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산행기-8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 이판사판이다)
오늘부터는 상주 땅과는 이별하고 문경 땅으로 들어선다.
지금까지 내륙의 중심에서 북으로 달려온 백두대간은 문경에서부터는 동으로 방향을 틀어가며 예천과 영주 땅을 지나서 동쪽의 봉화 땅에 이르게 되고 문경에서 봉화까지는 위도차이가 거의 없어 백두대간이 한반도를 크게 횡단하는 구간이며 경북의 지붕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남지방은 조령과 죽령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고 백두대간을 걷기 전에는 나 역시 이런 뜻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는 문경에서 태백으로 한반도를 횡단하는 백두대간의 남쪽에 있다는 뜻이다.
이 곳 늘재에서 청화산을 오르고 다시 대야산을 거쳐 장성봉과 희양산을 넘어가면 기호지방(경기도와 호서지역인 충청도의 약칭)과 영남을 연결하는 문경새재인 조령의 이화령에 이르게된다.
청화산의 높이는 984m로 속리산부근의 봉우리 고도는 보통 900-1000m급이 많으며 옛부터 복지로 생각한 속리산자락은 이 곳 청화산부근으로 전해오고 있고 이 곳에서 그동안 정들었던 상주 땅과는 이별하고 문경 땅에 첫발을 내딛게된다
이 곳에서 대야산을 넘어 오늘의 목적지인 지방도가 지나는 버리미기재를 향해 길을 이어가야 하는데 백두대간의 전 구간을 통틀어 대야산 정상구간처럼 위험한 곳은 없다.
대략 50m정도의 높이의 수직 절벽을 허름한 외줄을 타고 내려와야 하는데 죽어도 좋다는 각오가 없으면 오도가도 못하는 구간이고 그 때만해도 "죽기밖에 더 하겠냐" "이판사판 공사판이다"라는 깡다구로 내려왔지만 지금 그 곳을 다시 내려오라고 하면 이제는 제 정신으로 돌아왔으니 절대 그런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곳 대야산에는 희한하게 생긴 집채만한 바위덩어리들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며 이름도 괴상하여 기억하기도 힘든 마귀할멈통시바위, 미륵바위, 코끼리바위, 대문바위 등이 길손을 반기고 속리산 권역의 수많은 연봉들이 운무 속에 절경을 자랑하고 있지만 절벽구간에 질려버린 기억에 때문에 다른 기억들은 그 속에 묻혀 갈수록 희미해 지고있다.
이 구간을 지날 때는 어느덧 가을문턱에 들어서서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어 빗 길에 산행을 하느라 그렇지 않아도 추워서 몸이 떨리는데 설상가상으로 수직절벽을 만나서 오금을 절여가며 비에 젖은 외줄을 잡고 내려와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미처도 단단히 미쳤고 산행의 기본을 무시해도 너무 무식하게 무시를 했던 것 같다.
지금도 백두대간 길을 생각하면 무슨 일이던 미쳐야 할 수 있고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미친 사람은 누가 말릴 수 도 없고 자기 스스로 제정신이 들어야 비로써 멈출 수 있다고 본다.
그 길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솔직히 말하면 그 어떤 미사여구로 어떻게 포장을 하던 그것은 모두 거짓이며 나를 지탱했던 마지막 힘은 오직 오기하나 뿐이었으며 어떤 이성적인 설득도 이런 오기는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을 뿐이다.
전나무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버리미기재에 도착하면 하루해가 저물어 그 곳에서 산행을 멈추고 다음날을 준비하며 그 날밤은 악랄하기로 소문난 희양산을 무사히 통과하기를 기원해야 했다
희양산을 오르기 전에 장성봉을 오르고 장성봉 정상에서 주의를 하지 않으면 길을 잃게 되어 있다. 정상을 찍고 다시 10여 미터 빽하여 각도를 잡아 능선을 찾아야 하나 무심결에 정상에서 이어진 능선 길을 곧바로 따라가면 도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며 허탈한 심정으로 다시 되돌아 와야 한다.
추풍령의 눌의산에서 한번 제대로 당하여 정상에서 하산을 할 때에는 꺼진 불도 다시 확인하기로 작정하였으므로 이곳에서는 무사히 통과하였고 다음은 희양산을 올라야 하는데 이번에는 밧줄도 없는 20여 미터의 바위절벽을 기어올라가야 했다. 배낭만 없으면 다람쥐처럼 올라가겠지만 등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안전 밧줄을 한 가닥 설치해 놓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속 모르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하고 기를 쓰고 죽기살기로 겨우겨우 올라가면 고약한 스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길을 막고 더 이상은 갈 수 없다고 방해를 하고 있다.
