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낙서

Secreat 1

오완선 2013. 9. 22. 08:39

가슴속 깊이 숨겨두었던 내밀한 이야기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말해버리면 없던 일이 될까 봐, 혹은 기억이 사그라질까 저어되어 가슴속 깊이 꼭꼭 숨겨두었던 일. 내게는 아름다운 사랑의 편린이지만, 자칫 너저분한 불륜의 부스러기처럼 보이기 십상인 이야기. 살아서는 가슴에만 담아두려 하지만, 죽어서도 잊지 못할 아름다운 그 밤을 어찌 잊으랴.


잊지 못할 최고의 섹스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절박하면 할수록 짜릿해지던 그날밤 추억.

사랑의 감정은 오랜 시간 묵혀온 신뢰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그렇지만은 않다. 훅하고 스쳐간 소나기처럼, 한순간의 번개처럼 전율로 다가와 심신을 마비시키는 사랑도 있다. 미혹이라고 할 만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순의 마법은 짧지만 강렬하다. 도무지 마음의 언어가 아니고서는 온전히 전할 수 없는 그 기억을 털어놓은 네 명의 여자들. 그녀들의 고백은 내밀해서 더욱 흥미롭다.


Story1 두려움 없는 사랑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는 20대 중반, 맞선 본 남자와 결혼을 약속했다. 10년 전 일이다. 현모양처 어머니를 보며 같은 미래를 꿈꾸었다. 대학을 다닌 것도 좋은 집안에 시집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재수 시절부터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그는 우리 집에서 원하는 ‘스펙’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남자친구는 대학에 입학하고 1년 후에 군대에 갔고, 내가 결혼을 준비할 무렵 제대했다. 그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걸 극도로 싫어했고, 내가 맞선을 본다고 해도 반대하지 못했다. 우리는 다분히 플라토닉한 관계였다. 분명 사랑의 감정은 갖고 있지만 성적인 부분에서만은 둘 다 소극적이었다. 겨우 키스나 포옹 정도의 스킨십을 하던 사이였다.

맞선을 본 남자 집안과 상견례를 하고, 약혼 날짜를 정하자 남자친구는 몹시 예민해졌다. 내가 자신을 떠나 다른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게 될 것을 점점 실감하는 듯했다. 만날 때마다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제발 떠나지 말라’며 울며 매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약혼을 1주일여 앞둔 어느 날, 엄마와 나는 하루 종일 백화점에서 혼수를 구입했다. 태어나 가장 많은 것을 사고, 가장 많은 돈을 쓴 쇼핑이었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자신의 꿈에 대해 열변하는 친구들과 달리, 젊은 나이에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살림과 육아에만 매달려 살 생각을 하니 무언가 옥죄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그날 밤, 남자친구는 “학교 근처 주점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며 연락을 취해왔다. 늦은 시각이라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나 역시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었다. 초췌한 모습의 남자친구의 눈가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고, 많이 미안했다.

그래서 못하는 술을 처음으로 많이 마셨다. 술집을 나올 무렵에는 둘이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부모가 돌아가신 남매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못 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자, 감정은 더욱 격앙되었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키스를 하던 우리의 발걸음은 어느덧 남자친구의 자취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려 4년이나 사귀었지만, 그날이 첫 번째 밤이었다. 단정한 신방도 아니고 원앙 목각 하나 없는 허름한 방이었지만, 우리의 감정은 어느 연인보다 뜨거웠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안타까움이 매순간을 소중하게 만들었다.

오랜 연인이지만 한 번도 나누어본 적 없었던 육체적 교감은 놀랍도록 황홀한 기분을 주었다. 남자친구는 스물넷 젊은이답게 온몸이 뜨거워 마치 내 몸마저 태울 것 같은 열기를 뿜어냈다. 그의 전부가 내 몸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다시 오지 않을 이 밤, 이 시간이 이토록 나를 흥분시키리라고는…. 그날 이후 그를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날 밤의 뜨거움은 10여 년이 지나도록 잊히지 않는다. 떠올릴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도록 깊은 것이었다.


Story2 재회가 가져다준 깊이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들 한다. 나도 그랬다. 고교 졸업 후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해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났다. 그는 예의바른 사람이었고, 일도 잘하고 싹싹해 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사내에서는 그와 교제한다는 사실을 다들 부러워했다.

하지만 나보다 무려 다섯 살이나 많던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달리, 알면 알수록 철없는 막내동생 같기만 했다. 책임감도 없고, 투정도 잘 부리고, 경제관념마저 희박해 카드빚에 시달리곤 했다. 도무지 믿을 만한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교제 후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열정이 강하게 일어선 나는 대학에 진학했고, 그와는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졸업 후 증권회사에 취직해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차에, 거래업체와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내가 다녔던 회사가 이름을 바꾼 것이다. 더군다나 철부지 같았던 그가 10년이 넘도록 한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는 서른넷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앳된 모습이었다. 귀여운 눈웃음과 보조개도 여전했다.

그는 회의가 끝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 “나 돌싱이야”라며 멋쩍은 듯 말했다. 그가 웃어보이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설다. 꼭 6년 전 그를 처음 만날 때 그 기분이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 기분은 더 선명해졌다. 스무 살 어린 시절의 감정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여전히 철부지일 줄 알았건만 대화를 할수록 듬직하게 느껴졌다. 사람은 역시 큰일을 겪으면서 성장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거래처 직원이라는 생각 때문에서인지 나에 대한 태도는 애써 사무적이었다. 어설픈 재회 이후, 우리 회사의 창립파티 때 그를 다시 만났다. 이번은 쑥스러움이 덜했다. 우리 둘은 형식적인 파티 장소에서 나와 그의 회사 근처까지 걸어갔다. 그 옛날 풋풋한 시절의 데이트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서먹함을 풀고 다시 친근함을 느낄 무렵, 그와 내가 종종 드나들던 낡은 여인숙이 눈에 들어왔다.

말은 못하고 서로 어색해하는데, 상황을 그렇게 만들려고 그런 것인지,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화 같은 일이었지만 현실이었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큰 비였다. 그는 내 손목을 잡고 얼른 그 여인숙으로 뛰어 들어갔다. 돌발적인 그의 행동이 싫지만은 않았다. 예전에 묵던 그 방으로 들어가, 젖은 옷을 널고 속옷 차림이 되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는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적극적이 되었다. 젖은 옷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똑똑 소리를 내며 바닥을 친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옛사랑과 마주하니 어린 시절,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도무지 만족감을 준 적 없던 그는 어느새 다양한 체위를 구사하는 노련한 늑대가 돼 있었다. 내 속을 세차게 파고들었다. 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몇 번이나 교성을 질러댔다. 그 밤, 그 여인숙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우리는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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