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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산행기-3 (지리산과 덕유산을 연결하라).

오완선 2012. 12. 1. 18:33
(고속도로를 무단횡단)

여원재에서는 남원시와 운봉읍을 운행하는 버스가 수시로 있어 버스를 타고 남원시내의 싸우나에 가서 목욕부터 한 후에 저녁을 먹고 다시 여원재로 돌아왔다.

남원시내 여관에서 자고 새벽에 이 곳으로 오면 되지만 오후부터 날씨가 좋고 기온이 올라가 여원재 마을 뒷산에서 야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계속되는 장거리산행은 피로가 누적되지만 희한하게도 산 속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아주 상쾌하고 몸이 바로바로 회복되어 늘 새로운 활력이 생겨난다.

하지만 당일 산행을 하고도 집에서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풀리지 않고 몸이 뻐근하다. 우리 몸을 유지하는 데는 신선한 공기가 그 만큼 중요하고 땅의 기운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산행을 통해 실감하여 장거리산행은 야영을 고수하는 편이다.

장거리산행은 무게와 전쟁이라 무게를 줄이기 위해 텐트대신에 침낭을 감싸줄 침낭 카바를 가지고 다니거나 초경량의 1인용텐트를 가지고 다니며 밤이슬에 침낭이 젖는 것을 막으며 무게를 최소로 줄이지만 무게를 줄일 수 없는 것은 바로 식수다.

여름철은 산행도중에 식수를 공급받을 곳이 없으면 하루 운행하는데 대략 4-5리터 정도 가지고 다녀야 하며 중간에 식수공급 받을 곳이 있으면 대략 2리터 정도는 기본으로 준비하고 운행하므로 그 무게가 장난이 아니고 백두대간 길은 거의 능선 길을 걸어가므로 여름철은 더위와 식수 때문에 더욱 고생을 하여 사전준비에 있어서 필히 점검할 사항은 식수를 어디서 공급할 것인지를 미리 알아두어야 했다.

낯 설은 산골마을의 뒷산에 어둠을 이용해 홀로 텐트를 처 놓고 청승을 떨고 있는 꼴을 생각하면 이것도 팔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누가 강요한다 하여 이 짓을 할 것이며 누가 돈을 준다한들 이 짓거리를 하겠는가. 스스로 좋아서 택한 일이니 누구에게 탓을 돌릴 수도 없고 원망도 할 수 없는 일이며 자기 좋아서 하는 일은 자랑할 일도 못되는 것이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다. 밖을 보니 하늘에 별이 가득하고 고남산 정상에 세워둔 안테나에서 깜박거리는 붉은 불빛은 어느 별보다 더 밝게 빛나며 어서 오라고 유혹하고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 더위에 지쳐 산행을 할 수 없으므로 서늘한 이른 새벽에 산행을 시작하여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여름산행의 기본이며 천하장사도 무더위는 이겨낼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짐을 꾸려 고남산을 향한 들머리를 찾아보지만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 길을 찾을 수가 없어 몇 곳의 밭두렁을 들락거리며 겨우 진입로를 찾아 산길로 접어드니 비로써 안심 되여 펑퍼짐한 무덤가에 앉자 한숨 돌리며 앞으로 코스를 그려본다.

앞에 보이는 산이 고남산이므로 이제 지리산은 벗어난 생각이다. 큰 의미에서는 아직도 지리산 권역이지만 지리산의 그 많은 봉우리는 독립된 산의 이름을 갖지 못하고 봉(峰)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나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독립된 산의 이름을 가진 것을 생각하면 적은 의미에서는 지리산과는 별개의 독립된 산이다.

고남산을 넘으면 매요마을이 나오고 이 곳에서 88고속도로를 횡단해야 하는데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한다 생각하니 다소 불안한 생각이 든다.

88고속도로를 건너서 시루봉을 올라 복성이재까지 운행할 생각이며 행정구역상으로는 남원시 야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금을 주로 걸어가는 구간으로 도상거리는 대략 18km로 어제와 비슷하게 계획을 잡았고 오늘 구간의 특이한 점은 88고속도로를 무단횡단 하는 것이다.

5시간정도 걸어 88고속도로에 도착하였고 88고속도로는 2차선 고속도로라 이름만 고속도로고 동네 이면도로보다 폭이 좁아 횡단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도착지점은 지대가 약간 높은 지점이라 차들은 속도를 줄이고 있었고 통행량도 많지 않아 널널하게 건너갈 수 있어 굳이 지하통로를 찾아 돌아 갈 필요가 없었다.

이런 내용들을 인쇄매체인 책으로 발간할 경우에는 지하통로를 이용한다고 기록될 것이므로 책으로 배운 지식은 실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은 썩은 지식이라는 것이 나의 평소지론이고 어쩜 이러한 지론 때문에 고집을 부리며 이 길을 걸어가는지도 모른다.

한 무더기의 돌무덤이 발길을 잡아 살펴보니 돌무덤이 아니고 허물어진 산성 터다. 족히 천여 년의 세월을 간직함직한 이름 모를 산성이라 이 길을 모두 끝내고 이 길에 산재한 알지 못한 사연들을 찾아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픈 욕심을 가져보기도 하였다.

지도에 없는 임도를 만나서 이 곳을 오늘의 목적지인 복성이재로 착각할 정도였으나 다시 독도를 해보니 앞으로도 한 시간은 더 가야 복성이재다.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고 텐트를 칠 막영지로는 최상이어서 배낭을 벗어 던지고 물을 찾아 조금 아래로 내려 가보니 실개천이 흐르고 있어 오늘은 이름 모를 이 곳에서 하루 밤을 보내기로 하였다.

