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무인화 아이콘' 자판기에 밀려난 사람들은 어디로?

오완선 2017. 10. 30. 12:39


자동판매기는 아마도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계로서는 처음으로 등장한 무인화 물건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수많은 기계가 발명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자판기는 사람의 지속적인 조작 없이 오로지 기계적 작동만으로 다양한 편의를 제공해 매출을 일으킨다. 그 시초가 고대 이집트에서 성수를 판매하는 장치였고, 이후에도 자판기는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왔다. 담배, 승차권, 음료수, 과자, 신문 등 유통기한이 없는 제품은 물론 요즘엔 다양한 즉석 식품 등도 자판기로 판매되고 있다. 국내에서 커피, 그림(프림), 설탕이 골고루 섞인 자판기 다방 커피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직장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커피였다. 중국에서는 살아 있는 게를 판매하는 자판기도 있다고 한다. 위생 문제와 전력 소모 등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편리함과 저비용 구조로 자판기 사용은 갈수록 늘고 있다. 자판기가 커버하는 판매 품목이 하나 둘씩 늘어가면서 그 유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등장하면서 단순 업무만 할 줄 알던 자판기들이 더 똑똑한 일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코카콜라는 AI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사람과 채팅할 수 있는 로봇이 탑재돼 있는 스마트 자판기를 실험 중이다. 'VICKI'라는 이름의 스마트 자판기는 소셜 미디어, 지문, 홍채 등으로 로그인해 사용할 수 있는데, 구매 내역을 기반으로 상품 추천도 한다. 단골 손님을 기억해 손만 대면 사려고 하는 제품을 척 하고 내미는 자판기가 나온다는 얘기다.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매일 찾는 동네 구멍가게 주인은 굳이 브랜드를 듣지 않고도 바로 어떤 제품을 건네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형식적으로만 보면 스마트 자판기의 미래가 이런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같은 편리함으로 인해 스마트 자판기 시장은 쑥쑥 커질 전망이라고 한다. 미국 조사회사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오는 2015년 글로벌 자판기 시장은 118억달러에 달한다.

자판기라고 해도 거스름돈이나 물품을 채워주는 것은 역시 사람의 일로 남아 있지만 앞으론 이런 일도 사라지게 될 거 같다. 모든 물건이 인터넷과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서비스가 자리를 잡게 되면 기계들이 알아서 재고를 파악하고 물류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이른바 M2M(Machine to Machine) 시대다. 모든 거래에 블록체인 기술이 더해지면서 안전하고 더 정밀한 자판기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동전이 떨어져서, 혹은 판매할 물품이 동이 나서 작동을 멈추는 자판기는 사라진다. 이런 시대가 되면 드라마에 등장한 동네 구멍가게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동네 주민들이 뭘 살지 잘 알고 있는 인심 좋은 가게 주인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값싼 일용품부터 식사,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비스는 기계에 의해 안정적으로 진행된다. 자판기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 중하위층 사람들이다. 자산가들이 버튼을 눌러 차표를 사고, 음식 주문을 하고, 질 낮은 커피를 뽑아 먹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자판기를 이용할 만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을까. 문득 이런 불온한 생각이 든다.