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몰디브’ 푸꾸옥
오감이 만족할 휴양 여행
밤 비행기는 오랜만이었다. 6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푸꾸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새벽. 후덥지근한 공기에 입고 있던 경량 패딩을 벗지만 않았다면, 여기가 한국인지 베트남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이국에 왔다’는 감흥을 느낄 새도 없이 곧장 숙소로 향해 침대로 뛰어들었다. 몇 시간 후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에 반사된 반짝이는 햇살에 눈을 뜨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 한 채.
푸꾸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동남아를 찾는 국내 여행객들 사이 단연 가장 핫(hot)한 목적지다. 후추 농장과 피시소스 공장뿐이던 베트남 최남단의 작은 섬이 ‘베트남의 몰디브’가 된 지는 겨우 10년. 아직도 섬 절반 이상이 유네스코 생물보전지역으로 보호되고 있을 만큼 깨끗한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베트남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선(Sun) 그룹’ 주도로 개발되고 있는 푸꾸옥 남부는 아름다운 해변에서의 여유로운 휴식과 거대한 테마파크의 짜릿한 액티비티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크림 해변에서 푸꾸옥과 첫 만남
잠깐 붙인 눈을 떴을 때, 몸은 피곤했지만 침대를 벗어나 발코니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가 온 세상을 분홍색으로 물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벼운 옷을 걸치고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목적지는 숙소 앞 켐(Khem) 비치. ‘켐’은 베트남어로 크림이라는 뜻이다. 푸꾸옥의 수많은 해변 중에서도 모래사장이 유독 크림처럼 부드러워서 붙은 이름이란다.
슬리퍼를 벗어두고, 맨발로 베이지색 크림 위를 살금살금 내디뎠다. 고운 모래알이 카푸치노 크림 거품처럼 ‘푸스스스’ 소리를 내며 발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느낌이 신선했다. 10여 분쯤 걸었을까. 분홍색 하늘과 바다가 서서히 본연의 푸른빛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따뜻한 아침 햇살을 맞으러 나온 여행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고요하던 해변은 금세 활기로 가득 찼다.
한국에서 푸꾸옥으로 가는 비행기는 대부분 새벽 5~6시쯤 현지에 도착한다. 숙소 체크인 시간까지 반나절 이상 남는 애매한 시간이다. 숙소를 남부에 잡았다면, 첫 일정으로 켐 비치에서 일출을 보며 모래사장을 거닐어보는 것은 어떨까. 공항을 나와 택시로 20분만 가면 투명한 바다, 발에 닿는 고운 모래, 선선하고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기다린다. 푸꾸옥의 첫인상을 오감(五感)으로 남길 수 있다.
◇유럽풍 해변 마을·쪽빛 바다 한눈에 담기
푸꾸옥 남부의 중심지 ‘선셋 타운’에 들어서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분명 베트남인데, 지중해 해안 마을에 온 것 같다. 살짝 빛바랜 노란색 외벽에 주황색 타일 지붕, 아치형 창문까지 유럽에서나 볼 법한 건물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해변가 언덕을 따라 색색의 건물들이 늘어선 모습은 언뜻 이탈리아 바다 마을 ‘친퀘테레’ 같기도 했다.
알록달록한 선셋 타운 골목에서 당장 ‘인생샷’을 남기고 싶더라도 조금 참아보자. 푸꾸옥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콜로세움을 빼닮은 건물을 지나치면 혼똔섬으로 가는 케이블카 탑승장이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8km 케이블카에 타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탁 트인 쪽빛 바다와 선셋 타운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혼똔섬까지 이동하는 20여 분은 시시각각 변하는 발밑 풍경을 감상하느라 순식간에 지나간다. 특히 현지인들이 사는 어촌,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배는 오직 이 케이블카 위에서만 볼 수 있다.
◇무더위 날릴 ‘액티비티 천국’
케이블카를 타고 도착한 혼똔섬은 본섬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섬 전체가 하나의 테마파크, 그야말로 ‘환상의 나라’였다. 케이블카의 왕복 티켓 값은 어른 기준 65만동, 우리 돈 3만5000원이다. ‘베트남 물가에 비해 꽤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혼똔섬 안 놀이공원과 워터파크 입장료까지 포함된 금액이었다.
