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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오완선 2016. 8. 30. 09:37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오랜 세월 헤라클레이온은 신화 속 상상의 도시로만 여겨졌다. 어느 곳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33년 영국 공군은 헤라클레이온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하늘에서 샅샅이 훑어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도시는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에 있었다

      입력 : 2016.08.30 08:05   

1990년대 말. 이집트 북부의 아부 퀴르만 해협 을 수색하던 프랑스 잠수부들의 뿌연 시야 사이로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가 나타났다. 잠수부들은 프랑스 유럽 해저 고고학 연구소 소속으로 18세기에 가라앉은 프랑스 전함을 찾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화강암은 거대한 석상(石像)의 일부였고, 주변에서 6개의 조각이 더 발견됐다. 석상은 고고학자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바로 이집트 신화에서 나일강의 범람을 관장하는 농업·다산(多産)의 신 '하피(Hapi)'였던 것이다.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진행됐고 하피가 왜 그곳에 묻혀 있었는지 곧 밝혀졌다. 하피가 서 있는 바닷속에서 고대 도시 '헤라클레이온'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집트 북부 아부 퀴르만 해협의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고대 도시 헤라클레이온 유물 위로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다. 대운하까지 갖추고 번성했던 헤라클레이온은 1200~1300년 전 지진으로 바닷속에 잠기면서 신화에서나 존재했던 도시로 여겨졌다. 2000년대 초반 유럽 해저 고고학연구소 연구팀이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해 발견했다. / 힐티재단·프랑크 고디오

해저에서 건져진 신화의 땅

신화 속에서 헤라클레이온은 영웅들의 무대로 그려진다. 반신반인(半神半人) 헤라클레스가 아프리카 모험을 시작한 곳이자, 스파르타의 헬레네가 트로이의 패리스와 함께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 곳이다. 기원전 450년 이집트를 방문했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화려한 헤라클레이온의 생활상과 헤라클레스 신전의 모습을 남겼다. 하지만 오랜 세월 헤라클레이온은 신화 속 상상의 도시로만 여겨졌다. 어느 곳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33년 영국 공군은 헤라클레이온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하늘에서 샅샅이 훑어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도시는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에 있었다.

현실의 '인디애나 존스'로 불리는 고고학자 프랑크 고디오가 이끄는 발굴단은 대운하를 갖춘 도시와 신전, 수많은 유물을 바닷속에서 건져냈다. 인디애나 존스에게 채찍이 있었다면, 고디오 소장은 첨단 과학 기술을 동원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한 아부 퀴르만 해역에서 음파탐지기를 투입해 유물들을 찾아냈다. 음파를 바닷속으로 쏜 뒤 돌아오는 거리를 측정해 유물의 위치를 파악한 것이다. 지구 자기장을 측정하는 핵 자기공명 자력계(Nuclear Magnetic Resonance Magnetometer)도 썼다. 거대한 도시를 이루는 암석들이 해저에 있으면 수면에서 측정하는 지구 자기장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 이를 이용해 거대 도시 헤라클레이온의 구조를 파악하고, 훼손을 방지하면서 발굴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로봇 탐사정으로 유물을 발굴하는 모습. / 힐티재단·프랑크 고디오

'현실의 인디애나 존스' 고디오 발굴단
음파 탐지기·핵 자기공명 자력계 사용
대운하 갖춘 도시와 신전·유물 발굴

연구팀이 그려낸 헤라클레이온의 복원도에 대해 항구 전문가들은 "오늘날도 이만큼 설계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라는 탄사를 쏟아냈다. 고디오는 유물 복원 작업에도 첨단 기법을 썼다. 해저에 오래 머무른 석상과 유물들은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크기가 변한다. 고디오는 전기 화학적 분해법을 이용해 소금기를 제거하고 유물들을 원상태에 가깝게 되돌렸다.

그렇다면 왜 헤라클레이온은 땅에서 사라진 것일까. 해저에 묻혀 있는 도시를 재구성하고 주변 지반을 탐사하면서 원인이 밝혀졌다.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이 반복되면서 헤라클레이온이 자리 잡고 있던 해수면이 올라오고, 지반은 낮아지는 현상이 반복되다가 1200~1300년 전 도시를 둘러싼 땅이 해저로 가라앉은 것이다. 고디오는 수학과 출신으로 금융업계에 종사하다가, 뒤늦게 어릴 적 꿈을 찾아 고고학에 뛰어들었다. 주류 고고학계에서는 그의 경력을 들어 '이단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발굴법과 역사책에 얽매이지 않고 상상을 과학으로 입증하기 위해 애쓴 그의 접근법이 영원히 바닷속에서 잠들 뻔했던 도시 헤라클레이온을 되살려냈다.

