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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전남 고즈넉한 여행지..

오완선 2015. 5. 7. 17:43

전남 순천 선암사, 전남 여수 사도·추도


	순천 선암사 앞 야생 작설차밭.
순천 선암사 앞 야생 작설차밭.

빛과 소리. 영화나 CF, 심지어 다큐멘터리까지 온갖 영상 촬영을 위한 장소를 찾는 로케이션 매니저란 직업을 가진 내가, 여행을 떠날 때 항상 염두에 두는 두 가지 포인트다. 같은 장소라도 아침과 저녁에 보는 풍경이 다른 것은 빛 때문이요, 그 빛을 느끼기 위해 가만히 서 있으면 들려오는 것이 바로 소리다. 숲이라면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 계곡이라면 물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 같은 것이다. 풍경은 그대로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항상 빛과 소리라는 친구들과 함께 온다. 그 세 친구가 어울려 비로소, 하나의 절경이 완성된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좋은 여행지를 추천해달란 요청을 많이 받는다. 가족끼리 여행 가기 좋은 5월이면 특히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보통 가족 여행 하면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많은 곳을 추천해주길 바란다. 그런 곳도 좋지만, 모처럼의 가족 여행이라면 역발상을 해보는 것도 좋다. 이를테면 고즈넉한 곳을 찾아가는 여행 말이다. 그런 장소일수록 빛과 소리가 좋다.

나에게 전국의 모든 장소 중 딱 한 곳에만 '고즈넉하다'라는 말을 붙여보라고 한다면, 전남 순천의 선암사를 고르겠다. 광주에서 81㎞, 순천 시가지에서 27㎞ 거리에 위치한 선암사는 호남의 명산 조계산에 자리 잡고 있다.

선암사를 찾는 즐거움은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한다. 700년 전부터 있었다고 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야생 작설차밭이다. 어딜 가나 차밭 풍경은 멋지지만, 선암사의 차밭은 야생이라서 5월이면 더욱 빛난다. 특히 강하고 맑은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는 차밭의 모습은 사람의 눈이 누릴 수 있는 호사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이 차밭 앞에 서서 가만히 들려오는 절의 풍경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실제로 차를 마신 것처럼 따듯해진다.

선암사 경내도 사찰이라기보다는 잘 꾸며진 수목원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절 주위에는 각종 꽃, 나무가 가득하다. 홍매화를 필두로 철쭉, 백매화 등이 피고 지는 이 아름다운 절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해우소가 있다. 정호승 시인은 그의 시 '선암사'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라는 구절로 해우소를 표현하기도 했다.

비교적 잘 알려진 선암사만으로는 순천까지 온 걸음이 아쉽다. 이왕 거기까지 왔으면 꼭 보고 가야 할 장소가 또 있다. 내친김에 차를 몰아 여수까지 내려가자. 여수항에서 배를 타고 1시간 40분을 가면 작은 섬 사도(沙島)와 추도(鰍島)를 만날 수 있는데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섬이라 깨끗하고 시끄럽지 않아 좋다.


	전남 순천 선암사, 전남 여수 사도 추도
1 선암사 경내. 2 여수 사도의 바닷가 바위. 3 여수 추도의 해안절벽. 4 충남 태안 신두리해안의 들풀길.

사도의 부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실물 크기의 티라노사우루스 모형이다. 사도를 중심으로 이 인근 섬들은 '공룡 군도(群島)'로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7000만년 전 당시 이 일대는 호숫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초식 공룡들이 어슬렁거렸고 뛰놀았다. 사도 해안가 바위를 따라 85m에 걸쳐 공룡 발자국 750여개가 발견됐다. 공룡 발자국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면 햇살이 떨어져 바다가 쪽빛으로 반짝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닷바람이 불면 등 뒤의 나무들이 춤추는 소리가 들린다. 공룡도 이 소리에 맞춰 춤췄을지 모른다.

