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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투하후의 일본 히로시마 [WW-2 Japan Hiroshima After the Atomic Bomb]

오완선 2012. 12. 1. 17:48


Hiroshima After the Atomic B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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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말기 일본의 항복을 선언케한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원폭투하 후의 광경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 공군 폭격기 ’에놀라 게이’의 승무원이었던 모리스 R. 젭슨 소위가 지난달 3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향년 87세.

젭슨 소위의 부인인 몰리 젭슨은 8일 남편이 극심한 두통으로 며칠 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젭슨 소위는 지난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B-29 폭격기에 무기 시험 담당관으로 탑승해 폭탄 회로와 타이밍 장치 등을 점검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1946년 군에서 제대한 뒤 UC버클리 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에너지국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젭슨 소위는 그가 수행한 역할이 조명받는 것을 피해왔지만, 에놀라 게이 탑승 당시 사용했던 물건을 경매에 부치거나 원폭 투하 당시의 경험을 알리기 위해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03년 인터뷰에서 원폭투하에 대해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파괴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인과 일본인 수십만 명의 목숨을 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젭슨 소위의 사망으로 에놀라 게이에 탑승했던 12명의 승무원 중에는 항법사였던 시어도어 판 커크(89) 대위만이 현재 유일하게 생존해있다.
입력 : 2010.04.09 15:08












photo from : ww2 data base


Scrap: Sturmgechutz 슈트름게슈쯔 의 밀리터리와 병기( Military & Weap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