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낙서

세종의 시련

오완선 2015. 3. 31. 20:00

 


조선시대, 아니 우리 역사를 통틀어 세종대왕은 가장 훌륭했던 왕이자 정치가 중 한 명이었다. 이를 부인하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했으며 백성들을 위한 ‘농사직설’ ‘향약집성방’ 등 농서와 의서를 간행했다.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발탁해 해시계, 자격루, 측우기 등 각종 과학기구를 발명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세종은 문화와 학문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박연으로 대표되는 궁중음악을 완성했으며 집현전 학자의 양성에서 알 수 있듯 인재 등용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세종 대에 등장했던 황희, 허조, 맹사성 등은 지금도 명재상의 대명사로 꼽힌다. 국방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4군 6진을 쌓아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경계가 이뤄진 오늘날 한반도의 영토를 확정한 왕이 세종이다. 노비에게 출산휴가제도를 처음 실시했는가 하면 공법(貢法)이라는 세법을 확정할 때는 17만여명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투표도 실시했다.

 

이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세종. 모든 것이 완벽했을 것 같은 세종은 사실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불우했던 사람이다. 그중 세종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가족사의 불행이다.

 

세종이 왕으로 즉위한 직후, 상왕으로 있던 태종은 자신의 사돈이자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처형하고 심온의 부인을 관노비로 삼았다. 외척의 발호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한 부왕 태종의 조치였다. 그러나 세종 입장에서는 왕이 되자마자 장인이 처형되고 장모가 노비가 되는 상황을 맞이한 셈이다.

 

세종은 왕비 소헌왕후와의 사이에서 8남 2녀를 뒀는데 그중 세 명의 자식을 자신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보냈다. 맏딸 정소공주는 13세의 어린 나이로 사망했다.

 

“아아, 네가 죽은 것이 갑진년(甲辰年·1424년)이었는데, 세월이 여러 번 바뀌매 느끼어 생각함이 더욱 더하도다. 이제 담제일(삼년상이 끝나는 날)이 닥쳐오매 내 마음의 슬픔은 배나 절실하며, 나이 젊고 예쁜 모습을 생각하매 영원히 유명(幽明)이 가로막혔도다.”

 

세종이 정소공주의 삼년상을 끝내고 치른 제사에서 했던 말이다.

 

세종 자식들의 요절(夭折)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세종이 48세 되던 해인 1444년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을 잃었고 다음 해에는 일곱째 아들 평원대군도 저세상으로 보냈다. 1446년에는 사랑했던 왕비 소헌왕후마저 그의 곁을 떠나갔다.

 

세종은 자식과 아내를 연이어 잃으면서 심적으로 약해졌다. 불교를 의지할 대상으로 삼고 궁중에 내불당을 세웠다. ‘월인천강지곡’이나 ‘석보상절’과 같은 불교 서적을 간행하면서 마음의 평안처를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집현전 학자나 성균관 유생들은 “유교국가를 지향하는 국가의 이념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세종의 숭불정책을 비판했다.

 

한 나라의 국왕으로서 불교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세종이었지만 인간적인 아픔이 너무 컸기에 잠시나마 불교에 의지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세종의 며느리도 큰 물의를 일으켰다. 조선 역사상 최초로 장자를 후계자로 삼아 왕위에 올리려고 했던 세종은 향후 왕비가 될 세자빈의 간택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관여했다. 그래서 발탁된 세자빈이 휘빈 김씨였다. 그러나 세자는 휘빈을 멀리했고 휘빈은 세자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민간 비방책을 이용하는 무리수를 썼다. 문종이 좋아하는 궁녀의 신발을 몰래 훔치고 그것을 태워 문종에게 먹이려 하다 발각됐다. 이 일로 휘빈 김씨는 2년 3개월 만에 세자빈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1429년 세종은 두 번째 세자빈 간택에도 주도적으로 나섰다.

 

“이제 동궁을 위해 배필을 간택할 때이니 마땅히 처녀를 잘 뽑아야 하겠다. 세계(世系)와 부덕(婦德)은 본래부터 중요하나, 혹시 인물이 아름답지 않다면 또한 불가할 것이다.”

 

세종은 가문과 부덕, 용모까지 겸비한 순빈 봉씨를 세자빈으로 간택했다. 세종은 며느리를 위해 친히 ‘열녀전’을 읽게 하는 등 온갖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순빈 봉씨는 세종이 생각했던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술을 좋아하고 여종과 동성애에 빠지는 등의 문란한 생활을 일삼아 세종의 기대를 저버렸다.