이곳 희양산에는 봉암사라는 사찰이 있고 이 사찰은 근 20여 년 동안 일반 참배 객은 접근도 할 수 없고 일년에 부처님 오신날 하루만 개방하는 특이한 절 집이다. 대한불교 조계종단에서 특별수도원으로 지정하여 봉암사는 물론 희양산 일대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고 보초를 서는 지킴이 스님들의 해괴한 궤변은 희양산은 봉암사 소유인 사유지임으로 사전허락 없이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것 걱정할 필요가 없다. 평일이고 비가 오는데 보초스님도 농땡이 칠 것이며 설사 못 가게 막더라도 정중하게 합장하고 나무관세음보살하면 자비를 베풀 스님들이 어찌 할 것인가. 혼자서 조용히 수도승처럼 걸어가니 그냥 주의나 환기시키며 지나가게 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이런 통박 때려잡는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그동안 이골이 생겼다.
원래 절 집이라는 곳은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곳인데 오는 사람을 몽둥이를 들고 막고 있으니 어찌됐던 고약한 절 집이고, 멀리서 희양산을 바라보면 머리가 홀랑 벗겨진 민 대머리 돌산으로 전직 어떤 도둑놈의 대갈통처럼 생겨 먹었고 정상에서도 정상이 아닌 것 같아서 무쟈게 헷갈리지만 경관 하나는 일품인 곳이다.
비가 갈수록 많이 내리고있어 야영은 틀렸고 오늘도 제 몫은 하였으므로 산골마을을 찾아 하룻밤 보내려고 이름 없는 산성 터에서 충북 괴산 쪽으로 40여분 산길을 내려와 연풍면 은티마을로 하산하였다.
이 곳 마을의 성황당 전나무에는 남근석을 세워두고 마을의 평온을 기원하는 옛 풍습이 지금도 전해 내려오고 있고 민박집은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 있다.
긴긴 밤 노느니 염불한다고 내일 구간의 도면을 몇 번씩 체크하며 코스를 머릿속에 입력시키다보니 마음은 이미 이화령에 도착해있다.
오늘부터는 상주 땅과는 이별하고 문경 땅으로 들어선다.
지금까지 내륙의 중심에서 북으로 달려온 백두대간은 문경에서부터는 동으로 방향을 틀어가며 예천과 영주 땅을 지나서 동쪽의 봉화 땅에 이르게 되고 문경에서 봉화까지는 위도차이가 거의 없어 백두대간이 한반도를 크게 횡단하는 구간이며 경북의 지붕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남지방은 조령과 죽령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고 백두대간을 걷기 전에는 나 역시 이런 뜻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는 문경에서 태백으로 한반도를 횡단하는 백두대간의 남쪽에 있다는 뜻이다.
이 곳 늘재에서 청화산을 오르고 다시 대야산을 거쳐 장성봉과 희양산을 넘어가면 기호지방(경기도와 호서지역인 충청도의 약칭)과 영남을 연결하는 문경새재인 조령의 이화령에 이르게된다.
청화산의 높이는 984m로 속리산부근의 봉우리 고도는 보통 900-1000m급이 많으며 옛부터 복지로 생각한 속리산자락은 이 곳 청화산부근으로 전해오고 있고 이 곳에서 그동안 정들었던 상주 땅과는 이별하고 문경 땅에 첫발을 내딛게된다
이 곳에서 대야산을 넘어 오늘의 목적지인 지방도가 지나는 버리미기재를 향해 길을 이어가야 하는데 백두대간의 전 구간을 통틀어 대야산 정상구간처럼 위험한 곳은 없다.
대략 50m정도의 높이의 수직 절벽을 허름한 외줄을 타고 내려와야 하는데 죽어도 좋다는 각오가 없으면 오도가도 못하는 구간이고 그 때만해도 "죽기밖에 더 하겠냐" "이판사판 공사판이다"라는 깡다구로 내려왔지만 지금 그 곳을 다시 내려오라고 하면 이제는 제 정신으로 돌아왔으니 절대 그런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곳 대야산에는 희한하게 생긴 집채만한 바위덩어리들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며 이름도 괴상하여 기억하기도 힘든 마귀할멈통시바위, 미륵바위, 코끼리바위, 대문바위 등이 길손을 반기고 속리산 권역의 수많은 연봉들이 운무 속에 절경을 자랑하고 있지만 절벽구간에 질려버린 기억에 때문에 다른 기억들은 그 속에 묻혀 갈수록 희미해 지고있다.
