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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원폭은 신의 징벌이 아니다

오완선 2013. 5. 31. 10:03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 지시를 현장에서 내렸던 클로드 이덜리 소령은 한때 미국의 영웅이었다. 그 뒤에도 미국의 원폭 실험에 여러 차례 참가했던 그는 방사능 피폭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1949년부터는 화염 속에서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는 악몽에 시달렸다. 그는 자기학대에 빠져 기행으로 세월을 보내다 60살의 나이에 암에 걸려 죽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22살의 나이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조지 프라이스의 삶 또한 비극이었다. 플루토늄 전공자인 그의 참여로,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이 만들어졌다. 화학자로서 탄탄한 앞날이 그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였던 그의 아내가 바티칸의 견해에 따라 미국의 원폭 투하를 비판하면서 그의 고통이 시작됐다. 그는 이혼했고, 핵무장을 통한 평화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진화생물학자로 변신했다. 그의 연구는 학계에선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동물들이 서로를 죽이고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는 것에 의해서도 진화한다”는 연구 결과는 자신이 기대했던 게 아니었다. 그는 신을 믿고 성서를 연구하며 사회봉사에 매진하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0일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 쓴 ‘아베, 마루타의 복수를 잊었나’라는 칼럼을 읽고, 이 두 사람을 떠올렸다. 김 위원은 칼럼에서 “신은 인간의 손을 빌려 인간의 악행을 징벌하곤 한다”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폭격은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신의 징벌이자 인간의 복수”라고 썼다. 그렇다면, 원폭 개발과 투하에 관여했던 이 두 사람의 비극은 무엇일까? 이 또한 신의 징벌이었을까? 도대체 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일까?

원폭 투하는 두고두고 인간의 윤리판단을 괴롭힐 사건이다. 미국인 다수는 지금도 원폭 투하가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믿고 싶어한다. 핵철폐를 추진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일본을 방문할 때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무산됐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된 바로는, 반핵 여론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 일본 정부가 반대했다고 하니, 씁쓸한 일이다.

여러 증언을 통해 드러난 것을 보면, 진실은 미국인들의 믿음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은 일본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군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소련이 전쟁에 참가하기 전에 힘을 과시하기 위한 외교적 목적에서 원폭을 썼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병참시설이 적지 않았지만 전쟁과 무관한 민간인의 희생도 엄청났다. 히로시마 인구 35만명 가운데 9만~12만명, 나가사키 인구 24만명 가운데선 15만명 가까이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로부터 건강수첩을 받은 피폭자는 최대 37만명에 이르렀다. 일본 군국주의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그렇게 묻는 것이 결코 신의 뜻일 리가 없다. 더욱이 원폭 피해자 가운데 20%가량이 일본에 끌려가거나, 생계를 위해 건너가 있던 죄없는 한국인이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자민당 정부가 가는 길은 매우 우려스럽다. 그들은 침략의 역사를 부인하려 하고,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채 무장을 갖추고 전쟁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열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이 복수 감정에 뿌리를 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는 악행을 저지른 이에게 신이 어처구니없는 불벼락을 내리기를 바라는 대신, 그런 비극적인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핵무기와 같은 비인간적인 무기가 다시는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본의 길을 경계하는 것이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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