◇과학이 부른 고고학의 격변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만개 이상 나라와 도시국가가 명멸(明滅)했지만, 현재 우리가 그 실체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헤라클레이온과 같은 '사라진 도시',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낸다고 해도 일부일 뿐이다. 그랜드 마스터상을 받은 미국 작가 어설라 르 귄은 고대 도시 유적에 대해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사람들은 이 세계의 전설과 사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물었다.

과학은 전설과 사실을 구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실제로 현대 고고학은 과학과 결합하면서 격변기를 맞고 있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영상을 이용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주변 거대 밀림에서 또 다른 사원의 흔적을 찾아냈다. 과학은 그리스에 맞섰던 트로이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최소 수천년간 이어진 10개의 왕국이었음을 밝혔다. 발굴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이탈리아 폼페이에서는 화산재에 묻혀 숯덩이가 돼버린 그 시절의 문서를 읽는 도전이 시작됐다.

과학기술 날개 단 현대 고고학
앙코르와트·마추픽추·폼페이…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잉카제국의 도시 '마추픽추'와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이전 북미 대륙의 가장 큰 도시였던 '카호키아'는 왜 멸망했을까. 영국 스톤헨지와 칠레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은 누구의 작품일까. 사라진 도시와 함께 사라진 사람들이 그 답을 얘기해 줄 리는 없다. 고고학자와 과학자들이 맞춰갈 퍼즐에서 우리는 또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까.

NASA가 '제2의 앙코르 와트' 발굴, 잿더미 로마 문서는 X선으로 꿰뚫어


밀림 속에 우뚝 솟은 석조 건물과 그 사이를 꿰뚫고 자라는 나무들.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의 역사가 다시 쓰이고 있다. 당초 이 사원은 앙코르 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자신의 사후를 위해 지은 바라문교(婆羅門敎) 사원이다. 동서 1500m, 남북 1300m에 이르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정면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동양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오랜 전란(戰亂)으로 완벽한 복원은 힘든 상황이다. 또 나무가 건물 사이로 자라면서 곳곳이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앙코르 와트가 외로운 사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1861년 프랑스 박물학자가 이 사원을 발견한 이후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정립됐던 동남아시아 지역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발견이다.

그래픽=김현지기자

고대 유적 속 전설과 진실의 경계, 현대 과학으로 재조명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호주 연구팀은 최첨단 항공 레이저 측량 기술로 앙코르 와트 인근을 하늘에서 내려다봤다. 앙코르 와트가 자리 잡은 밀림 지대는 빽빽한 나무 때문에 육안으로는 지형지물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레이저를 이용하면 겉모습뿐 아니라 밀림 바닥까지 꿰뚫어 보며 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닿은 인공물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헬리콥터에서 지상으로 레이저를 쏜 뒤 돌아오는 거리와 모양, 세기 등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神이 되고 싶었던 왕,
밀림 속 신전
'앙코르 와트'를 세우다

2012년 1차 레이저 측량에서 연구팀은 앙코르 와트가 메알레아, 코케르 등 과거 발견됐던 인근 도시들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작년에 좀 더 범위를 확대해 2차 레이저 측량을 진행하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연구를 주도한 호주 고고학자 데미안 에반스 박사는 지난 6월 국제학술지 '고고학 저널'에 "앙코르 와트 인근의 열대 밀림에 900~14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개의 도시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새롭게 발견된 도시와 사원의 크기는 현재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특히 레이저 측량에서는 정교한 급수 시설과 다리 등 도시의 근간을 이뤘던 주요 기간 시설의 흔적도 나타났다.

고고학자들은 이번 발견이 앙코르 와트 연구에 '생명'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예일대 교수이자 저명 고고학자인 마이클 코에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앙코르 와트에 누가 살았는지, 놀라운 문화가 어떻게 번성하며 유지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아직 우리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다"면서 "이번 발견이 지난 100년간 이룬 앙코르 와트에 대한 연구 중에 가장 훌륭한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하루 아침에 묻힌 도시,
폼페이

로마 시대의 도시 폼페이는 사라진 도시 중 가장 완벽하게 복원된 도시로 꼽힌다. 현재 무려 95%에 이르는 도시의 옛 모습이 복원된 상태이다. 폼페이는 화산재에 묻혀 있었던 덕분에 시대의 변화를 피하면서 로마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도시 자체가 완벽한 박물관이자 민속촌인 것이다. 도로 구조, 배수관의 위치, 극장의 형태, 공중목욕탕의 사용법, 신분에 따른 집의 구조까지 2000년 전 로마의 모습 중 상당수가 폼페이에서 밝혀졌다.

