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여행

백두 대간 --1--

오완선 2012. 12. 1. 18:36
그동안 나에게 밀린 숙제가 하나있었다.

그것은 백두대간의 완주기록을 정리하는 것이며, 4년 전 백두대간을 완주할 당시만 해도 그 모든 것은 기록보다는 영원히 마음속 추억으로 간직하려고 기록을 하지 않고 간단한 메모형식인 비망록으로 기록해 둔 것으로 만족했으나 이제 그 기록들을 정리하며 추억의 조각들을 차곡차곡 쌓아두려고 한다.

백두대간의 완주의 꿈을 가지고 이에 도전하기에는 많은 갈등과 준비를 해야 했다.

왜, 백두대간을 완주를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확실한 답이 있어야 했고 그 다음은 체력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자신을 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산행의 모든 기본지식을 습득해야만 했다.

백두대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설악산 넘어 고성 진부령까지 험준한 산길 700km를 걸어야하는 대장정이다.

이 험난한 길을, 이런 자학의 길을 왜 스스로 자초하려 하는가.

나는 그 길을 걸으며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이런 반성을 통해 남은 삶을 보다 풍요롭게 살아보자는,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들어 중간결산을 해보자는 내 자신을 위한 필요성을 느꼈고

그 다음은 커 가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내가 떠나 없어지더라도 그들이 어려울 때 아버지가 힘들게 백두대간을 걸었던 그 기억을 그들이 기억한다면 그 길을 걸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길을 무사히 완주하여 성취욕을 만끽하게 되면 그 성취의 기쁨은 내 나머지 삶과 늘 함께 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이런 이유들은 허약한 내 의지에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하는 자기 합리화며 그 이전에 산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그간 세월들의 마지막을 장식하고자 하는 무모함이 더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무수한 고통을 감내하며 그 길을 모두 걸은 지 4년이 지나서 그 고행의 시간들을 지금 회고하면 그 시간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값진 시간들이었다.

돈이 있다 하여 그 길은 갈 수 없는 길이며, 체력이 있다 하여 그 길은 갈 수 없는 길이며, 시간이 있다 하여 그 길은 갈 수 없는 길이었다.

살아가며 무엇보다 크게 도움을 받은 것은 길이 왜 道인지, 道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게 되었으며 나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조금 있다면 그 길을 걸으며 이 땅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며, 마지막 걸음을 멈추고 진부령 표지석을 붙잡고 통곡했던 그 아픔이 아직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리라

지리산부터 설악산까지 길고 긴 산길을 여러분과 함께 이제 추억 속으로 떠나려고 합니다.

(2편) 백두대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산행기를 쓰는 일은 쉽고도 어려운 작업이다. 산행구간별 코스와 시간, 그리고 구간별 주의사항을 기록하여 후답자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산행기는 매우 쉬운 작업이나 이런 산행기는 일반독자에게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하고 나 역시 이런 산행기는 읽어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이 곳에 어떤 형식으로 백두대간의 기록들을 풀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 본다.


백두대간은 한반도를 든든히 받쳐주는 등뼈이고 우리민족의 얼과 기상은 이곳에서 태동되었을 뿐 아니라 반만년을 지켜온 우리 삶의 터전이며 이 땅의 한 많은 사연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어 백두대간은 바로 한반도이며 한반도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백두대간을 모르고는 한반도를 얘기할 수 없으며, 백두대간을 모르고는 동서분열의 그 근원을 알지 못하며, 백두대간을 모르고는 우리문화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으며, 백두대간을 모르고는 이 땅을 지켜온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였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런 사실을 먼저 알아챈 일제는 우리민족의 정기를 말살시키기 위해 백두대간이란 단어를 영원히 사라지게 하려고 이 땅을 갈기갈기 찢어, 찢어놓은 산줄기를 산맥이라 이름하고 여러 산맥으로 이 땅을 난도질을 해버린 것이다.

우리의 전통지리관은 산맥이 아니라 산경(山經)이다. 산경의 의미는 경(經)에는 실사변이 있어 실처럼 끊김이 없이 모두가 하나라는 일체사상이 깃들어 있고 인체의 신경처럼 모든 산이 유기적으로 연결됨을 의미하나 산맥은 각자 독립된, 분단을 뜻하고 있는 점이 큰 차이다.

