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낙서

쾌감과 건강을 높여주는 '체위의 기술'

오완선 2016. 7. 20. 12:26

운우지정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 ‘요본(搖本)’

조선시대, 평생 서책만 들추다 늦게 벼슬을 얻은 원님에게 관례에 따라 행수기생(行首妓生, 관아에 속한 기생의 우두머리)이 수청기생(守廳妓生)을 들여주었다. 하지만 원님은 기생을 소나 닭 보듯 했다.

기생이 “일찍이 방외범색(房外犯色, 자기 아내 외의 여성과 육체 관계를 맺음)이 없으셨습니까?” 하고 외도 경험을 물어보았다. 이에 원님은 “옛말에 내가 남의 처를 훔치면 남도 나의 처를 훔친다고 말하였으니, 어찌 내가 이와 같이 옳지 못한 일을 했겠는가”라고 답하였다. 기생은 더 묻지 않고 잠이 들었는데, 원님이 찬찬히 기생의 모색을 살펴보자 눈자위가 희고 입술이 붉은 미인이라 불현듯 마음이 동요했다. 참지 못하고 기생을 품에 안았는데, 기생이 갖은 체위와 교태로 응대하자 난생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다.

방사가 끝난 후 원님이 행수기생을 불러 “난생처음 운우지정의 참맛을 보았다”고 치하했다. 행수기생이 “여인네의 허리 아래 움직임은 이름하여 요본(搖本)이니, 이는 곧 남자의 흥을 돕기 위함입니다”라고 답하자, 원님이 “30년 동안 아내와 행방(行房)을 해봤어도 절묘한 재미는 보지 못하였으니, 나의 아내란 사람은 부녀자로서 마땅히 행할 요본이란 것을 모르는지라. 가히 탄식할 만한 존재밖에 안 된다” 하고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하룻밤을 두 밤같이 길게 만드시네’

일화에서 보듯 성행위의 만족도는 남녀간의 적극적인 표현과 체위가 절대적인데, ‘사랑싸움’이 동반되면 쾌감이 배가된다. 사랑싸움은 성행위 시 상대방의 기운을 서로 취하려고 벌이는 행동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중의학에서는 여성의 생식기를 여자포(女子胞), 포문(胞門) 등으로 불렀는데, 기가 발산되는 곳을 뜻한다. 도교 양생법의 핵심인 사정 억제는 흥분한 여성의 기를 더 많이 취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성행위 중 흘리는 여성의 땀이나 애액을 흡입하는 것도 적극 권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체위를 통해 음기를 얻으려고 했는데, 이탈리아의 시인 아레티노가 쓴 <16가지 체위>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는 남성이 누워서 등을 활처럼 들어 올려 두 팔과 두 다리로 버티고 여성이 사타구니에 올라타서 후배위를 하는 14번째 체위가 가장 효과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 체위는 파트너의 우윳빛 엉덩이가 현란하게 요동치는 것을 보며 쾌감을 누릴 수 있지만 웬만한 체력으로는 잠시도 버텨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격렬한 욕망에 고동 칠 때, 모인 정액을 누구한테라도 쏟아라”라고 일갈한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만물의 본성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성애의 완성이 무엇인지를 설파했는데, 키 작은 여성은 앉은 체위로, 몸이 작은 여성은 옆으로 누워서, 허리선이 미끈한 여성은 후배위로, 미인은 정상위로 사랑을 나누면 신체적 약점은 감춰지고 즐거움은 배가 된다고 기술했다.

