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수행처인 오대산 남대 지장암 옆 전나무숲.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여행
부처님 오신 날 앞두고 떠나는 강원 오대산 다섯 암자 기행…들머리 산길마다 야생화도 지천
부처님 오신 날 앞두고 떠나는 강원 오대산 다섯 암자 기행…들머리 산길마다 야생화도 지천
산세가 다섯 개의 연꽃잎에 싸인 모습이라 해서 오대산이다. 평창·홍천·강릉 경계지역에 솟은, 산세가 수려하고 골짜기 깊은 산이다. “여긴 남쪽 지역보다 한달 이상 봄이 늦다. 보다시피 이제 막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됐다.”(월정사 두엄 스님) 도시 지역에 초여름 더위가 이어지던 지난 주말, 오대산은 슬슬 겨울에서 빠져나와 봄으로 치닫고 있었다. 산봉우리와 능선의 나무들은 아직 황량한 빛으로 찬바람에 시달리고 있었고, 중턱 산비탈에선 늦겨울, 이른 봄에 피어나는 바람꽃·노루귀 들이, 산자락 발치에선 진달래 무리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꽃 피고 새 우는 오대산의 이른 봄날, 산 이름의 연원이 된 다섯 암자 탐방길에 나섰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찾아볼 만한, 소박하면서 유서 깊고 아름다운 암자들이다. 암자 찾아가는 산길은 걸을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지천인 야생화들로 눈이 아득해지고, 한기 품은 산바람에 이마는 서늘해지는 숲길이다. 암자 오가는 길에는 울창한 전나무숲이 펼쳐지고, 암자마다 물맛 좋은 샘도 품고 있다.
고승들 발자취 서린 오대산 오대 암자
오대산(1563m)이 연꽃잎 형상이란 이야기는, 다섯 산자락에 다섯 암자(대)가 자리잡은 데서 비롯한 것이다. 신라 고승 자장 율사가 중국 오대산(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받아와 모신, 상원사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다섯 암자가 동서남북과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그리고 중대 사자암이 그것이다. 각 암자엔 각각 동서남북 방위를 상징하는 보살을 모시고 있다.
신라 신문왕의 두 아들, 보천·효명 승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두 형제가 오대산에 들어 수도하던 중 형인 보천에게 왕위 계승 명령이 떨어진다. 하지만 보천은 사양하며 동생에게 넘겼고, 동생 효명은 이를 받아들여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가 성덕대왕이다. 현재 상원사에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답다는 동종(국보 제36호)이 바로 성덕대왕 때(725년) 만들어졌다. 보천은 입적하기 전, 오대산의 다섯 대를 점지하고 암자를 짓게 했다고 한다.
신라 성덕대왕이 형과 함께
수행하던 오대산
형 보천 스님이 입적하기 전
오대산 다섯 대 점지하고
암자 짓게 해
아늑한 비구니 수행도량 남대 지장암
남대 지장암은 오대천 물길의 지장교 건너 3분 거리다. 3분 거리 숲길에 ‘3분 거리’임을 강조하며 차를 두고 걸어 들어올 것을 권하는 안내판이 이어진다. 짧아도 전나무숲길 거니는 맛이 아주 좋다.
지장암은 지옥의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을 모신 암자다. 한강 이북에서 가장 규모 큰 비구니 도량이라고 한다. 본디 뒷산(기린산) 중턱에 있었으나, 조선 말 비구니 한분이 호랑이에게 희생되자 현 위치로 옮겼다. 비구니 도량답게 분위기는 조용하고 아늑하고 정갈하다. 선방 기둥의 한글 주련과 요사채의 한글 이름(넉넉당)이 이채롭다.
이 암자에서 빛을 발하는 곳이 두곳 있다. 법당 양쪽 산자락의 전나무(젓나무)숲이다. 오른쪽 길로 들어 넉넉당 지나면 곧바로 산책로가 이어진 아름드리 전나무숲이 나타난다. 스님들의 산책·휴식 공간이다. 지장암의 샘인 총명수 우물이 이곳에 있지만, 지금은 물이 말라 있다. 법당 왼쪽 해우소 지나 잠시 걸어 올라도 울창한 전나무숲이 펼쳐진다. 키다리 전나무들이 하늘을 가린 숲길은 어둡고, 짙푸른 이끼 덮인 물길은 눈부시다.
욕심 없는 노승이 15년 지켜온 동대 관음암
동대 관음암 가는 길은 가파른 시멘트길이다. 오대천 물길에서, 산괴불주머니들이 피어나 흔들리는 산길을 30~40분 걸어 오르면, 구원을 바라는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암에 닿는다. 이웃 할아버지 같은 온화한 얼굴의 노승이 손도끼로 나무를 다듬고 앉아 있다.
“처음 와보이 절집이 다 허물어져삐린 기라. 그래 고치고 짓고 다듬고 하다보이께네 10 한 5~6년 지난갑다.” 소탈한 성품과 선지식으로 존경받는 월정사의 어른 중 한분으로, 고승 한암, 탄허, 만화 스님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월면 스님이다. 이 암자엔 불전함이 없다. 차를 내다 준 보살(여성 불자)은, “딴 욕심은 없는데, 스님이 일 욕심이 많아 장작 패기부터 문짝 고치기까지, 암자의 모든 잡일을 손수 해결한다”고 귀띔했다. 욕심 없는 노승이 지키는 관음암 옆 산자락엔 산괴불주머니·현호색·제비꽃 들이 돋아나 소박한 암자를 환하게 비춰준다. 동대의 샘은 청계수다.
