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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 가을! 바다에서 건진 3가지 맛

오완선 2006. 10. 2. 23:08

 

가을이 깊어지면 맛도 한결 풍성해집니다. 그래서 가을은 맛의 계절, 진미의 계절이죠. 바다와 산, 들과 평야, 어느 한 곳 빠지지 않고 맛을 만들어 냅니다.

 

버섯과 전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식가들은 이 계절이 행복합니다. 맛이 풍성한 가을에 발맞추어, 맛객의 블로그 ‘맛있는 인생’ 에서도 스페셜을 준비했습니다.

 

바다에서 난 맛 세 가지를 한꺼번에 차렸습니다. 낙지, 대하, 죽합 이 그것입니다. 모두가 한창 맛이 들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맛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맛 하나>

맛!맛!맛! 맛이 좋아 맛조개인가?

 

 


(죽합, '맛', '맛조개' 라고 부른다. 잡아서 바로 회로 먹으면 부드럽게 오독 씹히는 식감에 단맛이 난다) ⓒ 맛객

 

껍데기가 곧게 뻗은 대나무를 닮았다. 해서 이놈의 본명은 ‘죽합’, 사람들은 죽합 대신 ‘맛’.  또는 ‘맛조개’ 라고 부른다. 얼마나 맛있으면 그리 부르는 걸까?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그 맛의 기억.... 3년 전의 일이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있는 장곡리 인근 갯벌에서 맛조개를 잡았다. 잡는 방법은 여느 조개와 다르다. 호미로 개펄을 파서 잡는 게 일반적인데, 맛 조개는 구멍에다 소금을 넣어서 잡는다. 호미나 삽으로 개펄을 5~10cm 걷어내면 구멍이 나온다. 구멍이라 해서 무조건 맛조개가 있는 건 아니다. 동그란 구멍에다 소금을 뿌려서도 안 됀다. 그래서는 백날가도 맛조개 구경도 못한다.

 

 

 

맛조개는 타원형 구멍에 산다. 이 구멍 속에 맛소금을 조금 넣고 기다리면 된다. 잠시 후, 순진한 맛조개는 소금의 짠맛을 바닷물이 들어왔다고(밀물) 오해해서 나온다. 이때, 순간을 놓치지 말고 재빨리 엄지와 검지로 딱 집어야한다. 일단 집는데 성공했다면 서둘지 말고 힘 조절을 해가며 천천히 뽑아내면 된다.

 

타이밍을 놓치거나 손길이 조금만 스쳐도 잽싸게 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맛조개, 이때는 미련 없이 포기해야한다. 한번 다시 들어가면 구멍을 아무리 파 봤자 맛조개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이처럼 맛조개를 잡는 방법도 인상적이지만 그보다, 즉석에서 회로 먹었던 맛조개 맛은 평생을 가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맛조개 잡는 법>

 

 

(삽이나 호미로 뻘 모래를 걷어내면서 죽합 구멍을 찾는다) ⓒ 맛객

 

 

(타원형 구멍 안에 소금을 넣는다. 일반소금보다 맛소금이 좋다) ⓒ 맛객

 

 

(구멍 근처에 손을 대고 죽합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 맛객

 

 

 

(죽합이 나오면 재빨리 잡는다)  ⓒ 맛객

 

 

(천천히 잡아 당긴다)  ⓒ 맛객

 

 

(죽합이 완전히 빠져나왔다)  ⓒ 맛객

 

 

 

[동영상보기: 모래 속으로 들어가는 맛조개]

 

 

9월 중순 경 다시 안면도를 찾았다. 목적은 맛조개, 요놈의 맛이 생각나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면 거짓말이고, 꼭 한번 다시 맛보고 싶었다. 원주민의 안내를 받아 맛조개 잡이에 나섰다. 준비물은 삽과 통 그리고 맛소금.

 

평일 갯벌은 한산해서 무료할 정도다. 조개 잡는 몇몇 사람만 보일 뿐, 바다마저 평온하다. 십여분.... 20여분.... 맛조개는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사람들이 잡아가 씨가 말랐나. 실망감이 밀려오니 의욕마저 사라진다. 허나 같이 간 후배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맛조개를 찾는다.

