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 장군의 산티아고 순례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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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면서 따로 하는 지혜
혼자 길을 가더라도 목적지가 같고, 겪는 일이 같고, 추구하는 바가 같으니 순례자들은 쉽게 친구가 됩니다. 그러나 함께 걷더라도 항상 함께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생각과 동기와 몸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죠. ‘혼자 가도 함께 가고, 함께 가도 혼자 간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가끔 함께 걷다가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를 봅니다. 지나치게 기대하거나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순례를 하노라면 함께하면서도 따로 하는 지혜를 터득하게 됩니다. 네바라 지방에서 찍었습니다.
이미지 크게보기마을이 나타났을 때의 반가움
마을이 나타났을 때의 반가움
아침 해돋이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오래 걸은 뒤의 휴식은 꿀맛입니다. 휴식이 가능한 숙소에 도달하는 것은 하루의 작은 목표이자 희망입니다. 저 멀리 마을이 보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습니다. 자신보다 빠르거나 늦는 순례자를 뜻밖에 다시 만나는 기쁨도 큽니다.
샤워와 빨래를 한 뒤 쉬거나 마을 구경을 나갑니다.
소문난 맛집을 찾거나, 먹거리를 구입해 혼자 또는 여럿이 요리도 합니다. 먹고 걷고 잠자는 단순함의 반복 속에 성찰과 용서와 다짐이 이루어집니다. 흔치 않은 소중한 기회입니다.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에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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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적힌 빈 맥주병
특이한 카페가 눈에 들어옵니다. 널찍한 마당 곳곳에 세운 얇은 벽이 온통 맥주병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병마다 글이 쓰여 있는데, 이곳에서 사서 마신 사람들이 직접 쓴 자기 이름입니다.
오랜 시간 걸으며 성찰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순례자도 흔적을 남기고픈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나 봅니다. 길 곳곳에 어지러울 정도로 널려 있는 낙서도 아마 이런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유명 암각화나 벽화 등도 비슷한 연유로 후대에 소중한 유산이 되지 않았을까요. 갈리시아 지방에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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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가게
순례길은 때로 호젓합니다. 몇 시간을 혼자서 걸을 때도 있습니다. 인적이 드물 때는 사람의 흔적만 만나도 반갑습니다. 맛있는 과일이나 먹거리를 만나면 반가움은 배가 됩니다. 이렇게 천사가 마련한 가게에서 쉬어가는 기쁨은 말할 수 없습니다.
지키는 이도 없고 물건 값도 없습니다. 알아서 선택하고 알아서 값을 치르면 됩니다. 그래서 ‘기부DONATION’라고 합니다. 소감이나 의견을 메모로 남길 수도 있습니다. 순례자를 위한 현지인들의 배려가 몸으로 느껴집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네바라 지방에서 찍었습니다.
이미지 크게보기순례자를 위한 공짜 포도주
순례자를 위한 공짜 포도주
유명한 이라체 수도원 직전의, 물과 포도주가 나오는 ‘이라체의 샘Fuente del Irache’입니다. ‘이라체 포도주 저장고 1891년’이라 쓰인 벽면의 산티아고(성 야고보) 상 아래 두 개의 꼭지에서 물과 포도주가 나옵니다. 요즘이야 여러 물통으로 샘의 필요성이 크지 않지만 이 샘이 개설된 1891년 무렵에는 목마른 순례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기쁘게 초대하니 과하게 마시지 말고, 와인을 가져가려면 구입하라’는 당부가 적혀 있습니다. 순례자 및 모두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상징입니다. 네바라 지방에서 찍었습니다.
이미지 크게보기1,000년의 역사 품은 순례길 마을
1,000년의 역사 품은 순례길 마을
전형적인 순례길 마을입니다.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가는 순례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순례자 숙소와 식당, 교회와 가게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순례자 숙소는 공립은 하룻밤에 우리 돈 1만 원 미만, 사립은 그 배 정도입니다. 식당도 순례자에게는 일반인의 1/2~1/3 정도 비용에 맛좋고 양 많은 식사를 제공합니다.
많은 성당에서 순례자를 위한 저녁 미사를 봉헌하고, 작은 기념품을 선물로 주기도 합니다. 순례자에 대한 친절과 배려는 바로 1,000년이 넘는 순례길 마을의 문화입니다. 나바레 지방입니다.
본 기사는 월간산 8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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