상원사 오르는 길에 오대산 사고 터와 사고 수호 사찰인 영감사도 만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등에는 본디 오대산 남대가 영감사라는 기록이 전해온다고 한다.
이정표도, 반기는 이도 없는 서대 수정암
오대 암자 중에서 가장 빛나는 절집과, 가장 멋진 숲길을 거느린 암자가 서대 수정암이다. 이정표도 없는 가파른 산비탈 오솔길을 40분쯤 걸어 오르면, 고색창연한 너와지붕 판잣집 암자에 닿는다. 40분 거리를 1시간쯤으로 늘려주는 게 산자락에 지천으로 깔린 노루귀·얼레지·제비꽃·현호색 등 이른 봄에 피어나는 야생화들이다. 흰 노루귀들이 가장 많고, 변종인 파란색 노루귀들도 자주 눈에 띈다.
‘참선 정진중’ 팻말이 붙은 산문 앞엔, 조선시대 한강 발원지로 꼽혀온 샘 우통수가 있다. 요즘은 태백 검룡소가 한강 발원지로 인정받았지만, 선조들은 우통수를 한강의 시원으로 여겨 신성시했다. 물맛이 묵직하고도 청량하다는, 조선시대 3대 샘물 중 하나다. 우통수 수곽(나무틀 우물)을 들여다보니, 도롱뇽이 낳은 알이 한껏 부풀어 깨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서대 수정암은 온통 나무로 덮여 있다. 지붕도 벽도 문도 나무판자요, 담도 장작을 쌓아 만들었다. 굴뚝도 전나무 속을 파낸 나무굴뚝이다. 손바닥만한 마당과 발바닥만한 텃밭 주위로는 꿩의바람꽃·노루귀·제비꽃들이 해맑은 얼굴들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스님은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동대 관음암 쪽 능선 전망이 너와지붕 너머로 막막하게 펼쳐질 뿐이다.
오대산 중심,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
가장 많은 탐방객이 몰리는 곳이 중대 사자암이다. 사자암 거쳐 적멸보궁을 찾는 탐방객이 많기 때문이다. 길도 훤하고 건물도 번듯하다. 사자암 안내판에서, 김홍도가 18세기 말에 그린 <오대산 중대> 그림을 볼 수 있다. 오솔길로 이어진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이 운치있게 그려져 있다. 사자암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적멸보궁의 수호 암자다.
중대 적멸보궁은 자장 율사가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5대 적멸보궁(양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중대) 중 한곳이다. 정면 세 칸의 소박한 법당 뒤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임을 알려주는 작은 마애탑이 하나 서 있다.
사자암에서 적멸보궁 오르는 산길엔 진달래가 한창이다. 적멸보궁 못미처 길옆에 용안수가 있다. 적멸보궁이 자리한 곳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용의 정수리이고, 샘물이 용의 눈에 해당한다고 한다. 물맛은 달고 개운하다.
야생화밭에 둘러싸인 북대 미륵암
오대 암자 중 가장 멀고, 가기 어려운 곳이 북대 미륵암이다. 상원사 들머리에서 미륵암 거쳐 두로령 넘어 홍천 내면분소까지 이어지는 16.5㎞ 거리의 임도가 이어지지만, 차량 통행은 금지돼 있다. 게다가 해마다 3월부터 5월15일까지, 산불 우려로 아예 입산이 금지되는 산길이다. 입산금지 기간이지만, 미륵암 덕행 스님의 배려로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었다.
오백 나한(아라한: 깨달음을 얻은 이)을 모신 북대 미륵암은 옛날엔 상두암·도솔암으로 불렀다. 덕행 스님은 “상두암은 신성시하던 코끼리의 머리를 뜻한다”며 “선인들은 북대를 특히 신성한 곳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암자 뒤 산자락에 소박하게 자리잡은 차실에 앉아 오백 나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 주석하던(머물던) 나옹선사가 오백 나한에게 상원사로 가라고 한 뒤 상원사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데 두 나한이 안 보여 찾아보니 칡덩굴에 걸려 못 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 뒤 나옹선사는 오대산에서 칡을 쫓아내, 지금도 칡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칡덩굴은 무엇일까. 칡덩굴처럼 얽힌 세상 인연이 수행을 가로막는 번뇌였을 것이다. 미륵암 앞 산자락엔 나옹선사가 적멸보궁을 바라보며 수행했다는 나옹대가 있다.
북대 미륵암 옆산·뒷산 자락엔 얼레지가 지천이고, 산등성이엔 노루귀가 찬바람을 견디며 흰 꽃송이들을 무수히 피워 올렸다. 북대엔 감로수가 있다.
오대산(평창)/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수행하던 오대산
형 보천 스님이 입적하기 전
오대산 다섯 대 점지하고
암자 짓게 해
동대 관음암의 월면 스님과 요사채.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서대 수정암. 너와집 법당에 장작으로 쌓은 담을 둘렀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상원사 영산전 앞에 선, 이름도 내력도 없는 상처투성이 석탑. 탑신들에 조각된 삼존불상이 매우 아름답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오대산 암자 탐방길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얼레지.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