율, 비정규직 비중, 국가채무 비율 등을 그래프로 그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등 역대 정부와 비교했다. 자료는 기획재정부, 통계청, 한국은행 것을 썼다. 조 교수는 “한마디로 낙제점, 네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쳤다”고 총평했다.
 
  “정치에는 임기가 존재하지만, 경제에는 임기가 없습니다. 2017년 5월에 한국 경제를 인계한 문재인 정부가 해야 했을 일은 우리 경제의 강점, 약점, 기회, 위협요인을 구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이 과정을 건너뛰고 사전에 입력된 ‘좌파 DNA’대로 사고하고 행동했습니다. 경제의 지형지물을 살피는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경기 정점 근처에서 집권했습니다. 따라서 경기가 수축기에 들어갈 것을 고려해 경제를 보수적으로 운용했어야 하는데, 경기 호황에 접어든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이에 ‘증세’와 ‘최저임금 인상’을 한 겁니다.”
 
  ― 세계적인 추세는 법인세 인하였는데, 문재인 정부는 반대로 법인세를 인상했죠.
 
  “경제가 수축기에 접어든다는 지표를 봤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증세와 최저임금 인상은 오랜 ‘버킷리스트’였죠. 문재인 정권은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인하를 ‘부자감세’로 낙인찍고, 법인세 인상을 ‘부자증세’로 정당화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은 2017~2018년 2년 동안 29.1% 올랐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간과한 것은 ‘계속 고용된다면 임금이 오른다’라고 가정한 겁니다. ‘내가 직업을 잃는다면’은 생각하지 않은 겁니다. 문재인 정부가 버킷리스트를 채운 만큼 2018년에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렸어야 했지만, 결과는 반대였죠.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12배 큰 미국의 성장률이 한국보다 0.2% 높았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은 ‘돌멩이로 떡을 만들겠다’는 생각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실패 정책으로 남은 소득주도성장. 2018년 9월 6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현판식에서 만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왼쪽), 김동연 부총리, 뒤는 홍장표 위원장. 사진=조선DB

  조 교수가 말한 바로는 노무현 정부 임기 말기(2008년) 경제성장률은 3%, 이명박 정부 말기(2013년) 3.2%, 박근혜 정부 말기(2017년) 3.2%였다. 문재인 정부의 2019년 경제성장률은 2%다. 비정규직 비중은 노무현 33.8%, 이명박 32.5%, 박근혜 32.9%이지만, 문재인은 36.4%다. 국가 채무 비율로 대표되는 재정 건전성은 악화했다.
 
  “코로나19가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덮는 구원투수 역할을 했는데, 민낯은 처참합니다. 최악의 결과를 낸 이면에는 ‘국가가 최고의 고용주가 되어야 한다’는 착각, ‘돌멩이로 떡을 만들겠다’고 덤빈 소득주도성장, ‘씨 옥수수마저 먹어버리겠다’는 미래를 착취하는 전혀 기적적이지 않은 것들을 경제정책에 도입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국가개입주의를 통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서서히 변모합니다.”
 
  ―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는 건데요.
 
  “이분법적 진영논리에 함몰돼 있었으니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세계 곳곳에서 가장 소득불평등도가 큰 나라로 전락했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소득분배의 불균형 수치인 지니계수(GINI) 기준으로 한국의 소득불평등도는 중간입니다. 한국의 지니계수(0.295)는 프랑스(0.291)보다 높고, 그리스(0.333)와 미국(0.391)보다 낮습니다.
 
  우리나라만 불평등이 심해지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 공통의 문제입니다. ICT 기술 발달에 따른 생산구조 변화와 세계경제의 글로벌화에 따른 국제분업에서 시작됩니다. 경제가 산업화 단계를 넘어 지식기반 사회로 발전할수록, 고학력 사회가 될수록,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역설적으로 불평등 심화는 가속될 전망입니다. 디지털 디바이스도 불평등 심화에 일조합니다.”
 
