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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1>신안군 임자도-지도-증도

오완선 2012. 5. 4. 09:48

바다위 동동 세 쉼표… 튤립과 새우젓에 눈과 입이 즐겁다

전남 신안군 임자면 대기리 정수장에서 바라본 대광해변. 오후 2시쯤인데도 바다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몽환적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무려 12km나 되는 대광모래밭은 정작 안개에 젖어 보이지 않고, 임자승마장 건물(왼쪽)만 어렴풋이 눈에 잡힌다. 바다 건너 섬타리 육타리 섬이 아슴아슴하고, 오른쪽 민어잡이 배들이 그림처럼 떠 있다. 임자도를 키운 건 팔할이 모래다. 그 모래밭에서 대파가 쑥쑥 자라고, 그 고운 먼지모래를 먹고 흰꽃새우가 살을 찌운다. 모래갯벌엔 민어떼들이 알을 낳아 구물구물 새끼를 친다. 촬영=성치풍 신안군 임자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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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바다에 핀 꽃이다. 파란 물결에 점점이 피어난 꽃. 그 꽃에 배들이 쉬었다 가고, 갈매기가 새끼를 친다. 섬은 조류가 흐르다가 ‘멈춰 선 곳’. 그래서 ‘섬(立)’이다. 파도에 맞서 떡 버티고 서있다. 파도는 끊임없이 섬의 옆구리를 할퀸다. 섬은 그러거나 말거나 뭇 생명들을 포근히 감싼다. 섬과 섬 사이에 바다가 있다. 섬과 바다 사이엔 사람이 있다. 힘들 때 혼자서 훌쩍 가고 싶은 섬, 슬플 때 슬며시 찾아가 실컷 울고 싶은 섬, 그 섬들을 찾아 떠난다.》


아리랑 전장포 앞바다에

웬 눈물방울 이리 많은지



각이도 송이도 지나 안마도 가면서

반짝이는 반짝이는 우리나라 눈물 보았네

보았네 보았네 우리나라 사랑 보았네

재원도 부남도 지나 낙월도 흐르면서

한 오천년 떠밀려 이 바다에 쫓기운

자그맣고 슬픈 우리나라 사랑들 보았네

꼬막껍질 속 누운 초록 하늘

못나고 뒤엉킨 보리밭길 보았네

보았네 보았네 멸치 덤장 산마이 그물 너머

바람만 불어도 징징 울음 나고

손가락만 스쳐도 울음이 배어나올

서러운 우리나라 앉은뱅이 섬들 보았네

아리랑 전장포 앞바다에

웬 설움 이리 많은지

아리랑 아리랑 나리꽃 꺾어 섬 그늘에 띄우면서

-곽재구의 ‘전장포아리랑’에서


신안 임자도(荏子島)는 ‘들깨섬’이다. 한자 ‘荏子(임자)’가 ‘들깨’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왜 들깨섬일까. 섬모양이 들깻잎을 닮아서인가, 아니면 예로부터 들깨가 많이 나서인가. 요즘 임자도는 새우젓과 대파, 민어의 섬이다.

임자도 새우젓은 전국 생산량의 60%(신안산은 전국 85%)를 차지한다. 전장포(前場浦)가 바로 그 중심이다. 주민들은 전장포를 ‘앞장불’이라고 부른다. ‘마을 앞의 평평한 모래마당’이란 뜻이다. 1980년대 전후 새우파시로 흥청거렸을 정도로 이름났다. 임자도엔 한옥마을도 있다. 전남도에서 행복마을로 지정한 진리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전장포는 음력 오뉴월이 북새통이다. 새우잡이 배들로 가득하다. 모래처럼 희고 고운 백화새우가 득시글하다. 꼬리가 동백꽃처럼 붉고 살이 통통하다. 껍질이 얇고 육질이 단단하다. 그 새우로 담근 육젓(음력 유월에 담근 젓)을 으뜸으로 친다. 탱글탱글한 데다 달큼하고 감칠맛이 은근하다. 마을 산자락의 4군데 토굴(각 104m)에서 숙성시킨다. 요즘 게르마늄젓갈타운 조성이 한창이다.

임자도는 모래섬이다. 그래서 ‘임자도 처녀는 모래 서 말은 마셔야 시집을 간다’는 말이 나왔다. 온 섬이 모래로 이뤄졌다. 대파농사(1000여 ha)가 잘되는 이유다. 겨울철 서울 가락시장에 출하되는 대파는 대부분 임자도 대파라고 보면 된다. 대파는 물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물이 많아도 쉽게 죽어버린다. 비가 와도 물이 잘 빠지는 모래밭이 안성맞춤이다.