우리선조들은 백두산에서부터 지리산까지 산줄기가 하나로 연결된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 부분이 늘 숙제로 남아 산을 찾을 때마다 의문을 가졌고 산줄기가 하나라는 사실은 끊임이 없다는 뜻이며 끊임이 없다는 것은 바로 물줄기를 건너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줄기를 건너지 않고 지리산에서부터 백두산까지 갈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준 것은 뜻밖에도 아주 간단한 이치였으며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그것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領)의 원리다. 산은 스스로 물의 경계를 이룬다는 이런 평범한 뜻 속에 백두산에서부터 지리산까지 모두가 하나의 산줄기란 심오한 이치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산자분수령을 달리 해석하면 물은 절대로 산을 넘지 못한다는 뜻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감으로 산을 굽이굽이 돌아 흘러가게 되어있어 높은 산 능선을 넘어 흐를 수 없음으로 물줄기는 산줄기를 끊지 못하여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하나로 연결된다는 논리적 설명이 가능했다.

이런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산줄기를 찾아내어 기록으로 남긴 우리의 위대한 지리서가 바로 "산경표"이고 "산경표"는 우리 산줄기를 인체에 비교하여 등뼈부분을 "백두대간"이라 이름 지었고 갈비뼈부분을 "정맥"이라 이름하여 우리 산줄기를 하나로 이해했고 산의 계보를 정립해 두었던 것이다.

이런 위대한 지리서인 "산경표"가 1980년대 초에 인사동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대학산학부를 중심으로 구간별로 백두대간탐사가 시작되었고 끝내 이를 모두 하나로 연결시켜 산경표의 정확성이 입증되었다.

이제 남은 숙제는 일제가 악의적으로 난도질한 우리의 산줄기를 산맥이 아닌 산경으로 바로잡는 일이나 이 또한 기존 지리학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긴 세월을 허송하고 있으며 이렇게 세월을 허송하는 동안 백두대간은 난 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다.

(3편) 지리산은 어떤 산인가

이제, 백두대간의 첫발을 내딛고자 지리산 천왕봉을 향하는 김포발 진주행비행기에 몸을 싣고 내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며 간절한 염원을 실어 백두대간의 모든 산 어미에게 굳은 약속을 했다.

"이 길이 끝날 때까지만 저를 지켜 주십시요, 더도 부탁하지 않겠습니다. 그 다음 모두는 당신의 뜻에 따르렵니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코스는 여러 곳이 있으나 최단 거리는 경남 산청군 중산리에서 올라가는 코스다.

버스에서 내려 매표소까지 10여분 걸어가는데 20Kg 정도의 배낭무게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려 웃음이 나온다. 10여분 걸어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거린 넘이 백두대간은 무슨 얼어 죽을 백두대간이냐,

산은 누구나 처음이 가장 힘들지만 초보자는 자기만 힘든 것으로 착각하여 더욱 힘든 것이며 오랜 경험자는 그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초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초보자와 경험자의 가장 큰 차이다. 매표소에는 바리게이트가 내려 저 있고 공단직원이 출입을 막고 있다. 일몰시간이 지나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표지가 공단직원의 말을 대신하고 있다.

"수고하십니다. 서울서 전화하고 내려온 사람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7시까지 도착하신다고 미리 연락해서 그 시간까지는 편의를 봐 주려고 했습니다. 야간산행은 금지하고 있으니 로타리산장까지만 진행해야 합니다."

"네, 로타리산장에서 자고 내일 새벽에 산행을 시작하겠습니다."

매표소에서 로타리산장까지는 1시간30분 정도 소요되어 가는 도중에 어둠이 찾아와 랜턴 불을 밝혀가며 산장에 도착해 무거운 배낭을 벗어 던지고 이른 잠을 청했다.

내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천왕봉을 올라야 일출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 이곳까지 필히 도착해야 했다. 입구 매표소에서는 새벽5시부터 입장을 시키므로 그 시간에 산행을 시작하면 일출을 보지 못해 시작부터 아쉬운 부탁을 미리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떠 시계를 보니 3시가 조금 못 되었으나 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기는 틀렸구나 생각하니 이른 새벽부터 산행할 이유가 없어 조금 더 잠을 자다가 5시경에 일어나 짐을 꾸렸다.

로타리산장에서 천왕봉까지는 2시간 반이면 올라가지만 계속 오르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많은 구간이다.

특히 이 구간은 바위를 밟고 지나는 구간이 많아 오늘처럼 등산로가 젖어 있을 때에는 미끄럼사고를 주의해야 하므로 조심조심 걸어야 했고 초반에 몸 상태를 잘 만들어 장거리산행에 대비해야 하므로 쉬엄쉬엄 오르기로 했다.

