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낙서

Secreat 2.

오완선 2013. 9. 22. 08:40

가슴속 깊이 숨겨두었던 내밀한 이야기

Story3 남편이 남자로 돌아왔다

결혼 당시부터 남편에 대한 사랑은 없었다. 결혼은 거래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고, 그 기준으로 보자면 남편은 결혼상대로 적합했다. 직장 번듯하고 성실한데다 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매력은 없었다. 결혼하면 차츰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와의 일상은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그 지루함은 잠자리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백 번을 자도 늘 같은 패턴이었다. 판에 박힌 섹스를 하는 남편이 못마땅했지만, 애초에 기대도 없었던 터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차츰 남편과 잠자리를 피하게 되었고, 양가에서 그토록 바라는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둘 사이에 이상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고, 결혼 1년 반 만에 우리는 각방을 쓰기에 이르렀다.

맞벌이를 했던 우리 두 사람은 회사에서 돌아오면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의 귀가시간은 늦어졌고, 외박도 잦았다. 나 역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친정에 드나드는 일이 늘었다. 2년이 넘어갈 무렵 나는 남편에게 별거를 제안했다. 남편 역시 두 말 없이 동의했다.

하지만, 양가에는 일단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이혼을 결심한 것도 아닌데 별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스운 일 아닌가. 남편이 회사 근처 오피스텔로 짐을 옮겼다. 나는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길 6개월여. 어느 날 난데없이 남편이 회사 앞으로 찾아와서 다시 시작해보자고 말했다.

좀 놀라긴 했지만, 나는 시큰둥했다. 다시 시작해봐야 도돌이표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돌아서는 남편의 뒷모습이 안쓰럽기는 했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 여름휴가차 가평 별장에서 지내고 있을 때 또 한 번 남편이 찾아왔다. 그제야 보니, 그의 눈빛은 진실이었다. 사실 그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결혼 전부터 마음을 닫아버린 내가 문제였다.

하지만 남편은 대역죄인인 양 내 앞에서 몸을 웅숭그리고 있다. 마음이 흔들렸다. 그날 밤, 우리는 오랜만에 몸을 섞었다. 신혼부부가 1년여 만에 다시 섹스를 한 것이다. 웬일인지 남편의 테크닉은 상당히 발전해 있었고, 나는 실로 오랜만에 오르가슴을 느꼈다. 남편은 이제껏 그 괴력을 어떻게 숨겨왔는지 신기할 정도로 힘이 넘쳤고, 1시간 넘게 오럴 섹스를 지속했다.

도무지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천창으로는 별이 빛났고, 나의 마음속에는 남편에 대해 야릇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우리는 벌거벗은 채로 그곳에서 사흘을 더 보냈다. 잊지 못할 밤과 밤들이 지나고, 지금 우리는 다시 한 집에서 지내고 있다. 황홀한 기억이 마음마저 이어준 셈이다. 


Story4이웃집 총각을 탐하지 말…

사람들은 종종 나를 골드미스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영 마뜩치 않다. 경제력을 갖추긴 했지만 역시 그들이 하고픈 말은 올드미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근교의 한갓진 마을, 전원주택에서 생활한 지 벌써 5년째. 이웃 주민이라고는 다들 말년을 안온하게 보내기 위해 귀향한 노부부들뿐이라 다소 심심하기도 했다. 담도 없이 이어진 옆집 사람들이 해외로 이민을 가고 한동안 이웃도 없이 지내니 더욱 외로웠다.

지난 봄, 그 집을 젊은 화가가 매입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솔직히 기뻤다. 괴팍하고 성질 고약한 예술가만 아니라면, 친구로 만들고 싶었다. 많이 외로워본 사람은 이 기분을 알 것이다. 그러나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옆짚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도무지 그 화가를 만날 일이 없었다. 그 집에 새벽녘까지 불이 켜져 있다는 사실만 알았다.