내일 봉화산을 오르면 남원땅과 이별하고 다시 경남의 함양땅을 밟게 될 것이며 봉화산에서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 마루금을 밟으며 백운산을 거쳐 육십령 고갯마루에 도착하면 육십령 고갯마루가 바로 덕유산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남은 길이 머릿속에 그려져 마음은 이미 육십령고개에 도착한 기분이지만 앞으로도 이틀을 더 걸어야 육십령에 도착하니 지리산 끝에서 덕유산 초입까지는 산길로 60-70km로 3-4일을 걸어야 하는 거리다.

지리산에 본부를 둔 남부군의 전남도당과 덕유산에 본부를 둔 전북도당간에 상호 왕래루트를 지금 내가 걷고 있으며 북으로 퇴각했던 산길이 바로 백두대간이니 그 들이 걸었다면 나도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가지며 잠이 들었다.

인적 없는 산길에 나만의 집을 짓고 근심걱정 다 버리고 혼자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짐이 많으면 무거운 짐이 되어 갈 길만 더 힘들게 하므로 불필요한 것은 모두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산길을 걸어야 하는 이런 이치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긴 여정도 이와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수요일 오후에 집을 떠나 벌서 내일이 일요일이니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내일은 집에 돌아 가야하므로 가급적 빠른 시간에 산행을 마무리 할 생각이었다.

(조폭이 따로 있냐)

오늘목적지인 중기마을까지는 대략 15km로 넉넉잡아 8시간이면 충분하고 운행구간은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경남 함양군 백전면의 도 경계선을 걸어가므로 오른 발은 경상도 땅을 밟고 왼발은 전라도 땅을 밟으며 걷는 구간이다.

5시부터 산행을 시작하여 복성이재를 건너 봉화산 정상을 오르면서 생각지도 않은 복병을 만났다

이 구간은 잡풀들이 등로를 막아 수시로 지도를 확인하며 길을 찾느라 거의 새롭게 등로를 개척해 나아가는 실정이었고 날이 더워 반팔로 운행한 것이 실수였다. 금세 팔뚝은 풀잎에 긁혀 풀독이 올라 가렵고 쓰리고 설상가상으로 산딸기 가시넝쿨이 등로를 막아 어느 구간은 개처럼 그 밑구멍을 통해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야 했다.

이 곳만 통과하면 되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했는데 그 곳을 통과하면 또 다른 가시넝쿨이 앞을 막고 있어 지금 생각해도 아주 끔찍한 구간이다. 처음에는 반가운 마음에 멋모르고 빨간 산딸기를 따먹으며 새콤한 맛을 즐기며 눌라 눌라하였지만 지금은 산딸기를 생각하면 이 구간에서 산딸기넝쿨에 당한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올라 별로 유쾌하지 않다.

날도 덥고 이왕 버린 몸이라 생각하고 고집부린 것이 더 큰 실수였다. 처음 잡풀지대가 나올 때부터 옷을 바꿔 입어야 했다. 두 팔뚝은 가시넝쿨에 셀 수없이 찢겨 피가 흐르고 쓰려 구급약통에서 해충에 물릴 때 사용하는 중화제 물약을 꺼내 팔뚝에 발라 보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팔뚝은 이미 맥주병으로 자해한 조폭들의 팔뚝으로 변해버려 그 해 여름철은 내내 긴 팔을 입고 생활해야했다. 그 상처의 흔적은 1년 정도 지나서 모두 없어졌지만 조폭이 별거 있냐, 팔뚝에 줄그으면 조폭이지, 졸지에 조폭이 되어 버렸고 이 때 경험으로 그 이후부터는 요령이 생겨 잡풀구간은 소매를 감싸는 토시를 배낭 옆에 넣고 다녀 가시넝쿨을 만나면 착용하곤 하였다.

목적지인 중재를 넘어 오기 직전에 산사태로 능선 한쪽이 붕괴되어 좁은 능선 길을 위험스럽게 걸어야 했으며 앞에 보이는 백운산이 얼마나 높게 보이는지 더 이상 운행하라하면 더위에 지친 몸으로는 죽었으면 죽었지 더 이상은 못 올라가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새롭다.

중기마을로 내려오며 시원시원한 계곡 물에 그동안 산행에 찌든 몸을 씻으니 그처럼 시원할 수 는 없지만 팔뚝이 쓰려 죽을 맛이다.

마을 넓은 공터에는 아들 두 놈이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 혼자 오기는 심심해서 교대로 운전하며 내려 온 모양이지만 나는 수고비가 따블로 지출되어 주머니사정만 이래저래 축이 났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이번 백두대간 길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렇게 산길을 걷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답을, 백두대간의 의미를 알아 낼 수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백두대간 주변의 이 곳 저곳 산천 유람하고서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모두 밟을 수는 없다.

답은 하나다. 우선 마루금을 다 밟아보고 나서 그 주변을 다시 찾아가는 길 밖에 없다. 당초 1년 안에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했던 길이 1년이 아니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동안은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왔다.

집에 돌아오니 팔뚝을 보고 마눌이 난리다. 그 동안 산에 다닌 것도 지겹지만 봐주고 봐주었는데 그것도 부족해 백두대간을 완주한다하였으니 처음부터 마누라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런 참에 건수를 잡은 것이다. 그게 어디 사람 팔뚝이고 얼굴은 새 까먹게 타서 창피해서 어데 같이 다닐 수 있냐고, 내 팔뚝 걱정보다는 이제 건수를 잡았으니 더 기세가 등등하다. 그 속셈을 누가 모를까 마는 이럴 때는 입 다물고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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