 
  기업가의 활동 방해는 빈곤에 이르는 길
 
  법학자이자 금융 전문가인 이미현 교수의 진단도 비슷하다. 이 교수의 얘기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극단적인 실험 정책을 채택해 30~40대 정규직 노동시장이 붕괴하는 등 실업률이 급증했습니다. 또 내수감소, 수출부진, 경제성장률 급속하락, 투자부진, 소득격차 증가의 악순환을 가져왔습니다. 임금 수준이 높은 제조업과 금융업 등 양질의 일자리가 감소했고, 비정규직은 오히려 증가했으며, 정부 재정으로 만든 단기 일자리만 늘어나는 등 고용의 질(質)도 하락했습니다. 직원을 고용하지 않는 1인 사업 자영업자는 증가했지만, 직원을 고용하는 자영업자의 수는 오히려 감소했고 자영업 폐업률이 치솟았습니다. 이런 결과가 발생할 것을 정말 몰랐을까요? 이런 실정들은 단지 무능 차원에서는 설명이 잘 안 됩니다.”
 
  사회 곳곳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을 이어갔지만, 결과적으로 문 정부는 이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통계가 잘못됐다고 말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실정’으로 인해 자신들의 정책이 빛을 보지 못한다고, 또는 앞으로 몇 년 후에 호실적이 증명할 것이라고 포장했다.

 

조동근 교수의 얘기다.
 
  “문재인 정부는 해결책으로 포용적 성장을 주장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성장의 수혜가 소수에 그치지만, 포용적 성장은 많은 사람에게 두루 혜택을 준다고 합니다. 주장은 있지만 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소득주도성장이 왜 포용적 성장이고, 신자유주의가 왜 배제적 성장인지에 대한 논거가 없습니다. 분배를 통해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는 소득주도성장은 거짓 선지자의 ‘사술’(사악한 술책)로 이미 판명됐습니다.
 
  소득분배가 개선되려면 시장에서 민간 기업에 의해 일자리가 많이 제공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이 경영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돼야 합니다.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반(反)기업 정서, 거미줄 같은 규제, 다락같이 높은 법인세율,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현실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진영논리에 갇혀 자본가와 기업가에게 족쇄를 채우기 급급했습니다. 자본가와 기업가의 활동을 방해하는 것은 빈곤에 이르는 길입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경고
 
  문재인 정부는 다수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라는 미명하에 사법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선거관리위원회, 언론을 통제했다는 비판이 있다. 법학자들은 이렇게 바라봤다. 이미현 연세대 교수는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은 사라지고 선출된 권력은 거의 최고 존엄 수준으로 부상 중이다”라고 비판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을 때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나라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첫 번째 사람은 선량한 사람이야. 그런데 그다음에 어떤 종류의 인간이 이어받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행정부는 계속 비대해지겠지. 마침내 군주제에 도달할 때까지’라고 말입니다.”
 
  ― 그 말이 뜻하는 바는 뭘까요.
 
  “국가 경영을 담당하는 것은 행정부이다 보니 국민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국가 권력은 행정부로 집중될 수밖에 없고, 행정부는 태생적으로 비대해질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경고했던 이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인류가 고안한 장치가 삼권분립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삼권분립의 모양새를 갖추더라도 입법부와 행정부가 사실상 한통속이 되면 자유민주주의의 기초인 법치주의가 무너집니다. 법의 지배가 아니라 사람에 의한 지배가 되는 겁니다.”
 
  이 교수는 그 예로 히틀러의 나치 정권을 들었다. 1933년 3월 24일, 독일 의회는 민족과 국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법, 즉 ‘수권법’을 찬성 441, 반대 94로 통과시켰다. 그의 얘기가 이어졌다.
 
  “수권법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입법부가 행정부에 입법권을 위임하는 겁니다. 수권법 제정 이후 나치 정부는 그 어떤 견제도 받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법률로 찍어내면서 합법적으로 전체주의 국가로 접어들었죠.
 
