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그래, 네똥굵다.

오완선 2016. 8. 4. 16:16


자존감의 상징에서 ‘더러운 존재’까지…‘대변의 문화사’

아이들에게 똥은 친구이자, 또다른 ‘나’다. 이수빈(9·왼쪽)양과 김시헌(5)군이 똥 모양 인형을 들고 웃고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소품협찬 놀이똥산
아이들에게 똥은 친구이자, 또다른 ‘나’다. 이수빈(9·왼쪽)양과 김시헌(5)군이 똥 모양 인형을 들고 웃고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소품협찬 놀이똥산

“니 똥 굵다.”

학창 시절 친구를 놀릴 때 많이 쓰던 말이다. ‘너 잘났다’란 의미다. 잠깐, 똥이 굵은 게 왜 잘난 것일까? 프로이트에 따르면 똥은 일종의 자존감이다. 항문기라 불리는 유아 시절, 아이들은 배설의 쾌감을 알게 되면서 그 결과물인 똥을 자랑스러워하며 애착을 갖게 된다. 똥이 크면 클수록 애착은 커진다. 자신도 크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굵은 똥은 일종의 자신감이다. 똥이 굵으면 잘난 게 맞다.

그랬던 똥이,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냄새나고 더러운 존재로 변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눈곱, 코딱지, 땀, 비듬, 때, 가래, 침 등 불결하다고 여겨지는 여러 물질이 있지만 똥만큼 천대받는 것은 없다. 다른 분비물보다 덩어리가 크고 냄새가 지독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전염병의 매개체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어른의 세계에선 ‘똥’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내는 것 자체를 꺼린다. 꼭 써야 할 땐 ‘대변’ 등의 단어로 순화한다. 그 옛날, 개그맨 김형곤이 ‘니 똥 굵다’가 아닌 “니 팔뚝 굵다”로 바꾼 덴 이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똥을 가까이했다. 똥을 먹는 ‘분식 의식’은 인류의 오래된 문화 가운데 하나다. 문명의 손이 닿지 않는 소수 원주민에겐 요즘도 이 의식이 남아 있다. 이들에게 똥은 더럽고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분이다.

근대 초기까지만 해도 별도의 ‘화장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다는 건 유명한 얘기다. 그때까지 귀족들은 개인 변기를 가지고 다녔다. 베르사유 궁전을 지은 루이 14세는 변기가 26개나 있었다고 한다. 일반 시민들은 아무 데나 똥을 쌌다. 거리는 똥밭이었다. 똥을 싼 뒤 닦지 않았던 유럽인의 풍습 때문에, 똥 냄새를 감추기 위한 향수가 나오고, 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한 하이힐이 발명됐다. 무도회라도 열리면 개인 변기를 가져오지 못한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정원 아무 데서나 볼일을 봤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처음 만난 가면무도회장 근처도 전부 똥밭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인간과 똥을 분리하려는 노력은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조선 개화의 상징인 김옥균은 1882년 ‘치도약론’을 발표해 분뇨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을 처벌하고, 분뇨 처리 방법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3일 천하’와 함께 꿈으로 끝나버렸지만.

현대에 와서 인간은 똥과 완전히 분리됐다. 아침 변기 속에 빠진 똥은 인간과 마주할 기회도 없이 물과 함께 정화조로 빠져나간다. 냄새날까 화장실에 방향제를 뿌리고, 옷을 털고 나오는 등 인간은 자신이 최대한 똥과 멀리 떨어진 존재라고 대내외에 알린다.

수보드 굽타의 1999년 비디오 작품 <퓨어>(Pure, 컬러, 무성(silent), 9분13초) 갈무리. 아라리오뮤지엄 제공
수보드 굽타의 1999년 비디오 작품 <퓨어>(Pure, 컬러, 무성(silent), 9분13초) 갈무리. 아라리오뮤지엄 제공
그럼에도 인간의 무의식엔 똥에 대한 애착이 숨어 있다. 술자리에서 똥 얘기가 나오면 너나없이 ‘빵’ 터진다. 똥 얘기만큼 웃기는 얘기도 없다. 최근 서울 인사동에 문을 연 똥 테마파크 ‘놀이똥산’엔 주말이면 하루 1천여명이 몰려온다고 한다. 똥을 보러 말이다. 똥은 최근 과학계에서도 뜨거운 화두다. 각종 질병 치료를 위한 장내 미생물 연구의 열쇠를 똥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 현대미술가 수보드 굽타가 만든 <퓨어>(Pure)라는 작품이 있다. 영상 속 수보드 굽타는 소똥을 뒤집어쓰고 있다. 샤워를 할수록 똥이 씻겨 내려가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들러붙는다. 똥과 인간의 관계가 이런 것이 아닐까. 똥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