무엇보다 폼페이의 진정한 가치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것들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어떤 역사서도 시민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역사는 지배계층의 시각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폼페이에서는 피지배계층은 물론 마구간과 당나귀까지 고스란히 발견됐다.

더 이상 밝혀낼 것이 없어 보이던 폼페이에서도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이탈리아 초소형전자공학연구소 비토 모첼라 박사 연구팀은 지난해 숯덩어리 상태인 파피루스 두루마리의 문자를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두루마리가 발견된 헤르쿨라네움은 베수비오화산 폭발 때 폼페이와 함께 묻힌 이웃 도시이다. 종이의 원조인 파피루스는 열을 받으면 숯처럼 새까맣게 탄화(炭化)된다. 억지로 펴려고 하면 바스러지기 때문에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연구팀은 강력한 X선을 이용했다. 강력한 X선으로 파피루스의 내부를 꿰뚫어본 것이다. 잉크로 파피루스에 글을 쓰면 완전히 스며들지 않고 0.1㎜ 정도 솟은 상태로 굳는다. 이 차이를 X선으로 읽어내 두루마리에 쓰인 글자를 읽어냈다.

로마 시대의 문서들은 대부분 소실됐다. 고고학자들은 후대 역사가들이 전해듣고 적은 글을 보고 과거를 짐작하거나 재구성한다. 하지만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도서관과 공공기관에 쌓여 있는 탄화 문서들을 읽을 수 있다면 로마 연구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트로이/ 조선DB

호메로스의 전설,
트로이

19세기까지 고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노래한 트로이를 단순히 신화로만 여겼다. 하지만 여덟 살에 아버지에게 트로이 전설을 들은 하인리히 슐리만은 달랐다. 그는 트로이가 실재했다고 확신했고, 수십년간의 노력 끝에 실제로 터키에서 트로이를 찾아냈다.

하지만 슐리만이 찾은 트로이는 그가 찾아 헤맨 트로이가 아니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정밀한 연대 측정을 통해 트로이 유적의 구조를 밝혀내고 있다. 그 결과 같은 자리에 도시가 생겨났다 없어지고, 다시 그 위에 도시가 생기기를 반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사선 동위원소 측정 등을 통해 단층(斷層)처럼 쌓여 있는 도시의 흔적을 한 꺼풀씩 벗겨 내는 작업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최소한 10개의 트로이가 밝혀졌고 앞으로도 더 많은 트로이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슐리만이 엄청난 양의 보물을 찾아낸 트로이는 두 번째 트로이, 실제 호메로스가 쓴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스’에 나오는 트로이는 일곱 번째 트로이였다. 시간상으로 보면 수백년 이상의 차이가 있다. 슐리만은 현대 고고학 발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마추어였던 슐리만은 섣부른 발굴보다는 조심스러운 발굴을 선호했다. 최대한 광범위한 영역을 설정한 뒤 조심스럽게 파내려가는 방식을 개발했고, 이 방법은 현재까지 사용된다. 당시 슐리만이 인부를 동원해 발굴한 지역은 무려 25만㎡에 이른다.

태양의 제국을 일궜던 잉카인들이 더 깊은 곳을 찾아 떠나면서 버려진 마추픽추는 여전히 수많은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 조선DB


공중도시,
마추픽추

1900년대 초반 미국 예일대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재단의 지원을 받아 남미 탐사에 나섰다. 빙엄을 이끈 것은 ‘대단히 높은 산꼭대기에 정교한 기술로 건축된 장대한 건물이 솟아 있다’는 고문헌의 한 문장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태양의 제국’으로 불렸던 잉카 문명의 흔적을 찾아낼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1911년 빙엄은 가장 찬란했던 문명 도시 마추픽추를 찾아냈다.

15~16세기에 번성했던 잉카 제국은 남미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지만, 200명도 되지 않는 스페인 군대에 의해 멸망했다. 마추픽추는 잉카인들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도시로 추정된다. 마추픽추의 절반은 농경지로 계단식 밭에서 최소 1만명이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생산됐던 것으로 보인다.

태양의 제국이라는 별명답게 마추픽추의 신비를 밝히는 결정적인 열쇠는 천문학이 쥐고 있다. 이들은 수백 년 전에 이미 1년의 길이를 365.242129일이라고 정확히 계산해낼 정도의 천문학 지식을 갖고 있었다. 폐허가 된 마추픽추의 각종 건물의 역할을 규명하는 데도 천문학이 활용된다. 각종 건물에 새겨져 있는 무늬조차도 특정 날짜와 연관이 있을 정도였고, 윤년·윤달까지 표시돼 있다는 점이 천문학자들의 참여를 통해 확인됐다.

1492년 콜럼버스 이전의 북미 정복자들. 미국 일리노이주 세인트루이스 교외에 있는 미시시피 문화의 흔적인 '카호키아' 는 한때 인구가 1만명에 이르렀다.


