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실버세대를 위한 전원주택은 따로 있다.

오완선 2013. 10. 22. 14:44

단독주택이 일반화된 미국에서는 55세 이후 실버 세대를 위한 주택은 'Seniors House'라고 해서 설계, 자재, 입지조건 등이 일반주택과는 완전히 차별화돼 있다. 예컨대 관절염이 많은 노인층을 배려하여 단층형 위주의 구조에 주방, 멀티룸 등의 생활공간을 최소화하고 안방과 거실을 생활의 중심공간으로 일체화하기도 한다.

실버주택이 가장 발달한 일본의 경우만 해도 모든 공간이 철저하게 실버세대의 행동반경을 고려하여 설계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실버주택’이라고 하는 것들은 이런 점에서 초보단계에 불과하다. 특히 전원주택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서 장만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것을 챙겨야 한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이 입지조건. 시골에서는 겨울이 가장 무섭다. 특히 장년층은 환절기에 변을 당하기 쉽다. 그래서 일단 칼바람을 피할 수 있는 따뜻한 남향받이가 좋다. 풍광이 좋다고 호반이나 강변 땅을 찾는데 강변이라고 하더라도 안개 지역에서 일정 거리 물러난 곳에 집터를 잡아야 한다.

이런 곳은 안개가 끼는 새벽녘에 반드시 현장을 가보아야 한다. 안개가 다 걷힌 밝은 대낮에 아무리 현장답사를 해도 실정을 알 수 없다. 모든 땅은 양지가 있으면 그늘이 있다. 땅이 가진 속살을 보려면 그늘, 즉 가장 악조건일 때 그 땅을 가보아야 한다.

그래서 답사는 겨울이 다가오는 늦가을이 가장 좋다. 환절기라 일교차가 심해서 안개도 자주 끼기 때문에 대낮에는 볼 수 없었던 단점이 보인다. 특히 눈이 온 뒤에는 현장을 꼭 가볼 필요가 있다. 얼마나 햇볕이 잘 드는 땅인지는 눈이 녹는 속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풍광이 좋은 봄, 여름, 가을 대낮에 전원주택 터를 보러 다니는 것은 화장을 곱게 하고 나온 규수와 맞선을 보는 것과 같다. 땅이 민낯을 한, 나뭇잎이 다 떨어진 늦가을이나 겨울 새벽 또는 저녁에 가보아야 땅의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평생 모은 재산을 쪼개서 여생을 보내야 하는 만큼 투자비 규모도 적정선에서 조절해야 한다. 부동산투자는 일단 일을 벌이고 나면 자금규모를 조절하기가 힘들다. 처음부터 과욕을 통제해야 한다. 특히 건축비에서 무리가 많이 빚어지는데 주말에 놀러 올 자녀들을 위해 꼭 방이 더 필요하면 차라리 별채를 한 채 짓는 게 좋다.

물론 그 비용은 자녀들 부담으로 하고. 캐빈형 오두막집을 키트로 사서 마당에 설치하는 것도 좋다. 어쩌다 주말에 잠깐 놀러 오는 자녀들을 위해 빈방을 두는 것은 경제적 효용성에서는 낭비에 가깝다. 정말 자녀들이 자주 놀러 오게 하려면 접근성이 좋은 곳을 골라서 독립된 공간을 내주어야 한다.

자녀들에게 마당을 내어주고 콘도 회원권 사는 셈 치고 별채를 하나 짓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6평 미만의 별채는 농막으로 별도의 건축허가를 받지 않아도 건축이 가능하다. 완제품으로 판매하는 키트형 캐빈은 2천만 원 전후로 큰 부담 없이 간단하게 별채를 마련할 수 있다. 위치가 괜찮은 곳이라면 자녀들이 오지 않을 때는 펜션으로 활용하면서 용돈 벌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이 주거하는 공간에는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실버세대의 주택은 인생 마지막 주거공간이다. 꼭 필요한 크기로 하되, 제대로 지어야 한다는 얘기다. 생애 마지막 주택이라는 점에서 많은 돈을 들이는 것을 아까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막을 들여다보면 필요없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서 전체적으로 건축비가 많이 들어가다 보니까 정작 나만을 위한 공간에 투자할 자금이 빡빡해져서 그런 경우가 많다. 평생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 대한 대접을 위해서라도 정말 필요한 공간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라고 권하고 싶다.
 
