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대형마트 파격가 비결은 해외 소싱… 대형 패커와 직거래도

오완선 2012. 5. 11. 15:03

[국내 대형마트 업계, 해외 소싱서 활로 찾는다]
해외 패커 직접 찾아나서 - 대농장 가진 패커와 사전논의
기획 단계부터 전 과정 협력… 유통 거품 빼고 품질은 높여
수입처·가공처 달리하기도 - 장어 가격 치솟자 美서 수입
가공은 기술 좋은 대만에 맡겨 가격 30~40% 낮출 수 있어

49만9000만원짜리 LED TV와 골프채 풀세트, 1만7900원짜리 원두커피(1㎏)에 1만4500원짜리 랍스터까지. 소비자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이 상품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대형마트가 해외 직소싱을 통해 파격적으로 가격을 낮춰 판매한 품목들이다.

해외 산지(産地)나 협력사로부터 직접 상품을 공급받는 해외 소싱은 대형마트 업계가 사활(死活)을 걸고 매달리는 분야다. 대형마트의 상품 기획력과 유통 파워를 보여주는 잣대라는 평가다. 소비자를 향한 가격 경쟁력이 해외 소싱 능력에서 갈리기 때문이다. 업체마다 불필요한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을 낮추는 새로운 소싱 시스템 개발도 활발하다.

수입 과일을 담당하는 이마트의 임영호 바이어(왼쪽)가 지난 4월 미국 프레즈노 인근 농장에서 스테밀트사(社) 데이브 마틴 이사와 함께 체리 작황을 살펴 보고 있다. /프레즈노(캘리포니아)=진중언 기자

최근에는 신선식품 분야에서 해외 소싱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채소나 과일, 수산물 등은 산지 작황에 조업량에 따라 가격이 요동치는 대표적인 품목이다. 국산 농산물의 '보완재'를 찾는 해외 소싱으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를 낮추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대형 패커와 협력, 입맛에 맞는 상품 들여온다

유통업체가 소비자에게 저렴한 상품을 공급하려면 대규모 생산자와 손을 잡고 가격을 낮출 수 있는 협상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마트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대형 패커(packer)를 발굴하는 해외 소싱으로 수입 농산물의 판매 가격을 낮추고 있다.

패커는 과일이나 채소 생산자가 상품의 선별·포장 작업을 거쳐 일부 유통 단계까지 책임지는 업체를 말한다. 글로벌 과일 브랜드인 (Dole), 델몬트(Delmonte)도 일종의 패커이다.

대형 패커와 직접 거래하면 맨 먼저 불필요한 유통 단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상품 생산과 선별·포장, 수출을 위한 선적까지의 단계를 한 업체가 맡기 때문이다. 최종 판매자는 패커로부터 대량으로 들여온 제품을 판매에 적합한 소용량으로 나누어 진열만 하면 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지난 1월 산지 소 값 폭락에도 한우(韓牛) 소비자 가격은 요지부동인 문제점이 지적됐다. 이에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대형 패커를 육성해 유통 단계를 간소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마트 수입 과일 담당 임영호 바이어는 4월 중순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대형 패커 두 군데를 방문했다. 이마트가 2008년부터 체리를 들여오는 스테밀트사(社)는 연 매출 7억달러(8000억원) 규모의 미국 내 최대 체리 패커이다.

허니듀 멜론을 거래하는 D.F.I는 캘리포니아주에만 7300만㎡(약 2200만평)의 농장을 보유하고 멜론과 오렌지, 토마토 등을 재배하는 업체이다.

유통업계는 농산물 해외 소싱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품질 관리를 꼽는다. 제품이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지 못하면 가격 정책이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영호 바이어는 "대형 패커와 직거래를 하면 농산물의 품질을 생산 단계부터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품 기획, 프로모션 전략을 짜는 단계부터 생산자인 패커와 협의를 해서 입맛에 맞는 상품을 들여오고 이를 바탕으로 판매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통업체는 농산물 재배 패커에게 상품화에 적합한 기준을 요구하고, 수확 후 납품 시기까지 조율할 수 있다. 현지 패커는 국내 대형 유통업체에 안정적인 물량을 납품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자신의 브랜드를 홍보하는 효과를 얻는다.

이마트는 거래량이 늘면서 D.F.I에 허니듀 멜론에 '이마트 fresh'라고 적힌 스티커를 부착하도록 요구해 관철했다.

로스 반 블랙 D.F.I 부사장은 "이마트와는 연간 프로그램에 따라 생산량을 조정하고 납품 계획을 세운다"며 "일회성으로 계약을 하고 물건을 받아가는 단순 수입업자와는 차원이 다른 거래처"라고 말했다. 그는 "이마트 납품 멜론은 사이즈와 색, 모양과 당도 등을 2차례 검사한다"고 덧붙였다.

수입처와 가공처를 구분한 '네트워크 소싱'

롯데마트는 올해 민물장어 가격이 폭등하자 수입과 가공을 이원화하는 '네트워크 소싱'이라는 새로운 해외소싱 시스템으로 가격 경쟁력을 강화했다. 국내산 장어는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2010년 400t 정도였던 장어 치어(稚魚·어린 물고기) 입식량은 올해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해 일본 대지진 여파로 일본산 장어가 외면을 받으면서 대만산 장어 가격도 크게 올랐다.

롯데마트는 미국산 민물장어에 눈을 돌렸다. 미국산 민물장어는 품질이 우수한데도 현지에서는 거의 소비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자연산임에도 산지 판매 가격이 대만·중국 등 아시아권 국가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롯데마트는 미국산 장어를 국내 소비자에게 인기가 좋은 훈제 장어로 상품화하기 위해 대만업체에 가공을 맡겼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장어 가공 기술은 대만 업체들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미국에서 들여오는 원재료가 워낙 저렴하기 때문에 기존 제품보다 30~40% 정도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국내산 갈치 가격이 치솟자 대만산 갈치에 이어 아프리카 세네갈 갈치를 발굴했다.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명절 선물세트와 자반고등어 상품으로 기획해 국내산보다 가격을 대폭 낮춰 판매하기도 했다.

이용호 롯데마트 수산팀 선임상품기획자는 "국내산 수산물의 가격 상승세가 오래갈 수 있다"며 "해외 소싱의 다변화를 통해 품질이 우수하고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소비자에게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패커(Packer)

상품의 생산과 선별·가공은 물론 일정 단계의 유통까지 책임지는 업체. 사전적으로는 '포장(packing)을 하는 업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