나는 산중에서 지리산을 제일 좋아한다. 설악산처럼 빼어난 경관은 없지만 그 육중한 힘과 포근함이 조화를 이뤄 늘 편안함 속에 강인한 힘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지리산을 가장 많이 찾고 있으며 일년에 두세 번 지리종주를 한 때가 많아 종주의 횟수를 기억하지 못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서 틈틈이 이 골짝 저 골짝을 쑤시고 다녀 지리산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였으나 이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그것을 일깨워준 산이 바로 지리산이기도 하다.

지리산을 찾아 갈 때에는 산행을 한다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안식을 찾아 고향을 찾아가는 귀향 객의 마음이고 언제나 설렘이 가득했다.

천왕봉을 오르기 직전에 천왕샘이 있어 그곳에서 목을 축이고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커다란 정상석이 반기는 천왕봉에 도착하니 어느덧 3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생각보다는 30분 정도 더 걸린 시간이었지만 평소보다. 배낭무게가 무거워 천천히 운행하며 컨디션을 조절하였기 때문에 몸 상태는 아주 잘 만들어진 느낌이다.

그 동안 수없이 천왕봉을 올라왔지만 오늘처럼 새로운 각오로 이 곳을 오른 적이 없어 오늘의 감상은 여느 때와는 달라 지리신령에게 빌고 또 빌며, 이 길을 모두 끝내고 다시 이 곳에서 신령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노라고 약속하며 의지를 다지고 또 다졌다.

백두대간의 능선 길은 거의가 도의 경계선을 이루고 있지만 지리산지역은 경남의 산청, 함양, 하동구간을 걸어가게 되며 삼도봉을 지나서 전남의 구례 땅을 밟게 된다.

오늘 운행구간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아직 정하지 못하였다. 구간을 잘 모르면 계획을 세우기가 오히려 용이한데 구간을 잘 알기 때문에 미리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운행하며 몸 상태를 살펴보고 결정키로 했다.

시야가 좋으면 세월아 내월아 하며 바위에 걸터앉자 콧노래 부르며 산바람에 땀방울을 식혀가며 쉬엄쉬엄 가겠지만 가랑비가 내리고 있으니 산천유람은 애당초 틀린 얘기다.

지리산을 찾을 때마다. 가장 가슴 아픈 곳은 두 곳이 있다. 한곳은 지금 지나고 있는 천왕봉아래 제석봉이다.

이곳은 생명력을 잃은 수많은 고사목이 옛 울창했던 산림지역임을 말해주고 있으나 황폐하게 된 이유는 해방직후에 이곳에서 벌목을 하다가 문제가 되자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일부러 방화를 하여 그 당시 참화의 흔적인 고사목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어 반 백년이 지난 슬픈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다른 한 곳은 피아골의 깊은 골짜기에 깊게 서린 피맺힌 가족의 사연이다. 파르티잔이란 이름아래 이곳 무수한 골짜기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그 분들 중 한 분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곳에서 숨을 거둔 나의 삼촌이었고 그 분들 중 많은 분은 내 마을의 어른들이었다.

지금도 9순의 어머님은 "막내야! 지리산은 가지 마라"를 가끔 말씀하신다. 나는 이 곳 지리산을 거닐 때마다. 어머님의 그 말씀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미뤄 짐작하며 그 뜻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 어머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으로 믿고 있다.

수십 갈래의 지리능선 중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주능선구간이 백두대간길이지만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지리산으로 구분해야 하는지 그 자체가 모호하여 3도(경남, 전남, 전북) 5개군(함양, 산청, 하동, 구례, 남원)에 산재된 모든 산줄기를 지리산으로 이름하여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고 이 지역의 특산물은 모두 지리산특산물로 소개되고 있다.

지리산은 여러 봉우리들의 집합체이며 커다란 산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봉우리의 집합으로 집합의 원소들이 봉(峰)이고 대(臺)이다.

지리산의 최고봉은 1,915m의 천왕봉으로 남한에서는 한라산 다음의 최고봉이며 1,500m이상의 고봉을 20여 개 거느린 커다란 산이다. 백두대간길인 주능선에는 10여 개의 봉우리가 뱀처럼 꿈들 거리며 동에서 서로 길게 도열해 있고 그 길이만 대략 30km정도이고 오늘 걸어야 할 능선 길은 평균고도 1,200m의 하늘 길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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