수백만 송이의 튤립이 피어나고 있는 대광해변. 

대광해수욕장은 폭 300∼400m에 길이가 자그마치 12km나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명사삼십리 모래밭길’이다. 걸어서도 3시간은 족히 걸린다. 이미 해변승마의 메카로 이름이 자자하다. 6월 해수욕장 개장에 앞서 열리는 말마라톤(20∼40km)대회는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 짜릿하다. 수평선을 배경으로 200여 마리의 말이 모래밭을 질주하는 모습은 장쾌하다.

대광해수욕장에선 매해 봄이면 튤립축제(올 4월 20∼29일)가 열린다. 수백만 송이의 튤립이 생글생글 웃으며 반긴다. 올 27, 28일엔 전국 처음으로 ‘전국아마추어 해변 골프대회’가 선을 보인다. 모래가 가늘고 부드러워 잔디골프와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첫날 근접상 및 장타대회, 둘째 날 9홀대회로 치러진다.

‘사람보다 꽃이 더 많고/꽃보다 튤립이 더 많은/작은 네덜란드/튤립의 나라/꽃들의 천국이다/지상의 천국이다/천국처럼 환해서 실명할 수도 있음/난시도 관람불가 근시도 관람불가/단! 꽃과 같은 사람만 관람허용/임자도엔 꽃 같은 사람만 가라’

-박섭례의 ‘임자도엔 꽃 같은 사람만 가라’에서

지도(智島)는 증도와 임자도의 목젖이다. 반드시 지도를 거쳐야 두 섬에 닿을 수 있다. 옛날부터 신안 북부 섬지방의 행정교육 중심지다. 구한말 위정척사운동에 앞장섰던 중암 김평묵(1819∼1891)이 바로 이곳에서 유배생활(1881∼1884)을 했다. 1901년 조성된 두류단엔 김평묵 최익현(1833∼1907) 등 조선후기 유림 거장들의 유적이 많다. 지도향교도 그 흔적 중의 하나다.

신안 북부 일대에서 잡힌 물고기는 지도 송도어판장으로 모인다. 임자도 부근에서 잡힌 새우나 민어 병어 꽃게 갑오징어도 마찬가지이다. 여름엔 발 디딜 틈이 없다. ‘물 반 병어 반, 물 반 민어 반, 물 반 새우 반’이다. 6월 병어축제가 그 시작이다. 복달임 음식으로 으뜸인 민어도 이곳 송도어판장에서 경매된 것들이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신안=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전국 첫 금연의 섬 증도는 별이 쏟아지는 갯벌천국▼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먹겠다/나무늘보처럼 천천히 눈뜨고/눈 감겠다/나무늘보처럼 천천히 사랑하고 사랑을 버리겠다/나무늘보처럼 세월을/둥글둥글 말아가겠다/나무늘보처럼/나무 위에서 풍찬노숙의 생을 보내겠다’

-우대식의 ‘나무늘보처럼’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소금밭인 태평염전(약 462만m²). 소금창고 60여 동에 연간 약 1만6000t의 천연소금을 생산한다. 신안=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증도(曾島)는 ‘시간이 멈춘 섬’이다. 나무늘보들이 사는 섬이다. 모든 것들이 느려 터져서 행복한 땅이다. ‘싸목싸목(느릿느릿)’ 걸어 다니고, 싸목싸목 밥 먹고, 싸목싸목 일한다. 싸목싸목 해가 떴다가, 엄금엉금 서산을 기어 사라진다. “부릉부릉” 자동차 엔진소리 대신 “차르르∼ 차르르∼” 자전거 바퀴살 소리가 감미롭다.

도대체 ‘빨리빨리’라는 단어는 쓸 일이 없다. 사람, 바람, 햇볕, 바다, 갯벌의 모든 생명이 서로 천천히 스며들어 살아간다. 모두가 시간의 주인인 슬로 시티인 것이다. 아빠엄마가 아이들 손잡고 맨발로 모래밭을 거니는 모습이 정겹다. 우리나라 가족여행객 중 전남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로 증도이다.