 

 

드디어 구멍발견! 타원형으로 생긴 이 구멍은 틀림없는 맛조개 구멍이다. 소금을 구멍 속에 넣고 숨을 죽였다. 구멍에서 물이 흘러나오나 싶더니 맛조개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았다. 껍데기 밖으로 나온 조갯살이 포스트잇처럼 노랗다.

 

식당에서 먹는 음식 맛의 중심에 요리사의 손맛이 있다면 바로잡은 조개 맛의 중심은 싱싱함과 현장감이 아닐까? 물에 살짝 흔들어 겉에 묻은 모래를 씻어냈다. 조개껍데기를 열고 조갯살을 떼 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조갯살을 보고 있노라면 징글맞기도 하다. 하지만 눈에 이쁘게 보이지 않은 것들이 더 맛있을 때가 있으니 맛조개도 그 축에 든다.

 

일단 맛부터 보라. 나처럼, “흐음~ 이 맛이야?”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에다 깨끗하고 깔끔한 느낌에 단맛은 그래서 맛조개구나 싶다. 이 맛의 경쟁상대라면 올 봄 군산에서 먹었던 새만금 생합 정도일 뿐, 아직 그 이상의 조개는 만나지 못했다.

 

 

 

첫 단추를 꿰고 나면 그 다음은 애들 장난처럼 쉬운 법, 맛조개 30여 마리를 몇 십분 만에 잡았다. 덩달아서 개불도 한 마리 나온다. 맛조개는조개의 귀족이라 할 만 하다. 고귀하고 깨끗한 속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속에 그 어떤 이물질이 들어가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해감이 필요 없는 맛조개의 비밀은 껍데기에 붙어있는 얇은 막에 있다. 껍데기와 껍데기 사이에 얇은 막이 붙어있어 외부 물질이 자기 몸속으로 들어오는 걸 차단해 준다. 그런 이유로 잡아서 바로 먹어도 모래알 하나 씹히지 않는다.나갔던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맛조개야 이제 안심하고 나오너라. 바닷물의 짠맛은 너희들을 잡기 위한 유혹이 아니니까.

 

 

 

<맛 둘>

돌아온 가을대하,

단맛에 구수한 풍미가 미각을 유혹 
     
 

 

( 대하가 맛있는 계절이다. 대하소금구이가 참 아름답다) ⓒ 맛객  
 

 
마치, 눈 내리는 날 피어난 붉은 동백꽃처럼 흰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참으로 아름답다. 굳이 일류 요리사의 손길을 타지 않아도 시각을 매료시키는 이놈은  천연의 재료가 주는 선물이다. 팔딱팔딱 힘찬 몸부림은.... 안다! 싱싱함을 자랑하는 녀석, 그 새우가 우리 곁에 돌아왔다. 단맛과 구수함으로 무장하고 맛의 계절에 존재감을 과시하러 왔나보다. 이때쯤이면 가을전어도 진미의 자리 한쪽을 새우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다.

 

 

(새우가 익어갈때 나는 구수한 냄새가 참 매력적이다)  ⓒ 맛객
 
소금 위에서 춤추는 새우, 붉은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시각의 즐거움을 주기 시작한다. 투명한 듯, 연회색의 표피는 해넘이를 볼 때처럼 한 눈 팔 새 없이 빨갛게 익어간다. 후각을 행복하게 해 주는 구수한 냄새가 미각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이쯤되면 맛에 둔감한 사람이라도 이 맛나는 새우를 외면하기란 쉽지않다.

 

기름 자르르 몸에 두른 새우껍질을 벗겨내면 하얀 속살이 내 입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불러온다. 그래 먹자. 먹다 죽은 구신(귀신)은 때깔도 곱다 하지 않던가? 초장과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든 말든, 먹는 이의 자유. 하지만 난 새우 자체의 맛만 느껴보고자 한다.