  이런 역사적 경험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 등장한 것이 ‘실질적 법치주의’입니다. 국가 권력이 단지 형식적인 법률의 구속을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헌법적 가치의 구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작동하도록 요구하는 원리입니다. 실질적 법치주의에 따르면 법률은 자유・평등・민주주의 같은 헌법적 가치를 실현할 때만 비로소 법으로 인정됩니다.
 
  국회와 행정부에 있는 선출된 권력들이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법률이나 대통령령과 같은 위임명령을 마구 찍어낼 때, 국민을 위해 제동을 걸 수 있는 헌법 기관이 바로 헌법재판소와 법원으로 구성된 사법부입니다. 저는 실질적 법치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사법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사법부를 선출된 권력이 통제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국판 문화혁명’

 

2019년 10월 26일,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들이 공수처 설치 반대와 문재인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의 얘기다.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가르는 기준은 선출된 권력이 모든 국가기관을 통제하느냐입니다. 중국은 전인대(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주석을 선출하죠. 이것이 중국이라는 전체주의 체제에 대해 모든 권력의 통제가 가능하다고 내세우는 이유입니다.
 
  민주주의에서는 사법부와 헌재, 선관위, 언론은 선출된 권력을 견제하는 핵심 기관인데, 그 기관까지 선출된 권력이 특정 인맥과 인사 조치로 통제하려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준사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과 헌법이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기관들에 대해서까지 ‘선출된 권력이 임명된 권력을 통제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국회의원들이 중국이 아닌 한국에 있습니다.”
 
  ― 정부가 사법부를 이렇게까지 장악한 적이 없었나요.
 
  “사법부 독립이 이렇게 낮아진 것은 군사정권 이후 처음입니다. 사법부 독립성이 가장 발달했던 건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 시절이었습니다. 법원은 ‘3선 개헌이 헌법 위반이냐’가 논란일 때 ‘위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화를 내면서 대법원장에게 전화했는데, 그는 ‘분하고 억울하면 항소하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사법부의 기능과 독립성이 확실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형 정부 모델을 따랐기에 삼권분립이 확실한 나라였어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사법부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대놓고 장악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적폐청산 이슈를 빌미로 전반적 인사나 승진 문제를 특정 인맥 위주로 꾸리면서 선출된 권력이 사법부를 사실상 장악했습니다.”
 
  ― 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중국식 모델, 전체주의 체제가 완성됩니다. 선출된 권력이 제창하는 적폐 청산의 길로 모든 국가 기관이 합심하는, 그것이 마치 시대적 사명인 듯 사법부도 그리로 가는 ‘한국판 문화혁명’이 되는 겁니다.”
 
  ― 문재인 정부의 헌법 위반에 대한 지적도 많았죠.
 
  “너무 많습니다. 사법개혁을 한다면서 특정 성향의 법관을 중용했고, 공수처를 설치했죠. 국민을 적폐 세력과 개혁 세력으로 나눈 것은 12조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며, 무리한 분배위주 정책은 23조 재산권 보호 의무를 위반합니다. 114조에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울산시장 선거에 관여했고, 78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도 지켜지지 않았죠. 31조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돼 있지만 요즘 현장에서는 의식화 교육이 벌어지고 있고, 정부는 이를 조장합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과도하고 선별적으로 집회를 제한하는 것은 21조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에 위반됩니다.”
 
 
  미국은 정당한 요구했는데 마치 억지를 쓰는 듯 교묘히 포장

 

최원목 교수는 현재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과거 외무부에 근무했고,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에서도 일했다. 그는 인터뷰 중에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단순한 ‘무능’ 수준이 아니었다. 국민이 잘 모르는 사이에 적극적인 반미(反美) 외교를 시도했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정부가 친중(親中)・반일(反日) 외교를 드러내놓고 했지만, 적극적인 반미 외교에 나섰다는 것은 새로운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특정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외교, 즉 ‘NL(National Liberalization) 외교’를 했습니다. 민족 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외교를 여겼습니다. 그런데 NL의 최대 걸림돌인 미국을 대놓고 때리면 정권의 인기가 떨어지니까, 간접적으로 일본을 때림으로써 반미 외교 효과를 달성하려 했습니다.”
 