사도 주변에는 많은 섬이 있다. 똥같이 생겼다고 해 똥섬, 시루처럼 생긴 시루섬, 가운데에 있다 해서 간데섬, 뱀처럼 긴 진대섬 등 재미난 이름을 가진 섬들이다. 이 중 공룡 발자국 화석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추도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동네에서 작은 배를 빌려 타야 한다. 나중에 나올 때를 대비해 낚싯배 선장님의 핸드폰 번호를 꼭 저장해둬야 한다.

현재 추도에는 장옥심(81) 할머니 한 분만 살고 있다. 원래 살던 주민 대부분이 세상을 떠나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고 홀로 남았다. 외롭게 보이지만 정작 본인은 60년을 살아온 이곳이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좋다고 하신다. 산이 낮은 추도에는 바람을 막기 위해 돌담을 쌓았다. 바람 한 줄기 들어갈 틈 없이 견고하게 쌓은 모양이 아름다운데 이 돌담은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이 섬이 매력적인 건 할머니 한 분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인적 없는 바닷가 바위 위에 가족들과 도란도란 모여 앉아 오붓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섬은 하나이면서도 둘인 것처럼 가운데가 깊숙하게 파여 있다. 이 파인 곳으로 내려가면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을 만나게 되는데 그 압도적 풍경 앞에 작은 모기라도 된 것처럼 겸손해진다. 한때 이곳을 뛰어다니며 자연의 왕으로 군림했던 공룡들도 결국 발자국만 남았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게 될 것인가. 주변을 둘러보면 가족의 얼굴이 보일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남길 가장 자랑스러운 얼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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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케이션 매니저가 추천하는 비경 위치도

1.달마산 도솔암(전남 해남군 송지면 마봉리 산87-1)
가는 방법(서울 기준) 경부 또는 서해안고속도로→서영암IC→13번 국도→마봉리 마련마을→도솔암길
TIP 달마산에서는 바다에서 해가 뜨고 지는 광경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빛을 받아 옷을 갈아입듯 바뀌는 산과 바다의 모습을 한자리에서 보는 것도 평생 하기 힘든 구경거리다.

2.옥정호 양요정(전북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 490-3)
가는 방법(서울 기준)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서전주IC→태봉교차로→대량삼거리→입석리 마을회관
TIP 옥정호는 늦가을부터 봄철까지 새벽이면 호숫가 주변에 자욱하게 어리는 물안개로 유명한 곳이다. 전망을 보려면 호수 인근 국사봉 전망대에서 보면 되지만, 고갯길에 있는 ‘설리’라는 작은 찻집의 전망이 더 좋다. 물안개가 끼었을 때 호반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3.신두리해안사구 들풀길(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305-98)
가는 방법(서울 기준) 경부 또는 서해안고속도로→서산IC→운산교차로→예천 사거리→신두해변길
TIP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래언덕 꼭대기에서 풍경을 보지만, 사실 들풀길이 있는 언덕 쪽 전망이 더 좋다. 썰물 때나 밀물 때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가면 석양을 받아 모래와 들풀이 반짝이는 모습이 더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4.선암사(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가는 방법 경부 또는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승주IC로 나온다. 승주IC에서 선암사까지는 15분 거리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호남선(서울 강남터미널 출발 기준)에서 순천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탄다. 순천에서 선암사에 가는 버스 편이 자주 있다.
입장료 성인 2000원(65세 이상 무료), 군인·학생 15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062)754-9117

5.사도·추도
가는 방법
사도에 들어가려면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백조호(061-662-5454)나 여수 백야도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대형카페리3호(061-686-6655)를 타야 한다. 백조호는 1시간 40분 걸리며 오전 6시, 오후 2시 2회 운항. 대형카페리3호는 1시간 10분 걸리며 오전 8시, 오전 11시 30분, 오후 2시 50분 3회 운항. 추도 가는 배는 사도의 장원모 이장(010-9622-0019)에게 문의. 4인 기준 왕복 2만원 정도.
숙박 사도에서는 민박을 해야 한다. 사도한옥민박(061-666-0012), 포도나무민박(061-665-0019) 등 민박집 10여 곳이 있다. 숙박료는 방 크기에 따라 5만~1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