증도는 편안하다. ‘강 같은 평화’가 물밀 듯이 밀려온다. 주민(1700여 명) 모두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2010년 3월 전국 처음으로 ‘금연의 섬’이 됐다. 담배 가게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담배 냄새가 없는 맑은 공기의 땅. 하늘이 그만큼 말갛다. 깜깜한 밤, 별들이 반짝반짝 빛난다(Dark Sky). 가로등마다 갓이 씌워져 있어 ‘전깃불 시야방해’도 거의 없다. 밤하늘의 은 싸라기 같은 별들이 머리 위로 우수수 쏟아진다. 밤새 파도소리가 베갯머리를 적신다.

증도는 갯벌 박물관이다. 뻘갯벌, 모래갯벌, 뻘과 모래가 섞인 혼합갯벌이 종합선물세트처럼 골고루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국내 처음으로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됐고,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이자 국가습지보호지역이다.

할머니 빈 젖처럼 쪼글쪼글한 증도갯벌. 온갖 생명이 꿈틀대는 한반도의 자궁. 푸른 소금꽃이 다발로 피는 땅. 짱뚱어가 우글거린다. 눈이 툭 튀어나온 철목어(凸目魚). 머리는 크고 그 아래는 납작하다. 물이 빠지면 구멍에서 나와 갯벌 위를 살살 미끄러지듯 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물수제비뜨는 것처럼 물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노둣돌은 ‘옛날 말에 오르거나 내릴 때에 발돋움하기 위해 놓은 돌’이다. 그런 노둣돌을 썰물 때 드러나는 갯벌 위에 쌓아 건너 다녔던 길이 바로 노둣길이다. 증도엔 갯벌의 노둣길이 많다. 물이 빠졌을 때 섬과 섬을 잇는 길이다. 병풍도와 대기점도를 잇는 노둣길은 무려 18km나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 7, 8월 병풍도는 온통 맨드라미꽃으로 덮여있다. 황홀하다.

증도와 꽃섬 화도(花島)를 잇는 노둣길 1.2km는 갯벌생태길이다. 뻘배 타고 짱뚱어를 낚시로 잡는 홀치기도 볼 수 있다. 칠게 방게 붉은발농게 백합 토막눈썹갯지렁이가 지천이다.

▼매화그림에 풀어놓은 유배의 한▼

문인화가 조희룡과 임자도


이흑암리 마을 입구의 조희룡기념비. 돌에 새긴 그의 매화그림이 용처럼 꿈틀거린다.

조희룡(1789∼1866)은 조선후기 중인 출신의 문인화가이다. 그는 나이 예순이 넘어 임자도에서 3년간 귀양살이(1851∼1853)를 했다. 대머리에 모난 얼굴 그리고 성긴 수염과 가늘게 찢어진 눈.

그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키는 컸지만(180cm 이상), 몸이 빼빼 말라 비실비실했다. 입은 옷이 무거워 보일 정도였다니 오죽했으랴. 그가 걸어가면 펄럭이는 옷자락만 보이고, 정작 사람은 그 옷 안에 숨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섬 생활은 외로웠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거친 산, 말라비틀어진 고목, 기분 나쁜 안개, 차가운 공기뿐’이었다. 그는 그의 거처에 ‘萬鷗館(만구음관)’이란 현판을 달아놓고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다. 만구음관이란 ‘만 마리의 갈매기가 울부짖는 집’이란 뜻. 그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당시 그린 ‘거친 산, 찬 구름 그림’이란 뜻의 ‘荒山冷雲圖(황산랭운도)’나 괴이한 바위그림 ‘괴석도(怪石圖)’도 마찬가지다.

그는 매화에 미친 사람이었다. 사방 매화병풍을 둘러친 방에서 매화벼루에 매화 먹을 갈아 매화그림을 그렸다. 스스로 호를 ‘梅(매수·매화늙은이)’라고 짓고, 매화차를 마시며 매화시를 읊조렸다. 그의 매화그림은 힘차고 거칠었다. 매화등걸이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비늘처럼 꿈틀거렸다.

그가 살았던 임자도 이흑암리 바닷가 오두막엔 빈터만 남아있다. 당시엔 집 앞마당까지 바닷물이 들락거렸지만, 지금은 제방을 쌓아 바다가 멀찌감치 떨어져있다. 그가 좋아하던 매화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又峰趙熙龍謫居址(우봉조희룡적거지)’라는 표지석이 빈터 구석에 서있다. 동네입구엔 조희룡 공원이 만들어졌다. 그의 매화그림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