 

단맛에 구수한 감칠맛까지 있는데, 인공적인 맛을 더하는 건 자연이 준 재료에 대한 배신이다. 정 간이 맞지 않다면 새우기름에 구워진 천일염 한두 개 씹으면 되지.


 

(새우는 15cm 이상이면 '대하' 그 밑으로는 '중하' 라고 한다)  ⓒ 맛객

 

단맛에 구수한 감칠맛

 

이처럼 맛있는 새우를 맛본 곳은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 영목항. 이곳에서 자연산 새우와 만나면 또 하나의 가을 맛을 경험하게 된다. 새우가 튀어나오지 못하게 그물로 덮어놓은 대야에 뜰채를 집어넣자, 물속에선 전쟁이라도 난 듯 새우들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물을 찢을 기세로 힘차게 튀어 오른 새우, 이쪽저쪽에서는 물총이라도 쏜 듯 물방울을 튕긴다. 뜰채로 건진 새우는 재빨리 통속에 넣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바닥에서 높이뛰기를 열심히 한다.

 

새우는 맛과 영양에서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가 별로 없다. 자연산은 양식에 비해 색이 연하고 회색을 띄지만 양식은 까만색이다. 우리가 가을에 맛보는 새우는 '대하'라고 부르는데, 이는 새우 크기에서 나온 말이다. 보통 15cm 가 넘으면 '대하'라 하고, 그 밑의 새우는 '중하' 라고 한다.

 

가을 새우가 맛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우 단맛을 책임지는 아미노산 중 '글리신'이 가을과 겨울 사이에 최고로 많아진다. '오도리'라고 알려진 새우 회를 먹어도 단맛이 풍부하게 느껴진다. 구울 때 나는 새우 특유의 구수한 맛은 타우린, 아르기닌 등의 성분 때문이다.

 

통속에서 한 마리를 꺼낸 후 재빨리 뚜껑을 닫았다. 손에 잡힌 새우는 파닥파닥 꼬리 춤을 춘다. 먼저 대가리를 떼 내고 몸통의 껍질을 벗기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아니다. 대가리가 붙은 상태에서 껍질을 벗겨야 한다. 대가리가 붙은 상태와 떼고 껍질을 벗기는데 맛의 차이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 싶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맛은 좌우된다.

 

 

('오도리'(일본말) 라고도 부르는 새우회는 단맛이 참 좋다)  ⓒ 맛객
 
재빨리 껍질을 벗긴 후 대가리와 몸통 사이를 씹을 때 '이'에 전해지는 그 미세한 느낌은 1차적으로 느껴지는 새우회의 참 맛이다. 이어서 보드라운 살점에서 나는 단맛은 새우회에서 얻게 되는 완성된 진맛이다. 새우 대가리는 버리지 말고 소금구이로 먹으면 구수한 맛이 바다에서 나는 참깨라 할만 하다.

 

 

(새우 대가리에서는 고소한맛의 극치가 느껴진다) ⓒ 맛객
 
잘 구워진 새우 대가리를 통째로 먹어도 좋지만, 껍질을 벗기면 노란 뇌가 나온다. 이 부분을 젓가락으로 파서 음미해보라. 극히 적은 양이라 감질나지만 그래서 더욱 귀중한 맛 아니겠는가? 우리가 진미라 치는 거의 모든 음식은 지극히 적은 양 때문이다.

 

 

(기름 자르르 흐르는 대하소금구이)  ⓒ 맛객
 
새우 회를 먹는 사이에 한쪽에서는 새우 소금구이가 완성됐다. 풍미가 어쩜 이리도 좋을까? "그날, 전어 굽는 냄새에 바다도 취했다" 는 한 시민기자의 현을 빌려볼까? "그날, 대하 굽는 냄새에 바다도 취했다"

 

 

 

 

<맛 셋>

박속밀국낙지탕과 산낙지 회

 

 

(뻘낙지)  ⓒ 맛객

 

보리가 익어갈 무렵에 찾았던 왕산포, 이곳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서해안의 작은 포구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왕산포는 마치 삶의 쉼표 같다. 하지만 왕산포를 찾아간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낙지!

