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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산행기-9 (눈땡이가 밤땡이가 되다)

오완선 2012. 12. 1. 18:24
백두대간 산행기-9 (눈땡이가 밤땡이가 되다)

오늘 걸어야할 구간은 어제 내려왔던 산성터에서 이화령까지 직선거리는 3km남짓 되므로 심정적으로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고 산길로 이어간다고 해도 기껏해야 얼마나 되겠냐 생각하였다간 큰 오산이다.

백두대간 길은 어느 한곳 공짜가 없는 길이라 입만 가지고 나불거리고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을 집합시켜 재교육시키기에는 이만한 곳은 없다.

여의도의 3급수는 3구간, 2급수는 2구간, 1급수는 1구간, 그 지망생과 추종자들은 단 하루라도 이런 교육장에 처넣고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야 그 악취가 사라져서 우리가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과 공기를 마시고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아침부터 서서히 열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어제 내려왔던 쉬운 길을 찾아가는데 귀신한테 홀렸나 도대체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이까짓 것하며 방향만 잡고 경사면을 치고 올라가는데 잔가지는 회초리가 되어 면상을 후려갈기는데 갈수록 태산이라 작전상 몇 번을 후퇴와 재 돌격을 하며 부근에서 빙빙 돌다보니 천금같은 시간만 흘러가고 본 게임도 시작하기 전에 박살이 나고 있다.

한마디로 진짜 돌아 뿔것다. 능선은 뻔히 앞에 보이는데 길을 찾지 못해 또라이 짓거리만 하고 있으니 그동안 나름대로는 산전은 자신 있다고 폼을 잡았는데 동네 뒷산에서 개망신을 당하고 있다.

가장 확실한 지점까지 후퇴하여 지도를 꺼내어 다시 확인했다. 지도를 봐도 동네뒷산 길은 감을 잡을 수 없고 현 위치에서 각도를 측정하여 그 각도를 따라 올라가면 낙엽에 미끄러지고 또 회초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하여튼 그 곳에서 2시간 정도 뻘 짓을 한 것 같다.

어찌 어찌하여 정확한 길을 찾아 올라가니 이리도 쉬운 길을 한번 놓치다 보니 누구한테 창피해서 말도 못 하겠고 내 혼자 당하여 그나마 숨기고 살지, 만약 아래 애들이나 몇 명 끌고 와서 이런 꼴을 당했으면 나는 그 길로 잠수를 해야했다.

본 게임의 스타트라인에서 요이 땡하고 출발했으나 얼마 못 가서 바로 앵꼬를 알리는 빨간 불이 들어와 순대부터 채워야 했으니 오전 한나절을 또라이 짓으로 몽땅 소비해 버렸다.

오늘 구간은 백두대간에서 제일 약 올리는 구간이다, 코스가 괴상하게 생겨먹어서 출발점에서 목적지 이화령까지는 직선거리로는 3km밖에 되지 않는데 근 20km를 뺑뺑이 돌리는 구간이다.

구간의 전체모양은 길다란 시험관처럼 생겨서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은 뻔히 보이는데 길다란 시험관을 한 바퀴 돌아가야 하므로 이 곳 지형은 특이하여 이런 지형 속에 한번 갇히면 백만 대군이라도 입구만 봉쇄하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고 백두대간으로 사방이 봉쇄된 이 곳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 분지마을이다.

이렇게 시험관처럼 생겼으니 이 곳이야 말로 바로 여근곡의 형세고 어제 머물었던 은티마을의 남근석을 가져와 이 곳 여근곡에 꽤 맞추면 음양의 조화가 맞아떨어지므로 남근석을 세워둔 이유를 아이큐가 두 자리만 넘으면 저절로 알 수 있었다.

시험관 길이는 대략 7-8km이므로 한바퀴를 돌면 15km는 거뜬하고 시험관의 지름은 2km정도 되므로 구간 전체는 20km정도로 어림잡을 수 있고, 이 곳 여근곡의 형세는 규모가 커서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고 지도에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그어보지 않으면 알아 낼 수가 없다.

은티마을의 남근석의 유래를 설명하는 글들을 보면 여근곡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설명하고 있으나 눈에 보이는 동네마을의 좁은 틀에서 이리저리 때려 맞춰서 여근곡의 지형이라며 자랑스럽게 글을 쓰고있는 것을 보면 하품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검증되지 않은 무수한 잡것들이 마치 진리처럼 행세하고 있고 이런 것을 척결하는 작업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심정적으로는 수긍을 하더라도 존심이 상해 극구 부인하며 전혀 별개의 요상한 것을 들먹이며 학맥, 인맥, 권위 등으로 포장된 기득권으로 방어를 하고 있으니 갑갑할 노릇이다.

이 구간의 중간지점에 자리잡은 산은 1000고지가 약간 넘은 백화산이며 김천의 황학산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황학산을 지나면서 이화령을 향한 완만한 경사면을 걷게되고 군데군데 산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세상에 이런 주인 없는 산밤도 지킴이가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완전히 눈땡이가 밤땡이가 되었으니 공짜 좋아하면 큰일나는 줄 그 때 제대로 알았다. 세상에 말벌이란 놈이 지킴이 일줄 누가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오늘은 일진이 고약한 날이다. 시작부터 사람 열 받게 하더니 막판에는 말벌한테 제대로 한방 얻어맞았으니 후끈거리고 부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배낭에서 중화제를 꺼내 응급조치를 하고 내일까지 산행하기로 하였으나 일진이 좋지 않아 오늘로 땡치기로 마음먹고 마눌한테 수안보로 내려오라고 전화를 했다.

수안보에서 하루 밤 쉬고 내일 미륵사지와 연풍성지를 구경하고 송계계곡에서 데이트하자고 꼬시면 구미가 당길 것이니 얘기 꺼리는 된다.

일단 수안보까지 오면 그 다음부터는 코가 끼어 이화령이던 어디든 호출하는 곳까지 와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처음부터 이화령으로 오라고하면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고 염라대왕한테 뇌물 받치는 꼴이다.

이화령으로 내려서는 길목에는 군부대가 있고 초병이 아랫길로 우회하여 내려가라며 길을 안내하여 나무계단을 따라 고갯마루로 내려서니 이미 어둠이 찾아들고 있다.

마침 조령산을 산행하고 떠나려는 서울 모 지역의 산악회버스가 있어 꼽사리끼어 수안보까지 편하게 도착했고 수안보에 도착했다는 마눌의 전화가 때맞춰 울려온다.

그 날밤은 대간 길에서 모처럼 호사를 누려봤고 다음날 천주교의 성지인 연풍성지와 폐사터인 미륵사지, 앞으로 이어갈 역사의 현장인 조령관문과 이 땅의 고개마루에 처음 길을 열었다는 하늘재를 미리 둘러보며 다음날을 기약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