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기점
바스크에서 느낀 인생의 맛.
마트에서 쇼핑 카트를 몰고 가는데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거 한번 드셔 보세요, 아버님!”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남자는 나 혼자다. “저, 저 말입니까?” “네, 아버님!” 얼마 전까지 나를 선생님이라 불렀는데 언제부터 아버님이 된 건가? 그것뿐이 아니다. 눈이 침침해 안과 전문 병원에 갔더니 여의사가 이렇게 말한다. “연세도 있으시니 공격적으로 검사해 보는 게 어떨까요?”
아, 기분 꽝이다. 이럴 때는 어디 훌쩍 떠나고 싶다. 핑계로 성공한 사람은 가수 김건모뿐이라지만 그래도 가끔 핑계가 필요한 법이다. 어떤 일을 위한 동기이자 명분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퇴직한 지 어느덧 10년,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한다는 핑계로 길을 떠나볼까.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설렘이라는 감각도 되찾으면 좋겠다.
재일 교포 서경식 선생의 책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일생에 한 번은 바스크 땅에 발을 디뎌보고 싶다던 글이 떠올랐다. 바스크는 피레네산맥 양쪽,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서쪽에 걸쳐 있으며 고유 언어와 풍습이 있지만 나라 없는 민족이다. 16세기 필리핀 마닐라를 건설한 스페인 탐험대장 레가스피와 항해사 우르다네타는 바스크족, 당시 세계 최대의 은 광산이 개발된 볼리비아 포토시의 핵심 인력도 바스크족이었다. 고래를 사냥하다가 먼바다로 눈을 돌린 강인한 민족이다.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순례길 출발지로 인기 높은 프랑스령 바스크 도시이다. 사람들은 왜 고통을 느껴가며 먼 길을 걷는 걸까? 상실, 전역, 퇴직,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때 길을 걷는다. 40, 50, 60 즈음하여 영혼이 부르르 떨릴 때도 걷는다. 이 점에서는 카를 마르크스의 말에 공감한다. “정신적 고통에는 해독제가 오로지 하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열심히 움직이는 육체적 고통이다.”
순례길을 대중화한 주역은 파울루 코엘류. 브라질의 평범한 직장인이던 그는 1986년 피레네산맥 넘어 걷다가 영감을 받아 1년 뒤 데뷔작 ‘순례자’를 발표했다. “나는 바뀌어야 했다. 내 꿈을 좇아야 했다. 그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작품 속 많은 문장은 작가 자신의 고백이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결핍은 상상력의 원천일까. 아니면 코엘류의 말처럼 삶이 기적임을 믿으려는 의지가 기적을 낳는 것일까. 이듬해 ‘연금술사’가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그는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다. 비현실적 꿈을 말할 때 흔히 ‘너 소설 쓰니?’라 비웃지만, 그는 소설로 꿈을 이뤘다. 코엘류의 성공 이후 산티아고 걷기는 열병처럼 퍼져 나갔다. 저마다 황금의 의미를 찾아서 걷고 또 걷는다. 이에 앞서 파리 특파원이었던 헤밍웨이도 피레네산맥과 바스크 땅을 걷다가 ‘태양은 다시 뜬다’를 써서 작가로 변신했으니 확실히 영감의 길이다.
멀리 가려면 가벼워야 한다. 순례길이 아닌 바스크 지방을 걷고 있는 나도 마음의 배낭에서 무거운 것을 하나둘 덜어낸다. 대표이사, 교수, 특파원 같은 과거 직함이다. 실력 이상으로 높게 날게 해준 고마운 날개들이지만 이젠 걷는 데 방해될 뿐이다. 단테는 중년을 ‘비타 누오바(Vita Nuova)’라 했으니 새로운 인생이다. 옛 날개를 걸친 채 새 인생을 만날 수는 없다.
바스크 주변은 미식으로 소문난 곳이 많다. ‘순례자’에도 먹고 마시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우리는 어린 양의 넓적다리 스테이크와 아티초크, 리오하산 최상급 포도주를 맛볼 수 있었다.” 미슐랭 별이 달린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게 소박한 맛집도 많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박물관으로 유명한 빌바오, 산페르민 축제와 헤밍웨이의 도시 팜플로나의 골목길에도 핀초바가 널려 있다. 핀초는 타파스와 비슷하지만 빵 조각 위에 다양한 식재료를 얹어 꼬챙이로 고정한 바스크의 간편식, 이 지역 화이트와인 차콜리를 곁들이면 완벽한 결합. 대구, 문어 등 해산물 요리가 일품이며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다.
미식의 도시 산세바스티안의 핀초바에 앉았다. 주문한 핀초와 음료를 내오며 바텐더가 건배로 ‘건강(Salud)과 사랑(Amor)과 재산(Dinero)’을 외치는데 옆자리의 나이 지긋한 바스크 남자가 티엠포(Tiempo)를 덧붙여야 한다고 거든다. 시간? 그렇다. 인생 후반전에는 관성의 법칙이 아닌 관승의 법칙으로 살아야 한다. 그게 뭐냐고? 몇 살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다. 최고 콘텐츠는 차별화된 삶 그 자체, 성공과 전성기의 정의도 스스로 내리자는 의미다.
영감을 자극한 대가로 바스크족 영감에게 한잔 사겠다고 했더니 내 등을 살짝 치고는 그도 한잔 샀다. ‘태양은 다시 뜬다’의 장면 딱 그대로였다. “바스크인 두 사람이 들어와서 한잔씩 사겠다고 고집했다. 그래서 그들이 한잔씩 샀고, 우리가 한잔씩 샀더니 그들은 우리 등을 찰싹 치고는 또 한잔씩을 샀다.” 헤밍웨이 소설에 나오는 스페인어를 써먹을 때가 되었다. “보라초! 무이 보라초!” 취했어, 많이 취했어! 포옹이 작별 인사였다. 조직에서 나온 뒤 우주 속에 혼자 뚝 떨어진 고독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은 아직 살 만하다.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기분, 베를린 대학 개혁자 훔볼트가 말한 ‘고독과 자유(Einsamkeit und Freiheit)’의 맛이 바로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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