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하이에나 재벌...

오완선 2016. 9. 22. 08:01



입력 : 2016.06.10 05:57

                  
박정훈 논설위원

전관예우 논란을 부른 홍만표 변호사 사건에서 단연 화제는 그의 광적인 '오피스텔 쇼핑'이었다. 홍 변호사는 본인과 아내·처남 명의로 오피스텔 67채를 갖고 있었다. 그가 지배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A사 것까지 합치면 총 123채다. 천안의 한 오피스텔 빌딩에선 2개 층 수십 채를 통째로 사들이기도 했다. 마치 우표 모으듯 오피스텔을 수집했다.

세금 몇 푼 아끼려 꼼수도 썼다. 주거용으로 월세 주면서도 관청엔 업무용으로 신고했다. 업무용은 부가세 10%가 면제되는 것을 악용한 것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세금 수억 원을 탈세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서초동 법조 타운의 사건을 갈퀴로 긁어모은 큰손이었다. 사건 수임료만 수백억을 번 사람이 '푼돈' 몇 억 아끼려 탈세까지 저질렀다.

변호사가 돈 버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해도 너무했다는 점이다. 그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싹쓸이 수임으로 사건의 씨를 말렸고, 중산층이 소액 투자하는 오피스텔까지 손댔다. 거악(巨惡)에 맞섰다는 특수통 검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탐욕에 눈먼 졸부(猝富)만 있을 뿐이었다.

                  
롯데면세점으로 불똥 튄 '정운호(네이처리퍼블릭 대표) 게이트'…20억 받고 면세점 입점시켜준 혐의로 신영자 이사장 자택 등 압수수색. /조선일보 DB

재벌 일가가 푼돈에 손대고
천억 부자가 몇억에 영혼파니
자본주의 진보는 이뤘으나
돈의 철학은 여전히 후진적
우리 사회 反부자 정서는
상당부분 부자가 자초한 것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켜져 온 부자의 규칙이 있다. 그 첫째는 돈의 씨를 말리지 말라는 것이다. 경주 최 부자 가문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게 하라'는 가훈을 지켰다. 이웃 먹을 몫은 손대지 말고 남겨 두라는 뜻일 것이다. 최 부자 집안은 이 가훈을 400년 동안 대대손손 물려주었다.

근래 터진 일련의 사건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재벌의 '졸부화(化)'로 부를 만한 현상이다. 부자는 부자답게 큰 돈벌이를 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재벌 오너 일가는 작은 돈벌이까지 내버려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푼돈에 눈독 들이는 졸부 같은 오너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소탐대실의 대표적 케이스다. 그는 한진해운의 내부 정보를 알고 보유 주식을 매각해 손실을 회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렇게 해서 최 전 회장 모녀가 아낀 손실액은 10여억원이다. 보유 자산 2000억원의 재벌가(家) 며느리가 겨우 10억원에 흔들린 셈이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김 회장 역시 법정관리 신청 직전 주식을 팔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금감원에 따르면 김 회장의 손실 회피액은 2억7000만원이다. 재벌 회장에겐 '껌 값'일 2억여원을 건지려 했다는 것이다. 금감원 발표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6월8일 오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 소환받은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서울 남부지검으로 들어가고 있다. /장련성 객원기자

그러나 재벌 패밀리가 '푼돈'과 '껌 값'에 손대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서울 소공동 한진빌딩의 E커피숍에 가면 영수증에 대표자가 '조현아'로 찍혀 나온다. 한진가(家)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다. 동생인 조현민 전무도 인하대병원에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다. 대재벌 후계자가 커피숍 주인이라니, 이런 블랙 코미디가 없다.

이명박 정부 때 '재벌 빵집' 논란이 일었다. 롯데·신세계 등의 오너 가족이 빵집까지 경영한다고 여론 몰매를 받았다. 이후 재벌들이 빵집에선 철수했지만 카페며 음식점은 도리어 더 늘렸다. 대기업 계열사나 오너 일가가 운영하는 요식업체는 100여 곳에 이른다. 라멘집·카레식당에서 돼지구이집, 심지어 순대·떡볶이 프랜차이즈까지 있다.

CJ·이랜드 등은 동네 음식점과 경쟁하는 한식 뷔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신세계는 '정용진 맥줏집'으로 불리는 수제 맥주 체인점을 차렸다. 정용진 부회장이 기획했다고 이런 별칭이 붙었지만 결코 명예로운 이름은 아니다.

재벌가의 요식업은 해외 유학파 자제들이 주도한다고 한다. 유학 시절 맛본 음식점 브랜드를 수입해 기업형으로 펼치는 것이다. 외제차와 명품 수입도 재벌 자제들의 단골 아이템이다. 대기업의 자본력과 유통망이 뒷받침되니 땅 짚고 헤엄치기다.

롯데가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뒷돈 의혹에까지 휩싸였다. 롯데면세점 입점 업체에서 '자릿세'를 받았다는 혐의다. 최종 수사 결과는 안 나왔지만 뒷돈 액수는 2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신 이사장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0억원 넘는 주식을 갖고 있다. 그런 자산가가 20억원을 탐냈다니 기막히다 못해 서글퍼질 지경이다.

신 이사장은 몇 년 전까지 롯데 계열 영화관의 팝콘 매장 사업을 독점했다. 이번 사건에선 아들 소유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의혹도 불거졌다. 롯데만은 아니다. 대부분 대기업에서 오너 일가가 기업에 파이프를 박고 사적(私的) 이익을 뽑아내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많은 진보를 이뤘지만 돈의 철학은 여전히 후진적이다. 돈 된다 싶으면 마지막 살점까지 뜯어먹는 '하이에나 부자'들이 판치고 있다. 재벌가 딸이 커피숍에 손대고, 1000억 부자가 몇 십억에 영혼을 판다. 이러니 부자가 존경받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 '반(反)부자 정서'가 존재한다면 그 상당 부분은 부자가 자초한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