 

 

(서산의 별미 박속밀국낙지탕, 야들야들 쫄깃한 낙지와 깊고 시원한 국물맛이 참맛이다) 

 

 

(마지막으로 칼국수를 끓여먹는다)  ⓒ 맛객

 

밀국수를 끓일 때 갯벌에서 어린 낙지를 잡아다가 박속과 함께 끓여낸 게 서산 별미가 된 ‘박속밀국낙지탕’ 이다. 이 음식은 서산에서도 왕산포 일대가 유명하다. 사람들은 ‘박속밀국낙지탕’을 맛보고자 이 조그만 포구에 발을 들여놓는다.

 

 

관련기사: 박속밀국낙지탕

 

 

 

 

(낙지는 살짝 익혀야 질겨지지 않는다)

 

야들야들 보드랍고 쫄깃한 낙지가 갖가지 양념으로 위장한 낙지볶음과는 사뭇 다르다. 그저 재료에 감사하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좋은 재료에서 나는 맛은 꾸밈이 없어도 값을 한다. 국물 맛도 좋다. 낙지와 박속에서 우러난 국물은 향긋하고 시원해서 맛의 깊이가 느껴진다.

 

 

(누군가 나에게 낙지를 왜 먹느냐고 묻는다면 대가리를 먹기 위해서라고 말 하겠다)

 

커피 잔의 온기가 그리운 계절에 다시 왕산포를 찾아갔다. 이번 여행길에는 그분과 함께했다. 부부싸움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낮부터 찾아와 한 잔 하잔다. 가을마중도 할 겸 서산으로 가자고 했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들렀던 왕산포횟집 말고 우정횟집으로 들어갔다. 그때 약간 불친절했던 기억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탁월한 선택은 이런 걸까? 일하는 아주머니부터 주인까지 극 친절함을 보여준다. 질문에 답변도 세세하게 해 주는 그 마음과 행동거지에 음식은 먹기도 전에 맛있어진다.

 

 

낙지가 한 마리에 6,000~8,000원 선이다. 지난번에는 2,000원 선인데 그새 낙지가 자랐기 때문이다. 7,000원짜리로 댓 마리 주문하니 육수냄비에 나박 썰기 한 박속과 대파, 매운 고추가 담겨져 나온다. 박이 나오는 철이라 냉동 박이 아닌 생박이 나온다.냄비에 낙지를 넣고 살짝 데쳐서 소스에 찍어먹으면 된다.

 

 

아주머니가 낙지를 가져오면서 “산낙지로도 드세요?” 묻는다. “당연히 먹어야죠” 대답을 했다. 산낙지 맛을 모르면 낙지 맛을 모르는 것과 같지 않은가?

 

 

 

[동영상보기: 생동감 넘치는 산낙지 회]

 


낙지의 싱싱함을 파악할 땐 발을 보면 된다. 아주머니가 손으로 낙지를 잡자 발을 8갈래로 쫘악 펼친다. 싱싱함에 대해서 의심할 필요가 없는 낙지다. 접시에 썰어진 낙지발에는 힘이 넘쳐 긴장감마저 돈다. “기름소금도 주세요” 했더니 아주머니 맛객(글쓴이)보다 한 수 위다.


“이 낙지는 기름소금 찍지 말고 그냥 드세요.

그래야 낙지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


재료에 대한 자신감이 무척이나 맘에 든다. 아주머니 말대로 그냥 먹었더니 순수한 낙지 맛이 난다. 인공 조미료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천연의 미감이다. 그동안 기름소금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낙지 풍미까지 경험한건, 맛을 찾는 나그네 입장에선 참 행복한 순간이다.


좋은 안주와 술에 취하니 감성이 발동한다. 창 밖으로는 갯벌이 펼쳐져 있다.

 

“형님! 저 갯벌.... 왕산포... 즉석에서 시 한 수 지어보세요”

“시라....” 

 

갯벌을 한참 응시하더니 드디어 시를 꺼내 논다.

 

 

 

 

 

 

[다른 기사보기: 전어, 가을의 진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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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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