콜럼버스 앞선
개척자의 도시,
카호키아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북미 대륙에 도착하고도 ‘인도’라고 착각했다. 콜럼버스의 실수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곳을 미개한 원주민들의 땅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도착보다 수백년 먼저 북미 대륙에는 현재의 서울에 비견될 만한 거대한 도시가 존재했다. 바로 오늘날의 일리노이주 세인트루이스 옆에 있었던 ‘카호키아’이다.

카호키아는 미시시피인으로 불리는 부족이 주도적으로 건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1000년 무렵에 건설돼 1350년까지 이어졌다. 유적의 규모를 볼 때 최대 1만명 정도가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인구를 감안하면 현재의 1000만명 도시에 비견되는 수준이다.

카호키아를 둘러싼 궁금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위치가 대도시가 자리 잡기에 적합하지 않다. 미시시피강이 범람하는 지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토머스 에머슨 일리노이 주립대 교수는 “카호키아가 이곳에 건설된 것은 강을 이용해 수많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라며 “일종의 종교 도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실제로 카호키아의 중심에는 거대한 제단이 설치돼 있었다. 또 과학자들이 발굴된 유골의 치아를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으로 조사한 결과 3분의 1은 외부인이었다. 먹는 음식의 종류가 다르면 치아에 남아 있는 방사성 물질의 양도 다르다는 점을 이용한 측정법이다. 이 밖에 제단 인근에서는 목이 깨끗하게 잘린 시신들이 발견됐다. 종교적 의식에서 주로 나타나는 형태이다.

두 번째 궁금증은 왜 카호키아가 사라졌는지이다. 과학자들은 카호키아에서 발굴한 유골에서 전쟁 등 외부 침입의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뚜렷한 전염병의 흔적도 없다. 결핵, 페스트 등 치명적인 전염병들은 뼈에 변형이나 감염 등의 흔적을 남기지만 카호키아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전염병,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 사람들이 도시를 버리고 떠났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심지어 미국 원주민 사이에서도 카호키아에 대한 전설은 전해지지 않는다. 철저히 ‘사라진 도시’인 것이다.

아름다운 이곳 언젠가는 지도서 없어질 수도…

'다윈의 섬'
갈라파고스

'다윈의 섬' 갈라파고스는 육지와 고립된 덕분에 다양한 생물종이 보존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매년 12%씩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섬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들을 위한 호텔과 식당도 계속 늘면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현재 갈라파고스에 서식하는 새와 육지동물의 4분의 3은 멸종 위기종이다. 다양한 생물이 사라진 갈라파고스를 계속 다윈의 섬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갈라파고스/조선DB
 

1200개의 섬나라,
몰디브

아시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몰디브는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인기 높은 신혼 여행지이다. 하지만 몰디브는 100년 이내에 사라질 전망이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몰디브를 구성하는 섬 1200개 중 80%에 이르는 960개는 해수면보다 고작 1m 정도 위에 있을 뿐이다. 2008년 몰디브는 “다음 세기에는 몰디브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선언했다.

몰디브/조선DB

'물의 도시'
베네치아

아름다운 운하와 그 사이를 오가는 곤돌라.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상징들은 앞으로 70년 뒤면 역사책에서나 찾아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베네치아가 바닷물에 잠기는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매년 4~6㎜씩 수위가 올라간다. 향후 100년간 베네치아를 둘러싼 바다의 수심은 23㎝가량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도 베네치아의 주요 광장과 건물 일부는 1년 중 60일 이상을 물에 잠긴 채 보내고 있다.

베네치아/조선DB

알프스의
마테호른·몽블랑

알프스의 가장 큰 적도 지구온난화이다. 산 위를 하얗게 덮고 있는 만년설(萬年雪)이 점차 줄어들면서 꼭대기가 하얗게 물든 마테호른과 몽블랑을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고작 40년 뒤에 일어날 일이다. 1980년대 이후 알프스 일대의 만년설은 이미 20% 줄어들었다. 지난 7월은 1800년대 후반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무더운 달이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알프스는 만년설 없는 그냥 높은 산이 될 수도 있다.

알프스/조선DB

야생동물의 천국,
마다가스카르

세계에서 넷째로 큰 섬인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는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갈라파고스에 비견될 만한 이 섬 역시 무분별한 벌목과 개발로 위협받고 있다. 특히 야생동물을 구경하기 위해 차를 타고 초원을 누비는 ‘게임 사파리’가 늘어나면서 소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밥나무’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마다가스카르가 현재처럼 방치된다면 황폐한 섬이 되는 데 고작 35년이면 충분하다.

마다가스카르/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