이 구간을 지날 때는 어느덧 가을문턱에 들어서서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어 빗 길에 산행을 하느라 그렇지 않아도 추워서 몸이 떨리는데 설상가상으로 수직절벽을 만나서 오금을 절여가며 비에 젖은 외줄을 잡고 내려와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미처도 단단히 미쳤고 산행의 기본을 무시해도 너무 무식하게 무시를 했던 것 같다.
지금도 백두대간 길을 생각하면 무슨 일이던 미쳐야 할 수 있고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미친 사람은 누가 말릴 수 도 없고 자기 스스로 제정신이 들어야 비로써 멈출 수 있다고 본다.
그 길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솔직히 말하면 그 어떤 미사여구로 어떻게 포장을 하던 그것은 모두 거짓이며 나를 지탱했던 마지막 힘은 오직 오기하나 뿐이었으며 어떤 이성적인 설득도 이런 오기는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을 뿐이다.
전나무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버리미기재에 도착하면 하루해가 저물어 그 곳에서 산행을 멈추고 다음날을 준비하며 그 날밤은 악랄하기로 소문난 희양산을 무사히 통과하기를 기원해야 했다
희양산을 오르기 전에 장성봉을 오르고 장성봉 정상에서 주의를 하지 않으면 길을 잃게 되어 있다. 정상을 찍고 다시 10여 미터 빽하여 각도를 잡아 능선을 찾아야 하나 무심결에 정상에서 이어진 능선 길을 곧바로 따라가면 도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며 허탈한 심정으로 다시 되돌아 와야 한다.
추풍령의 눌의산에서 한번 제대로 당하여 정상에서 하산을 할 때에는 꺼진 불도 다시 확인하기로 작정하였으므로 이곳에서는 무사히 통과하였고 다음은 희양산을 올라야 하는데 이번에는 밧줄도 없는 20여 미터의 바위절벽을 기어올라가야 했다. 배낭만 없으면 다람쥐처럼 올라가겠지만 등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안전 밧줄을 한 가닥 설치해 놓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속 모르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하고 기를 쓰고 죽기살기로 겨우겨우 올라가면 고약한 스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길을 막고 더 이상은 갈 수 없다고 방해를 하고 있다.
이곳 희양산에는 봉암사라는 사찰이 있고 이 사찰은 근 20여 년 동안 일반 참배 객은 접근도 할 수 없고 일년에 부처님 오신날 하루만 개방하는 특이한 절 집이다. 대한불교 조계종단에서 특별수도원으로 지정하여 봉암사는 물론 희양산 일대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고 보초를 서는 지킴이 스님들의 해괴한 궤변은 희양산은 봉암사 소유인 사유지임으로 사전허락 없이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것 걱정할 필요가 없다. 평일이고 비가 오는데 보초스님도 농땡이 칠 것이며 설사 못 가게 막더라도 정중하게 합장하고 나무관세음보살하면 자비를 베풀 스님들이 어찌 할 것인가. 혼자서 조용히 수도승처럼 걸어가니 그냥 주의나 환기시키며 지나가게 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이런 통박 때려잡는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그동안 이골이 생겼다.
원래 절 집이라는 곳은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곳인데 오는 사람을 몽둥이를 들고 막고 있으니 어찌됐던 고약한 절 집이고, 멀리서 희양산을 바라보면 머리가 홀랑 벗겨진 민 대머리 돌산으로 전직 어떤 도둑놈의 대갈통처럼 생겨 먹었고 정상에서도 정상이 아닌 것 같아서 무쟈게 헷갈리지만 경관 하나는 일품인 곳이다.
비가 갈수록 많이 내리고있어 야영은 틀렸고 오늘도 제 몫은 하였으므로 산골마을을 찾아 하룻밤 보내려고 이름 없는 산성 터에서 충북 괴산 쪽으로 40여분 산길을 내려와 연풍면 은티마을로 하산하였다.
이 곳 마을의 성황당 전나무에는 남근석을 세워두고 마을의 평온을 기원하는 옛 풍습이 지금도 전해 내려오고 있고 민박집은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 있다.
긴긴 밤 노느니 염불한다고 내일 구간의 도면을 몇 번씩 체크하며 코스를 머릿속에 입력시키다보니 마음은 이미 이화령에 도착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