어느 주말, 이웃들을 초대한 집들이에서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설치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라 그런지 체격이 꽤나 좋았다. 잘 그을린 피부에 온몸이 근육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작품도 꽤 훌륭했다. 촉망받는 신예라는 소문이 거짓이 아닌 듯했다. 얼마 후 그는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물론 나뿐만이 아니라 이웃 대부분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집들이었다. 그 자리에는 그의 여자친구도 함께했다. 자그마하고 하얀 얼굴을 가진 새침한 자태가 천생 여자였다.

아무튼 그 화가와는 그렇게 첫인사를 나누었다. 며칠 후, 늦게까지 회식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지갑에서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애초에 출근할 때 대문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술도 많이 마셨고, 기운도 없어서 한동안 대문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다 야밤 산책을 하던 그를 만났다. 자신의 집을 통해 들어가라는 반가운 제안에 주저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좋은 원두를 구했다며 커피 한 잔을 마시자는 말에 별 거부감 없이 거실까지 따라 들어갔다.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스웨덴에서 가져왔다는 술을 나에게 권했다. 일상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한 번쯤 거부했겠지만, 나는 이미 많이 취해 있었다. 술을 나누어 마시기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서른한 살이고, 부모님은 모두 해외에 거주하며, 이곳이 그의 고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남자친구가 현재 해외 파견 근무 중이며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이고 나 역시 이곳이 고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문화적 취향도 비슷했고, 대화가 잘 통했다. 여덟 살이라는 나이 차가 무색했다. 점점 취기가 올랐고, 졸음이 몰려왔다. 집으로 가려고 현관으로 향하는데, 그가 나를 막아섰다. ‘오늘밤은 자고 가라’는 그 말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각자 연인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이 오히려 상황을 짜릿하게 몰고 갔다.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밤을 갖는다는 것, 갑자기 온몸이 흥분되었다. 전위적인 그의 작품들은 마치 오늘밤을 위해 일부러 전시해놓은 것처럼 거실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다. 우리는 침실로 갈 겨를도 없이 거실 소파에 누웠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소파의 폭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나이 어린 남자와 연애를 해본 적이 없던 나는 마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사람처럼 감정 조절을 못하고, 그의 몸짓에 끌려 다녔다. ‘이래서 젊은 남자, 젊은 남자 하는구나’라며 뒤늦은 깨달음을 후회하기조차 했다. 그는 그야말로 힘이 좋았다. 그을린 피부에서 흐르는 땀이 만들어낸 비릿한 냄새가 나를 늪으로 집어던졌고, 곱슬곱슬한 머릿결은 사람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건장한 체격으로 나를 자유자재로 안고 들고 세웠다. 정신이 아찔해져 취기는 어느새 사라졌고, 난생 처음으로 섹스에 몸을 맡긴 채 정신을 놓았다. 벗은 몸으로 거실을 휘젓고 다니는 그의 뒤태는 조각이었다. 차라리 그대로 굳어버렸으면 하는 망상을 할 지경이었다. 이웃들의 눈에 띄지 않게 이른 아침 집으로 돌아왔지만, 몸은 여전히 간밤의 전율로 떨렸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내리 잠만 자야 했다.

한동안 보지 못했지만, 그가 옆집에 산다는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짜릿했다. 남자친구가 있는 일본에 다녀온 1주일 사이, 그 역시 부모님이 계시는 캐나다로 떠났다. 무슨 사정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그는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 그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또 다시 그런 밤이 올까?

남녀 관계에는 선이 있다. 그 선을 완전히 넘어버리면 ‘썩을 년’ ‘몹쓸 놈’ 소리를 듣지만,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정도의 관계는 분명히 존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섹스라는 것은 참 묘해서, 아주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감흥이 덜한데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사람의 본능을 아주 예민하게 자극한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밤, 첫사랑과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 둘만 남아버린 엘리베이터 안, 갑작스럽게 생긴 술자리 등등 이런 상황들이 그렇게 만든다. 실수? 글쎄 그 상황을 정리하는 단어로는 부족하다. 이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의 현실화? 이건 청소년들이나 해야 하는 소리고. 그럼 뭐라고 말해야 하나?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 여성조선
  취재 이미경ㅣ사진 신승희·조선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