  ― 일본과 미국을 묶어서 봐야 합니까.
 
  “미일(美日) 동맹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축입니다. 우리가 일본을 때리면 미국 입장에서는 미국을 때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일본을 그렇게 집요하게 때린 것은 미국과 멀어지기 위해서입니다. 일본을 공략해 반일 감정을 촉발해 지지층을 흡수하고, 미국과 서서히 멀어지는 효과를 낳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NL 노선의 종주국인 북한·중국과는 가까워집니다. 물론 이를 통해 서방의 개입을 차단하고 자연스럽게 ‘민족자주’로 갈 수 있는 외교정책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 어느 지점에서 적극적 반미 외교라고 생각했습니까.
 
  “처음에는 ‘무능 외교’ ‘내수용 외교’라고 생각했는데 일본 때리기를 하면서 내세우는 논리가 전문가 입장에서 너무 말이 안 되는 게 많았습니다.
 
  가령 한일청구권 협정을 해석하면서 국제중재 제소 문제가 나왔습니다. 청구권 협정상 이미 ‘협정 해석에 이견이 있으면 일방의 제소로 국제중재로 회부’되도록 합의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중재를 갈지 말지를 선택할 사항이 아니란 겁니다. 청와대에서 ‘국제중재는 의무 조항이 아니라 선택 조항’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내보냈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청구권 협정 자체를 파기하자며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것도 아니면서, 이런 경우를 대비해 이미 합의된 절차조항까지 호도하며, 마치 우리가 국제중재를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청와대가 선언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역사적인 책임 측면을 부각시키며 국민감정의 문제로 전환합니다. 한미 FTA 재협상도 마찬가지입니다.”
 
  ―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다르게 보입니까.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 한쪽이 일방적으로 요청하면 ‘특별공동위원회’가 열리도록 합의돼 있습니다. 특별공동위원회 의제 중에 ‘협정 개정’이 있습니다. 많은 조항을 개정하는 대폭 개정협상은 재협상이 되는 겁니다. 미 트럼프 행정부 측의 한미 FTA 개정협상·재협상 요구에 대해 우리 쪽이 협상 개시 자체를 동의해줄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협상 자체는 특별공동위 개최를 통해 진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 측의 펜스 부통령까지 방한해서 FTA 개정협상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협상 개시는 양측의 합의로 해야 한다’며 석 달 정도를 버텼습니다. 미국의 요청에 우리가 응하는 것이 우리의 선택인 것처럼 말입니다. FTA 특별공동위원회 조항의 존재를 문재인 정부가 몰랐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 일부러 응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저는 일부러 분위기를 몰아갔다고 봅니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그 당시 통상교섭본부까지 그랬습니다. 미국이 계속 협상 요구를 하면서 마지막에 한미 FTA 폐기 선언까지 가려는 모습을 보이자 그제야 부랴부랴 통상교섭본부장을 워싱턴에 급파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입장 전환을 위한 준비작업을 했습니다. 마치 미국이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부당하게 압력을 넣어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협상을 개시하는 모양새로 말입니다.
 
  결국 일본에 대해서는 역사적 책임 문제로 돌려 압박하며 일본 정부를 배드가이(bad guy)로 부각시키고, 미국의 무리한 압박에 우리가 응하는 것처럼 포장해 피해자 행세를 하는 거죠. 미국은 협정 개정 절차에 따라 요구한 것인데, 마치 그것이 협정에도 없는 압박이고 우리를 굴복시키려는 것처럼 연출했습니다.
 
