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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이명박·박근혜가 왜 이집트 벽화에?

오완선 2012. 8. 26. 11:22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장도리'의 만화가 박순찬 화백의 <나는 99%다>
ⓒ 비아북 제공

"개인적으로 꼽은 '올해 가장 인상적인 책 표지'."

최근 트위터에 어떤 책의 표지 사진이 올라오자 이런 반응이 나왔다. 이어 "기발한 표지"라는 감탄과 함께 "대한민국 생태계 써머리(요약본)"라는 좀더 진지한 평가가 뒤따랐다. 도대체 어떤 표지이길래 트위터 이용자들을 이렇게 뜨겁게 달군 것일까? 

이명박과 박근혜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어떤 책'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이 표지는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고대 이집트의 벽화를 차용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 파라오와 왕족, 성직자, 노예 등이 나오듯, 이 표지에도 한국사회의 '권력계급'을 암시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장 높은 자리에 이건희 삼상그룹 회장이 앉아 있다. 이 회장의 의자 아래에는 법원과 검찰이 바짝 엎드려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했던 '삼성공화국'의 한 단면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이 회장 옆에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나란히 서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다.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손에는 각각 그들의 상징인 '삽'과 '박정희 깃발'이 들려 있다.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삽질공화국'과 부친의 '후광정치'를 꼬집은 것이다. '앵무새'로 형상화된 언론은 흥미롭게도 이 회장과 이들 권력 사이에 배치했다. 이를 통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압도된 한국언론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러한 권력계급에 맞서는 계급도 나온다. '민중' 혹은 '시민'으로 불리는 이들은 '촛불'과 '스마트폰'으로 저항한다. 하지만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계급 등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불법사찰하고, 권력계급들은 이를 흡족하게 바라본다. 헌법에는 '권력의 원천'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이들의 처지는 이렇게 초라하고 무력하기만 하다. 

17년간 <경향신문> 시사만화 '장도리'를 그려온 박순찬 화백은 최근 펴낸 <나는 99%다>(비아북)에서 이러한 '1% 대 99%의 현실'을 끈질기고, 날카롭게 담아냈다.

<나는 99%다>는 4대강 사업 강행, 천안함 침몰, 민간인 사찰, 검사 스폰서, 종편 사업자 선정, 한미FTA 체결, G20 정상회의 개최 등 지난 2010년부터 최근까지 일어난 굵직한 일들을 펼쳐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평면적인 네 컷'에 그치지 않는다. 청와대, 검찰, 여당, 재벌 등 '1% 권력'이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구조'를 보여준다. 

박 화백은 "99%의 사람들이 전쟁터와 같은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생계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덕택에 상위 1%는 그들의 기득권을 영원히 지속시키는 방법을 구상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독자들은 <나는 99%다>에서 '99%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무서운 현실과 마주한다. 특히 정치권력이 바뀌어도 죽지 않는 자본권력은 '1% 권력'의 중추이다. 이는 책 표지에서 이건희 회장이 정치권력, 사법권력, 언론권력 등 쟁쟁한 권력보다 위에 그려진 이유다.

 박순찬 화백은 한 초등학교 2학년의 시를 '어느 재벌의 시'로 비틀었다.
ⓒ 박순찬 화백 제공

"99%가 99%의 현실을 인식할 때 1%에 저항할 수 있어"

이집트 벽화의 가장 밑에는 노예 등으로 구성된 일꾼들이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로 치면 이들은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그 찬란했던 이집트 파라오 문명도, 자본주의의 스마트혁명도 없었다. 하지만 고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들은 뒷전이고, 찬밥이다. '1% 권력'의 중추가 자본권력이라는 사실은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무거운 현실을 반추한다.   

그래서 박 화백은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한 초등학교 2학년의 시를 패러디해 '어느 재벌의 시'로 비틀었다.

'정부가 좋다. 나를 예뻐해주어서. 비밀금고가 좋다. 나에게 돈을 주어서. 언론이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노동자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박 화백은 "고통스럽더라도 우리가 처한 현실을 똑바로 살펴보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스스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민주시민의 의무이지 권리"라며 "99%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99%에 속해 있다는 현실을 인식할 때 1%의 세력이 그들의 기득권을 천년만년 지속시키기 위해 99%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박 화백의 당부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99%다>를 펴낸 박순찬 화백은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천문대기과학과를 다녔다. 대학 시절 만화동아리 '만화사랑'에서 노동운동과 관련한 만화유인물과 걸개그림을 그렸고, 이후 95년부터 지금까지 17년간 <경향신문> 시사만화 '장도리'를 연재해오고 있다.

<만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인 박시백 화백은 "시대의 자화상을 기록하는 박순찬은 우리 시대의 김홍도, 신윤복이다"라고, <신과 함께>의 저자인 주호민 화백은 "작가의 안전이 걱정된다는 독자들의 댓글이 장도리의 정신을 말해준다"고 호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