동남아의 뜨거운 햇살에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는데, 현지 가이드가 말했다. “더위를 한 번에 날릴 방법이 있는데, 한번 해볼래?” 고개를 끄덕인 게 잘못이었을까. 그의 손에 이끌려 당도한 곳은 롤러코스터 탑승장. 경기도 용인에 있는 놀이공원의 악명 높은 롤러코스터와 똑같이 목재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나무 선로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먼저 탄 사람들의 비명에 망설이는 사이 ‘철컹’. 안전바가 내려갔다. 이후 2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등줄기에 흐르던 땀은 차갑게 식었고, 팔에는 소름이 돋았으니 더위 사냥에는 성공한 셈이다.
더위를 좀 더 확실히 물리치고 싶다면, 워터파크 파도풀로 뛰어들어 보자. 별도의 입장 절차 없이 놀이공원과 연결된 통로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성수기 한국에서는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각종 워터 슬라이드를 대기 줄 없이 바로 탈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사람이 많지 않은 덕분에 튜브를 타고 우거진 야자수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며 여유를 즐길 수도 있다.
기왕 휴양지에 왔으니, 수영장 대신 바다에서 액티비티를 즐기는 방법도 있다. 혼똔섬에서 작은 모터보트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시 워킹’ 체험장이 나온다. 우주 비행사가 쓸 법한 헬멧을 머리에 장착하면, 땅 위를 걷듯이 바다 바닥을 디디며 물고기와 산호를 구경할 수 있다. 수압 때문에 귀가 먹먹해지고 숨이 가쁜 것도 잠시, 수백 마리 물고기 떼가 눈앞을 스쳐가자 “우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누군가 톡톡 어깨를 두드려 돌아봤더니, 담당 다이버가 내 손 위에 무언가를 턱 얹어주었다. 딱딱한 분홍색 표면에 별 모양, 살아 있는 불가사리였다.
◇완벽한 노을 아래, 사랑의 순간
오후 느지막이 혼똔섬에서 선셋 타운으로 돌아오는 케이블카를 탔다. 노을이 내려앉은 마을의 풍경에 그 이름이 왜 ‘선셋’인지 단번에 납득했다. 해가 다 지기 전에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키스 브리지’. 이탈리아 건축가 마르코 카사몬티가 설계했다는 이 다리는 조금 특이하다. 400미터 길이 다리 두 개가 30센티미터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견우와 직녀’에 나오는 오작교의 실사판이랄까.
주홍빛 태양이 수평선에 걸리자, 손을 잡고 다리 주변을 거닐던 연인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각각 다리에 올라 석양을 배경으로 ‘애절한 사랑의 순간’을 연출하기 위해서다. 한쪽 다리 끝에 서 있던 남성이 난간 밖으로 몸을 내밀고 반대쪽에 서 있는 연인의 얼굴에 다가서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관광객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마침내 맞닿은 두 연인의 실루엣은 꼭 우디 앨런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석양 아래 로맨틱한 풍경에 넋을 놓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쿵쿵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베트남 국기를 단 제트스키 행렬이 파도를 가르며 나타났다. 엄청난 속도로 바다를 자유자재로 누비는 것을 보고만 있어도 쾌감이 느껴졌다. 매일 일몰 시간에 맞춰 진행한다는 일명 ‘러브 허리케인’ 쇼. 제트스키 위 청년들이 횃불을 들고 물살을 갈라 하트 모양을 만들자, 이번에는 ‘키스 브리지’ 밑에서 물줄기와 함께 사람이 솟아올랐다. 플라잉 보드에 몸을 맡긴 채 수상 5~6미터 높이로 떠오르더니, 공중제비를 몇 바퀴씩 돌았다. ‘태양의 서커스’만큼이나 신기한 ‘바다의 서커스’였다.
어둠이 깔린 선셋 타운, 저녁 식사를 마친 관광객들은 다시 한 장소로 모여든다. 콜로세움을 본뜬 노천 극장이다. 관객 5000명이 모두 착석하자, 바다 위 무대에서 ‘키스 오브 더 시(Kiss of the sea)’ 쇼가 시작됐다. 공상과학(SF)소설 같은 영상에 맞춰 각종 멀티미디어 특수 효과와 레이저 쇼, 분수 쇼가 펼쳐진다. ‘투쟁 끝에 이뤄낸 사랑’이라는 영상 속 줄거리는 솔직히 뻔하다. 그러나 뻔한 것도 압도적 스케일로 보여준다면 감흥이 달라지는 법. 특히 쇼의 막바지에 7분간 지속되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압권이다. 밤하늘을 물들이는 색색의 불꽃놀이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탄성을 내지른다.
마지막 한 발이 터진 뒤에도 모두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다시 깜깜해진 하늘에 수천 개의 별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때 알았다. 푸꾸옥이 보여주는 진짜 쇼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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