  한미 FTA 재협상의 뚜껑이 열리니 막상, 돼지고기 면세 철폐 기간 연장 외에 우리가 얻은 것은 거의 없습니다. 환율 투명성 조치 수용도 FTA 재협상과는 무관한 것인 양 시차를 조금 두고 발표했지만, 사실상 연계된 것이고, 결국 미국이 원하는 것을 다 줬죠.
 
  저는 그 시기에 남·북·미 정상회담(2018년 4월)을 싱가포르에서 열기 위해서 한미 FTA 재협상을 졸속으로 타결(2018년 3월)해 트럼프를 싱가포르로 불러들였다고 봅니다. 대북(對北) 정책의 분위기 조성과 타이밍 맞추기 용으로 통상 협상을 희생시킨 셈입니다. 당시 통상 협상 실무자들이 느꼈을 자괴감이 눈에 선합니다.”
 
 
  反헌법적 낭만적 통일을 꿈꾼 문재인 정부

 

2018년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삼지연 초대소에 마련된 오찬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한때 전 세계 언론의 1면을 장식했던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아무 소득 없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만남 역시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는 충분했지만 남북(南北) 관계 개선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조동근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반헌법적 낭만적 통일론과 사대주의만 있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7월에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 밝힌 신(新)한반도 평화구상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평화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통일은 평화가 정착되면 언젠가 남북 간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고 했습니다.
 
  원대한 통일에 대한 비전 같지만 반헌법적 자충수입니다.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돼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헌법 4조를 전면 부정한 겁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평화가 정착되면 남북 간 합의에 의해 통일이 이뤄진다’고 했습니다. 평화가 정착된다는 가정법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고수하고 있는데 어떻게 평화가 정착된다는 가정이 나옵니까.
 
  역사상 통일은 힘의 관계가 반영된 인위적 정치변동입니다. 대화에 의한 통일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북한과 하나의 민족이기에 합의에 의한 통일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몽상입니다. ‘민족’이라는 주술과 ‘평화’에 대한 환상으로 노예의 길을 자초하는 겁니다.”
 
 
  국민을 편 가르기 하면 독재 정부에 권력 집중돼
 
  학자들과의 대화는 부동산 정책 실패, 아마추어 코드 인사, 국가개입주의, 국격(國格) 훼손 등 거침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민을 편 가르기 하고, 미래 세대를 착취한다는 점에서 가장 우려가 묻어났다. 물론 이런 것들은 통계적인 숫자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이미현 연세대 교수의 얘기다.
 
  “국민을 편 가르기 해서 마치 어느 계층의 국민 불행이 다른 계층의 탐욕 때문인 것처럼 몰아갔습니다. 반기업 정서를 부추겨 기업과 노동자를 나누고, 소상공인과 집 없는 서민의 어려움의 근원은 높은 임대료 탓으로 돌려 임대인과 임차인을 나눴습니다. 코로나19 사태 때 의사와 간호사를 편 가르고 서로 대립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개인들은 원자화되고 고립되면서 사회의 파편화가 발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국가라는 명분으로 정부의 권한이 점점 확대되면 고립된 개인들은 모든 자원을 장악한 정부와 맞설 능력을 상실합니다. 결국 사회의 파편화와 독재 정부의 권력 집중화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의 얘기다.
 
  “문재인 정부는 누가 뭐래도 미래 세대를 착취한 정부입니다. 능력 이상의 지출을 하고 그 책임을 미래 세대에 떠넘기고 있습니다.
 
  국가 경영에 대한 피터 드러커의 조언이 있습니다. 드러커는 ‘효과성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며, 효율성은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효과적이지 못하고, 효율적이지 못한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됩니다. 정부는 도산하지도 도태되지도 않은 채 속으로 골병이 듭니다. 그럼 최악의 조합은 뭘까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거침없이 하는 것’입니다.
 
  공직자가 국가 예산을 낭비하고 기업가들이 이윤을 남기지 못하면 죄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중으로’ 죄를 짓고 있습니다. 국가 예산을 방만하게 운영하고 기업이 이윤을 내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2021.10.05.  조선,  이슈분석 3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