중국 역시 체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는데, 청나라 말기에 사랑하는 임과 열락의 밤을 보낸 어느 여성은 ‘아홉 번째 사랑 님은 본래 정력이 강해 / 소녀를 죽게 해놓고 또 발기되시네. / 서른여섯 가지 체위 다하시도록 하룻밤을 두 밤같이 길게 만드시네’ 라는 작품을 남겼다. 하룻밤에 36가지 체위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엽자(葉子)’라고 하는 춘화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엽자에는 다양한 체위가 그려져 있어, 카드 뽑기로 나오는 체위로 관계를 갖는 놀이가 유행했다고 한다. 북경의 유곽거리(공인 매음 지역)에서는 기녀들이 엽자를 들고 다니며 오가는 행인을 유혹할 정도였는데, 체위의 난이도(?)에 따라 흥정하는 화대가 달랐다고 한다. 해서 유곽거리에 밤이 깊어지면 엽자를 든 기녀들과 난봉꾼들의 질펀한 거래가 난무했다고 한다.

보수적인 조선시대, 체위에서는 개방적

엽자와 더불어 <소녀경>이나 <동현자>도 중국인의 성(性)지침서였다. <소녀경>은 아홉 가지 체위(九法)를, 동현자는 서른 가지 체위(三十法)를 제시하며 ‘음율(체위)에 정통한 군자는 그 뜻의 미묘함을 깨우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체위마다 쾌감과 몸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에 체위를 알면 더욱 즐거운 성생활은 물론이고, 성을 통해 양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유교를 절대적 가치로 여긴 우리나라도 체위에 대해서는 각별히 개방적이었는데, 화폐박물관에 가면 흥미로운 조선시대 별전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름하여 ‘체위별전(體位別錢)’으로 앞면에는 ‘풍화설월(風花雪月)’이란 글씨가 양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후배위와 정상위 등 4가지 문양이 새겨져 있다.

별전은 정상적으로 통용되는 주화(鑄貨)와 구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인데, 일종의 기념화폐로 왕실이나 사대부 등 상류사회의 패물이나 장식품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길상(吉祥, 운이 좋을 조짐) 및 벽사(僻邪, 좋지 못한 기운)에 관련된 문자와 문양 등 여러 형태가 있는데, 체위별전은 규방의 아녀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과 파트너의 체형에 맞는 체위가 이상적

15세기에 발간된 아라비아의 <영혼을 한가하게 보내는 향기로운 정원>이라는 성전(性典)은 중동 지역에서 널리 애호하고 있는 11가지 체위를 소상하게 설명하면서, “음문만 바라만 보아도 취하는(望門醉) 사람처럼 외곽만 맴돌고 실제적인 기쁨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나 느낀 대로 행해도 무방하다”고 가르쳤다. 체위가 고정불변의 자세도 아니며, 정형화된 틀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체위에 관한 최고의 성고전인 <카마수트라>에 보면 카마신이 고안한 체위는 무려 8만4000가지나 된다. 정상위, 후배위, 상위, 앉은 자세, 누운 자세, 반대 자세 등을 기본으로 변형·확장된 것인데, 자신과 파트너의 체형에 맞는 것이 가장 좋은 체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자세만을 고집하는 것은 성행위의 긴장도를 떨어뜨린다. 또한 행위 시 체위를 변화시키는 것은 쾌감을 다양화하고 시간을 연장시켜 주는 효과도 있다. 따라서 다양한 체위를 즐긴다는 것은 그만큼 성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 지침서들이 체위를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좀더 강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자세를 제시하는 한편, 성을 통해 건강 증진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비뇨기과학술대회에서 여성이 배우자에게 성행위를 요구하는 경우는 61.5%, 행위 시 체위를 바꾸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52.5%에 달한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밖에 여성의 31.5%가 배우자의 성기능에 문제가 있을 경우 불만을 토로한다고 답했으며, 12%는 남성의 성기능 장애에 대해 치료를 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부부관계를 숭고한 종족번식의 의식으로 여기던 여성들이 깨어난 것인데,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84%와 남성의 77%가 이른바 69체위인 구강성교를 즐긴다고 답했다. 따라서 의무적이고 영혼이 없는 성행위는 파경을 부르는 적신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부부금슬을 배가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매번 똑같은 체위의 반복과 동일한 장소에서의 성행위에서 벗어나는 변화와 성에 대한 솔직한 대화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