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6 15:20
▲ 기아차 스토닉 /사진=기아차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배스킨라빈스 31'의 다양한 메뉴는 '골라먹는 재미'가 아닌 스트레스일 뿐이다. 최근 완성차 업체들이 내놓는 차량도 지나치게 다양한 트림과 옵션으로 현대인의 결정 장애를 배가시켰다. 가솔린, 디젤, 하이브리드 중 파워트레인을 선택하고 난 후에 배기량을 골라야 한다. 여기에 더해 조합에 따라 수백만 원 차이를 내는 옵션 항목을 보고 있노라면 아찔해질 지경인 것이다.
기아차가 이런 현대인들을 위해 파워트레인을 1.6 디젤 엔진으로 통일하고, 옵션에 따른 변화를 최소화한 소형 SUV 스토닉을 내놨다. 가격 변화 폭은 1895만원부터 2395만원으로 최대 500만원이다. 현대차 소형 SUV 코나가 엔진과 옵션 구성에 따라 1895만~2980만원으로 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스토닉 최저가 모델 구매를 고민하는 고객에겐 '어차피 살 바에야 최고가가 낫지'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반면, 코나에서는 성립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지난 1일 스토닉을 타고 수도권 89.9㎞를 달리며 기아차가 주장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의 정체를 탐구해봤다.
▲ 결정장애를 겪는 이들을 위해 중국집들은 1990년대 후반 '짬짜면'을 내놨고, 사람들은 이제 짬짜면을 먹을지 짬볶면을 먹을지 고민하게 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토닉에는 딱 필요한 것만 들어있다. 일단 주행 모드 변경이 안 된다. 컴포트, 스포츠, 에코 등으로 변해 주행 감성을 변경할 수 있는 요즘 대다수 차들과 다르다. 다이얼을 돌려가며 자신의 기분에 맞춘 운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쉬울 만한 부분이다.
그런데 이건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에겐 장점으로 다가간다. 자신이 지금 달리고 있는 상황이 연비 주행 모드인 '에코'를 적용해야 할 시점인지, 보다 역동적인 주행을 느낄 수 있는 '스포츠'가 어울릴 타이밍인지, 귀한 손님을 편하고 모시고 가기에 적합한 '컴포트'로 맞춰야 할 때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기아차 스토닉은 다이얼을 통한 주행 모드 변경이 안 된다. 사이드 브레이크도 잡아 당겨서 작동하는 고전적 방식이다.
▲ 기아차 스토닉에는 전동 시트 옵션이 없다. 수동으로 잡아 당겨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
▲ 기아차 스토닉은 에너지 소비효율 1등급을 자랑한다.
반면, 저속 구간에서 느껴지는 엔진 소음과 차체 떨림은 단점이었다. 이 단점은 가속할 때보다는 감속할 때 크게 느껴졌다.
등판력 역시 동급 차량과 비교해 우수했다. 보급형 차를 타고 타워형 주차장을 올라가다 아찔한 경험을 해본 운전자들이 있을 것이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을 때 차가 뒤로 쭉 밀려나는 경험 말이다. 스토닉은 그런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서 실험을 해도 아래로 쉽게 밀려나지 않았다. 경사가 조금 심한 곳에서도 살짝 밀려나다 곧 중심을 잡았다. 또한, 경사로 밀림 방지 기능도 전 사양에 기본 장착해 부주의로 인한 사고 가능성도 줄였다.
▲ 모든 걸 다 뺐지만 고객 선호도가 높은 옵션들은 스토닉에도 존재한다. 45만원짜리 선루프를 개방하고 본 가을 하늘.
소형 SUV를 타는 이유에 대해 누군가는 "일단 SUV의 보디를 입으면 차가 소형인지 아닌지 잘 구분이 안 된다"고 설명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우리가 잘 아는 소형 SUV들은 다소 짧은 차체에 비해 키(전고)가 크다. 준중형 세단 아반떼(전고 1440㎜) 대신 코나(1550~1565㎜), 티볼리 아머(1590~1600㎜), 트랙스(1650~1680㎜) 등 소형 SUV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유 중 하나다.
다시 말하자면, 돈을 많이 안 쓰고도 도로 위에서 존재감을 내뿜고 싶어 소형 SUV 구매를 고려하는 사람에겐 스토닉은 적합한 선택지가 아닐 수도 있다. 스토닉의 키는 1520㎜로 일반적인 세단에 비해서는 크지만 트랙스에 비해서는 최대 16㎝까지 작다.
같은 말을 바꿔서 장점으로 만들 수도 있다. 스토닉의 외모에서는 SUV 특유의 둔해 보이는 인상이 없다. 세단에 가까운 날렵한 비율로 실용성과 스포티한 감성을 한꺼번에 갖춘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는 소비자의 선택이다.
▲ 기아차 스토닉은 키로 존재감을 뽐내지 않는다. 대신 라디에이터그릴부터 헤드램프까지 날렵하게 들어간 평행선, 세로로 과감하게 배치한 세로형 에어커튼 홀 등이 강인한 인상을 보탠다.
▲ 운전자가 편한 자세를 취했을 때 뒷좌석 무릎 공간
▲ 적재 공간 확보에 유용한 '스카이 브리지 루프랙'
▲ 튀어 나와 있는 내비게이션은 고급감은 떨어지지만 시인성이 좋다. 정확도는 웬만한 스마트폰 내비 앱보다 뛰어나다.
85만원을 추가로 지불하면 '전방 충돌 경고' '전방 충돌방지 보조' '차로 이탈 경고' '운전자 주의 경고'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도 장착할 수 있다. 차간 거리를 차가 알아서 유지해주는 '스마트크루즈컨트롤(SCC)'이나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차가 조향하는 '차선이탈자동복귀시스템(LKAS)'은 선택 불가능하다. 어차피 이 가격대 차에 해당 기능을 넣으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크게 아쉬움을 느낄 만한 요소는 아닌 듯했다.
▲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ADAS도 장착 가능하다.
기아차 스토닉은 국내에서 1800만원대에 살 수 있는 유일한 디젤 SUV다. 기아차 스토닉은 이 가격대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편의사양을 덜어냈다. 첨단 기능을 즐기기 위해 자동차를 타는 사람이라면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갑은 얇은데 SUV를 즐기고 싶은 소비자라면 국내에 나와 있는 자동차 중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도 없을 것이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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