 

“봉씨가 궁궐의 여종과 동숙한 일은 매우 추잡하므로 교지에 기재할 수는 없으니, 우선 성질이 질투하며 아들이 없고, 또 노래를 부른 네댓 가지 일을 범죄 행위로 헤아려서 교지를 지어 바치게 하라.”

 

결국 세종은 순빈 또한 폐출을 결정한다.

 

두 번째도 실패한 세종은 원래 세자 후궁으로 있던 여인 중 한 명을 세자빈으로 뽑았다. 세 번째 세자빈 권씨(후의 현덕왕후)는 성품이 온화하고 세자와 사이도 좋았다. 권씨는 세종의 기대대로 원손인 단종을 낳았지만 출산 후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거듭된 세자빈의 폐출과 사망은 세종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특히 어머니 없이 자라는 어린 손자(단종)의 존재는 세종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으로 짐작된다.

 

가족에 대한 불행이 세종의 주변 문제였다면, 세종 본인이 갖고 있는 어려움도 있었다. 바로 건강 문제다. 대개 왕은 전왕이 사망한 후에 즉위하지만 세종은 태종이 상왕으로 자리하면서 왕위를 물려받았다. 세종이 즉위할 땐 태종의 형님이자 숙부인 태상왕 정종까지 살아 있던 상황. 이런 연유로 세종은 즉위하자마자 연이어 국상을 당한다.

 

1419년 정종이 죽고, 1420년 어머니 원경왕후에 이어 1422년 태종마저 운명을 달리했다. 즉위 직후 연이어 세 번의 국상을 치른 것이다. 세종처럼 효성이 지극했던 국왕에게 연이은 국상은 체력적으로 큰 힘이 들게 했을 것이다. 갖은 학술 연구 사업과 정책 수립으로 밤낮없이 일했던 세종에게 즉위 초반의 연이은 국상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게 했다.

 

‘세종실록’에 나타난 세종의 질환 관련 기록은 모두 50여건에 이른다. 세종 6년과 7년인 20대 후반에는 두통과 이질에 관한 내용이 있으며, 30대 중반에는 풍병과 종기에 대한 기록이 자주 나타난다. 40대 중반에는 안질과 소갈증(消渴症)을 앓았다고 적혀 있으며 수전증과 한쪽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기록도 있다.

 

43세가 되던 1439년 6월 21일 세종은 스스로가 건강상의 이유로 강무(講武)를 할 수 없으며 큰일은 세자에게 맡기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젊어서부터 한쪽 다리가 치우치게 아팠는데 10여년이 지나자 조금 나았다. 그러자 이번엔 등에 부종(浮腫)으로 아픈 적이 오래다. 아플 때를 당하면 마음대로 돌아눕지도 못해 그 고통을 참을 수가 없다. 또 소갈증을 앓은 지도 열서너 해가 됐다. 지난해 여름에 또 임질(淋疾)을 앓아 오래 정사를 보지 못하다가 가을, 겨울에 이르러 조금 나았다. 지난봄 강무한 뒤에는 왼쪽 눈이 아파 안막(眼膜)을 가리는 데 이르고 오른쪽 눈도 어두워서 한 걸음 사이에서도 사람이 있는 것만 알겠으나 누구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겠으니, 지난봄에 강무한 것을 후회한다.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기매 나의 쇠로(衰老)함이 심하다. 이제는 몸이 쇠하고 병이 심해 올해 가을과 내년 봄에는 친히 사냥하지 못할 듯하니, 세자로 하여금 숙위(宿衛) 군사를 나눠서 강무하게 하라.”

 

세종이 많은 질병에 시달린 것은 과로에도 큰 원인이 있지만 육식을 즐기는 식습관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세종실록’에는 “전하께서 평일에 육식이 아니면 수라를 드시지 못하시는 터인데”와 같은 기록이 나타난다.

 

세종이 앓았다는 안질은 요즈음으로 치면 백내장, 소갈병은 당뇨 질환, 임질은 전립선염이나 방광염을 뜻한다. 특히 당뇨병은 여러 가지 합병증을 유발하는 병으로서 무엇보다 절대 안정과 바른 식습관이 최선의 회복책이다. 그럼에도 세종은 끝까지 과로의 길을 걸었다.

 

말년이 돼서야 세자인 문종으로 하여금 섭정을 하게 하지만 훈민정음 창제와 같은 대사업만큼은 세종이 손을 뗄 수 없었다. 불운했던 가족사는 물론 본인이 각종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세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역사적 책무를 다했다. 세종이 더욱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으며,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그런 모습 때문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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