건축 구조는 친환경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아파트 생활이 워낙 일반화되다 보니 체험적으로 느낄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집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치유의 공간이다. 그러나 도시의 아파트는 오히려 사람을 공격하는 구조와 재질로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지은 목조주택에 살면 콘크리트 주택에 사는 것보다 10년은 더 살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목재가 가진 친환경성 때문이다. 구조재는 친환경구조로 해놓고 정작 마감재는 화합물 덩어리로 골라서 아파트보다 더한 유해 환경을 만들어 놓고 사는 경우도 많이 본다. 그렇다고 내부를 모조리 원목으로 도배하는 것은 비용도 많이 들고 의외로 빨리 싫증이 난다. 요즘은 친환경 자재가 일반화되면서 가격도 큰 부담 없이 고를 수 있는 좋은 제품이 많다.

그리고 아무리 공기가 좋은 전원이라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환기가 잘되고 햇볕이 잘 드는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쪽으로는 가로로 긴 창을 내서 햇볕이 드는 면적을 최대한 넓히고, 동쪽과 서쪽은 세로로 긴 창을 내서 햇볕이 드는 면적은 줄이고 바람의 유입은 원활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 창을 내지 않는 북쪽에도 맞바람을 들이기 위한 환기창은 두는 것이 좋다. 특히 중장년이 되면 햇볕과 환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원에 나가 살면 텃밭은 무조건 가꿔야 하는 것으로 안다. 평생 땅 한번 파보지 않은 사람도 마당이 최소한 100평은 돼야 한다고 큰소리친다. 그러나 전원생활 경험도 없이 무턱대고 넓은 마당을 마련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네 식구 먹는 데 필요한 텃밭도 5평 수준이면 충분하다. 자식들 먹을거리까지 챙겨 준다고 해도 10평이면 넉넉하다. 그 이상이면 거의 농사짓는 수준으로 텃밭을 가꾸어야 한다.

땅 욕심만 내다가 잔디밭을 갈아엎고 자갈을 깔거나 콘크리트로 포장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텃밭 가꾸는 일도 중노동이지만 잔디밭의 잡초는 감당이 불감당이다. 장마철에는 잡초를 뽑고 돌아서면 새 풀이 바로 올라온다. 잡초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웬만한 중노동을 각오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전원생활 초보자의 집터는 70∼80평 수준이 적당하다. 귀농 수준의 농사를 짓고 싶으면 현지에 정착한 후에 마을 주변을 좀 익히고 난 다음 땅값이 싼 보전지역 농지를 별도로 구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집터와 농사짓는 땅은 구분하는 것이 좋다.
  
주변에 편의시설은 어떤 게 있는지도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병원과의 접근성. 1시간 이내에 종합병원이 있는 도심까지 도달 가능한 곳이 안전하다. 그러려면 긴급 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119구급대 등은 20분 거리 내에 있어야 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자신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소일거리나 운동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병이 걸렸을 때 병원 찾을 생각하는 것보다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다. 전원주택에 나와서도 아파트에 살 때와 다름없이 집안에서만 ‘방콕족’으로 살 생각이라면 차라리 아파트에 그냥 사는 게 낫다.

통상 30년 이상 도심 아파트생활을 하다 낙향할 경우 방범문제가 제일 걱정이다. 그러나 무인경비시스템이나 방범시설을 설치하느라 비싼 돈을 들이는 것보다는 동네 파출소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식시키고 이웃을 잘 사귀어 두는 게 더 안전하다. 타이머를 활용한 시간별 자동 점등시스템을 설치하거나 반려견을 키우는 것도 좋다.

전기료 아낀다고 밤이면 모든 전등을 꺼두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전기료 부담이 없는 LED 등을 보안등으로 1개 정도는 켜두는 것이 안전을 위해서도 좋다. 타이머를 달아두면 외출 시에도 원하는 시간에 자동 점멸이 되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방범에 큰 도움이 된다.
 
이와 함께 무엇보다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부분은 전원에 나가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계획. 시골생활 경험이 있는 장년 세대가 젊은 부부들보다 전원주택에 오히려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생활이 길었던 만큼 단절은 생각보다 더 힘들다.

꼭 돈을 벌어야 하는 형편이 아니라면 자원봉사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 것도 좋다. 시골에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의외로 많다. 그런 곳에 재능기부를 하는 셈 치고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이정표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 봉사는 남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남에게 필요한 존재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